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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9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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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 마법과 고교의 열등생 25
  3.  
  4. 이스케이프편 <하>
  5.  
  6.  
  7. 이 책은 비상업적 개인 소장용입니다.
  8. 2차 배포할 경우 이에 따른 책임은 해당 배포자에게 있으며,
  9. 배포하는 것과 동시에 이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10.  
  11. by. sdhioe
  12.  
  13.  
  14.  
  15. 2097년 6월 9일 일요일 아침.
  16.  
  17. 정확한 시간은 오전 5시 6분.
  18.  
  19. 이즈 반도 중앙에서 다소 동쪽으로 치우친 고원 지대가
  20. 대규모 마법에 의한 폭파 공격을 받았다.
  21.  
  22. 신소비에트 연방의 국가공인 전략급마법사 이고르 안드레이비치
  23. 베조브라조프의 전략급마법 『투만 봄바』에 의한 거라고 추정되는
  24. 마법 공격은 민간인 별장 27채를 반쯤 파괴했으며, 다행히
  25. 사망자는 없었지만 열 한 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다.
  26.  
  27. 폭발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 규모가 작았던 건,
  28. 집이 적은 지대였던 데다가 오프 시즌이라 이용객이 적었기 때문이다.
  29. 부상자는 전부 별장 관리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30.  
  31. 그렇지만 국토가 부당한 공격을 받아 국민의 신체와 재산이
  32. 위협을 받은 건 명백한 사실이다.
  33.  
  34. 그 날 당일 일본 정부는 국제 사회에 정체를 확정 짓지 못한
  35. 공격자를 향해 엄중한 항의 의사를 표명하고, 특정 국가를
  36. 지정하지 않은 채 범인 인도를 요구했다.
  37.  
  38. 거기다 이 공격은 완벽한 기습, 심지어 해 뜨기 직전 시간이었음에도
  39. 불구하고, 국방 육군이 지상의 근접 거리에서 촬영을 했다.
  40.  
  41. 부당한 선제공격의 확고한 증거인 그 영상은, 동시에 일본군이
  42. 기습을 사전에 탐지했으면서 외교상의 교섭 재료로 삼기 위해
  43. 국민을 내버려뒀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44.  
  45. 국방군 대변인에게 해당 의혹을 정면으로 질문한 기골 있는 기자도
  46. 있었지만, 국방군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이 『트집』을 사실무근으로
  47. 일축했다.
  48.  
  49.  
  50.  
  51. [1]
  52.  
  53.  
  54.  
  55. 부엌 바닥에 쓰러진 미나미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우뚝 멈춰 선
  56. 미유키였지만, 패닉에 지배된 건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57.  
  58. 아직도 패닉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몸의 경직은 풀렸다.
  59.  
  60. "미나미 짱!"
  61.  
  62. 쓰러진 미나미 바로 옆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는다. 이미
  63. 미나미 옆에 픽시가 있었고, 손목에 손가락을 대서 맥박을
  64. 확인하고 있다. 미유키는 그 건너편에 앉아 미나미의 코앞에 손을 댔다.
  65.  
  66. 경악한 표정이 살짝 사라진 건, 미나미의 호흡을 확인했기 때문이겠지.
  67. 하지만 들어올린 손으로 목을 만지고, 미유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68.  
  69. "차가워……. 맥박도 약해……, 오라버니!"
  70.  
  71. 미유키가 타츠야를 올려다보며 눈길로 매달린다.
  72.  
  73. 자신이 지켜볼 수 없었던 호나미의 최후를, 미유키는 미나미의 모습으로
  74. 겹쳐보고 있었다.
  75.  
  76. "픽시, 미나미의 용태는!"
  77.  
  78. 타츠야도 조바심을 숨기지 못했다. 픽시에게 물어보는 목소리는
  79. 필요 이상으로 거칠었다.
  80.  
  81. 『외상은 없습니다만 체온, 혈압, 맥박수 전부 위험한 수준입니다, 마스터.
  82. 이대로라면 쇠약사 가능성이 있습니다.』
  83.  
  84. 타츠야의 초조함을 느낀 거겠지. 픽시는 기계 음성이 아니라
  85. 능동 텔레파시로 대답했다. 타츠야는 픽시에게 허가 없이
  86. 텔레파시를 쓰지 말라고 했지만, 지금 그는 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87.  
  88.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89.  
  90. 타츠야는 왼손을 미나미에게 내밀었다.
  91.  
  92. 그 손에 CAD를 쥐고 있지는 않았다.
  93.  
  94. 오른손은 대응할 때 쓴 『미스트 디스퍼전』용 대형 권총 형태 CAD
  95. 『트라이던트』를 계속 쥐고 있지만, 왼손으로 『재성』용 CAD를
  96. 쥘 시간적 여유가 없기도 했고, 『재성』용 스토리지를 가지러 갈
  97. 심리적 여유도 없었다.
  98.  
  99.  
  100. 타츠야는 자신만의 힘으로 『재성』을 발동시켰다.
  101.  
  102.  
  103. 에이도스 복원마법 『재성』은 에이도스의 변경 이력을 거슬러 올라가
  104. 임의 상태─대부분 열화(劣化)나 손상이 없는 상태─의 에이도스를
  105. 복사해서 현재 에이도스에 덧씌우는 마법이다.
  106.  
  107. 사상에는 정보가 동반된다. 정보가 바뀐 사상은 그 정보에 따라
  108. 변화한다.
  109.  
  110. 정보를 바꿔 사상을 개변한다. 이것이 현대 '마법'이다.
  111.  
  112. 사상 정보 『에이도스』에는 복구력이 있으며, 덧씌워진
  113. 거짓 에이도스는 시간 경과에 따라 원래의 에이도스로 다시 돌아간다.
  114. 그러니까 마법에 의한 개변은 영원하지 않다.
  115.  
  116. 하지만 '과거의 에이도스'는 분명히 그 사상 자체를 기술한 정보체.
  117. 정보에 모순이 없으면 에이도스 복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저
  118. 시간 경과에 따라 내재적 변화가 조정되는 것에 불과하다.
  119.  
  120. 에이도스가 자기 자신의 과거 정보로 바뀐 물체는 그 시점부터
  121. 외적인 작용을 받지 않고 시간만 경과한 상태로 현재에 고정된다.
  122. 그 사상이 고유로 가지는 시간을 거슬러가, 과거의 한 지점부터
  123. 그 사상으로 한정해서 세계를 덧씌워 재개하는 것이다.
  124.  
  125. 타츠야의 『재성』은 통상 마법처럼 인과의 '과(果)'를 변경하는 게
  126. 아니라, '인(因)'을 변경해서 '과'를 바꾸는 것이다.
  127.  
  128. 그 고유 시간 역행, 세계 한정적 재개 마법을 미나미에게 쓴다.
  129.  
  130. ─미나미의 육체적 정보를 읽어내 변경 이력을 거슬러 올라간다.
  131.  
  132. 쇠약 원인은 찾을 수 없다.
  133.  
  134. ─미나미의 육체에 부속하는 사이온 정보체 그 자체를 읽어내
  135. 변경 이력을 거슬러 올라간다.
  136.  
  137. 쇠약 원인은 아직도 찾을 수 없었다.
  138.  
  139. 타츠야는 더욱 깊게, 사쿠라이 미나미라는 소녀의 정보에 액세스했다.
  140.  
  141. ─미나미의 육체와 정신을 잇는 사이온 정보체의 구조를 읽어내고,
  142. 그 변경 이력을 거슬러 올라간다.
  143.  
  144. 이전의 타츠야에겐 어려운 것이었다.
  145.  
  146. 5년 전 여름, 호나미 때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147.  
  148. 그 여름보다 성장한 반 년 전에도, 1개월 전에도 아마도 불가능했다.
  149.  
  150. 사이온 정보체인 이상 액세스 자체는 가능했다.
  151.  
  152. 하지만 대략적인 정보를 읽어내도 구조 정보를 완전히 읽어내는 건
  153. 어려웠다.
  154.  
  155. 하지만 지금 타츠야에겐 가능했다.
  156.  
  157. 오스 완전 해주로 인해 타츠야는 진정한 힘을 되찾았다. 그건
  158. 머티어리얼 버스트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변화만이 아니었다.
  159.  
  160. 에이도스 복원마법 『재성』의 대응 영역도 넓어졌다.
  161. 지금까지 그의 힘이 닿지 않았던 정신으로 직결되는
  162. 사이온 정보체 『유체(幽体)』의 구조 정보를 되짚어가
  163. 복사할 수 있게 됐다.
  164.  
  165. 하지만 그래도 미나미가 쇠약해진 근본적인 원인은 찾아내지 못했다.
  166.  
  167. 유체 구조에서 몇 군데 벌어진 곳이 보였다.
  168.  
  169. 정보가 극소적으로 결락된 탓에 몇 군데 구멍이 뚫린 상태가 됐다.
  170.  
  171. 하지만 그건 쇠약 원인이 아니라 결과, 사이온 정보체의 수복력이
  172. 약해진 탓에 생긴 구멍이다.
  173.  
  174. 이를 수복해도 기존 수복력이 회복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치료가 안 된다.
  175.  
  176. 하지만 정신에 부속된 정보체의 파손을 방치하면 육체에 부속된
  177. 정보체의 파손이 반복되어 발생하고 육체가 더욱 손상된다.
  178.  
  179. 유체는 정신의 명령을 육체로 전달한다.
  180.  
  181. 파손된 유체는 파손됐다는 정보를 육체로 전달해버린다.
  182.  
  183. 육체는 정신이 파손됐다고 명령한다고 오해해버린다.
  184.  
  185. 그 결과 육체는 물리적으로 파손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86. 파손된 상태와 같은 성능만 발휘할 수 있게 된다.
  187.  
  188. 응급 처치에 불과하지만 임시방편이라고 해서 처치하지 않으면
  189. 결정적으로 악화된다. 그렇기에.
  190.  
  191.  
  192. 타츠야는 재성으로 미나미의 사이온 정보체를 복원했다.
  193.  
  194.  
  195. 육체에 부속하는 사이온 정보체와 육체와 정신을 연결하는
  196. 사이온 정보체의 구조를 공격 받기 전 구조 정보로 바꿔 쓴다.
  197.  
  198. 덧씌운 과거 정보가 시간 경과를 가미한 조정이 자동적으로
  199. 이뤄진 다음, 현재로 정착된다.
  200.  
  201. 『체온, 섭씨 35도를 회복. 혈압, 심박수 모두 위험 영역을
  202. 벗어났습니다.』
  203.  
  204. 픽시가 텔레파시로 증상 개선을 알려준다.
  205.  
  206. 하지만 미나미의 의식이 회복될 징조는 없었다.
  207.  
  208. "픽시, 이불을 여기로 가져와서 미나미를 눕혀."
  209. 『알겠습니다, 마스터.』
  210. "미유키는 미나미 주변을 미나미의 현재 체온과 같은 온도로 덥혀줘."
  211. "알겠습니다!"
  212.  
  213. 픽시가 컨트롤하는 홈오토메이션 로봇이 움직이고, 미유키의 마법이
  214. 바닥과 공기에 간섭한다.
  215.  
  216. 타츠야는 그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전화기 앞으로 달려갔다.
  217.  
  218. 119가 아니다. 전화를 건 곳은 요츠바 본가다.
  219.  
  220. 『타츠야 님, 무슨 일이십니까?』
  221.  
  222.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야마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복장으로
  223. 화면에 나타났다.
  224.  
  225. 반면에 타츠야는 아직 파자마 차림이었다.
  226.  
  227. 하지만 타츠야는 이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하야마도 나무라지 않았다.
  228.  
  229. "이런 옷차림이라 죄송합니다."
  230.  
  231. 그래도 일단 그렇게 말해두고 본제에 들어갔다.
  232.  
  233. "별장이 원거리 마법에 의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사용된 마법은
  234. 투만 봄바라고 생각됩니다."
  235.  
  236. 하야마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237.  
  238. 그가 놀라움을 표시한 건 그것뿐이었다.
  239.  
  240. 『피해는 있었나요?』
  241.  
  242. 서두르지 않았지만 적당히 긴장감이 전해지는 목소리로 하야마가 묻는다.
  243.  
  244. "저랑 미유키는 상처 하나 없습니다. 다만 미나미가 마법연산영역의
  245. 오버히트로 추정되는 증상으로 인해 쓰러졌습니다. 응급 처치는 했지만,
  246.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247.  
  248. '마법연산영역의 오버히트'라는 말을 듣고 하야마의 안색이
  249. 즉시 변했다. 하야마가 동요를 살짝 엿보여준 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250. 전전대 당주 요츠바 겐조의 사인으로 추정되는 '마법연산영역의
  251. 오버히트'는 역시 요츠바가 중신들도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다.
  252.  
  253. 『……알겠습니다. 이쪽에서 입원 절차를 밟겠습니다. 효고에
  254. 마중 나가라고 할 것이므로 잠시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255. "잘 부탁합니다."
  256.  
  257. 목적을 달성한 타츠야는 전화를 끊었다.
  258.  
  259.  
  260. ◇ ◇ ◇
  261.  
  262.  
  263. 타츠야가 체재하고 있는 별장 주변으로 대략 반경 1킬로미터에 걸쳐
  264. 결계가 펼쳐졌다. 요츠바 분가 츠쿠바가에 의한 정신 간섭 마법 필드다.
  265.  
  266. 마법사인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정신 간섭 마법에 내성이 없는 사람은
  267.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되는 사람 물리기 결계. 그 심리 방벽을 넘어
  268. 내부에 침입한 사람이 있으면, 이를 술자에게 전달하는 대인 센서 기능도
  269. 겸하고 있다.
  270.  
  271. 하지만 어젯밤 침공 때부터 그 결계 안에 한 대의 특수 차량이
  272. 정차되어 있다. 가변 서스펜션을 갖춘 위장 무늬의 장갑차.
  273.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국방 육군의 군용 차량이지만,
  274. 츠쿠바가의 술자는 그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275. 이곳에 올 때 공용도로를 달렸는데도 불구하고 SNS 같은 곳에서
  276. 화제로 삼은 시민은 전혀 없었다.
  277.  
  278. 가변 서스펜션을 한계까지 내려 땅과 거의 접촉한 상태에서
  279. 투만 봄바의 폭풍에 견딘 장갑차 차내에 네 명의 군인이 타고 있었다.
  280.  
  281. "……사이온 센서에 새로운 반응 없습니다. 원거리 마법에 의한 공격은
  282. 종료됐다고 생각합니다."
  283.  
  284. 그 중 한 명이 조수석에 앉은 지휘관을 향해 그렇게 보고했다.
  285.  
  286. "그런가."
  287.  
  288. 조수석의 지휘관, 국방 육군 제101여단 독립마장대대의 대장인
  289. 카자마 중령은 대대에서 선발한 부하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290.  
  291. 카자마는 딱히 무례한 게 아니었다. 대장이라는 입장과 계급을 생각하면
  292. 이상한 태도가 아니지만, 그가 돌아보지 않은 건 다.른. 용.무. 중.이었기
  293. 때문이다.
  294.  
  295. 카자마는 눈꺼풀을 반쯤 닫고 양손으로 인을 맺어 등을 쭉 편 자세로
  296. 몇 시간이나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장갑차를 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297. 주행 중에도 계속 그랬다. 차체의 동요가 카자마에게만 전해지지
  298. 않은 것처럼, 그의 상반신, 명치 위는 지구 중력에 대해 수직을
  299. 유지하고 있었다.
  300.  
  301. 장갑차가 츠쿠바가의 결계에 걸리지 않은 건, 카자마의 술식 덕분이다.
  302.  
  303. 인식 저해 마법, 텐구술 『카쿠레미노[隠れ蓑]』.
  304.  
  305.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다.
  306.  
  307. 들리는데 들리지 않는다.
  308.  
  309. 빛이나 음파를 차단하거나 교란하는 게 아니라, 인식에 간섭해
  310. '거기에 없다'고 착각하는 마법.
  311.  
  312. 츠쿠바가의 침입자를 감지하는 결계에도 경계에 닿았다는 걸
  313. 술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마법으로 대항하고 있다.
  314.  
  315. 장갑차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건, 카자마의 텐구술이
  316. 츠쿠바가의 결계를 상회했기 때문이다.
  317.  
  318. 카자마가 꼼짝도 못하고 공들이고 있는 건, 츠쿠바가의 결계에
  319. 대항하기 위해선 다른 걸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320. 『대텐구』 이명을 가진 카자마의 실력으로도
  321. 요츠바의 술자에 대항하는 건 간단하지 않았다.
  322.  
  323. "철수한다."
  324. "알겠습니다. 관측 완료, 철수 준비."
  325.  
  326. 카자마의 짧은 명령을 받아 운전석의 사관이 뒤를 돌아보고
  327. 지시를 내렸다.
  328.  
  329. 각 대원이 자신이 담당하는 관측 기계에서 데이터를 기록한 미디어를
  330. 뽑아내고, 보호 케이스에 넣었다. 기기를 서스펜드 상태로 한
  331. 두 명의 하사관이 '철수 준비 완료'라고 차례차례 전달했다.
  332.  
  333. "차체를 올리겠습니다."
  334.  
  335. 운전석에 앉은 사관의 목소리와 동시에 서스펜션이 장갑차를
  336. 들어올린다. 지면에 거의 닿을 때까지 바닥을 내려 주차한 장갑차가
  337. 오프로드 주행 모드로 변했다.
  338.  
  339. "발진 준비 완료."
  340.  
  341. 장갑차를 움직일 허가를 요구한 사관에게,
  342.  
  343. "음? 기다려."
  344.  
  345. 카자마는 스타트 허가를 내리지 않았다.
  346.  
  347. 인을 맺은 채, 반쯤 감은 눈을 떴다.
  348.  
  349. 장갑차 외부 마이크가 접근하는 모터 소리를 포착한 건, 그 직후였다.
  350.  
  351.  
  352. ◇ ◇ ◇
  353.  
  354.  
  355. 타츠야가 체재하고 있는 별장 주변에는 사람이 다가오지 않도록
  356. 결계가 펼쳐져 있다. 이를 컨트롤하는 작은 주택에 요츠바의 분가
  357. 츠쿠바가의 술자가 교대로 들어가 있었다. 이 날 츠쿠바가 차기 당주인
  358. 유우카가 이 집에 체제한 건, 단순한 로테이션 결과였다.
  359.  
  360. 하지만 철야 담당을 후계자인 딸에게 시킬 만큼 츠쿠바가는
  361. 이 임무는 긴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렬한 마법 파동에 의해
  362. 강제로 잠에서 깬 유우카는 파자마에 가운을 두른 막 일어난 차림새로
  363. 의식실로 뛰어들어갔다.
  364.  
  365. "피해 상황을 보고해!"
  366.  
  367. 차기 당주의 너무나도 편안한 옷차림에 젊은 남성 술자의 얼굴이
  368. 경련을 일으켰다. 유우카의 옷차림에 노출도는 제로였지만,
  369. 아마도 '열중하던 일에 갑자기 흥미를 잃었다─'와 같은 동요겠지.
  370.  
  371. "지상 부분은 전멸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372.  
  373. 하지만 질문에 제대로 대답했다.
  374.  
  375. 참고로 그가 침착하게 대화할 수 있는 건, 침실도 의식실도
  376. 지하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감시용 주택은─
  377. 별장 감시가 아니라 별장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감시하기 위한 집이다─
  378. 지하가 본체이며 지상 부분은 위장용이다.
  379.  
  380. "원인은?"
  381.  
  382. 유우카는 마법 파동에 의해 억지로 깼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383.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은 갔지만, 만약에 자신이 잠꼬대를 했을 가능성을
  384. 고려해서 유우카는 그렇게 물었다.
  385.  
  386. "매우 강력한 원거리 마법에 의한 공격입니다. 공중에서 폭발했고
  387. 충격파가 집속된 거라고 추측됩니다."
  388. "충격파를 집속? 마법으로?"
  389. "아뇨, 폭발 자체를 그런 결과가 되도록 컨트롤한 것 같습니다."
  390. "흐음……."
  391.  
  392. 솔직히 말해서 유우카는 그 원리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393.  
  394. 하지만 그만한 위력과 컨트롤을 양립할 수 있는 마법의 정체라면
  395. 짐작이 갔다.
  396.  
  397. "투만 봄바이려나?"
  398. "아마도."
  399.  
  400. 부하인 술자도 같은 의견이었다.
  401.  
  402. "타츠야 씨와 미유키 씨는?"
  403. "별장에 피해는 없습니다. 무사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404.  
  405. 그걸 듣고 유우카가 의아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406.  
  407. 타츠야와 미유키에게 피해가 없다는 추측에 위화감이 있었던 게 아니다.
  408. 별장에 피해가 없다는 보고가 마음에 걸렸다.
  409.  
  410. "……충격파의 수속점은 타츠야 씨의 별장이었잖아?"
  411. "강력한 마법 실드가 충격파를 막아낸 모양입니다."
  412. "……치호 씨, 어떻게 생각합니까?"
  413.  
  414. 유우카는 자신에게 새롭게 붙은 가디언 여성 마법사에게 물었다.
  415.  
  416. "미나미 씨가 자신의 책무를 다한 거겠지요."
  417.  
  418. 유우카의 새로운 가디언, 오자키[櫻崎] 치호는 망설임 없이 명확하게 대답했다.
  419.  
  420. 그녀 또한 조정체 '사쿠라[櫻]' 시리즈 중 한 명이다. 사쿠라이 호나미,
  421. 사쿠라이 미나미와 다른 수정란을 기원으로 삼은, 달리 말하자면
  422. 다른 혈통의 제2세대. 연령은 미나미보다 8살 많으며 마법사로서는 평범한,
  423. 언뜻 보면 '평범한 회사원'의 외견을 갖고 있다.
  424.  
  425. 치호의 특기 마법도 '사쿠라' 시리즈의 조정 방침에 따른 것.
  426. 대물ㆍ내열 방어 실드다. 무엇보다도 고체와 열을 막는 게 특기지만,
  427. 물리적인 물체, 에너지라면 범용적으로 방어한다.
  428.  
  429. 충격파가 흩어졌다면 타츠야의 분해 마법, 감쇠됐다면 미유키의
  430. 진동 감속계 마법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마법 실드로 막아낸 거라면
  431. 자신과 같은 마법이 특기인 미나미가 한 거다. ─치호가 그렇게
  432. 추리한 건 당연하며, 논리적이었다.
  433.  
  434. "너도 가능하려나?"
  435.  
  436. 유우카가 서슴없이 질문했지만, 치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437.  
  438. "아마도 가능합니다. 다만……."
  439. "다만, 뭐?"
  440.  
  441. 치호가 머뭇한 건 아주 잠시였다.
  442.  
  443. "다만 그 뒤에도 임무를 다할 자신은 없습니다. 저 위력을 막아내면
  444. 마법연산영역의 오버 히트로 쓰러지겠지요."
  445.  
  446. 유우카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요츠바 일족 중에서도
  447. 과부하에 의한 마법연산영역의 손상에 대해 특히 잘 알았고,
  448. 달리 말하자면 전문가이자 일종의 의사다. 설령 상대가
  449. 다른 사람의 호위자라 해도, 마법연산영역에 심각한 데미지를
  450. 입었을 가능성이 제시된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451.  
  452. "5분 안으로 준비하겠어. 너도 준비해."
  453. "도와드릴까요?"
  454.  
  455. 치호는 유우카의 상태를 보고 5분 안으로 준비를 마치는 건
  456.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457.  
  458. "괜찮아."
  459.  
  460. 유우카는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여기고 거절한 다음 침실로 돌아갔다.
  461.  
  462. 주인과 달리 바지 정장을 입고 있었던 치호는 당장 나갈 수 있도록
  463. 주차장으로 향했다.
  464.  
  465.  
  466.  
  467. 지상의 주차장은 폭파로 전멸했지만, 굳이 간소한 구조로 만든 게
  468. 역으로 좋게 작용해 차가 묻히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469.  
  470. 외견은 시판 SUV, 실태는 장갑차 정도의 방어력을 갖춘
  471. 오프로드 차에 탄 다음 유우카는 새삼 떠올랐다는 것처럼
  472. 결계 상태를 확인했다.
  473.  
  474. "어!?"
  475.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476.  
  477.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낸 유우카에게 모니터 시동 스위치를 누르고
  478. 드라이브 레버를 앞으로 내리려고 한 치호가 동작을 멈추고
  479. 이유를 물었다.
  480.  
  481. "침입자……?"
  482. "결계에 걸리지 않은 겁니까?"
  483.  
  484. 치호의 냉정한 어조 덕분에 유우카는 동요에서 벗어났다.
  485.  
  486. "그렇네, 무시무시한 실력자야. 미나미 씨도 걱정되지만,
  487. 이쪽을 우선하겠습니다."
  488.  
  489. 유우카의 판단에 치호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490.  
  491. "모두에게 긴급 출동을 명령하겠습니다."
  492.  
  493. 그 대신에 여기에 있는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494. 의견을 제시했다.
  495.  
  496. "응, 부탁해. 우리는 먼저 가 있자고."
  497.  
  498. 유우카는 치호의 의도를 이해했지만, 그 조언에는 따르지 않았다.
  499.  
  500. "알겠습니다."
  501.  
  502. 치호는 유우카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았다.
  503.  
  504. 유우카가 가리킨 방향으로 오프로드를 발진시킨다. 결계 내에
  505. 침입한 것이 누구든 간에, 아군이 올 때까지 자신의 장벽 마법으로
  506.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치호에겐 있었던 거겠지.
  507.  
  508. 침입자는 별장을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9시 위치에 있었다.
  509.  
  510. "육군의 장갑차네요."
  511.  
  512. 위장 무늬에 날카롭게 각진 폼을 보고 치호가 그렇게 판단했다.
  513. 유우카는 치호만큼 차 종류를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514. 그런 그녀가 봐도 군의 특수 차량이라는 건 일목요연했다.
  515.  
  516.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기 앞에 세워줘."
  517.  
  518. 유우카의 지시에 따라 치호는 장갑차 진로를 막는 위치에
  519. 오프로드를 주차했다.
  520.  
  521. "증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522. "……그래."
  523.  
  524. 이번에는 치호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유우카는 차 안에 머물렀다.
  525.  
  526.  
  527. ◇ ◇ ◇
  528.  
  529.  
  530. 비교적 소형인 SUV가 장갑차 앞에 멈춘 걸 보고, 운전석의 사관이
  531. 지시를 요구하며 카자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532.  
  533. 카자마가 인을 풀고 문 개패 스위치를 건드렸다.
  534.  
  535. "대장님?"
  536. "전원 차 내에서 대기. 우리가 적대 의사를 갖고 있다고
  537. 상대가 오해할 만한 행위는 금지한다."
  538.  
  539. 부하에게 못을 박고 카자마는 장갑차에서 내렸다.
  540.  
  541. 내린 위치에서 SUV로 고개를 돌린다. 알아보기 쉬운 동작을 취했기에
  542. 상대방도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터이다.
  543.  
  544. 카자마는 스스로 이 이상의 행동을 일으키지 않고 상대방의 차 안에서
  545. 반응이 나오길 기다렸지만, 리액션은 좀처럼 얻을 수 없었다.
  546.  
  547. 카자마는 그 이유를 금방 깨달았다.
  548.  
  549. 지금 있는 곳은 비교적 개방적이다. 타츠야가 있는 별장을 향한 공격을
  550. 기록한다는 목적 때문에 그런 지형을 골랐지만, 그래도 나무로 인해
  551. 이곳저곳이 시야가 차단되어 있다.
  552.  
  553. 그 사각에 사람이 모여 있다.
  554.  
  555. 총 11명. 카자마의 감각에 의하면 모두 다 상당히 레벨이 높은 마법사다.
  556.  
  557. SUV의 운전석과 조수석의 문이 동시에 열렸다. 증원은 이걸로
  558. 끝이라는 거겠지. 카자마는 그렇게 판단했다.
  559.  
  560. "츠쿠바 유우카라고 합니다. 요츠바가를 본가로 받드는
  561. 츠쿠바가의 장녀입니다."
  562.  
  563. 조수석에서 내린 젊은 여성이 잘 들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564. 두 사람의 간격은 5미터가 넘지만, 바람이 부는 야외에서도
  565. 듣는 데에 지장은 없었다.
  566.  
  567. "국방 육군 제101여단 독립마장대대의 카자마 중령이라고 생각됩니다."
  568.  
  569. 자신이 누군지 알아차렸다는 사실에 카자마는 놀라지 않았다.
  570. 그녀가 직접 말한 신분이 맞는 거라면, 자신에 대해 알아도
  571. 이상하지 않았다.
  572.  
  573. "그 말대로입니다. 저는 국방 육군의 카자마 중령입니다."
  574.  
  575. 카자마는 장갑차 옆에서 움직이지 않고 대답했다. 손이 닿는 범위까지
  576. 다가오는 걸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577.  
  578. 하지만 그의 예측과 달리 유우카 쪽에서 카자마 쪽으로 다가갔다.
  579.  
  580. 카자마도 바로 이에 반응했다.
  581.  
  582. 상대에게 우호적인 자세를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583. 그것만이 아니다. 20대 전반의 젊은 여성 쪽이 부하가 타고 있는
  584. 장갑차까지 다가오면, 자신이 겁쟁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고
  585. 우려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586.  
  587. 운전석에서 내려온 여성이 유우카 바로 뒤에서 따라온다.
  588. 그녀의 호위겠지. 앞에 서지 않은 건 방어 마법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589. 카자마는 추측했다.
  590.  
  591. ''가디언'인가. 숙련가군.'
  592.  
  593. 요츠바가의 '가디언'에 대해 카자마는 타츠야를 통해 어느 정도 들었다.
  594. 호위라고 생각되는 여성이 '가디언'이라는 건, 몸에 두른 분위기로
  595. 깨달았다.
  596.  
  597. "카자마 중령.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여긴 요츠바가의
  598. 사유지입니다."
  599.  
  600. 카자마가 가디언 여성─ 치호 쪽으로 의식을 쏟은 짧은 시간에
  601. 유우카는 평범하게 대화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602.  
  603. "엄밀하게 말하자면 요츠바가 지배하는 부동산 회사의 소유입니다만,
  604. 지금은 어찌되든 상관없겠지요. 국방군은 사유지에서 무슨 짓을 한 겁니까?
  605. 그런 것까지 가져와서."
  606.  
  607. 장갑차로 시선을 돌리며 유우카가 묻는다.
  608.  
  609. 예상한 힐문에 카자마는 어떻게 대답해야만 할지 고민했다.
  610. 발견될 거라고 상정하지 않았기에 변명을 준비하지 못했다.
  611.  
  612. 카자마에게 불행했던 건, 어제와 오늘이 유우카가 담당하는
  613. 날이었다는 거다. 다른 술자라면 그의 『카쿠레미노』를
  614. 간파하지 못했겠지.
  615.  
  616. 하지만 그들의 침입을 유우카가 발견해버렸다. 카자마는
  617. 자만할 생각이었지만, 역시 왠지 모르게 얕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618. 그는 자책을 머릿속 한구석에 새겼다.
  619.  
  620. "죄송합니다만, 군사 기밀이라 대답할 수 없습니다."
  621.  
  622. 결국 카자마는 괜찮은 변명을 짜내지 못하고 민.간.인.에게 유효한
  623. 조커를 꺼내버렸다.
  624.  
  625. "군사 기밀이라는 건, 즉 외국의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은 공격을
  626. 사전에 탐지했다는 겁니까?"
  627.  
  628. 하지만 유우카는 '군사 기밀'이라는 말에 겁을 먹는 기특한 성격이
  629. 아니었다.
  630.  
  631. "그쪽의 장갑차…… 정보 수집을 위한 장비지요?"
  632.  
  633. 그렇게 말하고 유우카는 뒤에 있는 치호를 돌아봤다.
  634.  
  635. "네. 정찰용 업무였다고 생각됩니다."
  636.  
  637. 대답하는 치호의 말에 단정 짓는 단어는 없었지만, 어조는
  638. 이에 가까웠다.
  639.  
  640.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요.츠.바.가.와 대치할 생각이
  641. 없습니다."
  642.  
  643. 카자마는 표면적으로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민간인'을
  644. '요츠바'로 바꿔서 유우카의 말에 대응했다.
  645.  
  646. "요츠바가는 민간인이 아니라고?"
  647.  
  648. 유우카는 카자마의 암시한 부분을 즉시 추궁했다.
  649.  
  650. 하지만 그 반응은 카자마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651.  
  652. "형식은 둘째 치고 실질적으로 완벽한 비전투원은 아니지 않습니까."
  653. "……공무원은 형식이야말로 중요한 것 아닙니까?"
  654.  
  655. 되받아쳤지만 아주 살짝 생긴 타임래그. 유우카가 카자마의 논법을
  656. 부정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657.  
  658. "형식으로 납득해주시는 겁니까?"
  659.  
  660. 카자마가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본다. 유우카는 대답할 말이 궁했다.
  661.  
  662. "그런 것보다 투만 봄바에 의한 공격을 군이 예측했는지
  663. 알고 싶습니다만."
  664.  
  665. 이 반문은 유우카의 것이 아니었다.
  666.  
  667. 나무 그늘에서 나온 목소리에 카자마가 서둘러 돌아봤다.
  668. 그의 얼굴에 미처 숨기지 못한 동요가 떠올랐다.
  669.  
  670. "타츠야……."
  671. "타츠야 씨……."
  672.  
  673. 카자마와 유우카가 동시에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674.  
  675.  
  676. ◇ ◇ ◇
  677.  
  678.  
  679. "오라버니, 무슨 일 있으신가요?"
  680.  
  681. 미나미의 머리맡에 있는 미유키가 타츠야의 긴장감을
  682. 날카롭게 파악하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683.  
  684. 현재 미나미의 용태는 진정됐다.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685. 방심할 수는 없지만, 타츠야의 『재성』 덕분에 긴급한 사태는
  686. 벗어났다.
  687.  
  688. 그는 미나미를 병원으로 보낼 헬기를 마중 나가기 위해 파자마에서
  689.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미나미를 눕힌 부엌으로 돌아왔을 때,
  690. 초조함은 있었지만 딱히 긴장한 느낌은 없었다.
  691.  
  692. 그런데 갑자기 적을 경계하는 긴장감을 두른 것이다.
  693.  
  694. 타츠야가 뭘 느낀 건지, 미유키는 알 수 없었다.
  695.  
  696. "카자마 중령이 와 있어."
  697. "카자마 중령 말입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698. "나도 몰랐어."
  699.  
  700.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미유키에게 타츠야도 자신도 그렇다며
  701.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
  702.  
  703. "유우카 씨의 마법으로 끌어낸 모양이다."
  704. "유우카 씨도 와 계신 겁니까?"
  705.  
  706. 타츠야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유키는 납득이 가지 않은
  707. 모양이었지만, 그것보다 그쪽이 더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708.  
  709. "츠쿠바가의 술자가 사람을 물리는 마법을 쓰고 있어. 이모님의 지시겠지."
  710. "이모님이……."
  711.  
  712. 마.치. 타츠야를 신경 쓰는 것 같은 마야의 지시를 어떻게 해석하면
  713. 좋을지 몰라, 미유키는 당황을 넘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714.  
  715. "나는 중령을 만나러 가겠어. 미유키, 미나미를 부탁한다."
  716.  
  717. 하지만 마야의 진의를 현재 여기서 추측해봤자 의미는 없다.
  718. 억측만 나올 뿐만이 아니라 진상에 도달한다 해도 쓸모가 없다.
  719. 미유키가 무의미한 미로에 사로잡히기 전에 지금 해야만 하는 걸 상기시켜
  720. 그녀의 의식을 되돌린 다음, 타츠야는 말한 대로 카자마를 만나기 위해
  721. 별장 밖으로 향했다.
  722.  
  723.  
  724.  
  725. 타츠야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카자마와 유우카는 대화 도중이었다.
  726.  
  727. 그의 도착을 탐지한 츠쿠바의 술자를 손짓으로 얌전히 있게 하고,
  728. 타츠야는 풍경과 동화해서 카자마와 유우카의 말싸움을 귀 기울였다.
  729.  
  730. 유우카를 상대하지 않았다면 카자마는 타츠야의 존재를 깨달았겠지.
  731.  
  732. 카자마를 상대하지 않았다면 유우카는 타츠야의 존재를 깨달았겠지.
  733.  
  734. 서로 상대를 '방심할 수 없는 정신 간섭계 마법 사용자'라고 인식한 탓에,
  735. 다른 부분에 대한 주의가 어설펐다. 유우카는 둘째 치고 『대텐구』의
  736. 이명을 가진 카자마치고는 허술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한다.
  737. 타츠야는 모르지만, 분명 츠쿠바가의 결계를 홀로 계속 속인 탓에
  738. 피로가 축적됐기 때문이다.
  739.  
  740. 『군사 기밀이라는 건, 즉 외국의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은 공격을
  741. 사전에 탐지했다는 겁니까?』
  742.  
  743. 유우카의 지적이 타츠야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744.  
  745. 카자마가 타고 온 게 분명한 장갑차는 전투보다도 정보 수집이 목적인
  746. 위장 차량이다. 심지어 실려 있는 건, 상당히 고액의 기기다.
  747.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오늘 여기서 귀중한 데이터를 관측할 수 있다고
  748. 기대해서 출동했다고 추측된다.
  749.  
  750. 유우카의 말대로 국방군은 투만 봄바에 의한 기습을 사전에 탐지했다……?
  751.  
  752. 그건 타츠야가 지나칠 수 없는 의혹이었다.
  753.  
  754. 『형식으로 납득해주시는 겁니까?』
  755.  
  756. 심지어 얼굴로 드러난 카자마의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에
  757. 유우카가 반론할 말을 잃었다.
  758.  
  759. 애초에 시간적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이 이상의 관측은
  760. 필요 없다고 타츠야는 판단했다.
  761.  
  762. "그런 것보다 투만 봄바에 의한 공격을 군이 예측했는지
  763. 알고 싶습니다만."
  764.  
  765. 은형을 풀고 나무 그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타츠야를,
  766.  
  767. "타츠야……."
  768. "타츠야 씨……."
  769.  
  770. 카자마와 유우카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771.  
  772. "카자마 중령, 대답해주세요."
  773.  
  774. 타츠야는 카자마에게 경례하지 않았다. 평범한 인사도 생략했다.
  775.  
  776. 호의적인 인사 교환으로 자신의 날카로운 말이 부드러워지는 걸
  777. 타츠야는 싫어했다.
  778.  
  779. "……츠쿠바 씨에게도 말했지만, 대답할 수 없다."
  780. "즉 긍정이라는 겁니까?"
  781. "노코멘트다."
  782.  
  783. 타츠야는 카자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784.  
  785. "카자마 중령. 저는 중령에게 의리와 은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786. 그러니까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787. "…………."
  788. "미리 경고해주셨다면 신소련의 기습을 간단히 허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789. "……원거리 마법에 의한 기습이 신소련의 것이라는 게 확실한 건가?"
  790.  
  791. 카자마가 거기에 관심을 가진 건 당연했다.
  792.  
  793. 하지만 타츠야가 문제 삼은 건, 다른 포인트였다.
  794.  
  795. "근거를 대답하면 제 의문도 해결해주시는 겁니까?"
  796.  
  797. 카자마는 방금 전 공격이 신소련의 전략급마법사 13사도
  798. 베조브라조프의 투만 봄바에 의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799. 확신은 가지지 못했다.
  800.  
  801. 타츠야는 카자마가 원거리 마법을 사용한 기습이 있을 것을
  802. 알고 있었다고 확신했다.
  803.  
  804. "……좋지."
  805.  
  806. 신소련에 의한 기습 공격이 있었다는 증거. 언질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로
  807. 고집 피워봤자 이익은 없다고 다시 생각하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808.  
  809. "기습 공격에 사용된 마법은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노선 위에서
  810. 사용된 겁니다."
  811. "노선 위?"
  812. "투만 봄바라고 추정되는 마법을 사용한 술자에게 속한 정보를
  813. 읽어낸 결과입니다."
  814. "베조브라조프를 포착했다는 거야!?"
  815.  
  816. 저도 모르게 유우카가 끼어들었다.
  817.  
  818. "술자는 쓰러뜨렸습니다만, 그건 베조브라조프가 아니겠죠.
  819. 두 사람 다 여성이었으니까."
  820. "여성!?"
  821.  
  822. 유우카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823.  
  824. "두 명……. 미공개 전략급마법사인가."
  825.  
  826. 카자마가 즉시 진상에 도달했다.
  827.  
  828. "베조브라조프가 전혀 관계되지 않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829. 제가 본 술자는 그 두 사람입니다. 그들은 분명 신소련의
  830. 극동 지역에 있었습니다."
  831. "노선 위라는 말은 신 시베리아 철도의 군용 차량인가."
  832.  
  833. 국방군에게 그건 커다란 의미를 가진 정보였다.
  834.  
  835. 투만 봄바 발동에는 한 차량을 통째로 점유하는 대형 CAD를
  836. 써야 된다는 말은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그 가설의 근거가 없었다.
  837.  
  838. 게다가 소야 해협에서 투만 봄바 같은 마법이 사용됐을 때
  839. 그런 열차 이동은 관측되지 않았다. 그런 탓에 국방군은
  840. 전용 열차를 쓴다는 정보가 잘못됐거나, 그게 아니면 그 때의 마법이
  841. 투만 봄바가 아닌 다른 술식이었던 거라고 고민하던 참이었다.
  842.  
  843. 하지만 타츠야의 증언으로 투만 봄바를 사용하기 위해선
  844. 전용 열차가 필요하다는 점이 사실로 판명됐다.
  845.  
  846. 타츠야는 '투만 봄바라고 추정되는 마법'이라고 표현했지만,
  847. 위력이나 사정거리를 보면 방금 사용된 마법이 투만 봄바인 건
  848. 확실했다. 그렇다면 신소련은 투만 봄바와는 다른 초장거리 사정ㆍ
  849. 고위력의 마법을 갖고 있다는 게 된다.
  850.  
  851. 그게 투만 봄바이든 아니든 일본에게 위협적인 마법이
  852. 전용 열차를 사용한다는 걸 알아냈다. 군이 갖고 있는
  853. 관측을 위한 리소스는 유한하다. 우선적인 감시 대상이 밝혀지면
  854. 그 리소스를 유효하게 배치할 수 있다.
  855.  
  856. 하지만 카자마는 만족감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857.  
  858. "중령, 이번엔 당신 차례입니다."
  859.  
  860. 타츠야는 독립마장대대의 일원으로서, 카자마의 부하로서
  861. 보고를 한 게 아니다. 이건 거래였다.
  862.  
  863. "국방군은 오늘 아침 이 자리에서 기습 공격이 있을 걸 알았다.
  864. 그렇지요?"
  865. "알았던 건 아니다. 게다가 일시는 예측하지 못했다."
  866. "즉 이곳이 습격을 받을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그건 어째서입니까?"
  867.  
  868. 카자마는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이건 군의 정보 수집 능력에 관한
  869. 질문이었다. 타츠야는 반쯤 국방군 신분이지만, 아니 국방군 사람이기에
  870. 그에게 이를 알 권한이 있는 건지 카자마는 잠시 망설였다.
  871.  
  872. "국방군은─ 아니 사에키 각하는 베조브라조프의 동향에 관한 정보를
  873. 입수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절 표적으로 삼은 기습 공격을 예측한 것
  874. 아닙니까?"
  875.  
  876. 타츠야는 카자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사실을 정확히 맞췄다.
  877.  
  878. 카자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가 대답하지 못하는 걸 보고
  879. 타츠야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고 알아차렸다.
  880.  
  881. 만약 기습이 있을 거라고 경고했다면 미나미가 쓰러지는 사태는
  882. 피했을 터이다. 애초에 미유키와 미나미를 별장으로 부르지 않았을 거다.
  883. 타츠야 혼자서 방금 전 공격을 받았다고 해도 데미지는 남.지.
  884. 않.았.을. 터.이다.
  885.  
  886. "부상자가 있으므로 저는 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887.  
  888. 타츠야는 원망을 집어삼켰다. 카자마에게 말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889. 없으니까.
  890.  
  891.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중령. 유우카 씨,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892. "잠깐, 타츠야 씨. 부상자라는 건……, 미나미 씨?"
  893.  
  894. 불러 세운 유우카의 말에 등을 돌린 타츠야가 돌아본다.
  895.  
  896. "그렇습니다. 유우카 씨는 미나미가 어떤 상태인지 아는 모양이군요."
  897.  
  898. 미나미에게 부상이라고 할 만한 외상은 없다. 하지만 마법연산영역─
  899. 정신의 무의식 영역이 상처를 입었다. 그 의미로 타츠야는
  900. '부상자'라고 표현했고, 유우카는 이를 이해했다.
  901.  
  902. "당장 병원으로 옮겨야지! 우리 집 사람들에게 도우라고 할까?"
  903.  
  904. 유우카가 서둘러 수송을 준비하라고 했다.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905. 그녀는 동요를 억누르지 못했다.
  906.  
  907. "이미 본가가 헬기를 준비해줬습니다. 슬슬 도착할 때이므로……."
  908.  
  909. 그러니까 돌아가야만 한다고 타츠야가 은근하게 말한다.
  910.  
  911. "그, 그래? 그…… 몸조심하길."
  912. "감사합니다."
  913.  
  914. 유우카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타츠야는 이번에야 말로
  915. 두 사람에게서 등을 돌려 걸어갔다.
  916.  
  917. 그 뒷모습을 걱정된다는 것처럼 유우카가 배웅한다.
  918.  
  919. 카자마의 입에서는 마지막까지 '부상자'를 염려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920.  
  921.  
  922.  
  923. [2]
  924.  
  925.  
  926.  
  927. 미나미가 수용된 병원은 쵸후에 있는 맨션 근처였다.
  928.  
  929. 물론 우연이 아니다. 미유키가 살고 있는 쵸후의 빌딩은 요츠바가의
  930. 도쿄 본부로서 세워진 건물. 부상자 대책은 처음부터 고려했다.
  931.  
  932. 타츠야는 미유키와 함께 새로운 자택인 맨션으로 돌아갔다.
  933. 미유키는 미나미와 붙어 있고 싶어 했지만, 담당 의사가
  934. 정중하게 거부했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방출하는 마법력이
  935. 치료에 방해된다는 말을 들어, 미유키도 억지를 부릴 수 없었다.
  936.  
  937. "미나미 짱, 괜찮을까요……."
  938.  
  939. 타츠야 옆에 전혀 거리를 두지 않고 앉은 미유키가 불안감을
  940. 숨기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941.  
  942. 아마도 숨길 생각도 없는 게 분명하다.
  943.  
  944. "목숨에 지장이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945.  
  946. 타츠야가 기대한 것과 비슷한 대답을 해주자 미유키의 얼굴에서
  947. 불안이 조금 옅어졌다.
  948.  
  949. "……그렇겠죠. 오라버니가 『재성』을 썼는걸요. 만약의 일은
  950. 없을 겁니다."
  951.  
  952. 타츠야가 망설임을 담은 눈동자로 미유키를 응시한다.
  953.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유키를 상대로
  954. 안이한 위로를 주어 얼버무리는 짓은 불성실하다고 느낀 거다.
  955.  
  956. "……내가 한 건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에 불과해. 치료는 할 수 없었다."
  957.  
  958. 우선 사실을 말하고, 미유키의 불안감이 증폭되기 전에 즉시
  959. 보충 설명을 더한다.
  960.  
  961. "하지만 육체의 쇠약이 치명적인 레벨까지 진행되는 건 피했을 터다.
  962. 게다가 미나미는 제2세대. 제1세대인 호나미 씨보다 자신의
  963.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강할 터이다."
  964. "그렇지요!"
  965.  
  966. 미유키가 숙인 고개를 들어올린다. 내리깔았던 시선이 기댈 곳을 요구하며
  967. 타츠야의 시선을 포착한다.
  968.  
  969. "세대를 거듭하여 마법이 유전자에 정착된다……. 이 경향은
  970. 우.리. 조.정.체.에게도 해당되는 거지요?"
  971.  
  972. 미유키가 자신을 '조정체'라고 말하자 타츠야는 저항감을 느꼈다.
  973.  
  974. "평.범.한. 조정체는 제1세대보다 제2세대 쪽이 안정되어 있지.
  975. 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그런 경향인 건 분명해."
  976.  
  977. 일반적으로 조정체는 생물로서 안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978. 어느 날 갑자기 급격히 쇠약해져서 죽는 경우도 있고,
  979. 어떠한 징조도 없이 갑자기 죽는 케이스도 많이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980.  
  981. 그 원인에 대해선 아직 정설이 없다. 하지만 몇 가지 가설이 있다.
  982. 그 중 타츠야가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하는 건, '조정체의 마법은
  983. 정신 리미터가 벗어난 상태로 행사된다'라는 가설, '리미터 불완전설'이다.
  984.  
  985. 이 설에 따르면 원래 인간의 정신은 마법 행사가 가능하지 않다.
  986. 마법연산영역은 마법사에게 있는 고유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987. 일반적인 정신에 갖춰져 있다. 하지만 마법 행사는 인간의 정신에
  988. 허용 한도를 넘은 부하를 주기 때문에, 보통은 무의식 영역에 있는
  989. 리미터로 백 퍼센트 가동을 제한한다. 즉 완전히 동결되어 있다.
  990.  
  991. 하지만 드물게 마법에 대한 강한 내구력을 가진 정신의 소유자가 있으며,
  992. 그런 자의 리미터는 살짝 해제되어 있다. 백 퍼센트의 리미터가
  993. 99 퍼센트나 98 퍼센트 상태로 설정되어 탄생하는 거다.
  994.  
  995. 설령 1퍼센트나 2퍼센트라 해도 가용 가능한 용량이 제로 퍼센트인 것과
  996. 본질적으로 다르다. 설령 처음엔 1퍼센트라 해도 어쨌든
  997. 쓸 수 없을 터인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
  998.  
  999. 근육과 똑같이 마법연산영역도 사용하면 출력이 늘어난다.
  1000. 그리고 뼈나 근육이 근력 증대를 버티기 위해 강도를 높이는 것처럼
  1001. 정신도 마법이라는 부하에 대한 내구력을 기른다고 '리미터 불완전설'을
  1002. 믿는 사람이 말한다. 육체의 경우와 달리 우선 내구력이 상승하고,
  1003. 그 뒤에 마법연산영역의 리미터 해방과 출력의 강화가
  1004. 병행적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1005.  
  1006. 이런 식으로 평범한 마법사는 마법을 쓰면서 마법행사에 대한
  1007. 원래의 내구력을 점차 높여, 이로 인해 리미터 해방도가 점점 높아진다.
  1008. 그런데 조정체 마법사는 마법을 쓰 수 있는 상태를 인공적으로
  1009. 만들기 때문에 이 리미터가 기능하지 않는다는 게 '리미터 불완전설'의
  1010. 주장이다.
  1011.  
  1012. 정신의 대(對) 마법 내구력 상승에 따라 해방될 터인 마법연산영역이
  1013. 처음부터 해방되어 있다. 정신은 내구력을 넘은 마법 부하에
  1014. 계속 노출되어 끝내는 파손되고, 이게 육체의 생명 활동에
  1015. 영향을 끼친다. 조정체의 불완전한 생명력을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1016.  
  1017. 그런데 정신의 대 마법 내구력은 획득형질로서 유전된다고 한다.
  1018. 육체의 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하는 네오라마르키즘은 진화설의
  1019. 주류가 되지 못했지만, 마법 적응이라는 정신 분야에서는
  1020. 획득형질 유전이 '마법이 유전자에 익숙해진다'라는 관측 현상을
  1021.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가설로 본다.
  1022.  
  1023. 이 정신적 라마르키즘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이 사실이라면,
  1024. '제2세대'는 '제1세대'가 자멸의 길을 걸으면서 얻어낸 대 마법 내구력을
  1025. 태어나면서 지니게 된다. '제3세대'는 '제2세대'가 높인 내구력을
  1026. 더욱 많이 받게 된다.
  1027.  
  1028. 모든 건 가설에 불과하다. 게다가 옳다는 증거는 없다.
  1029.  
  1030. 하지만 '제2세대'인 미나미는 '제1세대'인 호나미와 달리
  1031. 마법 과잉 행사에 견딜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다.
  1032. 그렇게 생각해서 미유키는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1033.  
  1034. 미유키의 얼굴에서 비장감과 죄악감이 옅어진다. 그녀는
  1035. 미나미가 자신을 위해 희생된 거라고 적지 않은 죄의식을
  1036. 품고 있었다.
  1037.  
  1038. 그걸 보고 타츠야가 미유키에게 미소를 지었다. 마음 속 우려를 숨기고.
  1039.  
  1040. 미유키가 조정체라는 건 타츠야에게 불쾌한 사실이었다.
  1041. 가능하다면 믿고 싶지 않지만, 부정할 근거가 없다.
  1042. 조정체에게 기피감이나 차별 의식을 품고 있는 건 아니고,
  1043. 설령 그게 태어나기 전이라 해도 누군가가 미유키를
  1044. 만지작거렸다고 생각하면 불쾌감이 들어버렸다.
  1045. 타츠야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일종의 독점욕이었다.
  1046.  
  1047. 하지만 그런 감정을 빼고 미유키가 조정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1048. 심각한 우려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1049.  
  1050. 그건 마야가 말한 대로 제1세대가 가진 생명력의 안정성 결여를
  1051. 정말로 극복했는가 안 했는가라는 불안.
  1052.  
  1053. 마야의 말을 방금 전 가설에 맞춰보면 미유키는 조정체이면서
  1054. 리미터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거겠지. 혹은
  1055. 리미터가 애초에 필요 없을 정도로 원래부터 대 마법 내구력이 높거나.
  1056.  
  1057. 이를 확인 할 수단은 타츠야에게 없다. 봉인에서 완전히 해방된 지금도
  1058. 그의 힘은 정신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다.
  1059.  
  1060. 그러니까 믿을 수밖에 없다.
  1061.  
  1062. 만약 마야가 타츠야에게 말한 것이 거짓이며 미유키가 조정체의 결함을
  1063. 품고 있다면.
  1064.  
  1065. 그리고 미유키에게 조정체의 숙명인 갑작스런 죽음이 찾아온다면.
  1066.  
  1067. 타츠야는 그 이후의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1068.  
  1069. 그 때 자신은 살아 있지 않겠지.
  1070.  
  1071. 그 때 자신만으로 멈출 자신감이, 타츠야에겐 없었다.
  1072.  
  1073.  
  1074. ◇ ◇ ◇
  1075.  
  1076.  
  1077. 기습 공격에 대해 일본 정부가 특정 국가를 지정하지 않은 채
  1078. 국제 사회에 항의 의사를 표명한 건, 일본 시각으로 오후 2시였다.
  1079.  
  1080. 하지만 일본의 이즈 반도가 원거리 마법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1081. 거의 리얼 타임으로 USNA에 알려졌다.
  1082.  
  1083. USNA의 탐지 위성은 이즈가 공격 받은 것과 같은 시각에
  1084. 극동 신소련 영토 내에서 강력한 마법 반응을 탐지했다.
  1085. 이 두 가지를 연결 짓지 않는 너무나도 어수룩한, 혹은
  1086. 회의적인 사람은 USNA 정부에도, 군에도 없었다.
  1087.  
  1088. 그리고 그 사실을 몇 시간 뒤에 리나도 알게 됐다.
  1089.  
  1090.  
  1091.  
  1092. USNA 뉴멕시코 주에 있는 스타즈 본부는 아직 6월 8일 토요일이다.
  1093. 그날 저녁 훈련 종료 뒤의 미팅에서 리나 이하의 스타즈 간부 군인은
  1094. 놀라운 뉴스를 접했다.
  1095.  
  1096. 일본의 한 지방, 심지어 떨어진 섬이나 해상이 아니라 수도 근처에서
  1097. 현지 시각으로 해 뜰 녘에 신소련의 전략급마법에 의한 공격을
  1098. 받았다는 보고다.
  1099.  
  1100. "참고로 이 공격의 타깃은 일본의 새롭게 판명된 전략급마법사
  1101. 타츠야 시바라고 생각됩니다."
  1102.  
  1103. 브리핑 룸에서 이 뉴스를 알린 건, 워커 기지사령관의 마법사가 아닌
  1104. 남성 부관이었다.
  1105.  
  1106. "타츠야 시바의 상태는?"
  1107.  
  1108. 이렇게 질문한 건 리나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직 쇼크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1109. 조리 있는 질문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기지사령관의 부관에게
  1110. 타츠야의 안전을 물어본 건 카노프스였다.
  1111.  
  1112. 부관이 워커 사령관을 본다.
  1113.  
  1114. 워커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그는,
  1115.  
  1116. "상세한 건 불명입니다만, 건재라고 생각됩니다."
  1117.  
  1118. 그렇게 대답했다.
  1119.  
  1120. 마법사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1121.  
  1122. 리나는 안도감을 숨기지 못했다.
  1123.  
  1124. 카노프스는 타츠야의 복수를 경계하는 건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1125.  
  1126. 아르크투루스가 낙담한 표정으로 보이는 건, 암살 임무가
  1127. 중지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1128.  
  1129. 같은 임무를 받은 베가는 대조적으로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다.
  1130.  
  1131. 여기서 워커 대령이 입을 열었다.
  1132.  
  1133. "우리나라는 이 건에 대해 기본적으로 불간섭 자세를 취하겠다고
  1134. 참모본부가 통지했다. 제군이 대외적으로 발언할 기회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1135. 염두에 두어두게."
  1136.  
  1137. 모두 긍정했다. 이 판단에 납득하지 못한 사람은 리나만이 아니었지만,
  1138. 그들은 모두 자신의 입장을 헤아리고 있었다.
  1139.  
  1140. "그럼, 해산."
  1141.  
  1142. 워커의 말에 USNA의 정점에 선 13인의 마법사가 일제히 경례했다.
  1143.  
  1144. 리나부터 순서에 따라 퇴실하는 그들 뒤에서,
  1145.  
  1146. "아르크투루스 대위, 자네는 남게."
  1147.  
  1148. 한 사람을 불러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1149.  
  1150. 원래 스타즈의 작전은 총대장인 리나를 통하는 게 룰이지만,
  1151. 그녀보다 위에서 지령이 내려오는 예.외.적.인. 일.은 그렇게
  1152. 드문 게 아니다.
  1153.  
  1154. 리나 본인도 보.통.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1155.  
  1156.  
  1157.  
  1158. 리나와 다른 11명의 각 부대 대장만이 아니라 부관까지 나가고,
  1159. 브리핑 룸에 워커와 아르크투루스 두 사람만 남았다.
  1160.  
  1161. 이 방에는 강고한 방첩 시스템이 깔려 있다. 당연히 지금도 가동 중이다.
  1162.  
  1163. "대위, 차음 필드를 펼치게."
  1164.  
  1165. 그런데다가 워커는 아르크투루스에게 그렇게 명령했다.
  1166.  
  1167. "넵."
  1168.  
  1169. 아르크투루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명령대로 실내와 실외의 소리를
  1170. 차단했다.
  1171.  
  1172. "차음 필드, 전개 완료."
  1173.  
  1174. 마법적인 자질이 없는 워커는 아르크투루스의 말이 사실인지
  1175.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안심할 재료는 되는 건지,
  1176. '그래'라고 대답하며 본제로 들어갔다.
  1177.  
  1178. "대위. 예의 실험의 실시가 결정됐다."
  1179.  
  1180. 아르크투루스의 얼굴에 긴장감이 생겼다.
  1181.  
  1182. "마이크로 블랙홀 실험 말입니까?"
  1183.  
  1184. 그는 스스로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1185. 저도 모르게 소리를 죽여 말했다.
  1186.  
  1187. "그렇다. 장소는 저번과 똑같이 댈러스 국립 가속기 연구소.
  1188. 날짜는 다음 주 6월 15일 11시. 귀관은 스타즈에서도 뛰어난
  1189. 루나 매직 사용자다. 가령 패러사이트가 출현한다 해도
  1190. 대처는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만, 필요하다면 제11대도
  1191. 출동시킬 수 있다만."
  1192.  
  1193. 미군에서는 정신 간섭계 마법을 루나 매직이라고 부른다.
  1194. 아르크투루스는 강력한 정신 간섭계 마법 사용자다.
  1195.  
  1196. 하지만 아르크투루스는 그런 종류의 마법을 이용한 실전 경험이 부족했다.
  1197.  
  1198. 그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선민사상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았다.
  1199. 그의 할머니는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순혈 원주민
  1200. 샤먼이었다. 그의 정신 간섭계 마법의 소질은 할머니에게서
  1201. 물려받았다고 추측된다.
  1202.  
  1203. 원래 있어선 안 되지만 그는 이 핏줄 때문에 정신 공격이 특기인
  1204. 고식마법사-'요술사'나 '주술사'라 불리는 자-를 상대하는 미션에서
  1205. 배제됐다.
  1206.  
  1207. '요술사'는 원주민계 고식마법사 중에, '주술사'는 흑인계
  1208. 고식마법사 중에 많다. 아니 실태는 백.인.을. 비.롯.한.
  1209. 아.시.아.계. 사.람.들.이 원주민계 고식마법사를 '요술사'라고,
  1210. 흑인계 고식마법사를 '주술사'라고 부른다는 게 맞지만,
  1211. 아르크투루스는 그런 민.족.계. 고식마법사에게 강한 공감을
  1212. 품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인종적 편견을 받고 있었다.
  1213.  
  1214. 반면에 제11대 항성급 마법사는 세 사람 모두 루나틱 마법이
  1215. 특기이지만 그런 종류의 편견을 받고 있지 않았다. 정신 간섭계 마법이
  1216. 특기인 고식마법사가 상대인 작전에 팀으로 출격하는 일이 많고,
  1217. 정신을 좀먹는 공격에 대한 대응도 익숙하다.
  1218.  
  1219. "아뇨, 소관만으로 충분합니다."
  1220.  
  1221. 실전 경험 부족은 아르크투루스도 자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1222. 그에게도 자부심은 있다. 게다가 이 건에 관련되는 사람은
  1223. 스타즈 내부에서도 필요 최소한으로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1224.  
  1225. "그런가. 알겠다."
  1226.  
  1227. 관여한 인간이 적은 편이 좋다는 생각은 워커의 판단과 같았다.
  1228. 이 대화로 실.험. 현.장.에 투입되는 건 아르크투루스의 제3부대만으로
  1229. 결정 났다.
  1230.  
  1231. "연구소 밖에 제6부대를 대기시켜두겠다.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면
  1232. 바로 알리게."
  1233.  
  1234. 하지만 그건 미션에 투입되는 게 제3부대만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1235.  
  1236. 제6부대의 항성급 대원은 리겔, 벨라트릭스, 알닐람으로
  1237. 오리온자리별의 이름을 받았으며, '오리온 팀'이라고 불린다.
  1238. 이건 우연이 아니라 제6부대는 추적이 특기인 마법사를 모은
  1239. 헌터 팀이었다.
  1240.  
  1241. "알겠습니다. 리겔 대위에겐……."
  1242. "걱정하지 마라. 실험에 대해선 숨겨두지."
  1243.  
  1244. 워커의 말에 아르크투루스가 잠시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1245.  
  1246. 마이크로 블랙홀 실험은 일본 공작원을 색출해내는 게 목적이다.
  1247. 확실하게 잡기 위해 다른 부대의 협력은 있는 게 좋다. 하지만
  1248. 스스로도 필요 이상으로 위험한 다리를 건너고 있다는 걸 아는
  1249. 아르크투루스는 가능한 한 다른 부대 사람에게 실험에 대해
  1250. 알리고 싶지 않았다.
  1251.  
  1252. 이건 워커도 똑같았다. 둘 다 몸보신이 동기는 아니었지만
  1253. 결과적으로 공유해야만 하는 정보를 은닉해버리고 말았다.
  1254.  
  1255.  
  1256. ◇ ◇ ◇
  1257.  
  1258.  
  1259. 일본 정부는 이즈 반도의 별장 지대가 마법적 공격을 받았다는 걸
  1260. 공표하고, 공격 상대를 특정하지 않은 채 엄하게 비난했다.
  1261. 동시에 마법에 의한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선 마법 전력을
  1262. 충실하게 갖추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1263.  
  1264. 마법사 배척은 인도적 문제에 불과한 게 아니라 외국 세력의
  1265. 마법 공격에 대한 자위력을 저하시켜 국민의 생명을 위험에
  1266. 노출시키기도 한다며, 간접적으로 반마법주의 운동을 비판했다.
  1267.  
  1268. 하지만 이 공격의 타깃 또한 마법사라는 건 숨겨뒀다.
  1269. 표적이 타츠야고 피해자가 미나미라는 사실은 엄중한 함구령이
  1270. 내려왔다.
  1271.  
  1272. 하지만 완벽한 은폐는 불가능했다.
  1273.  
  1274. 타츠야가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그와 마법 공격을 매우 자연스럽게
  1275. 연관 지었다.
  1276.  
  1277. 이를 몰라도 예민한 마법적 지각력으로 사실에 도달한 사람도 있었다.
  1278.  
  1279.  
  1280.  
  1281. 정부에 의한 기습 공격 공표와 이에 대한 비난이 끝난 직후,
  1282. 후지바야시 중위는 사적인 전화를 받았다. 근무 중임에도 불구하고
  1283. 개인적인 통화가 가능했던 건, 그녀가 여차할 때에 대비해
  1284. 사령부의 공인을 받아 쿠도가에게 설정한 가상 핫라인의 호출이었기
  1285. 때문이다.
  1286.  
  1287. 『쿄코 누나? 미노루입니다.』
  1288. "미노루 군?"
  1289.  
  1290. 가상 핫라인은 소리만이다. 발신자는 '쿠도가'로 표시되므로,
  1291.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누군지 모른다. 할아버지거나 삼촌이거나
  1292. 혹은 이모거나. 미노루가 전화한 건, 후지바야시에게 완전히
  1293. 예상외의 일이었다.
  1294.  
  1295. 『업무 도중에 죄송합니다.』
  1296. "괜찮아. 지금은 한가하니까."
  1297.  
  1298. 이건 상대방을 위한 거짓말이 아니다. 방금 전까지 후지바야시는
  1299. 카자마가 가져온 이즈 고원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발표용 자료 작업에
  1300. 쫓기고 있었다.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인 현재, 이와 관련된 사람들은
  1301. 모두 일시적으로 일이 없는 상태였다.
  1302.  
  1303. "그래서, 무슨 급한 용건이라도 있는 거야?"
  1304.  
  1305. 후지바야시는 마음속으로 초조함을 감추면서 물었다. 가뜩이나
  1306. 이 직통 전화가 쓰이는 일은 드물다. 미노루가 건 것은 처음이다.
  1307. 방약무인과 거리가 먼─ 적어도 후지바야시 앞에서 그런 태도를
  1308. 취한 적이 없는 미노루가, 군무 중이라는 걸 알면서 전화한 거다.
  1309. 뭔가 긴급한 사태가 발생한 거라고 후지바야시가 짐작하는 건,
  1310. 당연한 일이었다.
  1311.  
  1312. 『급한 용건인 건 아니지만, 꼭 좀 알고 싶은 것이 있어서…….
  1313. 방금 정부 발표 말인데요.』
  1314. "응."
  1315.  
  1316. 엄청난 고동을 느끼면서 목소리만은 평소대로 후지바야시는
  1317. 뒷말을 재촉했다.
  1318.  
  1319. 『원거리 마법의 공격을 받은 건, 타츠야 씨네 아닙니까?』
  1320. "어째서 그걸……?"
  1321.  
  1322. 이건 부주의한 반응이었다. 상대가 미노루이긴 하지만
  1323. 후지바야시는 정부가 숨긴 사실을 밝혀버렸다.
  1324.  
  1325. 후지바야시를 습격한 충격은 그만큼 컸다. 1고의 타츠야와
  1326. 각별히 친한 친구는 그의 거주지를 알고 있으므로
  1327. 오늘 아침의 공격과 타츠야를 연결 짓는 게 이상하진 않다.
  1328. 하지만 1고 중에서도 그가 이즈 고원의 별장에 체재 중이라는 걸
  1329. 아는 사람은 적을 터이다. 혹시 작년 가을에 교토에서 친해진
  1330. 사이죠 레온하르트나 요시다 미키히코에게서 타츠야가
  1331. 이즈에 있다는 걸 들은 걸까…….
  1332.  
  1333. 이 후지바야시의 예상은 빗나갔다.
  1334.  
  1335. 『동쪽 방향에서 격돌하는 강한 마법의 파동을 느꼈습니다.
  1336. 한 쪽은 타츠야 씨의 기척이었던 것 같아서…….』
  1337.  
  1338. 미노루의 말에 후지바야시는 저도 모르게 경악했다.
  1339. 미노루의 말이 사실이라면 타츠야의 엘레멘탈 사이트를
  1340. 뛰어넘었다.
  1341.  
  1342. 타츠야의 엘레멘탈 사이트는 단서만 있으면 어떤 거든 '본'다.
  1343. 단 엘레멘탈 사이트는 지향성─ 의지의 지향성이 필요하다.
  1344. '보'려고 하지 않으면, 의식을 쏟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1345.  
  1346. 미유키를 향한 적의를 수동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건,
  1347. 그런 식으로 대상을 골라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1348. 이번에는 실제로 공격이 발동하기 전까지 지각하지 못했다.
  1349.  
  1350. 하지만 미노루가 정말로 투만 봄바의 파동을 포착했다고 한다면,
  1351. 4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마법의 발동을 무작위로 지각했다는 것이다.
  1352. 분명 투만 봄바처럼 강력한 마법이었기에 느꼈다는 부분도 있겠지만,
  1353. 수동적인 감수성 부분에서는 미노루가 타츠야를 명백히 능가한다.
  1354. 적어도 후지바야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1355.  
  1356. 엘레멘탈 사이트의 재능이 각성한 건가……?
  1357.  
  1358. "……미노루 군. 너 어느 틈에 그런 지각력을……?"
  1359.  
  1360. 후지바야시의 질문은 대답을 얻지 못했다.
  1361.  
  1362. 『그래서, 타츠야 씨 일행은 무사합니까!? 미유키 짱이나 사쿠라이 씨는!?』
  1363.  
  1364. 미노루는 후지바야시의 질문을 듣지 않았다. 그의 의식은
  1365. 그들의 안전으로 가득 찼다.
  1366.  
  1367. ─아니, 미노루가 정말로 걱정하는 건 타츠야나 미유키가 아니라…….
  1368.  
  1369. "타츠야 군과 미유키 씨는 무사해. 하지만 사쿠라이 씨는……."
  1370.  
  1371. 그런 직감이 뇌리에 스친 탓에 후지바야시는 또 다시 미처
  1372. 얼버무리지 못했다.
  1373.  
  1374. 『사쿠라이 씨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1375.  
  1376. 미노루의 필사적인 목소리에 후지바야시는 묵비할 수 없었다.
  1377.  
  1378. "……입원했어. 대대의 야마나카 선생님은 마법을 너무 써서
  1379. 정신적으로 데미지를 입은 거라고 추측했어."
  1380. 『추측이라니, 독립마장대대는 치료하지 않은 겁니까!?
  1381. 현장에 있었잖아요!?』
  1382. '미노루 군, 너, 대체……?'
  1383.  
  1384. 이번 질문은 말로 나오지 않았다. 오늘 아침 현장에 독립마장대대가
  1385. 출동해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사에키, 카자마, 출동한 부원과
  1386. 대대 중 일부. 그리고 타츠야, 미유키 및 요츠바가.
  1387.  
  1388. 정부에게도 구체적인 출동 멤버는 보고하지 않았다.
  1389. 기습 데이터를 얻어낸 게 독립마장대대라는 걸,
  1390. 미노루가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1391.  
  1392. 하지만 미노루의 말은 적당한 추측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1393. 그는 확신을 가지고 독립마장대대의 작전 행동을 맞췄다.
  1394.  
  1395. 후지바야시가 아는 미노루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의 '사촌 동생'은
  1396. 확실히 전부터 뛰어난 마법사였다. 소질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1397. 톱클래스에 도달했다고 후지바야시는 생각했다. 하지만
  1398. 이런 천리안 같은 능력은 없었을 터이다.
  1399.  
  1400. 마치 금단의 지혜를 주는 악마가 미노루에게 쓰인 것 같다…….
  1401.  
  1402. 그런 미신 같은 망상을 품어버릴 정도로.
  1403.  
  1404. ─이 때 그녀가 자신의 직감을 망상이라고 치부하지 않았다면.
  1405.  
  1406. 어쩌면 미래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1407.  
  1408.  
  1409. ◇ ◇ ◇
  1410.  
  1411.  
  1412. 후지바야시를 통해 아침 일에 대해 듣고도 미노루는 딱히
  1413. 분노를 품지 않았다. 조금 실망은 했지만, 군은 냉혹하다는 선입관이
  1414. 있었기에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1415.  
  1416. 그런 것보다도 미노루는 미나미가 너무 걱정됐다.
  1417.  
  1418. 마법을 너무 써서 정신이 데미지를 받았다는 건, 마법연산영역의
  1419. 오버 히트겠지. 지금은 아직 치료법이 확립되지 않은
  1420. 마법사 고유의 병이다.
  1421.  
  1422. 특히 유전자 조정을 받은 마법사가 걸리기 쉽다.
  1423. 슈 코우킨에게서 흡수한 지식에 의하면 미노루 자신의
  1424. 불안정한 체질도 마법연산영역의 과부하가 원인이다.
  1425.  
  1426. 미노루의 경우 육체가 견딜 수 있는 레벨로 마법력을 억제하는
  1427. 리미터가 잘 작동하지 않는 거였지만, 평.범.한. 마법사라 해도
  1428. 전투에 따른 마법 과잉 사용으로 마법연산영역의 가동 수준이
  1429. 허용 레벨을 넘어가버리면 리미터가 부서져버린다. 그걸
  1430. 수복하는 기술은 슈 코우킨의 지식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1431.  
  1432. ''나'는 치료할 수 없지만 요츠바가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1433.  
  1434. 그건 추측보다도 소원이었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초조함을
  1435. 억누르기 위해선 그것 외에 없었다.
  1436.  
  1437. '……병문안 가자. 직접 만나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1438. 알 거야.'
  1439.  
  1440. 타츠야가 자신의 식.구.를 죽게 내버려둘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1441. 자신이 안달 낼 필요도 없이, 적절한 치료를 하는 중일 터이다.
  1442. 이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러 가자─.
  1443.  
  1444. 미노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일은 학교다. 사실 몸 상태가
  1445. 안정됐을 때 출석 일수를 벌어둬야만 하지만, 그의 성적이라면
  1446. 여차할 때 시험과 리포트로 대체할 수 있다.
  1447.  
  1448. 잠시 뒤 미노루는 결석하기로 마음먹었다.
  1449.  
  1450.  
  1451. ◇ ◇ ◇
  1452.  
  1453.  
  1454. 각성은 쾌적하지 않았다. 몸이 무겁다. 조금도 피로가 풀리지 않은 건지,
  1455. 엄청난 권태감이 몸을 침식한다.
  1456.  
  1457. 눈을 뜨자 보인 건 온화한 크림색 천장.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1458. 같은 색 벽. 그리고 청결한 하얀 이불 커버와 시트.
  1459.  
  1460. 왼팔에 점적 주사의 바늘이 꽂혀 있다.
  1461.  
  1462. '여긴…… 병원?'
  1463.  
  1464. 이 인식 뒤에 기억이 되살아난다.
  1465.  
  1466. '……맞아! 미유키 님은!?'
  1467.  
  1468. 미나미는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그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1469. 자신이 쇠약해졌다는 걸 알았다.
  1470.  
  1471. "으윽……."
  1472.  
  1473. 몸에 힘을 주고, 그 힘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목소리가 되어 흘러나온다.
  1474.  
  1475. 침대에 드러누운 상태로 숨을 가다듬는 미나미의 귀에 노크 소리가
  1476. 들려왔다.
  1477.  
  1478. "……들어오세요."
  1479.  
  1480. 그 목소리는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연약했다.
  1481.  
  1482. "실례할게."
  1483. '미유키 님!?'
  1484.  
  1485. 아직 의식에 어렴풋하게 안개가 끼어있지만, 그 목소리가
  1486. 누군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1487.  
  1488. 미나미는 서둘러 다시 일어나려고 했다.
  1489.  
  1490. 결과는 같았다.
  1491.  
  1492. 머리를 조금 들어올렸을 뿐이다.
  1493.  
  1494. 그것도 바로 침대로 되돌아갔다.
  1495.  
  1496. 괴로워하는 목소리가 미나미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1497.  
  1498. "미나미 짱!?"
  1499.  
  1500. 서둘러 달려오는 발소리.
  1501.  
  1502. 고개를 옆으로 돌린 미나미의 시야에 걱정한 나머지
  1503. 초조함이 가득 찬 표정인 미유키의 얼굴이 비친다.
  1504.  
  1505. '……아름다워…….'
  1506.  
  1507. 그런 표정임에도 미유키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닐 정도로 아름답다.
  1508. 미나미의 의식에 그런 부적절한 사념이 가득 찬다.
  1509.  
  1510. "미나미, 무리하지 마."
  1511. "타츠야 님……."
  1512.  
  1513. 환각 상태였던 미나미의 의식이 타츠야의 목소리에 의해
  1514. 현실로 되돌아온다.
  1515.  
  1516. "……두 분 다 무사했군요."
  1517.  
  1518. 제정신을 차린 미나미의 첫 말은 자신의 상태를 묻는 게 아니었다.
  1519.  
  1520. "그래. 미나미 네 덕분이다."
  1521. "─영광입니다."
  1522.  
  1523. 미나미의 눈이 부옇게 된 건, 지켜냈다는 안도감과
  1524. 인정받았다는 감격, 그 양쪽의 감정이 드높아졌기 때문이다.
  1525.  
  1526. "안 되지, 누워 있어야지."
  1527.  
  1528. 몸을 달싹이는 미나미를 미유키가 말렸다.
  1529.  
  1530.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대로도 괜찮다."
  1531.  
  1532. 타츠야까지 그렇게 말하자 미나미는 억지로 일어나는 걸 멈췄다.
  1533.  
  1534. "타츠야 님, 미유키 님, 죄송합니다."
  1535.  
  1536. 예상치 못한 사과에 미유키는 돌려줄 말을 못 찾았다.
  1537.  
  1538. "─뭘 사과하는 거지. 네 덕분에 살았다는 건 거짓도,
  1539. 과장도 아니다. 사실이다."
  1540.  
  1541. 타츠야조차 타임래그를 피할 수 없었다.
  1542.  
  1543. "하지만 저는 도중에 힘이 다했습니다. 호위는 주인을
  1544. 끝까지 지켜내야지 임무를 완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545. ─저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1546.  
  1547. 목소리에 힘은 없다. 몸은 자각 직후와 똑같이 일어나는 것도
  1548. 불가능하다.
  1549.  
  1550. 하지만 미나미의 눈동자에 깃든 빛은 그것이 약한 마음에서 나오는
  1551. 우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에서 나온 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552.  
  1553. "미나미. 심신 모두 지친 너랑 논쟁을 할 생각은 없어.
  1554. 하지만 두 가지, 들어줬으면 하는 게 있다."
  1555. "……알겠습니다."
  1556.  
  1557. 미나미의 대답을 받고 타츠야는 머리맡의 스툴에 앉았다.
  1558.  
  1559. 그렇게 해서 시선의 고도 차이를 줄여, 미나미가 받을 터인
  1560. 내려다보는 시선의 인상을 완화했다.
  1561.  
  1562. "미나미, 네 사명감은 훌륭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네 마법이
  1563. 투만 봄바의 충격파를 막은 건 분명한 사실이야. 그 공적을
  1564. 스스로 부정하는 건 그만 둬."
  1565. "……네."
  1566.  
  1567. 미나미는 움직이지 않고 말만으로 긍정했지만, 진심으로
  1568. 납득한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1569.  
  1570. "그게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다."
  1571.  
  1572. 타츠야의 진지한 목소리.
  1573.  
  1574. 미나미만이 아니라 옆에서 듣고 있는 미유키도 동시에
  1575. 숨을 들이마셨다.
  1576.  
  1577. "나는 미유키를 호위하는 일만으로 널 믿고 있는 게 아니다."
  1578. "…………."
  1579.  
  1580. 미나미가 누운 채 타츠야를 말없이 바라본다. 그 시선은
  1581. 자신에게 뭘 시키고 싶은 건지 묻고 있다. 자.신.의. 존.재. 의.의.를
  1582. 대답해주길 바란다.
  1583.  
  1584. "내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 레오나 에리카, 미즈키,
  1585. 미키히코, 호노카, 시즈쿠. 1고 동급생은 신용할 수 있지만
  1586. 우리 사정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 요츠바가는 지금은 아군이지만
  1587. 내가 방해가 된다면 주저 없이 날 없애려고 하겠지. 후미야와 아야코는
  1588. 개인으로서는 신뢰가 가지만, 두 사람에겐 자신들의 임무가 있어.
  1589. 여차할 때 믿을 수 없을지도 몰라. 사부나 카자마 중령은
  1590. 미래에 적이 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어."
  1591.  
  1592. 저는, 이라고 미나미가 시선으로 묻는다.
  1593.  
  1594. "미나미. 너는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1595. 그러니까 나는 너에게 호위로서가 아니라 미유키의 시중을 드는 사람으로서
  1596. 미유키 곁에 있어줬으면 해."
  1597. "호위로서가 아니라, 시중드는 사람…… 말입니까?"
  1598. "내 희망이다. 강제가 아니야. 하지만 가능하다면 미유키 곁에
  1599. 붙어 있어줬으면 해. 호위로서 죽음을 재촉하는 게 아니라,
  1600. 가능한 한 길게. 적어도 네가 언젠가 평생을 함께 할 상대를
  1601. 찾기 전까지."
  1602.  
  1603. 파랗게 질린 미나미의 얼굴이 살짝 붉게 물든다.
  1604.  
  1605. 타츠야가 자신의 결혼까지 언급하다니 너무나도 예상 외였다.
  1606. ─미나미에게 마지막 말은 너무한 기습이었다.
  1607.  
  1608. "……미나미 짱. 나도 네가 옆에 있어준다면 기뻐.
  1609. 그러니까 자신을 소홀히 다루는 생각은 안 해줬으면 해."
  1610.  
  1611. 타츠야의 옆에 앉은 미유키가 몸을 내밀며 미나미의 얼굴을
  1612. 들여다보며 그렇게 말한다.
  1613.  
  1614. 미나미의 두 눈이 다시 글썽인다. 타츠야와 미유키가 자신을
  1615. 소중히 여긴다고, 미나미는 이 때 이론 없이 실감했다.
  1616.  
  1617. "부탁이니까 푹 요양해 줘. 그게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1618.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1619. "……알겠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건강해지겠습니다.
  1620. 그러면 또 미유키 님 곁에서 모셔도 괜찮을까요?"
  1621. "그럼, 내 쪽에서 부탁할게."
  1622.  
  1623. 타츠야 뒤에서 병실 문이 열렸다.
  1624.  
  1625.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오는 걸 타츠야는 돌아보지도 않고
  1626. 탐지했다.
  1627.  
  1628. "내일 또 오지."
  1629.  
  1630. 그렇게 말하면서 타츠야가 스툴에서 일어났다.
  1631.  
  1632. "미나미 짱, 내일 봐."
  1633. "네. 타츠야 님, 미유키 님, 병문안 감사합니다."
  1634.  
  1635. 타츠야에 이어 일어난 미유키와 침대 위의 미나미가 인사를 나눈다.
  1636.  
  1637. 타츠야네는 의사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병실에서 나갔다.
  1638.  
  1639.  
  1640. ◇ ◇ ◇
  1641.  
  1642.  
  1643. 타츠야는 미유키와 함께 쵸후의 맨션으로 돌아왔다.
  1644. 거실에 앉은 타츠야에게 다시 나갈 낌새는 없다.
  1645.  
  1646. "오라버니……. 오늘 밤은 이쪽에서 묵을 생각이십니까?"
  1647.  
  1648. 타츠야의 앞에 커피컵을 놓으면서 미유키가 물어본다.
  1649.  
  1650. 미나미가 올 때까지 타츠야에게 커피를 내주는 건 미유키만의
  1651. 역할이었다. 미나미가 시바가에 익숙해진 뒤로도 타츠야의
  1652. 음료수 준비는 미유키의 역할이었지만, 방심하고 있으면
  1653. 그 일을 미나미에게 뺏기는 일도 있었다.
  1654.  
  1655. 그 때마다 미유키는 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일을 빼앗길 걱정이
  1656. 없어지고 나니 쓸쓸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미유키가 특히
  1657. 제멋대로인 게 아니라, 사람이란 원래 그런 거겠지.
  1658.  
  1659. "이즈의 별장에서 퇴거할 생각이야. 괜찮다면 내일이라도
  1660. 저쪽에 두고 온 짐을 가져올 생각이다."
  1661. "여기로 돌아오시는 겁니까?"
  1662.  
  1663. 미유키가 가볍게 눈을 크게 뜬다. 그녀의 눈동자는 기쁨으로 반짝였다.
  1664. 만약 미나미가 입원 중이 아니었다면, 좀 더 알기 쉽게
  1665. 환희를 표현했겠지.
  1666.  
  1667. "돌아온다……, 그렇군. 여기로 돌아오겠어."
  1668.  
  1669. 타츠야는 이 맨션에서 머문 적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산 적은 없다.
  1670. 그 탓에 '돌아온다'라고 해도 괜찮은 건지 망설였지만, 타츠야가
  1671. 있어야 할 곳은 미유키의 옆이다.
  1672.  
  1673. ─미유키가 이 집에서 산다면 여기로 '돌아온다'라고 표현하는 게
  1674. 맞다.
  1675.  
  1676. 타츠야는 그렇게 생각을 고쳤다.
  1677.  
  1678. "알겠습니다. 바로 방을 준비하겠습니다."
  1679. "굳이 번거롭게 준비할 필요는 없어. 미유키도 조금 쉬도록 해."
  1680.  
  1681. 미나미가 쓰러져서 미유키는 자신보다 큰 쇼크를 받았을 거라고
  1682. 타츠야는 생각했다. 불안을 얼버무리기 위해 가만히 있는 것보다
  1683. 움직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상상이 간다.
  1684.  
  1685. 하지만 휴식도 중요하다.
  1686.  
  1687. 방 준비라고 해봤자 침대 정리는 홈오토메이션이 해준다.
  1688. 지금은 미유키도 일단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고 타츠야는 판단했다.
  1689.  
  1690. 미유키는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타츠야의 말에 따랐다.
  1691.  
  1692. 미유키가 타츠야의 맞은편 소파에 깊게 앉았다. 잠시 미유키는
  1693. 진정되지 않는 것처럼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지만, 이윽고
  1694. 망설이며 타츠야와 눈을 마주봤다.
  1695.  
  1696. "왜 그러지?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는 건가?"
  1697.  
  1698. 타츠야가 말문을 트자 미유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1699.  
  1700. "오라버니는…… 미나미 짱에게 뭘 시킬 생각이십니까?"
  1701. "무엇, 이라니? 미나미의 의지에 반하여 뭔가를 강제할 생각은 없다만."
  1702. "죄,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1703.  
  1704. 타츠야가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하자 미유키는 서둘러 양손을
  1705. 가로로 휘둘렀다.
  1706.  
  1707. "그런가? 아아…… 설마 앞으로 미나미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 거냐고
  1708. 묻고 싶은 건가?"
  1709. "네……. 아뇨, 그것도 있습니다만……."
  1710.  
  1711. 미유키가 말하기 어렵다는 것처럼 얼버무린다.
  1712.  
  1713. 그걸로 간신히 미유키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타츠야는 이해했다.
  1714.  
  1715. "……이제 미나미에게 무리는 시키지 않을 거야."
  1716.  
  1717. 타츠야도 그걸 확실하게 말하는 건 망설였다. 평소와 달리
  1718. 추리력이 좋지 않았던 건, 그 탓일지도 모른다.
  1719.  
  1720. "그건…… 미나미 짱을 가디언의 임무에서 제외하겠다는 의미지요?"
  1721. "그렇다."
  1722.  
  1723. 하지만 일단 꺼낸 이상 타츠야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1724.  
  1725. "마법연산영역의 손상이 나을 때까지 마법을 쓸 수 없고,
  1726. 애초에 나을지도 불명확해. 그건 우리 마법사에게 블랙박스 같은 거다.
  1727. 구조도 성질도 판명되지 않은 게 너무 많아."
  1728. "그렇네요……. 이치죠가의 당주님은 순조롭게 좋아지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1729. 그렇다고 해서 미나미 짱도 똑같이 회복되리라고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1730. "같은 십사족 당주 중에서도 쥬몬지가의 전 당주는 의도적인
  1731. 마법연산영역의 과부하를 많이 사용한 결과 마법 기능을 잃었다.
  1732. 치료에 대해 낙관할 수는 없겠지."
  1733.  
  1734. 타츠야와 미유키 두 사람의 얼굴이 우려로 인해 어두워진다.
  1735.  
  1736. "……게다가 이번에 회복된다 해도 또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거라고
  1737. 확신할 수 없어."
  1738. "마법을 계속 사용하는 한, 말입니까?"
  1739. "그렇다. 그리고 다음엔 응급처치가 늦을지도 몰라."
  1740.  
  1741. 미유키의 얼굴을 뒤덮은 우울한 색이 한층 짙어졌다.
  1742.  
  1743. "이제…… 미나미 짱은 마법사로서 일할 수 없게 된다는 겁니까?"
  1744. "아니, 평.범.한. 마법사로서 계속 활동할 수는 있겠지."
  1745. "격한 전투에는 견딜 수 없다…… 라는 거군요?"
  1746. "그 말대로야, 미유키. 우선 후퇴가 불가능한 가디언의 임무는 무리다.
  1747. 거듭되는 전투도 피하는 게 좋아."
  1748. "미나미 짱이 납득할까요?"
  1749. "싸움만이 삶의 방식인 건 아니야. 미나미는 앞으로 평화로운 인생을
  1750. 보내줬으면 한다고 생각해."
  1751.  
  1752. 미유키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1753.  
  1754. 하지만 이맛살을 필 정도는 아니었다.
  1755.  
  1756. "오라버니…… 아뇨,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
  1757.  
  1758. 미나미에게 평화로운 삶의 방식을 권하는 타츠야 본인은 어떤가.
  1759.  
  1760. 타츠야에게도 평화로운 삶을 살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
  1761.  
  1762. 미유키는 그렇게 물으려다가 도중에 멈췄다.
  1763.  
  1764. 그게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는 물음이라고 미유키도 알았다.
  1765. 그 질문을 저도 모르게 꺼내려다가, 도중에 꺼내지 못하고
  1766. 생각에 그친 거다.
  1767.  
  1768. 타츠야가 평화로운 삶을 바란다 해도 주변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1769. 타츠야가 쓸 생각이 없다 해도 전략급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1770. 적도 아군도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건 예측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다.
  1771.  
  1772. "그런가."
  1773.  
  1774. 타츠야 자신도 당연히 이를 알고 있다. 아마도 미유키 이상으로
  1775. 깊이 이해하고 있다.
  1776.  
  1777. 미유키가 물어보고 싶었던 것, 말하고 싶었던 걸 이해하고도
  1778. 타츠야는 그렇게 대답하는 것 외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1779.  
  1780.  
  1781.  
  1782. [3]
  1783.  
  1784.  
  1785.  
  1786. 6월 10일, 월요일.
  1787.  
  1788. 바다를 사이에 둔 원거리 마법 공격을 받았다는 극히 비일상적인 일이
  1789. 발생한 게 어제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용서 없이 찾아온다.
  1790.  
  1791. 미유키는 미나미의 상태를 우려하며 평소대로 1고로 등교했다.
  1792.  
  1793. "타츠야 님도 여러모로 바쁘신 것 아닙니까……?"
  1794.  
  1795. 리클라이닝을 올린 침대에 등을 기댄 미나미가 죄송하다는 목소리로
  1796. 타츠야에게 묻는다. 참고로 그녀는 아직 자력으로 몸을 일으킬 수 없기에
  1797. 보조 외골격─치료용인 장착형 파워 어시스트 장치─을 상반신에
  1798. 장착하고 있다.
  1799.  
  1800. "지금은 통학이 면제된 상태야. 날 신경 쓸 필요는 없다."
  1801. "하지만……."
  1802. "그것보다 아직은 누워 있는 편이 좋은 것 아닌가?"
  1803.  
  1804. 아무리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해도 미나미는 납득하지 않겠지.
  1805. 필요 없는 문답을 끊기 위해 타츠야는 억지로 화제를 바꿨다.
  1806.  
  1807. 다만 화제를 전환한다는 목적만이 아니라 미나미가 장착한
  1808. 외골격이 마음에 걸린 부분도 분명 있었다.
  1809.  
  1810. "아뇨. 어시스트를 받으면서 계속 누워 있지 않는 쪽이
  1811. 일상생활에 빨리 복귀할 수 있을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권했습니다."
  1812. "하지만 착용감이 그다지 좋은 건 아닐 텐데."
  1813.  
  1814. 파워 어시스트 기능 자체는 타츠야도 무벌 슈트 덕분에 익숙하다.
  1815. 현재의 어시스트 시스템은 피드백 스피드가 빠르기에 움직임에
  1816. 방해가 되는 일은 없다고 알고 있다. 최첨단 군사용 장비와는
  1817. 성능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동작을 방해한다는 인식은
  1818. 없을 터이다.
  1819.  
  1820. 무게도 외골격 자체가 접지면을 통해 자체 무게를 지탱하고 있으므로
  1821. 장착한 사람이 무게를 느끼는 일은 없을 터이다. 하지만
  1822. 몸에 확실히 고정해야만 하니까 어느 정도 조이는 느낌은
  1823. 피할 수 없다. 결코 쾌적하지는 않겠지.
  1824.  
  1825. 타츠야는 그렇게 예상했지만,
  1826.  
  1827. "괜찮습니다. 아직 피부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기에
  1828. 이걸 장착해도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1829.  
  1830. 미나미의 생각하지도 못한 대답에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1831.  
  1832. "촉감이 마비된 건가……?"
  1833.  
  1834. 의도적으로 눈을 원래 상태로 되돌린 타츠야가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1835. 목소리 톤은 의식한 게 아니었다.
  1836.  
  1837. "마비라고 할 정도로 큰일은 아니라……. 조금 둔하게 느낄 뿐입니다."
  1838.  
  1839. 타츠야의 진지한 목소리에 미나미가 조금 겁에 질린 것처럼
  1840. 횡설수설했다.
  1841.  
  1842. 하지만 자신의 몸에 생긴 이상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는 기색은 없었다.
  1843.  
  1844. "의사는 뭐라고 했지?"
  1845. "뇌에도 신경 조직에도 손상은 보이지 않으니까 쇠약에 의한
  1846. 일시적인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1847.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1848.  
  1849. 그렇게 말했지만 타츠야의 얼굴엔 여전히 걱정하는 표정이 있었다.
  1850.  
  1851. "타츠야 님……. 한 가지 여쭈어 봐도 괜찮을까요?"
  1852.  
  1853. 자신이 어째서 그런 걸 질문하는 건지, 나중에도 미나미는
  1854. 이해할 수 없었다.
  1855.  
  1856. "말해보렴."
  1857.  
  1858. 하지만 이 때는 의문을 마음에 담아두는 게 도저히 불가능했다.
  1859.  
  1860. "타츠야 님은 어째서 절 그렇게 걱정하시는 겁니까?"
  1861.  
  1862. 처음에 질문의 의도를 몰랐던 건지 타츠야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1863. 하지만 바로 '이해가 간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조적인 쓴웃음을 지었다.
  1864.  
  1865. "감정이 결락된 내가 생판 남을 걱정하는 모습은 확실히 기묘할지도
  1866. 모르겠군."
  1867. "아, 아뇨, 그런!"
  1868.  
  1869. 미나미가 서둘러 타츠야의 착각을 정정하려고 했다.
  1870.  
  1871. "괜찮아. 네 인식은 틀리지 않았어."
  1872.  
  1873. 하지만 이렇게 말하자, 확실히 자신의 질문의 뒤엔 타츠야의 말과 같은
  1874. 생각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1875.  
  1876. 미나미는 자신의 무례함을 부끄러워했다.
  1877.  
  1878. 변명조차 못할 정도로.
  1879.  
  1880. "미나미가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내가 널 타인으로 생각하지
  1881. 않는다는 점이다."
  1882.  
  1883. 미나미의 입에서 '어……?'라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온다.
  1884.  
  1885. 이 반응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꽤 실례되는 행동이다.
  1886.  
  1887. 물론 타츠야는 악의적인 해석은 하지 않았다.
  1888.  
  1889. "미나미는 날 얼마나 잘 알지?"
  1890.  
  1891. 타츠야의 반문.
  1892.  
  1893. 하지만 미나미의 입장으로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1894.  
  1895. 타츠야는 이를 이해한 거겠지. 그는 스스로 정답을 꺼냈다.
  1896.  
  1897. "나는 미유키와 관련된 것 이외에 진정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아.
  1898. 강한 감정을 갖지 못한다고 표현하는 쪽이 정확할지도 모르겠군."
  1899.  
  1900. 미나미는 이를 알고 있다. 그러니까 더욱 말할 수 없었다.
  1901.  
  1902. 그건 타.인.이 알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비밀이었다.
  1903.  
  1904. "그리고 미유키는 널 자매처럼 생각해. 미나미, 너는 이미
  1905. 미유키의 가족이다. 그러니까 나는 사쿠라이 미나미라는 소녀를,
  1906. 미유키와 매우 관련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어. 내가 널 걱정하는 건,
  1907. 미유키가 널 진심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네겐 실례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1908. 나는 미.유.키.를. 향.한. 마.음.을. 통.해. 널 진.심.으.로. 걱정할 생.각.이.야.."
  1909. "……황송하고, 영광입니다."
  1910.  
  1911. 미유키가 자신을 자매처럼 생각한다. 이에 대해 미나미는
  1912. '황송하다'고 말했다.
  1913.  
  1914. 타츠야가 자신을 미유키에 대한 감정을 통해 걱정해준다.
  1915. 이에 대해 미나미는 '영광'이라고 말했다. 타츠야 자신이 말한 대로,
  1916. 미유키를 향한 감정에 속한 감정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1917. 미나미는 이해하고 있다.
  1918.  
  1919.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
  1920.  
  1921. 타츠야는 미나미의 말이 어떤 사고 프로세스를 거친 결과인지
  1922.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1923.  
  1924. "……죄송합니다.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1925.  
  1926. 미나미도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1927. 그녀는 억지로 대답을 쥐어짜내는 게 아니라, 얼버무리는 쪽을 선택했다.
  1928.  
  1929. "……밤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미유키와 함께 오지. 지금은
  1930. 일을 잊고 요양해 줘."
  1931.  
  1932. 타츠야는 대답에 집착하지 않았다.
  1933.  
  1934. "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1935.  
  1936. 미나미는 간신히 움직이는 목을 세로로 움직여 타츠야에게
  1937. 가볍게 인사를 했다.
  1938.  
  1939.  
  1940. ◇ ◇ ◇
  1941.  
  1942.  
  1943. 사실을 말하자면 미유키는 오늘 학교를 쉬고 싶었다.
  1944.  
  1945. 미나미가 걱정이 되어 학업에 집중할 자신이 없었다. 그것보다도
  1946. 미나미의 곁에 붙어 있고 싶었다.
  1947.  
  1948. 하지만 자신이 있어봤자 치료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러기는커녕
  1949. 장기간 가까이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방출하는 사이온파가
  1950. 미나미의 마법연산영역을 자극해서 회복이 저해된다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1951. 말을 들어 참을 수밖에 없었다.
  1952.  
  1953. 그녀는 사이온파를 그렇게까지 화려하게 흩뿌릴 생각이 없었다.
  1954. 오스에게 마법 억제력을 빼.앗.기.고. 있.는. 상태였을 때라면
  1955. 그런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마법 억제력을 되찾은 지금이라면
  1956. 다른 마법사를 무턱대고 압도하는 짓은 하지 않을 터.이다.
  1957.  
  1958. 다만 자신의 사이온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타츠야에 비하면
  1959. 자신은 컨트롤이 아직 어설프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960. 미유키는 자신이 타츠야 정도는 아니더라도 마법사의 평균보다
  1961. 훨씬 많은 사이온량의 소유자라고 자각하고 있으므로,
  1962. 미나미의 병 상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했다.
  1963.  
  1964. 그런 사정이 있어서 미나미의 간병은 포기하고 미유키는
  1965. 평소대로 1고에 등교한 거다.
  1966.  
  1967.  
  1968.  
  1969.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자리에 앉아 있었던 호노카와 시즈쿠가
  1970.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1971.  
  1972. "미유키, 괜찮았어!?"
  1973. "뭐가?"
  1974.  
  1975. 시치미 떼는 게 아니다. 갑자기 괜찮으냐고 물어보면 미유키로선
  1976. '뭐가'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짐작이 가는 게 있어도,
  1977. 그게 자신의 착각이었다면 원래 비밀로 해둬야만 하는 정보를
  1978. 불필요하게 알리게 되어버리니까.
  1979.  
  1980. 다만 이번 경우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런 경계는 필요 없었다.
  1981.  
  1982. "어제 정부가 발표한 그거, 타츠야 씨의 별장이 있는 곳이지!?
  1983. 미유키가 자고 온다고 했잖아!"
  1984.  
  1985. 역시 호노카도 시즈쿠도 원거리 마법의 표적이 타츠야라는 걸
  1986. 눈치 챘다.
  1987.  
  1988. "응. ……타츠야 님과 난 괜찮지만, 미나미 짱이 입원해서
  1989. 치료를 받고 있어."
  1990.  
  1991. 그렇게 말하면서 미유키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1992.  
  1993. "뭐어!?"
  1994. "……부상?"
  1995.  
  1996. 그 옆에서 호노카는 멈춰 섰고, 시즈쿠는 옆으로 돌아앉으면서
  1997. 상반신을 뒤로 돌려 물었다. ─시즈쿠의 자리는 미유키 바로 앞이었다.
  1998.  
  1999. "부상은 아니지만……. 비슷한 거야."
  2000.  
  2001. 시즈쿠의 질문에 미유키는 말을 얼버무렸다. 마법연산영역의 오버 히트는
  2002. 마법사 사이에서도 아직 일반적인 병은 아니었다. 게다가
  2003. 마음과 몸의 차이는 있지만 '부상 같은 거'라는 사실이 틀린 건 아니니까
  2004. 거짓말은 아니었다.
  2005.  
  2006. "그래……. 상태가 나쁜 거야?"
  2007.  
  2008. 시즈쿠는 상태를 끈질기게 물어보는 짓은 하지 않았다.
  2009. 그저 어느 정도 다쳤는지를 물었다.
  2010.  
  2011.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어……."
  2012.  
  2013. 미유키의 얼굴이 흐려진다.
  2014.  
  2015. "그래……. 걱정이네."
  2016.  
  2017. 호노카와 시즈쿠도 염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2018.  
  2019. "병문안 가 봐도 돼?"
  2020. "감염 증세는 없으니까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2021.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볼게."
  2022.  
  2023. 시즈쿠의 제안에 미유키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병문안은
  2024. 미유키에게도 기쁜 일이었지만, 사정이 사정인 만큼
  2025. 양손 들고 환영할 수는 없었다.
  2026.  
  2027. "그렇네."
  2028. "의사 선생님의 허가가 나오면 알려줘."
  2029. "알겠어."
  2030.  
  2031. 자신의 책상 옆에 쭈그리고 앉은 호노카에게 미유키는
  2032.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2033.  
  2034.  
  2035. ◇ ◇ ◇
  2036.  
  2037.  
  2038. 개인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미나미는 '누구십니까'라고 물어봤다.
  2039.  
  2040. 지금은 오전 11시 쯤. 타츠야는 이즈에, 미유키는 1고에 있을 터이다.
  2041.  
  2042. 여긴 요츠바가의 입김이 닿은 병원이지만, 요츠바가 전용은 아니다.
  2043. 종합병원으로서 일반인 환자도 이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2044. 이 병실이 있는 블록은 출입을 엄격하게 체크하고 있다고 들었다.
  2045.  
  2046. 수상한 인물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미나미도 생각했다.
  2047. 그게 아니라 자신과 똑같은 요츠바 관계자의 병문안을 온 사람이
  2048. 방을 착각한 거라고 생각했다.
  2049.  
  2050. "쿠도 미노루입니다."
  2051.  
  2052. 문 너머에서 돌아온 대답은 미나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2053.  
  2054. "미, 미노루 님입니까!?"
  2055.  
  2056. 말 첫머리가 막혀버렸지만 어떻게든 의미가 있는 대답을 돌려준 미나미지만,
  2057. 마음속으로는 '어째서!'라고 절규했다.
  2058.  
  2059. 그 외치는 '어째서 자신이 입원한 걸 미노루가 아는 거지',
  2060. '미노루는 어디에서 이 병원을 알아낸 거지' 같은 논리적인 의문에
  2061. 충실한 게 아니었고, 미나미의 의식은 당혹한 나머지
  2062. 새하얗게 됐다.
  2063.  
  2064. 하지만 그녀가 망연자실한 건 한순간뿐이었다. 그 나이 또래의
  2065. 여자아이의 몸가짐을 신경 쓰는 마음이, 지금 자신이
  2066. 어떤 상태인지 강제적으로 떠올리게 했다.
  2067.  
  2068. 아침에 타츠야가 오기 전에 일단 몸단장은 마쳤다.
  2069.  
  2070. 하지만 그 뒤에 계속 반쯤 자고 있는 상태로 멍하니 누워 있었으니까
  2071. 머리카락은 헝클어졌을 터이다. 게다가 이런 칠칠치 못한 상태에서
  2072. 미노루를 맞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2073.  
  2074. "조금 기다려주세요!"
  2075.  
  2076. 미나미는 서둘러 반응이 느린 오른손을 움직여, 침대 안에 설치된
  2077. 유선 컨트롤러의 커다란 버튼을 눌렀다.
  2078.  
  2079. 침대의 상반신 쪽이 올라가고, 누워 있는 미나미의 몸을 일으킨다.
  2080.  
  2081. 좌우에서 보조 외골격이 이동하는 것과 동시에 미나미의 등을
  2082. 등받이가 된 침대 아래에서 가볍게 민다.
  2083.  
  2084. 침대 일부가 튀어나와 등과 침대 사이에 일부 틈이 생겼다.
  2085. 그 틈을 통해 외골격의 오른쪽 파츠와 왼쪽 파츠가 연결된다.
  2086.  
  2087. 보조 외골격이 미나미의 상반신을 고정하고 그녀의 몸을 지탱한다.
  2088.  
  2089. 팔 파츠의 어시스트를 빌려 미나미가 손거울과 빗을 쥔다.
  2090.  
  2091. 서둘러 거울을 엿보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한다.
  2092.  
  2093. 사실은 메이크업도 하고 싶었지만, 병실에서는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게
  2094. 한계였다. 게다가 이 이상 기다리게 할 수도 없었다.
  2095.  
  2096.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들어오세요."
  2097.  
  2098. 미나미의 말을 병실 AI가 분석해서 문 잠금을 해제한다.
  2099.  
  2100. "실례하겠습니다……."
  2101.  
  2102. 망설이는 목소리와 함께 미노루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2103.  
  2104.  
  2105. 그 순간 방 안에 신성한 빛이 비쳤다.
  2106.  
  2107.  
  2108. 깨끗한 순백색으로 칠한 공간에 단 한 명, 밝은 색을 두른
  2109. 천상계 주민이 강림했다. ─미나미는 그런 환각을 봤다.
  2110.  
  2111. "사쿠라이 씨, 그…… 몸 상태는 어때?"
  2112.  
  2113.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물어본 미노루는 자신을 보는
  2114. 미나미의 기묘한 시선을 깨닫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시선을
  2115. 받는 일이 많아서 신경 안 쓰는 걸지도 모른다.
  2116.  
  2117. 미노루가 평범하게 말을 건 덕분에 미나미도 몽환의 세계에서
  2118. 현실로 귀환할 수 있었다.
  2119.  
  2120. 이성을 되찾자 방금 전에 느꼈지만 날아가버린 의문이 드디어
  2121. 형태를 이뤘다.
  2122.  
  2123. ─미노루는 어째서 자신이 입원했다는 걸 아는 건가?
  2124.  
  2125. ─미노루는 어디에서 어떻게 자신이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걸
  2126. 알아낸 걸까.
  2127.  
  2128. 하지만 미나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미노루를 추궁하는 말이 아니었다.
  2129.  
  2130. "네. 괴롭다거나 아프다거나 그런 불편함은 없습니다. 아직
  2131.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만, 그것도 곧 좋아질 거라고
  2132. 의사 선생님께서 말했습니다."
  2133.  
  2134. 미노루의 질문에 대한 순종적인 대답이었다.
  2135.  
  2136. "그건 다행이다."
  2137.  
  2138. 미노루가 방긋 웃는다.
  2139.  
  2140. 핏기가 부족한 미나미의 뺨이 살짝 붉어진다.
  2141.  
  2142. 미노루의 미소가 조금 더 길었다면 권태감과 다른 원인으로
  2143. 미나미는 의식을 유지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2144.  
  2145. 미노루가 진지한 표정으로 미나미를 바라본다.
  2146.  
  2147. 미나미는 의식이 점점 멀어지는 걸 자각할 수도 없었다.
  2148. 문 너머에서 말을 걸었을 때 품은 학교는 어떻게 된 거냐는
  2149. 사소한 의문조차 의식에서 사라졌다.
  2150.  
  2151. "─사쿠라이 씨. 달리 안 좋은 곳은 없어?"
  2152. "아, 네. 다른 곳 말입니까?"
  2153.  
  2154. 마치 의사처럼 물어본다. 그렇게 의심하는 마음이 미나미의 의식을
  2155. 계속 유지했다.
  2156.  
  2157. "예를 들면 눈이 흐릿하다든지, 잘 안 들린다든지."
  2158. "…………."
  2159.  
  2160. 확실히 촉각이 둔해졌다는 자각 증상은 있다. 하지만 이를
  2161. 미노루에게 알려줘도 괜찮은가? 단순히 걱정할 뿐인 것 아닌가.
  2162. ─미나미는 그런 식으로 망설였다.
  2163.  
  2164. "내게 대답해봤자 의미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해.
  2165. 하지만 중요한 거야. 사쿠라이 씨, 솔직히 대답해줬으면 해!"
  2166.  
  2167. 하지만 그 망설임도 미노루의 진지한 시선에 저항할 수 없었다.
  2168.  
  2169. "……피부 감각이 조금."
  2170. "촉감이 둔해진 거네!?"
  2171.  
  2172. 미노루의 얼굴이 미나미의 얼굴로 다가온다.
  2173.  
  2174. 미나미는 견디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 시점에서는 아직
  2175.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했다'라는 것보다 '계속 직시할 수 없었다'라는
  2176. 측면이 더 강했다. 말할 것도 없지만 혐오감 때문에 시선을 돌린 건
  2177. 결코 아니었다.
  2178.  
  2179. "아, 네. ……그리고 미노루 님. 전부터 말했습니다만,
  2180. 저를 미나미라고 불러주세요."
  2181.  
  2182. 생각도 못한 요청에 미노루의 의식이 미나미의 병 상태에서
  2183. 조금 벗어났다.
  2184.  
  2185. 그 덕분에 자신의 위험한 자세를 깨달은 미노루는 아무렇지도
  2186. 않게라고 할 수 없는 스피드로 몸을 뺐다.
  2187.  
  2188. 미나미가 뭘 바란 건지, 그게 의식에 닿은 건 충분히 거리를 둔
  2189. 다음이었다.
  2190.  
  2191. "어, 하지만……."
  2192.  
  2193. 미노루는 절세의 미소년이지만 남녀 교제 경험치가 제로다.
  2194. 신비함조차 느껴지는 미모 탓에 여자아이들이 주저하며
  2195. 다가오지 않은 탓이다.
  2196.  
  2197. 흔히 말하는 '인기 없는 남자'와 대조적인 이유지만, 그래도
  2198. '비인기 남자' 중 하나인 미노루에겐 '귀여운 소녀를 이름으로 부르기'는
  2199. 조금 허들이 높았다. 미유키만큼 미소녀이면 오히려 저항을 느끼는
  2200. 감각 자체가 마비되어버리지만, 미나미는 고등학교 2학년 소년에게─
  2201. 아니 미.노.루.에.게. 조금 부끄러움이 자극되는 '귀여운 소녀'였다.
  2202.  
  2203. "그렇게 안 부르면 저도 『쿠도 님』이라고 불러야만 합니다……."
  2204.  
  2205. 미나미가 눈가를 붉게 물들이면서 미노루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2206. 그렇게 덧붙였다.
  2207.  
  2208. 미나미와 미노루의 입장을 생각하면 원래 '쿠도 님'이라고 불러야만 한다.
  2209.  
  2210. 애초에 미나미가 미노루를 '미노루 님'이라고 부르는 건, 미노루가
  2211. 타츠야와 미유키를 '시바 씨'라고 부르면 구별이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2212.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타츠야와 미유키가
  2213. 없는 곳에서는 '쿠도 님'이 올바르다.
  2214.  
  2215. 아마도 그건 미나미도 알고 있다. 이해할 터인데 그녀는
  2216. '미노루 님'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게 아쉬운 것처럼 보였다.
  2217.  
  2218. "알겠어, 미나미 씨."
  2219.  
  2220. 미나미의 표정을 보고 미노루는 수치심을 잊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2221. 미노루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미노루도 이름으로
  2222. 불러주지 않으면 아쉽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2223.  
  2224. "네, 미노루 님."
  2225. "…………."
  2226. "…………."
  2227.  
  2228. 하지만 쑥스러움이 사라진 건 아니다. 심지어 이번에는
  2229. 미노루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수치심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2230. 실로 청소년다운 공기가 병실에 가득 찼다.
  2231.  
  2232. "……그러니까…… 감각 둔화에 대해 의사는 뭐라고 했어?"
  2233. "아, 네, 그……, 뇌나 신경 조직에 손상은 없으니까
  2234. 일시적인 이상이라고……."
  2235.  
  2236. 미나미의 대답을 듣고 미노루의 표정이 굳어졌다.
  2237.  
  2238. 미노루의 변화를 보고 미나미의 마음속에 억눌러둔 불안감이 증폭됐다.
  2239.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그녀도 사실 자신의 몸에 생긴 이상에
  2240. 겁을 먹고 있었다.
  2241.  
  2242. 미나미는 조정체의 불안정성에 대해 요츠바가에서 배웠다.
  2243. 그게 언젠가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2244.  
  2245. ─그 '언젠가'가 온 걸지도 모른다.
  2246.  
  2247. 미나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2248.  
  2249. 단순히 몸이 나른할 뿐이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겠지.
  2250.  
  2251. 하지만 명백히 보통이 아닌 오감의 이상. 그게 마법연산영역의
  2252. 과부하에 의해 생겼다는 걸 미나미는 알고 있다. 조정체에게 찾아오는
  2253. 돌연사가, 마법 과잉 사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2254.  
  2255. 미유키를 지키기 위해 힘을 쥐어짰다. 그 사실에 후회는 없다.
  2256. 그 때의 미나미는 포즈가 아니라 진심으로 목숨을 걸 각오가 있었고,
  2257. 지금도 이를 후회하지 않는다.
  2258.  
  2259. 하지만 역시 죽음을 인식하는 건 무섭다. 그러니까 가능한 한
  2260.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평범한 척을 하며 자신을 얼버무렸다.
  2261.  
  2262. 하지만 지금 심각한 표정을 지은 미노루를 마주보고,
  2263. 외면한 불안감이 미나미를 습격했다.
  2264.  
  2265. "미나미 씨, 그, 손을 만져 봐도 괜찮을까……?"
  2266. "……네, 여기."
  2267.  
  2268. 이런 때가 아니면 미나미는 이렇게까지 평범하게 대답하지 못했겠지.
  2269. 마음속에 퍼진 불안감이 그녀의 수치심을 둔하게 했다.
  2270.  
  2271. 미나미가 외골격의 어시스트를 받아 오른손을 미노루에게 내민다.
  2272. 오히려 미노루 쪽이 부끄러워했다. 자신이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2273. 미노루의 하얀 뺨에 옅게 홍조가 떠올랐다.
  2274.  
  2275. 미노루가 미나미의 오른손에 아래로 슬쩍 자신의 오른손을 포갰다.
  2276.  
  2277. 거기다 미노루는 미나미의 오른 손등에 왼손을 포갰다.
  2278. 미나미의 오른손을 좌우의 손으로 포갠 거다.
  2279.  
  2280. 이 사실에 아무리 미나미라 해도 얼굴이 붉어졌다.
  2281.  
  2282. 미노루가 왼손을 천천히 움직인다.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2283. 진지한 표정으로.
  2284.  
  2285. 열이 담긴 미노루의 눈동자를 미나미는 빨려들어갈 것처럼 바라봤다.
  2286.  
  2287. 미노루가 가끔 눈살을 찌푸리는 건, 의사나 미나미 본인도 모르는
  2288.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일까.
  2289.  
  2290. 1분 가까이 그런 다음 미노루는 미나미의 손을 놓고 크게
  2291. 한 숨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호흡을 잊을 정도로 집중한 거겠지.
  2292.  
  2293. 동시에 미나미도 몰래 숨을 내쉬었지만, 이건 긴장의 반동이다.
  2294. 미노루는 미나미의 동작을 눈치 채지 못했다.
  2295.  
  2296. "……미나미 씨. 잔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미나미 씨의 부.상.은
  2297. 낫지 않을 거야. 마법연산영역은 계속 상처가 난 상태일 거야.
  2298. 일시적으로 몸 상태가 회복되어도, 언제 또 다시 쓰러질지 몰라."
  2299. "……그런가요."
  2300. "믿을 수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2301.  
  2302. 미나미는 미노루의 말이 믿기 어려웠던 게 아니라 '역시'라는
  2303. 생각뿐이었다.
  2304.  
  2305. 스스로도 어렴풋이 느낀 사실을 인정할 뿐이다. 미나미는
  2306. 체념과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다.
  2307.  
  2308. "하지만 믿어줬으면 해."
  2309.  
  2310. 미나미는 목소리로 내지 못하고 '어?'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2311.  
  2312. 뭘 믿으라는 건가……. 미노루의 말은 미나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2313.  
  2314. 그녀의 의문은 바로 해소됐다.
  2315.  
  2316. "내가 반드시 치료법을 찾을 거야.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아줬으면 해."
  2317.  
  2318. 미나미의 뇌리에 떠오른 건 '어째서?'라는 의문이었다.
  2319.  
  2320. 오늘 아침 미나미는 타츠야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2321.  
  2322. 하지만 미노루에게 같은 질문을 하는 건, 왠지 망설여졌다.
  2323.  
  2324. "……네. 잘 부탁합니다, 미노루 님."
  2325.  
  2326. 미나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미노루에게도, 그녀 자신에게도
  2327.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2328.  
  2329.  
  2330. ◇ ◇ ◇
  2331.  
  2332.  
  2333. 이즈의 별장을 떠나는 작업을 하던 타츠야가 점심을 먹은 건
  2334. 13시 지나서였다. 짐 꾸리기나 짐 싣기를 타츠야가 할 필요는 없었지만,
  2335. 연구 데이터 이동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었던 거다.
  2336.  
  2337. 부엌 도구는 별장에 구비된 것이므로, 점심은 평소대로 픽시가 조리했다.
  2338. 부엌 용품만이 아니라 이 별장에 있는 가구도 갈아입을 옷도 대부분
  2339. 요츠바 본가에서 준비해준 거라, 쵸후의 맨션으로 가져갈 짐은 적다.
  2340. 점심식사가 늦어진 것도 작업의 끝이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2341.  
  2342.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있는 건 타츠야 혼자다. 다른 작업원은
  2343.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다. '높으신 분'과 동석하는 걸
  2344. 피하는 마음은 타츠야도 이해가 갔기에, 억지로 테이블 동석을
  2345. 권하지 않았다.
  2346.  
  2347. "타츠야 님, 식사 도중에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2348.  
  2349. 타츠야가 접시를 전부 치우고 식후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2350. 하나비시 효고가 들어왔다. 오늘 그는 평소에 입는 스리피스가 아니라
  2351. 운송 회사의 유니폼 같은 작업복 바지와 점퍼 차림이었다.
  2352. 젊기 때문인지 그런 편안한 옷차림도 잘 어울렸다. 참고로
  2353. 이 경우 '잘 어울렸다'라는 건, '패셔너블'의 뉘앙스가 아니라
  2354. '위화감이 없다'라는 의미다.
  2355.  
  2356. 그렇기에 평소대로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모습은 형용하기 어려운
  2357. 위화감을 줬다.
  2358.  
  2359. "아뇨, 이미 다 먹었습니다. 무슨 일 있었나요?"
  2360. "쵸후 아오바 의원에서 담당자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2361.  
  2362. 쵸후 아오바 의원은 미나미가 입원한 병원의 이름이다.
  2363. 미나미의 용태가 급변한 건가 싶어서 잠시 초조해졌지만,
  2364. 타츠야는 곧 그 생각을 스스로 기각했다.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2365. 효고의 어조는 좀 더 긴장감이 있었을 터. 효고는 그런 부분에서
  2366.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2367.  
  2368. "무슨 얘깁니까?"
  2369. "오전 11시 넘어서 사쿠라이의 병실에 방문객이 찾아왔습니다."
  2370.  
  2371. 효고 입장에서 볼 때 미나미는 요츠바가를 모시는 메이드 중 한 명.
  2372. 집사인 그 쪽이 지위가 더 높다. 자연스럽게 그런 호칭이 됐다.
  2373.  
  2374. "병문안 입니까? 면회는 제한했을 터입니다만."
  2375.  
  2376. 타츠야가 의아한 듯 반문했다.
  2377.  
  2378. "그건 병원 사람들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2379. 쫓아낼 수도 없어서 본가에게 물어보니, 들어가도 된다는 허가가
  2380. 내려온 모양입니다."
  2381. "누굽니까?"
  2382.  
  2383. 쫓아낼 수 없는 상대라는 단계에서 평범한 방문객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2384. 거기다 본가에서 허락했다고 한다. 그 방문객이 누구인지
  2385. 타츠야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2386.  
  2387. "쿠도가의 삼남이신 쿠도 미노루 님입니다."
  2388.  
  2389. 미노루는 다섯 형제자매 중 막내다. 가장 위부터 누나, 형, 누나, 형 순서로,
  2390. 다섯째이자 삼남이다.
  2391.  
  2392. "미노루가……?"
  2393.  
  2394. 가장 먼저 타츠야의 뇌리에 떠오른 건, 어째서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2395. 미노루가 병문안을 온 건가라는 당연한 의문이었다.
  2396.  
  2397. 미나미의 입원을 미노루가 알아낸 이유에 대해선, 딱히 고민할 필요가
  2398. 없었다.
  2399.  
  2400. 후지바야시가 가르쳐준 거겠지. ─타츠야는 바로 그렇게 생각했다.
  2401. 원래 군 내부에서만 아는 정보여야 할 터이지만, 후지바야시는
  2402. 미노루에게 왠지 물렀다. 미노루가 간절히 바라면 이 정도 정보는
  2403. 세어나갈 게 분명하다. 국방군에게도 특별히 기밀로 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2404. 아니었다.
  2405.  
  2406. 하지만 이를 알고 있다 해도 오늘 학교를 결석하면서까지 병문안을
  2407. 오는 이유를 타츠야는 몰랐다. 미노루가 미나미와 함께 있었던 건
  2408. 순수하게 삼 일도 안 될 터이다. 확실히 상성은 좋아 보였지만,
  2409.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호감이 느껴지는 행동은 없었다.
  2410.  
  2411. 교토에서 미나미가 간병해줘서 미노루가 미나미에게 어떤 종류의 감정을
  2412. 품었을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너무나도
  2413. 확고한 결단력이다.
  2414.  
  2415. 미노루답지 않다고 말할 만큼 타츠야는 그의 성격을 잘 모른다.
  2416. 하지만 학교를 쉬고 나라에서 도쿄까지 병문안 하러 오는 정열적인 행동은
  2417. 미노루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고 느꼈다.
  2418.  
  2419. "그래서 미노루는 아직 병원에 있는 겁니까?"
  2420.  
  2421. 만약 아직도 쵸후 아오바 의원에 있다면 직접 물어볼 생각이었다.
  2422.  
  2423. "아뇨, 이미 돌아가셨다고. 병실에는 20분 정도 있었다는 모양입니다."
  2424.  
  2425.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상일은 타츠야의 의도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2426.  
  2427. 그건 둘째 치고 타츠야는 꽤 일찍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2428.  
  2429. 일반적인 병문안 시간과 비교했을 때 20분이 긴 건지 짧은 건지
  2430. 타츠야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를 결석하면서까지
  2431. 병실을 찾아온 열.정.적.인 행동을 고려해보면, 너무나도 빨리
  2432. 돌아갔다는 인상이 들었다.
  2433.  
  2434. '단순한 병문안이 아니라 뭔가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건가?'
  2435.  
  2436. 미노루의 진의를 추리하려고 해도 재료가 너무 적었다.
  2437.  
  2438. "미노루 건은 잘 알겠습니다. 그 밖엔?"
  2439. "딱히 없습니다."
  2440.  
  2441. 공손하게 허리를 수인 효고에게 퇴실을 지시했다.
  2442.  
  2443. 홀.로. 남은 타츠야는 조각상이 된 다이닝 구석에 서 있는 픽시를
  2444. 돌아봤다.
  2445.  
  2446. "픽시, 정보 단말을 가져다 줘."
  2447. "알겠습니다."
  2448.  
  2449. 능동 텔레파시가 아니라 기계 몸의 스피커로 대답하며 픽시가
  2450. 바로 단말을 가져왔다.
  2451.  
  2452. 타츠야는 작년 가을에 미노루와 연락처를 교환했다. 슈 코우킨 사건이
  2453. 일단락된 이후, 서로 한 번도 전화를 건 적은 없지만 미노루가
  2454. ID를 바꾸지 않았다면 연결될 터이다.
  2455.  
  2456. 하지만 여기서도 타츠야의 생각은 빗나갔다. 스피커에서
  2457. 호출음이 들렸으니까 ID가 없어진 건 아니다. 정보단말에 부속된
  2458. 통신용 ID는 돌려쓰는 게 불가능하니까 ID를 바꾸면
  2459. 전 ID는 무효가 된다. 즉 호출음이 들리지 않고 ID 무효 메시지가
  2460. 들려온다.
  2461.  
  2462. 단말 전원이 켜져 있지 않을 경우에도 그 사실을 알리는 메시지가
  2463. 들려온다. 즉 미노루는 현재 정보 단말을 안 갖고 있는 상태이든가
  2464. 부재중 상태로 해뒀다는 것이다.
  2465.  
  2466. '……부재중이라는 것도 그 녀석 답지 않은 것 같군.'
  2467.  
  2468. 하지만 이것도 재료 부족 상태에서 가진 이미지에 불과하다.
  2469.  
  2470. 타츠야는 미노루의 행동에 관한 의문을 일단 제쳐뒀다.
  2471.  
  2472.  
  2473. ◇ ◇ ◇
  2474.  
  2475.  
  2476. 타츠야가 미노루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미노루는 이미 나라로 가는
  2477. 장거리 열차 『트레일러』에 타고 있었다.
  2478.  
  2479. 하지만 그건 전화를 받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다.
  2480.  
  2481. 트레일러는 캐비닛을 수납해서 달리는 카트레인의 아종이었다.
  2482. 이용객은 트레일러 자체에 탑승해서 휴식을 취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2483. 캐비닛 안에 머무는 것도 가능하다. 미노루는 사정이 있어서
  2484. 그렇게 했다.
  2485.  
  2486. 캐비닛 내부는 완벽한 개인실이다. 전화를 받아도 민폐라고
  2487.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2488.  
  2489. 그럼 어째서 미노루는 전화를 받지 않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2490. 미노루는 호출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2491.  
  2492. 그 때 미노루는 마침 마음속으로 대화 중이었다.
  2493.  
  2494. 사고 기술 중 하나인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아니다. 계통 외 마법으로
  2495. 흡수한, 한 때 슈 코우킨의 망령이었던 '지식'과 대화하는 것에 집중해서
  2496.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2497.  
  2498. 미노루가 물어본 건, 미나미 치료법.
  2499.  
  2500. '지식'의 대답은 비정했다.
  2501.  
  2502. '그녀의 마법연산영역을 수복하는 건 어렵습니다.'
  2503. '치료할 수 없다는 건가? 어째서? 이치죠가 당주는 순조롭게
  2504. 회복되고 있잖아.'
  2505.  
  2506. 이치죠 고우키가 쓰러진 원인은 공표되지 않았지만, 마법연산영역의
  2507. 오버 히트가 분명하다는 게 십사족의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2508.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다는 건 이치죠가의 발표이며, 그게
  2509. 사실이라는 건 쿠도가도 확인했다.
  2510.  
  2511. '이치죠 고우키의 데미지는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었던 거겠지요.'
  2512. '그럼 미나미 씨는 계속 저 상태라는 말이야!?'
  2513. '육체적으로는 회복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은 의원도
  2514.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2515. '육체적으로는?'
  2516. '안정을 취한다면 신체의 쇠약이나 촉각 둔화는 비교적 단시간에
  2517.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고 봅니다.'
  2518.  
  2519. 그걸 듣고 물.어.보.는. 쪽.인. 미노루는 조금 안도했다.
  2520.  
  2521. 하지만 곧 우려가 되살아났다.
  2522.  
  2523. '하지만 몸 상태 불량은 마법연산영역의 손상이 원인이잖아?
  2524. 원인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재발하는 거 아냐?'
  2525. '자연스럽게 재발할 가능성은 낮겠죠. 그녀는 '나'랑 달리
  2526. 육체가 견딜 수 없는 레벨로 사이온이 상시 과잉으로 활성화된 게
  2527. 아니니까요.'
  2528.  
  2529. '지식'의 냉정한 지적이 미노루의 신경에 거슬렸다. 일반적으로 볼 때
  2530. 사이온의 활성도가 높다는 건 뛰어난 마법사라는 증거다.
  2531. 하지만 미노루의 경우 그게 병상에 묶이는 족쇄가 됐다.
  2532.  
  2533. 갈 곳 없는 분노를 미노루는 마음속으로 억눌렀다.
  2534. 지금 우선시해야 할 건, 미나미의 치료법이다.
  2535.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의 결함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다.
  2536.  
  2537. '그 말은 즉, 사이온 활성도가 높아지면 몸 상태 불량이 재발하는 건가?'
  2538.  
  2539. 마법을 행사할 때 마법사의 육체에서 사이온이 활성화된다.
  2540. 강한 마법일수록 활성도는 상승한다. 사이온 활성도 상승이
  2541. 육체를 손상한다면, 앞으로 미나미는 고위력 마법을 쓸 때마다
  2542. 쓰러진다는 거다. 고위력 마법은 사실상 쓸 수 없게 된다.
  2543.  
  2544. '그 말대로입니다. '나'랑 달리 조건이 명확하니까
  2545.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겠죠. 다만 '나'랑 똑같이
  2546. 마법사적 활동은 제한됩니다.'
  2547.  
  2548. 미노루는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물었다.
  2549.  
  2550. 마법사로서 활동할 수 없다. 그것이야 말로 미노루를 계속 괴롭혔던 거다.
  2551.  
  2552. 미노루라면 결코 견딜 수 없다.
  2553.  
  2554. 하지만 미나미는 어떨까?
  2555.  
  2556. 그녀에게 마법을 쓸 수 없다는 건 불행인가?
  2557.  
  2558. '……마법을 쓰지 않으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거지?'
  2559. '유감이지만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조정체의 피를 잇고 있습니다.
  2560. 아마도 부모님 모두 조정체인 혈통이겠죠. 스스로 마법을 쓰지 않아도
  2561. 마법연산영역이 폭주해서 육체 허용 범위를 넘는 사태는 충분히
  2562. 있을 수 있습니다.'
  2563. '나처럼 되는 건가.'
  2564. '그렇게 되면 상태는 '나'보다도 심각합니다. '내' 혼은 강도는
  2565. 부족하지만 높은 수복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2566. 쓰러지는 일이 많아도 죽음에 이르지 않고 끝납니다.
  2567. 하지만 그녀의 경우 일단 혼이 파괴되면 그대로 죽을지도 모릅니다.'
  2568. '……하지만 이번에는 살아남았어.'
  2569. '누군가가 혼을 그 자리에서 수복한 거겠죠.'
  2570.  
  2571. 타츠야라고 미노루는 직감했다.
  2572.  
  2573. 타츠야가 갖고 있는 마법 능력의 전모를 미노루는 모른다.
  2574.  
  2575. 하지만 2년 전 여름에 텔레비전으로 관전한 신인전 모놀리스 코드.
  2576.  
  2577. 그 시합에서 타츠야는 이치죠 마사키에게서 치명상으로도 이어지는
  2578. 과잉 공격을 받았으면서도 기적적으로 수복해 대역전을 이뤘다.
  2579.  
  2580. 그 상황을 봤을 때 타츠야는 고도의 자기수복능력을 갖고 있다.
  2581. 그걸 다른 사람에게도 쓸 수 있는 게 분명하다.
  2582.  
  2583. '그럼 그 '누군가'가 없는 곳에서 '발작'을 일으킨다면…….'
  2584. '살 수 없겠지요. 조정체에겐 태어나면서부터 따라다니는 비극이지만,
  2585. '미나미 씨'의 경우 이번 일로 그게 발생하기 쉽게 된 거라고 추측합니다.'
  2586. '최종적인 치.료. 방법도 나랑 같은가……?'
  2587. '패러사이트와 융합. 그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2588.  
  2589. 미노루는 '지식'과 하는 대화를 마쳤다.
  2590.  
  2591. 미나미를 구하기 위해 그녀를 패러사이트로 만들어야만 한다.
  2592.  
  2593. 터무니없다고 미노루는 생각했다.
  2594.  
  2595. 하지만 자신과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미노루는 왠지 그 생각에
  2596.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다.
  2597.  
  2598.  
  2599. ◇ ◇ ◇
  2600.  
  2601.  
  2602. 예고대로 밤에 미유키를 데리고 병문안을 온 타츠야는
  2603. 미나미의 입을 통해 미노루가 뭘 하러 왔는지 들었다.
  2604.  
  2605. "미노루는 치료법을 찾겠다고 말한 건가?"
  2606. "네, 타츠야 님."
  2607.  
  2608. 역시 단순한 병문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미나미의 대답을 듣고
  2609. 타츠야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2610.  
  2611. 손을 쥐었다든지 손바닥을 더듬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2612. 발칙한 의도도 의심했지만, 미노루의 진의는 미나미 치료라고
  2613. 타츠야는 일.단. 안심했다.
  2614.  
  2615. "오라버니, 미노루에게 그런 지식이 있는 건가요?"
  2616.  
  2617. 함께 미나미의 얘기를 들은 미유키가 지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2618.  
  2619. 마법연산영역 치료는 요츠바가가 오랫동안 연구한,
  2620. 아직 골이 보이지 않는 난제이다.
  2621.  
  2622.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어. 작년 논문 공모전에서 알아차렸겠지만,
  2623. 『정신』에 관한 미노루의 지식은 고등학생 레벨을 훨씬 뛰어넘었어.
  2624. 게다가 고식 마법의 요소를 집어넣은 구 제9연의 마법에는
  2625. 정신 간섭계 술식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미노루가 구 제9연의
  2626. 연구 성과라면 마법연산영역의 치료에 관한 단서를 갖고 있는 건
  2627. 말도 안 되는 얘기는 아냐."
  2628. "하지만 마법연산영역 그 자체의 연구는 구 제9연 시절부터
  2629. 요츠바의 연구자에게 일임한 테마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630. 아직 치료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미노루 군 자신도
  2631. 마법연산영역과 육체의 언밸런스를 품고 있습니다.
  2632. 그런 지식이 있다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치료하지 않을까요?"
  2633.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으니까 특히 잘 아는 경우도
  2634. 생각해볼 수 있어."
  2635.  
  2636. 미유키의 부정적인 추측에 반론한 타츠야였지만 여기서 '아니……'라고
  2637. 말하면서 한 번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2638.  
  2639. "여기서 미노루의 능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의논해봤자 의미는 없어.
  2640. 미나미의 치료법을 찾겠다고 한 거다. 지금은 미노루의 호의를
  2641. 호의로서 받아들이도록 하자."
  2642. "……그렇네요. 별 수 없는 얘기를 해버렸네요."
  2643.  
  2644. 타츠야는 미유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미나미 쪽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2645.  
  2646. "미나미의 치료에 대해선 이곳 의사도 노력하고 있다.
  2647. 본가 쪽에서도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양이고
  2648. 나도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어. 안심하고 좋은 소식을 기다려줘."
  2649.  
  2650. 타츠야는 미나미를 안심시킬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다.
  2651.  
  2652. "네. 저기, 타츠야 님……."
  2653.  
  2654. 하지만 미나미가 불안한 목소리를 내자, '역효과였나'라고
  2655. 가볍게 후회했다.
  2656.  
  2657. "왜 그러지?"
  2658.  
  2659. 물론 그걸 드러내지는 않았다. 침착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2660. 미나미에게 뒷말을 재촉했다.
  2661.  
  2662. "기회가 생긴다면 미노루 님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전해주시겠습니까?"
  2663.  
  2664. 타츠야는 마음속으로 '어라?'라고 중얼거렸다. 미나미가
  2665. 불안을 느낀 부분은 치료 성공 여부가 아니라 미노루에 대한 것이었던
  2666. 모양이다.
  2667.  
  2668. "미노루에게서 뭔가 느낀 건가?"
  2669. "네. ……무척 긴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절 걱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2670. 뭔가 다른, 좀 더 심각한 고민을 숨기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2671. "미노루의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잖아."
  2672. "네. 몸은 특별히 무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2673. "……신경 쓰이네요, 오라버니."
  2674.  
  2675. 미나미의 불안이 전염된 건지 미유키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2676. 타츠야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2677.  
  2678. "미노루는 총명한 남자다. 무모한 짓은 안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2679.  
  2680. 그렇게 말하면서 타츠야는 충분한 확신이 없었다.
  2681.  
  2682. 그도 미노루의 인품을 숙지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2683. 작년 가을에 만난 미노루라면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2684.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미노루의 행동은 그 때의
  2685. 미노루의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았다. 타츠야는 막연히
  2686. 그렇게 느꼈다.
  2687.  
  2688.  
  2689.  
  2690. [4]
  2691.  
  2692.  
  2693.  
  2694. 제1고교 통학로는 가장 가까운 역에서 똑바로 직진하면 된다.
  2695. 샛길은 있지만, 사실상 외길이다.
  2696.  
  2697. 대부분의 1고 학생들은 등하교 할 때 이 길을 지나간다.
  2698. 예외는 학교에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사는 학생들 정도다.
  2699.  
  2700. 6월 11일, 화요일 아침. 이 통학로를 등교하는 학생들 사이에
  2701. 술렁임이 있었다. 1고 학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학생회장,
  2702. 시바 미유키가 남학생에게 딱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2703.  
  2704. 그 남학생도 학생회장과 비슷하게 유명인이다. 현재
  2705. 사회적인 지명도는 남자 쪽이 더 높겠지.
  2706.  
  2707. 그 학생의 이름은 시바 타츠야.
  2708.  
  2709. 오랜 만의 등교였다.
  2710.  
  2711.  
  2712.  
  2713. "타츠야 씨!"
  2714.  
  2715. 1고 교문과 교사 사이에 긴 직선 가로수길이 있다.
  2716.  
  2717. 그 길에 들어선 직후 앞에서 누군가가 타츠야를 불렀다.
  2718.  
  2719. 등교하는 학생 무리를 역주행하는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2720.  
  2721. "타츠야 씨, 돌아오신 거지요!?"
  2722.  
  2723. 사정을 아는 사람의 '어쩔 수 없지……'라는 시선,
  2724. 사정을 모르는 학생의 기이한 시선을 받으면서 호노카는
  2725. 이를 신경 쓰지 않고 타츠야 곁으로 달려왔다.
  2726.  
  2727. "그래. 오늘부터 또 잘 부탁해."
  2728.  
  2729. 타츠야는 살짝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래도 민폐라는 몸짓은
  2730. 보이지 않고 호노카에게 말했다.
  2731.  
  2732. 타츠야는 걸어가면서 호노카 뒤로 시선을 보냈다.
  2733.  
  2734. 호노카 바로 뒤에서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시즈쿠가 눈으로 인사했다.
  2735.  
  2736. 더욱 뒤에는 '이런 이런'이라는 표정의 에리카, 레오, 미키히코,
  2737. 미즈키가 있다. 타츠야의 시선을 깨달은 에리카가 가벼운 동작으로
  2738. 손을 흔들었다.
  2739.  
  2740. 타츠야는 왼쪽 옆이라는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 미유키와
  2741. 오른쪽에 선 호노카와 함께 교사를 향해 나아갔다.
  2742.  
  2743.  
  2744.  
  2745. 마공과 승강구는 2과생 쪽에 있다. 이건 A반~D반,
  2746. E반~H반으로 승강구가 나눠져 있기 때문이며
  2747. 교사 구조상 어쩔 수 없는 거다.
  2748.  
  2749. 미유키, 호노카, 시즈쿠, 미키히코와 헤어지고,
  2750. 타츠야는 에리카, 레오, 미즈키와 함께 교실로 향했다.
  2751.  
  2752. 3학년 E반 교실도 오랜만이다. 참고로 에리카와 레오는 F반이지만
  2753. 그대로 E반으로 따라왔다.
  2754.  
  2755. "책상은 남아 있었군."
  2756.  
  2757. 창가 자리에 앉은 타츠야의 입에서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2758. 소박한 감상으로서 그 말이 흘러나왔다.
  2759.  
  2760. 에리카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쓴웃음을 지었다.
  2761.  
  2762. 미즈키가 옆자리에 앉고, 옆으로 앉아 타츠야 쪽으로 몸을 돌렸다.
  2763.  
  2764. "항성로 프로젝트 쪽은 괜찮은 겁니까?"
  2765. "아니, 물론 바빠. 그러니까 매일 통학하는 건 어려울지도 몰라."
  2766.  
  2767. 타츠야의 대답을 듣고 미즈키의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살짝 떠올랐다.
  2768.  
  2769. 하지만 바로 미소로 이를 감췄다.
  2770.  
  2771. "그런가요. 하지만 가끔 와 주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2772.  
  2773. 미즈키의 말에 반대편 창틀에 앉은 에리카가 '응응'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2774.  
  2775. "아침과 귀가 때 미유키 에스코트만 해도 좋으니까 말이야.
  2776. 역시 타츠야 군이 없으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라고."
  2777. "미유키의 에스코트인가."
  2778.  
  2779. 학교의 의의를 완전히 무시한 에리카의 말에 타츠야는
  2780. 쓴웃음을 금치 못했다.
  2781.  
  2782. 하지만 에리카의 말은 의외로 핵심을 찔렀다.
  2783.  
  2784. "그러고 보니 타츠야, 사쿠라이는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거야?"
  2785.  
  2786. 레오가 미나미의 부재를 신경 쓰는 건, 그녀가 부활동 후배이기 때문이다.
  2787.  
  2788. "의사는 후유증은 남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 하지만 조금 걸릴 것 같군."
  2789. "그런가……."
  2790.  
  2791. 레오가 신경 쓰는 건 미나미의 상태뿐이지만, 타츠야는
  2792. 그것만이 아니었다.
  2793.  
  2794. 물론 순수하게 회복을 바라는 건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2795. 미유키의 호위를 어떻게 할지 타츠야는 신경 쓰였다.
  2796.  
  2797. 어제는 홀로 등하교했다. 미유키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은
  2798. 마법사든 비마법사이든 좀처럼 없고, 근처에 있지 않아도
  2799. 타츠야는 미유키를 지킬 수 있다.
  2800.  
  2801. 하지만 곁에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피할 수 있는 트러블도 있다.
  2802. 아무리 요츠바가라 해도 지금부터 교내에 사람을 파견하는 건 어렵겠지.
  2803. 아니 직원이나 사무원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2804. 항상 곁에 있는 학생을 준비하는 건 불가능하다. 등하교 할 때만이라도
  2805. 자신이 에스코트를 하는 건, 에리카가 말하기 전부터 타츠야도
  2806. 생각했던 것이었다.
  2807.  
  2808.  
  2809. ◇ ◇ ◇
  2810.  
  2811.  
  2812. 타츠야가 1고로 복학(?)한 건 디오네 계획에 관한 소동이
  2813. 잦아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저번 주 타츠야가 대항책을 내세워서
  2814. 소동은 오히려 가열됐다.
  2815.  
  2816. 1고 주위에 매스컴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 건, 권총에 의한
  2817. 살인미수사건이 영향을 끼친 거겠지. '토러스 실버'의 정체는
  2818. 이미 밝혀졌기 때문에, 이제 목숨 걸고 취재할 필요는 없다는 걸지도 모른다.
  2819.  
  2820. 현재 소동은 타츠야 주변을 벗어나 세계 규모로 퍼진 느낌이 있다.
  2821. 네 개의 대국 중 신소비에트 연방이 USNA의 디오네 계획을 지지하는 한편,
  2822. 인도 페르시아 연방은 정부 공식성명은 없지만 사실상
  2823. 타츠야의 ESCAPES 계획을 지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2824.  
  2825. 대아연합은 아직 태도를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2826.  
  2827. 사대국 이외의 국가들도 유럽은 대체로 디오네 계획 지지,
  2828. 서아시아랑 동아시아는 ESCAPES 계획 지지, 브라질과 오스트레일리아는
  2829. 대아연합과 똑같이 방침을 밝히지 않았다.
  2830.  
  2831. 양쪽 진영 모두 표면적으로는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2832. 사태는 복잡해졌다. 디오네 계획도 ESCAPES 계획도 마법의
  2833. 평화적 이용이라는 점에선 일치한다. 그리고 둘 다 명.목.상.
  2834. 상대방을 배제하지 않는다. 공.개.된. 자.료.만.으.로. 판.단.하.면.
  2835. 디오네 계획을 실시한다고 해서 ESCAPES 계획을 추진할 수 없는 건
  2836. 아니고, 그 반대도 똑같다. 그저 한. 마.법.사.가. 두. 계.획.에.
  2837. 동.시.에. 참.가.하.는. 게. 불.가.능.할. 뿐이었다.
  2838.  
  2839. 두 계획이 양립한다는 인지를 받아 타츠야와 클러크 사이에 펼쳐진
  2840. 선전전(宣傳戰)은, 타츠야의 우세로 진행되고 있다.
  2841. 이건 타츠야의 머리가 클러크보다 뛰어나기보다 '늦게 내기'의
  2842. 유리함 때문이었지만, 이 싸움은 판정이 있는 경기가 아니다.
  2843. 늦게 내기이든 사기이든 승리만이 가치 있다.
  2844.  
  2845. 이론 싸움에서 지고 있는 에드워드 클러크는 권력이라는
  2846. 공격 수단에 의지했다.
  2847.  
  2848.  
  2849. ◇ ◇ ◇
  2850.  
  2851.  
  2852. 1고에서 1교시 수업을 하고 있는 시각, 국방육군 제101여단의 총책임자인
  2853. 사에키 히로미 소장은 방위성 청사 빌딩을 방문했다. 종합 군사령부도
  2854. 여기에 있지만, 오늘 출두 명령을 받은 곳은 정장 직원이 근무하는
  2855. 섹션이다.
  2856.  
  2857. 점심 전에 기지로 돌아온 사에키는 사령실로 돌아오자마자
  2858. 카자마를 호출했다.
  2859.  
  2860. "……타츠야를, 아니, 시바 타츠야 씨를."
  2861. "굳이 다시 말할 필요는 없다고요, 중령."
  2862.  
  2863. 이런 식으로 말허리를 자르는 건 사에키답지 않다. 그녀는
  2864. 불쾌감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2865.  
  2866. 당황보다도 웃음이 나와 데스크 앞에 선 카자마는
  2867. 실소를 흘리지 않기 위해 배에 힘을 줘야만 했다.
  2868.  
  2869. "……실례했습니다. 디오네 계획에 참가하도록 타츠야를
  2870. 설득하라고 명령 받은 겁니까."
  2871. "외무성 과장에겐 제게 명령할 권한이 없습니다."
  2872.  
  2873. 방위성 회의실에서 사에키를 기다린 건, 외무성 북미국 과장이었다.
  2874. 사에키 말대로 외무성은 국방군에게 명령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2875. 회의실에서 들은 말도 의뢰 형태였다. 하지만 방위성 서기관도 동석한
  2876. 그 자리의 발언은 사실상 강제, 즉 명령이었다.
  2877.  
  2878. 군인은 명령계통을 어기는 걸 싫어한다. 상관은 그 경향이 강하고,
  2879. 사에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의 불쾌감은 대부분 이게 원인이었다.
  2880.  
  2881. "각하께 이런 의뢰를 한 건, 타츠야가 『오오구로 류우야 특위』이기
  2882. 때문입니까?"
  2883. "그런 모양입니다."
  2884.  
  2885. 무뚝뚝한 표정을 지은 사에키 앞에서 카자마는 숨기지도 않고
  2886. 한숨을 내쉬었다.
  2887.  
  2888. "정장 직원들은 아무래도 타츠야에게 주어진 『특무사관』의 성질을
  2889. 잘 모르는 모양이군요."
  2890. "오오구로 특위의 지위는 어떤 의미로 초법규적인 겁니다.
  2891. 사무직이 몰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2892.  
  2893. 사에키 말대로 현재 국방군에 제.도.적.으.로. '특무사관'은
  2894.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역사적으로 봐도 타츠야를 '특무사관'이라고
  2895. 부르는 건, 타당하지 않다.
  2896.  
  2897. '임시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정규군에 소속된 사관 대우를 받는 민병'이라고
  2898. 부르는 쪽이 적절하겠지. 마침 이에 해당하는 언어가 없었기에
  2899. 편의상 '특무사관'이라고 부르는 것에 불과하다.
  2900.  
  2901. 그러니까 실태를 모르는 사람이 특무사관의 원래 의미에 따라
  2902. 타츠야를 정규 군인이라고 이해해도 어쩔 수 없었다.
  2903.  
  2904. "법률과 제도를 관리하는 사무직이니까 당연히 알아둬야만 한다고
  2905. 생각합니다만."
  2906.  
  2907. 하지만 어디까지나 '초법규적.'인 것이지, 국방군 내부에서
  2908. 법적인 문제는 해결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해당 정장 직원의 허가를
  2909. 받으니까, 방위성 직원이 모르는 건 태만이라고 비난해도
  2910. 변명할 수 없을 터이다.
  2911.  
  2912. "중령의 지적은 타당하지만, 이즘 문제로 삼아야할 부분은
  2913. 다른 겁니다."
  2914. "실례했습니다. 문제는 과연 타츠야를 설득할 수 있을지,
  2915. 설득해야만 하는 건지였지요."
  2916.  
  2917. 얘기가 벗어난 걸 사죄하며 카자마는 두 개의 문제점을 나열했다.
  2918.  
  2919. "그렇습니다."
  2920.  
  2921. 사에키도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2922.  
  2923. "우선 이 건의 출발점으로 타츠야가 머티어리얼 버스트의 술자라는 걸
  2924. 방위성과 외무성은 인식하고 있습니까?"
  2925. "오늘 느낌으로 보건데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군요."
  2926. "과연. 그렇다면 이런 엉뚱한 지시가 나오는 것도 납득이 갑니다."
  2927.  
  2928. 타츠야는 일본이 보유한 최대의 마법 전력, 아니 전.력.이다.
  2929. 홀로 세계의 군사 밸런스를 바꾸는 조커, 최강의 비장의 수를 만드는
  2930. 다섯 번째 에이스.
  2931.  
  2932. 룰에 따라선 배제될 수 있는 성가신 사람이지만, 이 세계에선
  2933. 조커의 사용이 인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넘기다니,
  2934. 제정신으로 할 소리는 아니다. 타츠야가 최강의 전략급마법사라는 걸
  2935. 안다면, 디오네 계획에 참가하게 하라는 생각은 하지 않겠지.
  2936.  
  2937. "차라리 타츠야를 14번째 『사도』로 인정하는 건 어떻습니까?"
  2938.  
  2939. 사에키는 의표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경악한 건
  2940. 한순간이었다.
  2941.  
  2942.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2943. "각하?"
  2944.  
  2945. 이 반응에 카자마 쪽이 놀라버렸다. 그는 단순한 농담으로 꺼낸 거였다.
  2946.  
  2947. "이 이상 사태가 악화된다면 검토해야만 할지도 모릅니다.
  2948. 그가 전략급마법사라는 걸 공표하면, 관료도 USNA에게
  2949. 넘겨주라고는 하지 않겠지요."
  2950. "그건 그렇습니다만……."
  2951. "뭐 그것도 향후 사정에 달려 있습니다. 일단 눈앞의 문제를
  2952. 해치우도록 하죠."
  2953.  
  2954. 그렇게 말하고 사에키는 지친 표정을 다시 지었다.
  2955.  
  2956. "일의 시비는 제쳐두고, 카자마 중령, 시바 군을 설득할 수 있다고
  2957. 생각합니까?"
  2958. "불가능하겠죠."
  2959.  
  2960. 설령 가능하다 해도 타츠야에게 아메리카로 가라고 권하지 않겠지만,
  2961. 설득 그 자체가 무리라고 카자마는 즉답했다.
  2962.  
  2963. "최근에 타츠야와 우리의 관계는 양호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2964. 이건 소관의 실태입니다만, 저번에 몰래 촬영한 사건에서도
  2965. 커다란 불신감을 줘버렸습니다."
  2966. "그 건은 제 판단 미스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설득해봤자
  2967. 성공 가능성은 없고, 오히려 그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결과만
  2968. 남는다는 거군요."
  2969. "소관은 그렇게 판단합니다."
  2970.  
  2971. 카자마의 판단에 사에키도 다른 의견은 없었다.
  2972.  
  2973. "그럼 외무성의 요청을 거절해서 시바 군의 환심을 사는 게
  2974.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2975. "그건…… 글쎄요."
  2976.  
  2977. 한편 카자마는 사에키의 아이디어를 긍정하지 않았다.
  2978.  
  2979.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든 타츠야가 디오네 계획에 참가하는 일은
  2980.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감사하게 여기진 않겠지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2981. 이 경우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닐까요."
  2982. "과연……."
  2983.  
  2984. 사에키가 손으로 시선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긴다.
  2985.  
  2986. 카자마는 데스크 앞에 가만히 선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2987.  
  2988. "귀관의 의견을 채용하도록 하지."
  2989. "그건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겁니까?"
  2990. "그렇습니다. 외무성의 요청은 정규 절차를 밟지 않은
  2991. 비공식적인 것이었습니다. 방치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2992.  
  2993. 그렇게 말했지만 사에키는 처음부터 외무성의 의뢰를
  2994. 무시할 생각이었다고 카자마는 생각했다. 그를 부른 건,
  2995. 이 건을 역으로 이용해 타츠야에게 은혜를 팔지 말지
  2996.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카자마는 그렇게 이해했다.
  2997.  
  2998. "중령, 수고했습니다."
  2999. "네. 실례하겠습니다."
  3000.  
  3001. 카자마는 사령관실에서 나갔다.
  3002.  
  3003. 일단 타츠야에게 알려줘야 할지 카자마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가
  3004. 즉시 기각했다.
  3005.  
  3006. 외무성이나 국방군의 생각은 타츠야에게 의미가 없는 거다.
  3007. 아무리 생각해도 수복할 재료는 아니었다.
  3008.  
  3009. 그것보다 열네 번째 『사도』로서 인정한다는 얘기가 현실적이게 된다면
  3010. 타츠야의 의향을 확실히 확인해야만 하겠지.
  3011.  
  3012. 이미 타츠야는 토러스 실버로서 세계적으로 원하지 않는 지명도를
  3013. 얻어버렸다. 이전보다 표면적으로 나서는 걸 기피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3014. 하지만 타츠야가 전략급마법사로서 공인되는 걸 바라냐고
  3015. 물어본다면, 카자마는 확실하게 'No'라고 대답할 거다. 여기서
  3016. 대응을 잘못해 그의 기분을 해치는 일은 좋은 책략이 아니다.
  3017.  
  3018. ……이런 걸 생각할 정도로 타츠야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걸
  3019. 카자마는 신경 썼다.
  3020.  
  3021.  
  3022. ◇ ◇ ◇
  3023.  
  3024.  
  3025. 타츠야와 에드워드 클러크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건,
  3026. 외무성만이 아니었다.
  3027.  
  3028. 산업성(産業省)은 대신인 여당 중진의 사무소에서 내려오는 압력에
  3029. 고뇌하고 있었다. 과거에 통상 산업성이라고 불린 것처럼
  3030. 무역은 산업성의 중요한 관할 분야다. USNA는 이 시대에서도
  3031.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며, 산업성의 관료로서는
  3032. 통상(通商) 마찰의 씨앗을 가능한 한 작을 때 제거하고 싶었다.
  3033. 그로서는 민간인 한 명의 거취로 USNA와 사이가 나빠지다니
  3034. 농담이 아니었고, 타츠야는 얼른 아메리카로 가 줬으면 하는 게
  3035. 본심이었다.
  3036.  
  3037. 그런데 오늘 아침 대신의 사무소에서 '마법 항성로 에너지 플랜트 계획'을
  3038. 실행하는데 필요한 입법 장치에 대한 문의가 있었다. 이건 즉
  3039. USNA의 디오네 계획에는 참가하지 않는 방향으로
  3040. 구체적인 검토를 하라는 거다.
  3041.  
  3042. 애초에 디오네 계획도 마법 항성로 플랜트 계획도 정부가 정한
  3043. 공공사업이 아니므로 일본으로서 참가이고 자시고 없었다.
  3044. 가장 협력적으로 보는 신소련도 협력을 표명한 건 정부가 아니라
  3045. 아카데미였다. 여기서 일본 정부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3046. 표면적으로 USNA의 비판을 받을 단계는 아니었다.
  3047.  
  3048. 플랜트 계획 쪽은 국내에서 하는 사업이므로 그 법적 측면에 대해
  3049. 검토하는 건 산업성 원래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3050. 그걸 대신의 사무소에서 직접 조회하라고 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3051. '지지하라'라는 압력이다.
  3052.  
  3053. 어째서 그렇게 된 건지 산업성은 이미 조사했다. 대신의 사무소에
  3054. 진정이 있었다. 그것도 여당의 커다란 자금원인 여러 대기업 그룹에서.
  3055.  
  3056. 모든 경제계는 아니었으니까 USNA의 기분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은
  3057. 플랜트 계획에 반대하는 재계인도 적지 않을 거라고 본다.
  3058. 하지만 산업성이 보기에는 그저 1고 학생이 꺼낸 프로젝트가
  3059. 경제계를 두 세력으로 나눈 거다.
  3060.  
  3061. 도대체 어디서 그런 연줄을 잡아낸 건지, 어느 틈에
  3062. 산전수전 다 겪은 거물 경영자들을 꾀.어.낸. 건.지,
  3063. 일에 쫓기면서 산업성 직원은 크게 목을 비틀었다.
  3064.  
  3065.  
  3066. ◇ ◇ ◇
  3067.  
  3068.  
  3069. 오전 수업이 끝날 때까지 타츠야는 교실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3070. 3학년이 되면 마법에 관한 전문적인 과목이 늘어난다. 하지만
  3071. 일반 교양과목이 없는 건 아니다. 타츠야는 결석 중
  3072. 일반 과목을 세 배 속도로 집중적으로 수강했다.
  3073.  
  3074. 유감스럽게도 한나절로 끝날 분량은 아니었지만, 그도
  3075. 오늘 하루 만에 뒤쳐진 걸 모두 끝낼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3076. 점심시간이 됐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러 일어났다.
  3077.  
  3078. "타츠야 씨, 식사하러─."
  3079. "타츠야 군."
  3080.  
  3081. 옆자리에서 미즈키가 '식사하러 가는 건가요?'라고 묻는 목소리를
  3082. 소년의 목소리가 덧씌웠다.
  3083.  
  3084. 목소리의 주인은 토미츠카였다.
  3085.  
  3086. "미즈키, 먼저 식당으로 가 있어줘."
  3087.  
  3088. 타츠야는 미즈키에게 그렇게 대답하면서 토미츠카를 향해 돌아섰다.
  3089.  
  3090. "토미츠카, 무슨 용건이지?"
  3091. "……잠시 얘기하고 싶은데."
  3092.  
  3093. 토미츠카는 살짝 주저한 다음,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타츠야에게
  3094. 대답했다.
  3095.  
  3096. "그건 시간이 걸리는 얘기인가?"
  3097.  
  3098. 토미츠카와는 대조적으로 타츠야는 그다지 얘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3099.  
  3100. "아마도."
  3101. "방과 후에는 안 되는 건가?"
  3102.  
  3103. 그래도 일단 들을 자세는 취했다.
  3104.  
  3105. "가능하다면 당장."
  3106. "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얘기 아닌가?"
  3107. "그건…… 그렇지만."
  3108.  
  3109. 토미츠카는 말을 우물거렸다.
  3110.  
  3111. "뭐야, 젠체하고. 얘기 정돈 들어줘도 되잖아."
  3112.  
  3113. 그 상황에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난입했다.
  3114.  
  3115. "히라카와 씨……?"
  3116.  
  3117. 타츠야를 노려보는 히라카와 치아키. 당황한 건 타츠야보다도
  3118. 토미츠카 같았다.
  3119.  
  3120. "뭔가요, 그 말투……! 타츠야 씨가 얘기를 안 듣는다고는
  3121. 하지 않았잖아요!"
  3122.  
  3123. 치아키에게 반론한 건, 먼저 식당에 가 있으라는 말을 듣고도
  3124.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미즈키였다.
  3125.  
  3126. 예상치 못한 여자들의 장외 난전은 타츠야의 '그만 둬, 미즈키'라는 제지로
  3127. 발발하지 않고 끝났다.
  3128.  
  3129. "미즈키. 미안하지만 오늘 점심시간엔 토미츠카의 얘기를 들어야겠어.
  3130. 모두에게 그렇게 전해주지 않겠어?"
  3131. "……알겠습니다."
  3132.  
  3133. 미즈키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언뜻 보이면서, 타츠야에게 인사를 하고
  3134. 교실에서 나갔다.
  3135.  
  3136. "토미츠카, 어디서 얘기를 할 거지?"
  3137. "그러니까, 그럼 옥상에서."
  3138.  
  3139. 타츠야의 눈썹이 살짝 올라간 건, 옥상에서 얘기하면 다른 학생들도
  3140. 듣기 때문이다.
  3141.  
  3142. "알겠다."
  3143.  
  3144. 하지만 토미츠카가 그래도 괜찮다면, 타츠야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3145.  
  3146. "히라카와 씨, 고마워."
  3147.  
  3148. 토미츠카는 들어올린 주먹이 갈 곳을 잃은 치아키에게 작은 목소리로
  3149. 그렇게 말하고, 벌써 교실을 나간 타츠야의 뒤를 쫓아갔다.
  3150.  
  3151.  
  3152.  
  3153. 타츠야의 예상과 달리 옥상엔 사람이 없었다. 도쿄는 저번 주부터
  3154. 장마철이라 오늘도 우중충한 하늘,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3155. 하늘이었다. 점심시간에 옥상에 있으려고 하는 학생이 없는 게
  3156. 당연할지도 모른다.
  3157.  
  3158. 옥상엔 벤치도 있었지만 타츠야도 토미츠카도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3159.  
  3160. 선 채로 마주보는 두 사람.
  3161.  
  3162. "그래서 내게 할 얘기는 뭐지?"
  3163.  
  3164. 먼저 말문을 연 건 타츠야였다.
  3165.  
  3166. "……요전에 어머니가 쓰러졌어."
  3167. "마법협회의 토미츠카 히스이 회장이 입원했다고 하더군.
  3168. 미유키에게서 들었다. 큰일이었던 모양이군."
  3169.  
  3170. 남의 일처럼 평가하는 타츠야에게 토미츠카는 화가 치민 표정을 지었다.
  3171.  
  3172. "하지만 그건 마법협회의 회장과 외무성 사이의 문제다.
  3173. 내게 불평하면 곤란해."
  3174.  
  3175. 타츠야는 토미츠카의 표정이 보였지만, 그의 심정을 전혀
  3176. 참작하지 않았다.
  3177.  
  3178. "그렇게 말할 건 없잖아!"
  3179.  
  3180. 타츠야의 박정한 말에 토미츠카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
  3181.  
  3182. "연하의 여자아이에게 싸움을 걸었으니, '그렇게 말하고' 자시고
  3183. 할 것도 없다."
  3184.  
  3185. 하지만 타츠야의 비아냥거림이라기엔 너무나도 신랄한 말에
  3186. 토미츠카는 주눅 들었다.
  3187.  
  3188. 토미츠카는 그제야 타츠야의 눈동자에 차가운 분노가 서렸다는 걸
  3189. 깨달았다.
  3190.  
  3191. "그래서 토미츠카. 너의 볼일이란 마법협회 회장의 마음고생을
  3192. 없애기 위해 나보고 산제물이 되라는 건가?"
  3193. "산제물이라고 말한 적 없어!"
  3194. "하지만 나를 USNA로 쫓아내고 싶은 것 아닌가?"
  3195. "쫓아내다니……."
  3196.  
  3197. 타츠야의 말에 담긴 독은 토미츠카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3198.  
  3199. "나는…… 정말로 그 계획이 마법사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3200. "토미츠카. 너는 디오네 계획의 진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3201.  
  3202. 이번에는 타츠야의 목소리에 살짝 짜증이 담겼다.
  3203.  
  3204. 타츠야가 일부러 목소리를 그렇게 냈다는 걸 모르는 토미츠카는
  3205. 타츠야의 비정한 태도에 대한 분노를 잊고 당황했다.
  3206.  
  3207. "진짜 목적……?"
  3208. "디오네 계획의 진짜 목적은 마법사를 지구에서 쫓아내고
  3209. 목성권, 소혹성대, 금성권에 묶어두는 것이다."
  3210. "……뭐라고?"
  3211. "위성 궤도에도 마법사를 배치하겠지만, 이 포지션엔
  3212. USNA나 신소련, 영국의 마법사가 자리 잡겠지. 가령 내가
  3213. 디오네 계획에 참가한다면, 목성의 위성 궤도로 날아가
  3214. 10년도 넘게 못 돌아올 거다. 평생 귀양을 가는 것도
  3215. 충분히 있을 법 하군."
  3216.  
  3217. 귀양보다 귀성(星)인가, 라고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덧붙여 말한
  3218. 타츠야의 목소리는 토미츠카의 의식에 닿지 않았다.
  3219.  
  3220.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런……. 그거 시바 군의 지나친 생각 아냐……?"
  3221.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어. 스스로
  3222. 공표된 자료를 다시 한 번 검토해 봐라. 뒷얘기는 그 다음이다."
  3223.  
  3224. 타츠야는 그렇게 말하고 토미츠카에게서 등을 돌렸다.
  3225.  
  3226. 뒤에서 그를 불러세우는 목소리는 없었다.
  3227.  
  3228. 가령 토미츠카가 스스로 디오네 계획을 유익한 프로젝트라고 판단하고
  3229. 타츠야에게 다시 쫓아온다 해도, 타츠야는 그의 설득을 받아들일 생각이
  3230. 없었다.
  3231.  
  3232. 디오네 계획엔 참가하지 않는다.
  3233.  
  3234. 미유키를 지구에 남겨두고 우주로 가진 않는다.
  3235.  
  3236. 미유키를 두고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3237.  
  3238. 그건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결단이다.
  3239.  
  3240. 즉 방금 타츠야가 한 행동은 시간벌기다.
  3241.  
  3242. 하지만 토미츠카가 디오네 계획에 숨겨진 악의를 스스로 알아차리길
  3243. 바란 것도 거짓은 아니었다.
  3244.  
  3245.  
  3246.  
  3247. 타츠야를 멍하니 배웅한 토미츠카는 그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3248. 잠시 그대로 굳어 있었다.
  3249.  
  3250. "……뭐야, 그거."
  3251.  
  3252. 토미츠카가 그렇게 중얼거린 건, 떨어지는 빗방울의 감촉으로
  3253. 제정신이 돌아온 덕분이었다.
  3254.  
  3255. "진짜 목적? 우주로 귀양? 하, 완전히 음모론이잖아."
  3256.  
  3257. 비웃는 것처럼 내뱉는다.
  3258.  
  3259. 하지만 제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타츠야의 말이 마음에 박힌 채
  3260. 뽑히질 않는다.
  3261.  
  3262. 비는 곧 본격적으로 내렸다.
  3263.  
  3264. 토미츠카는 비에 젖는 걸 신경 쓰지 않고, 어쩌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3265. 옥상에 우뚝 서 있었다.
  3266.  
  3267. "나는 그런 거 듣지 못했어. 그런 말, 그 누구도 하지 않았어."
  3268.  
  3269.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주위에선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3270.  
  3271. 그가 시청한 방송에서 그런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3272.  
  3273. 그것뿐이다.
  3274.  
  3275. 아무리 정보화가 진전 되도, 한 명의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데이터엔
  3276. 한계가 있다.
  3277.  
  3278. 결국 기반은 자기 자신의 사고다.
  3279.  
  3280. "진짜 목적이라고? 그건 지나친 생각이야. 우주로 귀양이라니,
  3281. 여론이 허락할 리가 없어."
  3282.  
  3283. 하지만 '자신의 생각'도 자신이 홀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3284. 자신이 접한 정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3285.  
  3286. 타츠야와 토미츠카는 경험과 얻은 정보, 쌓아온 사고방식이 너무나도
  3287. 달랐다.
  3288.  
  3289. 우열이 아니라, 서로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3290.  
  3291. 타츠야가 내린 결론은 현재의 토미츠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3292.  
  3293. 아마도 토미츠카 쪽이 보통이겠지.
  3294.  
  3295. 그가 보인 거절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3296.  
  3297.  
  3298. ◇ ◇ ◇
  3299.  
  3300.  
  3301. 이즈 고원 공격을 실패한 뒤로 에드워드 클러크는 베조브라조프에게
  3302. 종종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연결되지 않았다.
  3303.  
  3304. 『역시 베조브라조프 박사와 연락이 되질 않나요.』
  3305. "네, 서(Sir.) 윌리엄."
  3306.  
  3307. 클러크가 지금 대화하는 상대는 영국의 마크로드다.
  3308. 클러크가 있는 로스앤젤레스는 한밤중, 마크로드가 있는 런던은
  3309. 이른 아침이었지만, 베조브라조프가 지금 극동에 있는지 아닌지 모르기에
  3310. 클러크도 시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았다.
  3311.  
  3312. "유감스럽게도 베조브라조프 박사는 이쪽의 접촉을 거부할 생각인
  3313. 모양입니다."
  3314. 『어쩔 수 없군요……. 박사는 우리와 적대하는 공산권의 인간이다.
  3315. 그와 우리는 동상이몽.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겠다고 한
  3316. 베조브라조프 박사를 컨트롤하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던 거겠죠.』
  3317. "그럼 역시 베조브라조프는 재공격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말인지?"
  3318.  
  3319. 클러크의 호칭이 '베조브라조프 박사'에서 '베조브라조프'로 변했다.
  3320.  
  3321. 『그렇겠죠. 계속해서 실력 행사로 질량 에너지 변환 마법을
  3322. 없앨 생각인 거겠죠.』
  3323.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걸……"
  3324.  
  3325. 클러크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난폭하게 휘저었다.
  3326.  
  3327. "서 윌리엄……. 성공 가능성은 있는 겁니까?"
  3328.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반 정도겠죠.
  3329. 저번엔 좋게 몰아넣은 모양입니다만, 시바 타츠야의 실력이
  3330.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3331. "시바 타츠야의 마법력에 따라 다르다고? ……확실히 그렇겠군요."
  3332.  
  3333. 마크로드의 추측은 매우 염려되는 내용이었지만, 클러크는
  3334. 이에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3335.  
  3336. 『클러크 박사. 당신의 '흘리드스캴프'로도 시바 타츠야의 실력을
  3337. 알 수 없는 겁니까?』
  3338. "……유감스럽게도. 『언터쳐블』이라는 이명은 장식이 아니었던
  3339. 모양입니다."
  3340.  
  3341. '언터쳐블'은 요츠바가의 이명. 타츠야가 겉무대에 등장하기 전부터,
  3342. 그와는 관계없이 클러크는 요츠바를 언젠가 없애야만 하는 상대로
  3343. 지정했다. 마야에게 흘리드스캴프의 단말을 건넨 건, 사실 클러크가
  3344. 요츠바가의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3345.  
  3346. 하지만 요츠바가의 당주는 클러크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3347. 요츠바 마야의 사용 이력을 봐도 시바 타츠야의 능력이나
  3348. 다른 분가 마법사의 능력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거의 포착하지 못했다.
  3349.  
  3350. 『그런가요…….』
  3351.  
  3352. 실망한 것처럼 마크로드가 탄식했다.
  3353.  
  3354. 마크로드에게 모멸할 의도는 없었지만 클러크의 자존심은
  3355. 크게 상처를 입었다.
  3356.  
  3357. 『이렇게 된 이상 베조브라조프 박사의 재공격이 성공하도록
  3358. 빌 수밖에 없겠군요……. 클러크 박사, 밤늦게 실례가 많았습니다.』
  3359. "아뇨, 호출은 이쪽이 했으니까요. 이른 아침부터 실례했습니다."
  3360. 『저는 평소에도 일어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박사, 좋은 밤 보내시길.』
  3361. "네, 서 윌리엄. 좋은 하루되시길."
  3362.  
  3363. 마크로드와 연결된 전화를 끊었다.
  3364.  
  3365. 마크로드는 마지막에 형식적으로 '좋은 밤'이라고 표현했다.
  3366.  
  3367. 하지만 클러크는 도저히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3368.  
  3369.  
  3370.  
  3371. [5]
  3372.  
  3373.  
  3374.  
  3375. 수, 목, 금요일에 국내에도 해외에도 특별히 커다란 움직임은 없었다.
  3376.  
  3377. 타츠야와 에드워드 클러크의 싸움은 소강상태로 이행한 것처럼 보였다.
  3378.  
  3379. 하지만 그 뒤에서 레.이.몬.드. 클러크의 음모가 착실하게 진행 중이었다.
  3380.  
  3381.  
  3382.  
  3383. 6월 15일 토요일, 북아메리카대륙합중국 텍사스주 댈러스 교외.
  3384.  
  3385. 여기엔 총 길이 30킬로미터에 이르는 장대한 선형 가속기를 갖춘
  3386. 국립 가속기 연구소가 있다.
  3387.  
  3388. 그 가속기 주변에선 아침부터 비밀 실험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3389.  
  3390. 실시되는 내용은 잉여차원 이론을 기반으로 삼은 마이크로 블랙홀 생성ㆍ
  3391. 증발 실험. 2095년 12월에 같은 실험을 한 적이 있지만,
  3392. 그 때의 목적은 질량 에너지 변환 마법의 단서를 얻는 것이었다.
  3393.  
  3394. 하지만 이번 실험의 목적은 마이크로 블랙홀 증발로 인해 생기는
  3395. 에너지의 관측이 아니었다. 마이크로 블랙홀의 생성 자체를
  3396. 성공할 필요는 없다. 오늘의 비밀 실험은 그 연구소에 잠입했다고 추정되는
  3397. 공작원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3398.  
  3399. 하지만 과학자들에겐 간신히 재실험 허가가 내려온 귀중한 기회였다.
  3400. 그들은 이 찬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짧은 준비 기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401. 의욕에 넘쳐 있었다.
  3402.  
  3403. 공작원에 대처하는 건 정보부원도 카운터 테러 부대도 아니다.
  3404. 참모본부에 직속한 마법사 부대, 스타즈다.
  3405.  
  3406. 공작원이 정말로 있다면 높은 마법 기능을 갖고 있을 터이다.
  3407. 이것도 스타즈가 출동한 이유지만, 그래도 다른 부대가 오지 않은 건
  3408. 애초에 이 작전이 스타즈에서 개진했다는 경위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3409.  
  3410. "잭, 이상은 없나?"
  3411. 『이상 없습니다, 대장. 현시점까지 공작원 같은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3412.  
  3413. 연구소 내부를 전부 모니터할 수 있는 경비 센터에는 스타즈 제3부대 대장인
  3414. 알렉산더 아르크투루스 대위가 있다. 그가 통신한 상대는
  3415. 제3부대의 일등성급 대원 제이콥 레굴루스 중위. 레굴루스는
  3416. 가속기 관제실에서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일 공작원을 찾기 위해
  3417. 눈알을 굴리는 중이었다.
  3418.  
  3419. "그런가. 감시를 속행해라."
  3420. 『알겠습니다.』
  3421. "대장."
  3422.  
  3423. 통신기에서 입을 뗀 아르크투루스에게 성좌급 대원이 말을 걸었다.
  3424. ─참고로 스타즈의 서열은 일등성급, 이등성급, 성좌급, 행성급,
  3425. 항성급 순서이다. 이 서열은 계급과 별개이지만, 작전 행동할 땐
  3426. 하사관인 성좌급이 준사관인 행성급의 지휘 아래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3427.  
  3428. "뭐지."
  3429.  
  3430. 아르크투루스는 부하의 말에 한 마디로 대답하고 시선으로
  3431. 뒷말을 재촉했다.
  3432.  
  3433. "포말하우트 중위의 건에 일본이 관여했다는 건, 근거가 있는
  3434. 정보인 건가요? 솔직히 일본 공작원이 그렇게까지 유능하다고는
  3435.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3436.  
  3437. 작전 실시 중인 단계에서 그런 너무나도 새삼스러운 의문이 튀어나온 건,
  3438. 공작원의 낌새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좌급 대원들이
  3439. 이 국립 가속기 연구소를 감시하는 건, 오늘이 전부가 아니다.
  3440. 재실험이 결정된 다음날, 이번 주 일요일까지 계속 감시한다.
  3441. 그런데 실험 직전임에도 적의 그림자도 형태로 보이지 않는다면,
  3442. 다소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도 어쩔 수 없겠지.
  3443.  
  3444. "일본군은 작년에 패러사이트를 사용한 자율인형병기 개발에
  3445. 성공했다."
  3446.  
  3447. 아르크투루스는 사기 저하를 막기 위해 기밀성 낮은 정보를
  3448. 부하에 공개했다.
  3449.  
  3450. "패러사이트를 이용한 자율병기 말입니까?"
  3451. "사전 준비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다.
  3452. 직접적인 근거는 없지만, 포말하우트 중위의 사건에
  3453. 일본군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3454.  
  3455. 이 추리엔 오인이 있었다. 패러사이트를 사용한 자율병기─
  3456. 패러사이돌은 애초에 식신술을 응용해서 움직인다는 구상이었다.
  3457.  
  3458. 하지만 식신이나 인조정령으로는 기체를 움직일 수는 있어도
  3459. 기대한 마법 기능이 발휘되지 않아, 전자두뇌로 제어되는 기체보다
  3460. 우위를 획득하지 못했다. 그 이유로 패러사이트를 얻을 때까지
  3461. 실용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3462.  
  3463. 즉 올바르게 말하자면 성공 직전까지 이른 병기에 패러사이트를
  3464. 이용한 것이며, 패러사이돌은 처음부터 패러사이트 이용을 상정하고
  3465. 개발된 물건이 아니었다.
  3466.  
  3467. 이것만이 아니라 레굴루스에게 제공하였고 아르크투루스와
  3468. 워커 기지사령에게 전달된 '근거'는 전부 표면적인 사실에
  3469. 왜곡된 '정보'가 가미된 것이었다. 그리고 마이크로 블랙홀 실험을
  3470. 다시 실시하도록 '일본 공작원의 관여'를 믿게 만든 것이다.
  3471.  
  3472. "그런 일이 있었다니…… 실례했습니다!'
  3473.  
  3474. 이 성좌급 대원도 왜곡된 근거를 의심하지 않았다.
  3475.  
  3476.  
  3477.  
  3478. 그런데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수상쩍은 사람은 이미 연구소에
  3479. 침입한 상태였다.
  3480.  
  3481.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발견되지 않은 게 아니라 수상한 사람이라는
  3482. 인식을 받지 않은 것이었다.
  3483.  
  3484. 그것도 당연하다.
  3485.  
  3486. 침입한 사람은 국가과학국이 발행한 구내 출입 패스를 소지하고 있었다.
  3487.  
  3488. 아버지의 연줄로 과학자 패스가 아니라 임시 직원 패스를 얻어낸
  3489. 레이몬드 클러크는 연구소 사무동 옥상에서 가속기의 위용을
  3490. 바라보고 있었다.
  3491.  
  3492. 있지도 않은 '일본 공작원의 관여'를 날조해서 이번에 실험이
  3493. 실시되도록 추진한 사람은 레이몬드다. 그는 타츠야에 대항할 전력을
  3494. 만.들.어.내.기. 위해, 패러사이트를 다시 불러들이기로 했다.
  3495. 그러기 위해 레굴루스의 복수심을 이용했다.
  3496.  
  3497. 친구인 포말하우트가 무참히 처형된 걸 납득하지 못한 레굴루스의
  3498. 갈 곳을 잃은 분노에게 방향을 주었다. 그것만으로 레굴루스는
  3499. 레이몬드의 기대대로 움직여줬다.
  3500.  
  3501. 마법사로서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레굴루스가, 아르크투루스가
  3502. 자신이 쓴 대본대로 삼류 연극을 연기하고 있다. 자신은
  3503.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스타즈라는 엘리트 집단에 속한 마법사가,
  3504. 자신이 계획한 무대에서 희극을 연기하고 있다. 레이몬드는
  3505. 이를 구경하러 왔다.
  3506.  
  3507. 하지만 이 희극엔 웃을 수 없는 심각한 결말이 준비되어 있다.
  3508. 레이몬드는 이를 확인하러 왔다.
  3509.  
  3510. 흘리드스캴프에 의한 중계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보러.
  3511. 단순한 호기심과 달성감을 충족하기 위해서.
  3512.  
  3513. 진.짜. 직원은 모두 두 번 다시없을 기회라 생각하고
  3514. 마이크로 블랙홀 실험에 매달리고 있다. 아무 짓도 안하고
  3515. 옥상 난간에서 두 팔꿈치를 괸 레이몬드를 보고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3516.  
  3517.  
  3518.  
  3519. 오적 11시. 실험 예정 시각이다.
  3520.  
  3521. 실험 자체에 스타즈는 관여하지 않는다. 가속기 관제실에 있는 레굴루스도
  3522. 참견은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다.
  3523.  
  3524. 애초에 레굴루스는 실험에 참견할 생각이 없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3525. 관심이 없다.
  3526.  
  3527. 그의 마음은 포말하우트를 함정에 빠뜨린 사람을 향한 복수심으로
  3528. 꽉 차 있었다.
  3529.  
  3530. 패러사이트를 불러들이는 실험을 실시하도록 꾀한 공작원만이 아니다.
  3531. 공작원을 붙잡아, 그 뒤에 있는 조직을 밝혀내 철저하게 때려부순다.
  3532. 그는 강하게, 순수하게 이를 염원했다.
  3533.  
  3534. 수상쩍은 짓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레굴루스가 눈에 빛을 켜고
  3535. 둘러보는 와중에, 실험을 지휘하는 과학자가 가속기 시동을 선고했다.
  3536.  
  3537. 막대한 전력을 집어삼키고 선형 가속기가 가동했다.
  3538.  
  3539. 가속기 양끝에 양자빔을 주입해, 정반대 방향으로 충돌 궤도로 가속한다.
  3540.  
  3541. 첫 실험은 순식간에 끝났다. 그걸 원하는 데이터를 얻을 때까지
  3542.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것이지만, 오늘은 첫 실행만 할 뿐,
  3543. 두 번째를 하는 일은 없었다.
  3544.  
  3545. 가속기에 트러블이 있었던 게 아니다.
  3546.  
  3547. 한 번에 실험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3548.  
  3549. 실험 개시 목소리가 들린 직후, 가속기 관제실에 있는 레굴루스의 시야가
  3550. 어두워졌다.
  3551.  
  3552. 레굴루스는 정전이라고 잠시 의심했다.
  3553.  
  3554. 의문을 느낀 건, 한순간뿐이었다.
  3555.  
  3556. 다음 순간 레굴루스는 엄청난 아픔과 압박감을 느꼈다.
  3557.  
  3558. '뭔가'가 '자신'을 침식하고 있다. 속으로 억지로 들어오려고 한다.
  3559.  
  3560. 물리적인 게 아니다. 육체적 침입이 아니라고, 그는 직감적으로
  3561. 이해했다.
  3562.  
  3563. 하지만 훈련을 받은 정신간섭공격과 고통 종류가 전혀 달랐다.
  3564.  
  3565. 만약 레굴루스가 경.험.이 있는 여성이었다면 처녀막이 파열되는
  3566. 고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남성이다.
  3567. 이 고통을 뭐로 비유하면 좋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3568.  
  3569. 레굴루스는 고통보다도 자신의 안에 자신 이외의 무언가가 들어오는
  3570. 기분 나쁨 느낌에서 벗어나려고 '무언가'를 밀어내려고 버둥댔다.
  3571. 정신 간섭계 마법에 적성이 없는 레굴루스는 손발을 다루는 것처럼
  3572. 정신을 움직이는 방법을 몰랐다. 그 대신에 정신 간섭계 마법에
  3573. 대항하기 위한 사이온 조작이나 무계통 마법, 결국엔 자신의 특기 마법인
  3574. 방출계 마법으로 전격을 뒤집어쓰는 것까지 시도했다.
  3575.  
  3576. 하지만 정신 간섭계 마법에 대한 대항 기술이나 무계통 마법은
  3577. 침입자에게 효과가 없었다. 자폭 같은 전격 마법은 발동조차 하지 않았다.
  3578.  
  3579. 침식이 진행된다.
  3580.  
  3581. 침입해온 '무언가'의 자체적인 의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3582.  
  3583. 그저 '무언가'가 자신과 섞인다.
  3584.  
  3585. '침식'은 어느 샌가 '동화'로 변했다.
  3586.  
  3587. 고통이 사라진다.
  3588.  
  3589. 압박감이 옅어진다.
  3590.  
  3591. ─설마 이건 패러사이트!? ──.
  3592.  
  3593. 급격히 공포감이 솟아올랐다.
  3594.  
  3595. 하지만 그건 꺼져가는 양초의 마지막 반짝임과 같았고,
  3596.  
  3597. 급격히 조용해졌다.
  3598.  
  3599. 공포도, 가공의 공작원에게 품은 분노도 의식 저 밑으로 가라앉고,
  3600. 마음이 잔잔해졌다.
  3601.  
  3602. '─나는 제이콥 레굴루스라고 불린다.'
  3603. '─나는/우리는 이 세계의 인간에게 『패러사이트』라고 불린다.'
  3604.  
  3605. 이렇게 레굴루스는 패러사이트가 됐다.
  3606.  
  3607.  
  3608.  
  3609. 경비 센터에 있는 아르크투루스는 실험 직후에 자신의 정신에
  3610. 뭔가가 침입하는 걸 명확하게 인식했다.
  3611.  
  3612. '정령……?'
  3613.  
  3614. 그가 레굴루스처럼 아픔이나 압박감을 느끼지 않은 건,
  3615. 정령 마법 사용자였기 때문이다.
  3616.  
  3617. 아르크투루스는 이동계 마법이 특기인 한편 정령을 소환하는
  3618. 고식마법도 통달했다.
  3619.  
  3620. 자신의 몸에 정령을 소환해서 그 힘을 행사하는 고식마법.
  3621. 현대인의 감각으로 말하자면 마물을 자신에게 빙의시켜
  3622. 그 힘을 이용하는 마법이라는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3623.  
  3624. 아르크투루스는 자신 이외의 '무언가'가 자신에게 깃드는 감각이 익숙했다.
  3625.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가 침입해도 허둥대지 않았다.
  3626. 정신에 침입한 것에 대한 대항 수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3627.  
  3628. 아르크투루스의 오산은 침입자─ 패러사이트가 자아를
  3629.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3630.  
  3631. 자신 이외의 정신적인 실체를 가진 '무언가'.
  3632.  
  3633. 하지만 그것 자체에 의사는 없다.
  3634.  
  3635. 그러니까 자기 자신과 구분할 수 없었다.
  3636.  
  3637. 그건 어떠한 의도도 없이 그저 그의 속에 있었다.
  3638.  
  3639. 마치 물이 다 마른 천에 스며드는 것처럼, 자신의 심지에 파고들었다.
  3640.  
  3641. 자신이 습득한 기술이 이 침입자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3642. 아르크투루스의 마음에 공포가 발생했다.
  3643.  
  3644. 그는 정령을 소환해서 이 '무언가'를 쫓아내려고 했다.
  3645.  
  3646. 하지만 정령은 아르크투루스의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3647.  
  3648. 아르크투루스의 '안'은 이 침입자로 이미 꽉 찼다.
  3649.  
  3650. 자신의 안에 자신 이외의 무언가가 파고든다.
  3651.  
  3652. 자신과 자신 이외의 무언가가 섞인다.
  3653.  
  3654. '침식'은 어느 샌가 '동화'로 변했다.
  3655.  
  3656. 아르크투루스는 자신이 꽉. 찬. 걸. 느꼈다.
  3657.  
  3658. 정령 소환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진정한 일체감.
  3659.  
  3660. ─그것이야 말로 사람과 성.령.의 진정한 합일─.
  3661.  
  3662. 그게 순.수.하게 아르크투루스로서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3663.  
  3664. '─나는 알렉산더 아르크투루스라고 불린다.'
  3665. '─나는/우리는 이 세계의 인간에게 『패러사이트』라고 불린다.'
  3666.  
  3667. 이렇게 아르크투루스는 패러사이트가 됐다.
  3668.  
  3669.  
  3670.  
  3671. "아파, 아파, 아파."
  3672.  
  3673. 사무동 옥상에서 레이몬드는 몸부림치고 있었다.
  3674.  
  3675. "아파아파아파아파."
  3676.  
  3677. 그의 입은 오로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3678.  
  3679. 정신에 자신 이외의 '무언가'가 침입하는 격통.
  3680.  
  3681. 정신 간섭계 마법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한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3682. 레이몬드에겐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3683.  
  3684. 고통에 잠식된 그는 '무언가'가 닥쳐오는 압박감을 인식하지 못했다.
  3685.  
  3686. 그러면서 단단한 레이몬드의 자아는 정신을 침입하는 자신 이외의 존재를
  3687. 강하게 거부했다.
  3688.  
  3689. 저항이 격하니까 고통도 격하다.
  3690.  
  3691. 스스로 저항한다는 걸 모르니까 이를 막을 수도 없다.
  3692.  
  3693.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3694.  
  3695. 끊기지 않는 고통에 정신이 무너진다.
  3696.  
  3697. 그게 자아의 저항을 약하게 한 건, 과연 레이몬드에게 행복이었을까.
  3698.  
  3699. 자아의 저항력이 저하되고, 침식이 가속된다.
  3700.  
  3701. 레이몬드는 몸부림 칠 힘도 잃고, '아파'라는 말을 내뱉지도 못하고
  3702. 옥상 끝에 축 늘어져 누워 있었다.
  3703.  
  3704. 마치 시체 같은 레이몬드의 안에서, 그의 사고도 이미 시.체.처.럼.
  3705.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
  3706.  
  3707. 급속도로 침식이 진행된다.
  3708.  
  3709. 급속도로 동화가 진행된다.
  3710.  
  3711. 그를 침식하는 '무언가'는 무저항이었기에 있는 그대로
  3712. 레이몬드의 의식을 집어삼켰다.
  3713.  
  3714. 레이몬드의 사고가 '무언가'를 그의 색깔로 덧칠했다.
  3715.  
  3716.  
  3717. 레이몬드는 자신에게 주역이 될 힘이 없다고 포기하고 있었다.
  3718.  
  3719. 하지만 사실 주역이 되고 싶었다.
  3720.  
  3721. 레이몬드는 영웅이야기처럼 로망이 넘치는 활약을 하고 싶었다.
  3722.  
  3723. 마법으로 우주를 정복한다. 그건 무척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3724.  
  3725. 레이몬드는 그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시바 타츠야가 방해됐다.
  3726.  
  3727. 시바 타츠야를 굴복시키기 위해 그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했다.
  3728.  
  3729. 스타즈 최강의 마법사 '시리우스'의 힘으로도 이길 수 없었다.
  3730.  
  3731. 그러니까 패러사이트의 힘을 원했다.
  3732.  
  3733. 스타즈의 마법사에게 패러사이트를 빙의시키면 시바 타츠야를
  3734. 굴복시킬 수 있을 게 분명하다. ─레이몬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3735.  
  3736. 그러기 위해 이 무대를 준비했다.
  3737.  
  3738. 패러사이트의 힘으로 시바 타츠야를 쓰러뜨리기 위해─.
  3739.  
  3740.  
  3741. '─그게 레이몬드의/우리의 소망.'
  3742. '─시바 타츠야를 쓰러뜨리길, 레이몬드는/우리는 원한다.'
  3743. '─나는 레이몬드 클러크라고 불린다.'
  3744. '─나는/우리는 이 세계의 인간에게 『패러사이트』라고 불린다.'
  3745. '─레이몬드는/우리는 시바 타츠야를 굴복시킨다.'
  3746.  
  3747. 이렇게 레이몬드 속에서 일그러진 소망이 맹세가 됐다.
  3748.  
  3749.  
  3750.  
  3751. 패러사이트는 다시 이 세계의 초대를 받았다.
  3752.  
  3753. 패러사이트가 동화한 건, 레굴루스, 아르크투루스, 레이몬드
  3754. 세 사람만이 아니었다. 건물 밖에 대기한 스타즈 제6부대
  3755. 『오리온 팀』 세 사람도 패러사이트와 동화됐다.
  3756.  
  3757. 레이몬드를 제외한 다섯 명은 실험 종료 뒤, 인.간.들이
  3758. 이를 깨닫는 일도 없이 뉴멕시코의 스타즈 본부 기지로 귀환했다.
  3759.  
  3760. 레이몬드는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으로 캘리포니아의 자택으로
  3761. 돌아갔다.
  3762.  
  3763.  
  3764. ◇ ◇ ◇
  3765.  
  3766.  
  3767. 6월 16일, 일요일.
  3768.  
  3769. 쿠도 미노루는 다시 패러사이돌을 수납하는 창고로 찾아갔다.
  3770.  
  3771. 지금은 아직 해가 뜨기 전, 밖은 암흑과 정적으로 덮여 있다.
  3772. 그가 여기에 온 걸, 가족 중 그 누구도 모르겠지. 아버지도 형도
  3773. 사용인도 미노루는 방에서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거다.
  3774.  
  3775. 저번에 학교를 빼먹고 미나미에게 병문안을 가기 위해
  3776. 무박으로 도쿄를 왕복한 미노루를 가족 중 그 누구도 질책하지 않았다.
  3777. 할아버지 쿠도 레츠만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미노루에게 사정을 물었지만,
  3778. 이유를 설명하자 '그런가'라고 한 마디로 납득했다.
  3779.  
  3780. 할아버지는 둘째 치고 아버지와 형은 단념한 거다.
  3781.  
  3782. 미노루는 그들의 반응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3783.  
  3784. 그리고 생각대로 다음날부터 미노루를 대하는 태도는
  3785. 지금까지 이상으로 방임주의가 됐다. 어쩌면 그들은
  3786. 결국 미노루가 자포자기한 거라고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
  3787. 언제 갑자기 죽을지도 모르니까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자는 걸지도
  3788. 모른다.
  3789.  
  3790. 미노루에겐 고마운 착각이었다. 지금 그는 가족이나 사용인을
  3791. 상대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3792.  
  3793. 미나미를 치료하고 싶다.
  3794.  
  3795. 미노루의 마음은 이걸로 가득 차 있었다.
  3796.  
  3797.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건지, 미노루는
  3798.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3799.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다. 어쩌면 고작 삼 일만에 사랑에 빠지는,
  3800. 한눈에 반했다는 경.박.한. 마음이 원동력이 아니라는 고집이
  3801. 있는 걸지도 모른다.
  3802.  
  3803. 저번과 달리 해제 마법을 써서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 마법은
  3804. 슈 코우킨의 지식 속에서 찾아낸 『전자금잠』의 응용마법이다.
  3805. 첸샹센이 마법협회 관동지부에 침입할 때 사용한 마법이지만
  3806. 첸의 술식보다 세련된 것이라 경보가 울리는 일은 전혀 없었다.
  3807.  
  3808. 서늘하고 건조한 공기가 미노루의 몸을 감싼다.
  3809.  
  3810. 저번과 똑같이 거기에 프시온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3811.  
  3812. "역시 이것밖에 없나……."
  3813.  
  3814. 미노루의 입에서 혼잣말이 흘러나온다.
  3815.  
  3816. 그의 속에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3817.  
  3818. 이 말은 질문이 아니라 결의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다.
  3819.  
  3820. 미노루는 창고 가장 안쪽에 놓인 '상자'로 다가갔다.
  3821.  
  3822. 그 안엔 동아시아계 남성의 시체가 언 상태로 안치되어 있다.
  3823.  
  3824. 이건 작년 겨울, 제1고교의 연습림에서 타츠야와 미키히코에 의해 봉인된
  3825. 패러사이트 중 하나. 시체와 반시체 중 시체 쪽이었다. 시체의 피부엔
  3826. 패러사이트를 가둬두기 위한 문자와 문양이 새겨져 있다.
  3827.  
  3828. 이 시체는 패러사이돌에 사용한 패러사이트의 공급원이다.
  3829.  
  3830. 패러사이트가 부분적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봉인을 느슨하게 하면,
  3831. 시체에 갇혀 있었던 패러사이트는 자신의 카피를 내보내
  3832. 새로운 개체를 만들려고 한다.
  3833.  
  3834. 그 카피를 가이노이드에 가두고 시체는 다시 봉인한다.
  3835.  
  3836. 그렇게 구제9연, 현재의 『제9종 마법개발연구소』의 연구자는
  3837. 패러사이돌을 제조했다.
  3838.  
  3839. 이 봉인 술식은 패러사이돌의 생산이 동결된 지금도 12시간마다
  3840. 쿠도가 휘하의 마법사가 계속 갱신하고 있다.
  3841.  
  3842. 갱신 시간은 오전과 오후 각각 6시.
  3843.  
  3844. 현재 시간은 오전 4시.
  3845.  
  3846. 슬슬 술식 효력이 약해졌을 즈음이다.
  3847.  
  3848. 미노루가 관 측면에 있는 스위치를 누른다.
  3849.  
  3850. 관 뚜껑이 자동적으로 열린다.
  3851.  
  3852. 시체는 소복을 입고 있었다. 이건 미노루에게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3853. 지저분한 남자의 전라 따위 시체라 해도 보고 싶지 않다.
  3854.  
  3855. 미노루는 오른손을 얼어붙은 시체의 가슴에 댔다.
  3856.  
  3857. 딱딱한 감촉만 있을 뿐, 당연히 고동은 느껴지지 않는다.
  3858.  
  3859. 미노루는 손바닥에서 얼어붙은 시체로 사이온을 보냈다.
  3860.  
  3861. 몇 초 타임래그를 두고 프시온 파동이 생긴다.
  3862.  
  3863. 시체 안에서 휴면 상태였던 패러사이트가 눈을 떴다.
  3864.  
  3865. 미노루는 꿀꺽 숨을 들이마셨다.
  3866.  
  3867. 어금니를 꽉 물고 입술을 꽉 다물며 숨을 멈춘다.
  3868.  
  3869. 한순간의 망설임을 뛰어넘어,
  3870.  
  3871. 미노루는 시체에 걸린 봉인 술식을 해제했다.
  3872.  
  3873.  
  3874. 다음 순간,
  3875.  
  3876. 시체 안에서,
  3877.  
  3878. 빛으로 된 슬라임이 튀어나왔다.
  3879.  
  3880.  
  3881. 미노루가 본 광경은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흐리멍덩하게 빛나는
  3882. 비실체 부정형(不定形) 생물. 그건 크기로 봐도 '아메바'보다 '슬라임'이라고
  3883. 표현하는 쪽이 더 그럴듯했다.
  3884.  
  3885. '슬라임'이 미노루에게 닥쳐온다.
  3886.  
  3887. 미노루는 이를 피하지 않았다.
  3888.  
  3889. 오히려 '슬라임'─ 패러사이트를 환영하는 것처럼 양손을 펼쳤다.
  3890.  
  3891. 미노루가 입고 있는 서머 스웨터, 그 가슴 중앙에 기하학적인
  3892. 문양과 문자가 떠오른다.
  3893.  
  3894. 미노루가 스스로 스웨터에 장치한 마법진이다.
  3895.  
  3896. 패러사이트는 그 마법진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뛰어들었다.
  3897.  
  3898. 미노루의 입에서 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3899.  
  3900. 그는 정신을 괴롭히는 이물감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창고 바닥에 앉았다.
  3901.  
  3902.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로 올린다.
  3903. 반가부좌라고 하는 앉는 방법이다.
  3904.  
  3905. 고통을 억누르고 그 자세를 유지하고, 미노루는 냉각 마법을 발동했다.
  3906.  
  3907. 체온을 내려 가사 상태로 만드는 마법.
  3908.  
  3909. 발동 대상은 자기 자신.
  3910.  
  3911. 미노루는 육체를 거의 가사 상태로 만들면서 의식을 내부로 돌렸다.
  3912.  
  3913. 가사 상태는 패러사이트에 대한 생물적인 거부 반응을 억누르기 위해.
  3914.  
  3915. 의식은 주도권을 놓지 않도록.
  3916.  
  3917. 미노루는 스스로 패러사이트의 침식을 받으면서 패러사이트를
  3918. 지배하려고 했다.
  3919.  
  3920. 그는 자신의 의지를 단 한 조각도 패러사이트에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3921.  
  3922. 그는 자기 자신을 유지한 상태로 패러사이트의 힘만을 얻을 생각이었다.
  3923.  
  3924. '자아를 갖지 못한 생.물.체.에게 지진 않아!'
  3925.  
  3926. 패러사이트를 없애버리지 않도록 세심히 주의하면서 패러사이트를
  3927. 예속시키는 술식을 몸속에서 행사한다.
  3928.  
  3929. '나는 이 마음을 잃을 순 없어.'
  3930.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리면 인간으로 있는 걸 포기하는 의미가 없어!'
  3931.  
  3932. 패러사이트를 상대로 스스로 핸디캡을 둔 싸움을 계속 하면서
  3933. 미노루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3934.  
  3935. '나 자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주제에 그녀를 그녀로 유지시켜 줄 수
  3936. 있을 리가 없잖아!'
  3937.  
  3938. 그가 패러사이트가 되겠다고 결심한 건 미나미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다.
  3939.  
  3940. 허약한 육체에서 벗어난다. 그것뿐이라면 미노루는 인간이기를
  3941. 포기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3942.  
  3943. 그는 슈 코우킨의 지식이 주는 유혹에 굴복한 것이 아니다.
  3944.  
  3945. 패러사이트가 되어서도 자신의 마음을, 자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3946. 스스로 확인한다.
  3947.  
  3948. 사람의 육체는 패러사이트와 싸워 패배한다 해도 사람의 마음은
  3949. 패러사이트를 정복할 수 있다고 확인된다면, 미나미를 치료하기 위해
  3950. 처음으로 이 방법을 쓴다.
  3951.  
  3952. 이건 자기 자신을 실험체로 삼은 일종의 자기희생이다.
  3953.  
  3954. 혹은,
  3955.  
  3956. 자신의 육체를 제물로 바쳐 마(魔)의 힘을 얻는 의식이다.
  3957.  
  3958. 자신의 인생에 대한 포기를 품고 있었기에 가능한 결단일지도 모른다.
  3959.  
  3960. 하지만 미노루에겐 승산이 있었다. 아니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3961. 의지가 있었다.
  3962.  
  3963. 그는 달리 방법을 찾지 못했다.
  3964.  
  3965. 슈 코우킨의 지식을 얻어버린 탓에 오히려 다른 방법이 없다고
  3966. 알아버렸다.
  3967.  
  3968. 다른 방법이 없다면 이 술식을 성공시킬 수밖에 없다.
  3969.  
  3970. 실패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3971.  
  3972. 이 강한 마음이 현재 미노루의 최대의 무기였다.
  3973.  
  3974. 정신 생명체를 쓰러뜨리는 거라면 기술이 결정타가 되는 경우도 있다.
  3975. 예를 들면 패러사이트 융합체를 없앤 미유키의 『코큐토스』처럼.
  3976.  
  3977. 하지만 정신 생명체를 거.느.리.고. 싶.다.면.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3978.  
  3979. 상대는 슈 코우킨 같은 망령─ 생명을 잃은 잔해가 아니다.
  3980.  
  3981. 물질적인 형태야 없지만 스스로 포식하고 증식하는 생명체이다.
  3982.  
  3983. 이를 자신의 일부로 잡아먹고 길들이기 위해선, 상대에게 먹히지 않는
  3984. 강한 마음이 필요하다.
  3985.  
  3986. 맹목적인 일념이 미노루를 이 어리석은 행위로 몰아넣었다.
  3987.  
  3988. 하지만 그 강한 마음이 무모해 보이는 이 내기에 승리를 주려고 했다.
  3989.  
  3990.  
  3991. ─나를 따르고, 내 일부가 되라!
  3992.  
  3993.  
  3994. 미노루의 포효와 동시에 패러사이트의 동화가 끝났다.
  3995.  
  3996. '─나는, 쿠도 미노루.'
  3997. '─나와 연결되고자 하는 목소리가 들려와.'
  3998. '─하나가 되라고 속삭여.'
  3999. '─하지만.'
  4000. '─나는, 나야.'
  4001. '─'우리'가 아니야.'
  4002.  
  4003. 패러사이트와 동화 되도 미노루는 계속 '쿠도 미노루'였다.
  4004.  
  4005. 그는 육체에 건 냉각 마법을 해제하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4006.  
  4007. 동상이 시간이 지나면서 아문다.
  4008.  
  4009. 이 치유 재생 능력은 패러사이트가 되어 받은 은혜겠지.
  4010.  
  4011. 이마 안쪽에 지금까지 없었던 기관이 형성된 걸 어렴풋이 알아차린다.
  4012.  
  4013. 하지만 그건 현.재. 미노루의 의식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았다.
  4014.  
  4015. 웃음이 치밀어 오르려고 한다.
  4016.  
  4017. 미노루는 창고 바닥에 드러누운 채, 즐거운 것처럼 드높이 웃었다.
  4018.  
  4019.  
  4020.  
  4021. [6]
  4022.  
  4023.  
  4024.  
  4025. 6월 16일, 일요일 저녁.
  4026.  
  4027. 병문안을 온 미유키가 슬슬 돌아가려고 했을 때 미나미의 병실에
  4028. 새로운 방문객이 왔다.
  4029.  
  4030. "네, 누구십니까?"
  4031.  
  4032. 노크 소리에 미유키가 대답하고, 황송해하는 미나미를 손으로 제지하고
  4033. 의자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4034.  
  4035. "쿠도 미노루입니다."
  4036. "미노루 군?"
  4037.  
  4038. 미유키가 도중에 멈춰 서서 미나미 쪽을 돌아본다.
  4039.  
  4040. 미나미는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4041.  
  4042. 미유키의 입술에 저도 모르게 웃음꽃이 피었다.
  4043.  
  4044. "네, 지금 열게요."
  4045.  
  4046. 미유키가 병실 문을 연다.
  4047.  
  4048. 미유키와 미노루가 손이 닿을 거리에서 서로 마주본다.
  4049.  
  4050. 이 광경을 본 사람이 없었던 건 다행인지 불행인지.
  4051.  
  4052. 천상의 미를 가진 소녀와
  4053.  
  4054. 인외의 미를 두른 소년.
  4055.  
  4056. 어떤 화가는 이 순간을 캠버스에 그려내기 위해서라면
  4057. 혼을 대가로 지불한다는 양피지에 사인했을지도 모른다.
  4058.  
  4059. 어떤 시인은 이 광경을 칭송하는 말을 찾아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절망해
  4060. 죽었을지도 모른다.
  4061.  
  4062. "미노루 군, 어서와. 미나미 짱 병문안을 와준 거야?"
  4063. "네. 저기, 들어가도 될까요?"
  4064.  
  4065. 하지만 당사자에겐 단순한 일상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
  4066.  
  4067. "들어와요."
  4068.  
  4069. 미유키는 미노루를 안내하는 게 아니라 그를 위해 길을 터줬다.
  4070.  
  4071. 미노루는 밝은 분홍색 장미와 같은 색 거베라, 주황색 카네이션을 모은
  4072. 꽃꽂이를 들고 있었다. 이건 직접 전하는 쪽이 좋다고 보고,
  4073. 미유키가 배려해준 것이다.
  4074.  
  4075. 예상대로 꽃꽂이를 건넨 미노루는 뺨을 살짝 붉게 물들이고
  4076. 미묘하게 미나미에게서 시선을 돌렸고, 받아든 미나미는
  4077. 눈가를 붉게 물들이고 부끄럽다는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4078.  
  4079. 이대로 계속 보고 싶다는 유혹에 휩싸인 미유키였지만,
  4080.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짓궂다고 다시 생각했다.
  4081.  
  4082. "미노루 군, 고마워. 미나미 짱, 어디에 장식할까?"
  4083.  
  4084. 미노루와 미나미가 동시에 움찔 몸을 떨었다.
  4085.  
  4086. 미유키는 미소를 유지하는 게 조금 힘들었다.
  4087.  
  4088. "저, 저기, 그럼, 저기에……."
  4089.  
  4090. 미유키는 미소를 지으며 미나미에게서 꽃꽂이를 넘겨받아
  4091. 그녀가 지정한 이동식 서랍 위에 놓았다.
  4092.  
  4093. "저, 저기, 타츠야 씨는 어디에……."
  4094.  
  4095. 근질거리는 공기를 견디지 못한 미노루가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4096.  
  4097. "어라. 미노루 군, 타츠야 님에게도 용건이 있었던 거니?"
  4098.  
  4099. 미유키가 바로 대답한 건, 미노루가 불쌍해 보여서 그런 걸까
  4100. 그게 아니면 타츠야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인 걸까.
  4101.  
  4102. 아마도 둘 다 해당되겠지.
  4103.  
  4104. "방금 전에 의사 선생님에게 갔으니까 지금도 거기에 있을 텐데.
  4105. 급한 거야?"
  4106. "아뇨, 급한 건 아닙니다만 조금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서."
  4107. "내게 상담할 게 있다고?"
  4108.  
  4109. 그 목소리는 열려 있는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4110.  
  4111. "타츠야 님! 의사 선생님과 얘기는 다 한 겁니까?"
  4112. "그래. 물어보고 싶었던 건 일단 들었다."
  4113.  
  4114. 미유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병실로 들어와 타츠야는 문을 닫았다.
  4115. ─참고로 미유키가 문을 닫지 않은 건, 닫는 걸 잊은 게 아니라
  4116. 여자가 둘이라 해도 남자가 들어온 방의 문을 닫는 건
  4117.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118.  
  4119. "그래서 미노루."
  4120.  
  4121. 그렇게 말하며 미노루와 마주 본 타츠야는 말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렸다.
  4122. 의식하고 한 행동은 아닌 듯, 그는 곧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서,
  4123.  
  4124. "내게 상담하고 싶다는 건 뭐지?"
  4125.  
  4126. 중단한 말을 계속했다.
  4127.  
  4128. 대화를 넘겨받은 미노루지만, 곧장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열 수 없었다.
  4129.  
  4130. "……미나미 씨의 몸에 대한 겁니다."
  4131.  
  4132. 이윽고 괴롭게 그런 말을 쥐어짜냈다.
  4133.  
  4134. "알겠다. 장소를 바꾸도록 하지."
  4135. "기다려주세요!"
  4136.  
  4137. 미노루의 심상찮은 모습을 보고 배려한 타츠야였지만, 다름 아닌
  4138. 미나미 본인이 그 판단에 이의를 제기했다.
  4139.  
  4140. "타츠야 님, 미노루 님. 제 몸에 대한 거라면 저도 듣고 싶습니다."
  4141. "하지만……."
  4142.  
  4143. 미나미의 청원에 미노루가 난색을 보였다.
  4144.  
  4145. "부탁합니다! 저는 사실을 알고 싶습니다."
  4146. "……알겠어, 미나미 씨."
  4147.  
  4148. 하지만 결국 그는 미나미의 소원에 고개를 끄덕였다.
  4149.  
  4150. "저는 자리를 비우는 게 좋을까요?"
  4151. "아뇨."
  4152.  
  4153. 미유키가 물어본 상대는 타츠야였지만 미노루와 미나미가
  4154.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4155.  
  4156. 미노루와 미나미가 눈짓으로 뒷말을 서로 양보한다.
  4157.  
  4158. "……미유키 씨도 듣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4159.  
  4160. 미노루의 대답에 미나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4161.  
  4162. 그렇게 문답하는 와중에 타츠야는 방구석에서 미노루와 자신 몫의 스툴을
  4163. 가져왔다.
  4164.  
  4165. "우선 앉아."
  4166.  
  4167. 미노루는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타츠야가 가져온 스툴에 앉았다.
  4168.  
  4169. 미유키가 미노루가 오기 전까지 앉아 있었던 머리맡의 스툴로 돌아가고,
  4170. 타츠야는 그 옆에 앉고, 미노루는 침대 아래쪽에 앉았다.
  4171.  
  4172. 타츠야, 미유키, 미나미와 마주보게 된 미노루는 아직 망설임을
  4173. 버리지 못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4174.  
  4175.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미나미 씨의
  4176. 『부상』이 완치되는 일은 없습니다."
  4177.  
  4178. 표현이 완곡하지 않은 건, 미노루에게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4179.  
  4180. 그의 말에 가장 쇼크를 받은 건, 미유키였다. 그녀는
  4181. 양손으로 입을 막고 눈을 크게 뜬 채로 경직해버렸다.
  4182.  
  4183. 미나미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쇼크를 받은 척을 하지 않고
  4184. 미노루의 말을 받아들였다.
  4185.  
  4186. 그리고 타츠야는,
  4187.  
  4188. "─타츠야 씨도 알고 있었군요."
  4189.  
  4190. 그저 냉정한 눈동자로 미노루를 바라보고 있다.
  4191.  
  4192. "아니. 모르고 있었고,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에 동의도 하지 않아.
  4193. 아무래도 미노루가 생각하는 『완치』와 내가 생각하는 『완치』는
  4194. 의미가 다른 것 같군. 미노루가 말하고 싶은 건, 미나미의 마법연산영역이
  4195.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오는 일이 없다는 것 아닌가?"
  4196. "타츠야 씨는 증상이 악화되지 않으면 완치라고 생각하는군요."
  4197. "그것도 아니야. 하지만 자잘한 정의 차이를 두고 싸워봤자 의미가 없다.
  4198. 미노루가 정말로 꺼내고 싶은 문제는 뭐지?"
  4199. "……조정체의 육체는 생물로서 안정성이 부족합니다."
  4200. "돌연사 문제인가."
  4201. "네, 그렇습니다. 의학적으로 어떠한 이상도 없을 텐데,
  4202. 예상치 못한 바람에 양촛불이 꺼지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4203.  
  4204. 타츠야의 시선 끝에서 미노루의 눈동자가 어두워진다.
  4205.  
  4206. "─나도 미나미 씨도 짊어지고 있는 숙명입니다."
  4207. "어째서……."
  4208.  
  4209. 어째서 미나미가 조정체라는 걸 알고 있는 거지.
  4210.  
  4211. 그렇게 중얼거리려고 한 건 미유키였다.
  4212.  
  4213. 미나미는 가만히 미노루를 응시할 뿐이었다.
  4214.  
  4215. "마법연산영역의 부상으로 인해 돌연사 위험성이 높아졌다.
  4216. 미노루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4217. "네. 타츠야 씨도 알고 있었군요."
  4218. "조정체의 돌연사에 대해선 전부터 조사했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4219. 그걸로 인해 죽어버렸으니까 말이지."
  4220. "그랬군요……."
  4221.  
  4222. 미노루는 여기서 조문의 말을 건넬지 망설였지만, 사정을 모르는 자신이
  4223. 무슨 말을 해봤자 진심이 담기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 뒀다.
  4224.  
  4225. "마법연산영역의 과열이 육체에 부속된 정보체를 뒤흔들고,
  4226. 결국 부서져버린다. 정보체의 파손은 실체에 피드백 된다.
  4227. 보통 마법연산영역의 활동은 자기 자신을 부서뜨리지 않을 범위로
  4228. 억제되어 있지만, 조정체는 이 안전장치가 잘 기능하지 않는다.
  4229. ─이게 내가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가설이다."
  4230. "저도 그 가설이 맞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법연산영역의 오버 히트는
  4231. 항상 그 세이프티 파손을 동반한다고 생각합니다."
  4232. "세이프티 파손이 오버 히트를 불러일으킨다고?"
  4233. "세이프티가 파손된 결과 오버 히트가 발생하는 건지, 오버 히트가
  4234. 세이프티를 파손하는 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4235.  
  4236. 말과 달리 미노루의 얼굴에 자신감 결여에 따른 믿음직스럽지 못한 표정은
  4237. 없었다.
  4238.  
  4239. "하지만 인과 관계는 이 경우 관계없습니다."
  4240.  
  4241. 미노루는 타츠야를 외면하지 않고 단언했다.
  4242.  
  4243. "세이프가 부서졌다. 이 결과야 말로 중요합니다."
  4244.  
  4245. 지금 뭐가 문제인지. 그 핵심을.
  4246.  
  4247. "그렇지 않습니까?"
  4248. "확실히 그렇군."
  4249.  
  4250. 미노루의 주장을 타츠야는 전면적으로 긍정했다.
  4251.  
  4252. "미노루는 미나미가 의도치 않은 갑작스런 마법연산영역의
  4253. 이상 가동에 휘말려, 심각한 데미지를 받는 걸 걱정하는 거군?"
  4254. "그렇습니다."
  4255.  
  4256. 이번에는 미노루가 타츠야의 말을 긍정했다.
  4257.  
  4258. "미나미 씨의 현재 상태는 조정체의 비극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4259. 높아진 상태입니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4260. "하지만 마법연산영역을 복구할 방법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4261. 그게 아니면 세이프티만은 별개인가?"
  4262.  
  4263. 미노루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4264.  
  4265. "……미노루. 너는 뭔가 해결책을 가지고 온 거겠지?"
  4266.  
  4267. 타츠야가 더욱 파고든 질문을 던졌다.
  4268.  
  4269. 미노루는 타츠야의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고개를 숙였다.
  4270.  
  4271. "……네."
  4272.  
  4273. 그 짧은 대답은 타츠야와 마주본 상태론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4274.  
  4275. "그건 뭐지?"
  4276. "…………."
  4277. "미노루."
  4278.  
  4279. 타츠야가 스툴에서 일어나 반걸음 옆으로 이동했다.
  4280.  
  4281. 침대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침대 가까이로.
  4282.  
  4283. 미유키와 미나미를 등으로 감싸는 것처럼.
  4284.  
  4285. "너, 뭐가 된 거지?"
  4286.  
  4287. 미노루가 숙인 고개를 들었다.
  4288.  
  4289. 타츠야를 올려다보며 입술 양 끝을 끌어올린다.
  4290.  
  4291. 타츠야는 그 미소를 잊지 않았다.
  4292.  
  4293. 그건 교토에서 본, 슈 코우킨의 미소와 매우 닮았다.
  4294.  
  4295. "─이거라면 알아보겠나요?"
  4296.  
  4297. 미유키가 기세 좋게 일어났다.
  4298.  
  4299. 미유키는 미노루의 몸에서 짙게 나오는 사이온 파동, 요기(妖氣)를
  4300. 본 적이 있었다.
  4301.  
  4302. "패러사이트!? 그런, 설마……!"
  4303.  
  4304. 미나미는 눈을 깜박이는 것도 잊고 타츠야의 등을 바라봤다.
  4305.  
  4306. 타츠야의 몸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미노루에게 시선이 박혔다.
  4307.  
  4308. "걱정하지 마세요."
  4309.  
  4310. 미노루가 일어나 타츠야와 미유키에게 미소를 짓는다.
  4311.  
  4312. 그 미소에 슈 코우킨의 그림자는 없다.
  4313.  
  4314. "저는 패러사이돌을 만든 쿠도가의 사람입니다. 쿠도가 중에서도
  4315. 할아버지 다음인 제2위의 마법사. 패러사이트를 지배하는 방법은
  4316. 이미 습득했습니다."
  4317. "틀렸어."
  4318.  
  4319. 타츠야가 미노루의 말을 부정한다.
  4320.  
  4321. 미노루는 의미를 몰라 타츠야에게 시선으로 되물었다.
  4322.  
  4323. "넘버 투가 아니야. 너는 쿠도 가의 넘버 원. 『9』가 붙은
  4324. 마법사의 최고봉이다."
  4325.  
  4326. 웃지도 않고 엄격한 표정과 평이한 어조로 대답하는 타츠야.
  4327.  
  4328. "……기쁘네요."
  4329.  
  4330. 미노루는 대조적으로 순수하게 미소를 짓는다.
  4331.  
  4332. "타츠야 씨가 인정해주다니."
  4333.  
  4334. 그 상대하는 사람의 혼을 뺄 것 같은 미소에도 타츠야는
  4335.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4336.  
  4337. 방심도 전혀 없다.
  4338.  
  4339. "기쁘지 않네요, 그렇게 경계하지 말아주세요."
  4340.  
  4341. 긴장감이 결여된 건 미노루 쪽이었다.
  4342.  
  4343.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굴렸다.
  4344.  
  4345. "패러사이트가 되도 저는 계속 저입니다. 자아 침식은 받지 않았어요.
  4346. 인간을 습격할 생각도 없고, 그것 외에도 이전의 제게 없었던 욕구로 인해
  4347.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4348. "하지만 쿠도 미노루는 인간이었다. 지금의 넌 패러사이트다."
  4349. "그건…… 그렇습니다만."
  4350.  
  4351. 미노루는 조금 상처 받은 표정을 지었다.
  4352.  
  4353. "그래도 저는 저입니다. 저는 지금도 쿠도 미노루입니다.
  4354. 올바르게 대처하는 지식과 힘이 있으면 패러사이트와 융합해도
  4355. 자아를 잃지 않습니다. 저는 그걸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4356.  
  4357. 다시 기운을 차린 표정으로, 강한 확신을 담아 미노루가
  4358. 타츠야와 미유키와 미나미에게 말을 걸었다.
  4359.  
  4360. "패러사이트가 되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4361. "미노루. 너는─."
  4362.  
  4363. 타츠야가 낮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4364.  
  4365. "미나미를 패러사이트로 만들고 싶은 건가?"
  4366.  
  4367. 미유키가 계속 쥐고 있었던 핸드백에서 재빨리 CAD를 꺼냈다.
  4368.  
  4369. "─패러사이트의 몸은 사이온 파동에 대한 높은 내성을 갖고 있습니다."
  4370.  
  4371. 미노루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건 어쩌면 미노루가
  4372.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4373.  
  4374. "패러사이트와 융합하면 마법연산영역이 폭주해도 육체가
  4375. 데미지를 받을 거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뇨,
  4376. 인간 마법사보다도 마.법.에. 가.까.운. 패러사이트는
  4377. 마법연산영역이 폭주할 우려조차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4378. "이런 경우 원래대로라면 미나미 본인의 의사를 물어봐야겠지."
  4379.  
  4380. 타츠야는 미노루와 미나미 사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4381. 두 사람의 시선을 가로막은 채다.
  4382.  
  4383. "하지만 여기선 주인으로서 내 고집을 관철하겠다."
  4384.  
  4385. 정확히 말하자면 미나미의 주인은 미유키지만, 그런 엄밀함이
  4386.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4387.  
  4388. 필요한 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근거.
  4389.  
  4390. "기각이다. 미나미를 패러사이트로 만들 순 없어."
  4391. "타츠야 씨!?"
  4392.  
  4393. 미노루는 진심으로 경악했다. 그는 아무래도 타츠야가
  4394. 자신의 아이디어를 반대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4395.  
  4396. "하지만 이대로라면 미나미 씨는 언제 갑작스럽게 죽을지 모른다고요!"
  4397. "마법연산영역의 폭주가 원인이라면 패러사이트가 되지 않아도
  4398. 대처법은 있어."
  4399. "그러니까 마법연산영역의 수복은 불가능합니다!
  4400. 세이프티 기능만 되찾을 수 있다면 처음부터 이런 제안
  4401. 하지 않는다고요!"
  4402. "세이프티에 의존하지 않아도 마법연산영역을 외부에서
  4403. 봉인해버리면 폭주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진다."
  4404.  
  4405. 미노루는 크게 눈을 떴다.
  4406.  
  4407.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나고, 간신히 자세를
  4408. 다시 잡는다.
  4409.  
  4410. "타츠야 씨, 당신은…… 미나미에게서 마법을 배제하겠다는 겁니까!?"
  4411.  
  4412. 그건 미노루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4413.  
  4414. 마법사에게서 마법을 배제한다. 그건 마법사의 존재 의의를
  4415. 빼앗는 짓이다.
  4416.  
  4417. 우.수.한. 마법사라는 유일한 버팀목으로 살아온 미노루에게,
  4418. 설령 말뿐이라고 해도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
  4419.  
  4420. "미나미가 살았으면 하니까 그렇다."
  4421. "그러기 위해 그녀에게서 마법을 없애는 겁니까!"
  4422. "마법사만이 인.간.의 삶의 방식이 아니다. 미나미에겐
  4423. 좀 더 평화롭게 평범한 여자아이로서 사는 인생이 있어."
  4424. "그건 타츠야 씨의 소망이잖아! 당신에게 미나미 씨에게서
  4425. 마법을 빼앗을 권리는 없어!"
  4426. "과연, 확실히 내 소망은 미나미에게서 마법을 빼앗는 것이 되겠군.
  4427. 하지만 미노루 네. 소.망.은 미나미에게서 『사람으로 있는 것』을
  4428. 빼앗는 결과가 된다. 그건 이해하고 있는 건가?"
  4429. "그럼 미나미 씨에게 고르라고 하죠! 그녀의 인생이야.
  4430. 미나미 씨가 패러사이트가 되는 걸 거부하면, 저도 포기합니다.
  4431. 미나미 씨!"
  4432.  
  4433. 타츠야는 여전히 미노루의 시선을 가로막은 채다.
  4434.  
  4435. 하지만 미노루는 개의치 않고 미나미를 향해 외쳤다.
  4436.  
  4437. "나는 널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 너에게서 마법을 빼앗고 싶지 않아!
  4438. 부탁이야, 나.랑. 똑.같.은. 존.재.가. 되.어. 줘.!"
  4439.  
  4440. 미나미의 얼굴에 엄청난 동요가 생겼다.
  4441.  
  4442. 그녀는 패러사이트가 될 생각이 없었다.
  4443.  
  4444. 인간성을 버릴 결의가 당장 될 리가 없다.
  4445.  
  4446. 그러니까 마법을 버릴지 말지는 별개로 치고, 이 자리는 타츠야에게
  4447. 맡길 생각이었다.
  4448.  
  4449. 하지만,
  4450.  
  4451. 미노루의 그 말은,
  4452.  
  4453. 미나미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4454.  
  4455. "이미 말했다, 미노루."
  4456.  
  4457. 하지만 그 망설임을 끊어버리는 것처럼,
  4458.  
  4459. "기각이다."
  4460.  
  4461. 타츠야는 강철의 목소리로 미노루의 말을 내버렸다.
  4462.  
  4463. "타츠야 씨, 비켜주세요! 나는 미나미 씨랑 얘기를 하고 싶은 거라고!"
  4464.  
  4465. 결국 미노루가 격분했다.
  4466.  
  4467. 미노루가 타츠야에게 마법을 쐈다.
  4468.  
  4469. 그 마법은 단순한 이동 마법이었다. 대화를 방해하는 타츠야를
  4470. 옆으로 이동시킨다는 의도가 형태가 된 것.
  4471.  
  4472. 하지만 거기엔 가속 공정도 감속 공정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4473.  
  4474. 순식간에 톱 스피드에 다다르는 명백한 공격성 마법.
  4475.  
  4476. 타츠야의 반응은 반사적이면서 정확했다.
  4477.  
  4478. 자신에게 닥쳐오는 마법식을 『그램 디스퍼전』으로 분해했다.
  4479.  
  4480. "미노루, 무슨 생각이지."
  4481. "시끄러워, 비켜 줘!"
  4482.  
  4483. 미노루는 우.수.한. 마법사가 버팀목이었다.
  4484.  
  4485. 마법 기능면에서 지지 않는 게 그의 마음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4486.  
  4487. 그 마법이 무효화 되자, 그 순간 미노루는 분노했다.
  4488.  
  4489. 정색했다.
  4490.  
  4491. 부전패 이외에서 진 적이 없다. 그 경험 부족이 여기서 탈이 됐다.
  4492.  
  4493. 자주 병에 걸리는 몸 때문에 모든 걸 포기했던 미노루에게
  4494. '몸만 건강하다면'이라는 마음은 망집에 가깝다.
  4495.  
  4496. ─몸만 건강하다면 마법으로는 지지 않아.
  4497.  
  4498. 그 마음이, 고작 한 번의 공방이라지만 뒤집혀졌다.
  4499.  
  4500. 올해 17살인 미숙한 소년이 제정신을 잃어도 동정할 여지는
  4501. 충분히 있었다. ─그가 평범한 소년이었다면.
  4502.  
  4503. 하지만 미노루는 '평범'하지 않다.
  4504.  
  4505. 지금은 '인간'조차도 아니다.
  4506.  
  4507. 방금 전보다 강하고 빠른 마법이 타츠야를 습격한다.
  4508.  
  4509. 이번에도 타츠야는 그 마법을 『그램 디스퍼전』으로 무력화했지만,
  4510. 첫 번째와 달리 여유가 없었다.
  4511.  
  4512. 타츠야의 의식이 용서 없는 전투 마법사로 바뀐다.
  4513.  
  4514. 닥쳐오는 마법을 분해한 타츠야는 그들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4515. 순식간에 좁혔다.
  4516.  
  4517. 왼쪽 손바닥을 미노루의 배에 밀어서 댄다.
  4518.  
  4519. 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기세는 '살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4520.  
  4521. 다음 순간 타츠야의 오른손에서 마법이 튀어나왔다.
  4522.  
  4523. 제로 거리에서 쏘는 '가속' 마법.
  4524.  
  4525. 그 마법은 손바닥에 닿은 부분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미노루의 몸 전체를
  4526. 뒤로 날려버리는 것. 실제로 미노루의 몸은 공중으로 날아갔다.
  4527.  
  4528. 하지만 타츠야에게 해냈다는 느낌은 남지 않았다.
  4529.  
  4530. 문에 부딪칠 터인 미노루의 몸은 소리도 없이 문 앞에서 멈춰 서서
  4531. 조용히 바닥에 내려섰다.
  4532.  
  4533. 미노루는 타츠야가 발동한 가속 마법을 발판 삼아 자신을 대상으로
  4534. 가속 마법을 써서 문까지 날아가 관성을 중화해서 충격을 소거,
  4535. 타츠야에게서 거리를 뒀다.
  4536.  
  4537. "미유키, 영역간섭 최대 출력!"
  4538. "네!"
  4539.  
  4540. 타츠야의 지시는 미노루의 발이 아직 바닥에 닿지 않았을 때 나왔다.
  4541.  
  4542. 미노루가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미유키의 영역간섭이 병실을 뒤덮었다.
  4543.  
  4544. 미노루는 시선이 닿은 미나미를 슬쩍 보고, 문의 잠금 장치를 풀고
  4545. 기세 좋게 열어젖혔다.
  4546.  
  4547. 미유키는 영역 간섭 효력 범위를 병실 안으로 지정했다.
  4548.  
  4549. 타츠야가 간격을 좁히는 것보다 빨리 미노루가 복도로─
  4550. 영역간섭 효력 범위 밖으로 나갔다.
  4551.  
  4552. 붙박이창의 유리가 잘게 부서지고 밖으로 흩뿌려진다.
  4553.  
  4554. 미노루는 타츠야와 잠시 마주 보고 유리가 없어진 창밖으로 뛰어나갔다.
  4555.  
  4556. 미노루의 시선의 의미를 타츠야는 오해하지 않았다.
  4557.  
  4558. "미유키, 미나미를 곁에서 지켜줘."
  4559. "오라버니는!?"
  4560. "미노루의 도전에 응한다."
  4561.  
  4562. 미노루는 미유키의 영역간섭에서 꽁무니를 빼고 도망친 게 아니다.
  4563.  
  4564. ─병실 안에서 싸우면 쓸데없는 피해가 생긴다.
  4565.  
  4566. ─미나미가 다칠지도 모른다.
  4567.  
  4568. 미노루는 이게 싫어서 타츠야를 밖으로 유인한 거다.
  4569.  
  4570. 타츠야가 계속 병실에 남으면 미노루는 일단 물러나겠지.
  4571.  
  4572. 하지만 미노루는 미나미에게 집착하고 있다. 그건 방금 전의
  4573. 짧은 전투로 싫을 정도 확실히 알았다.
  4574.  
  4575. 언제 또 미나미를 납치하러 올지 모른다.
  4576.  
  4577. 타츠야의 최우선 사항은 미유키의 호위다.
  4578.  
  4579. 게다가 가뜩이나 남자와 여자다. 24시간, 미나미 곁에 붙어 있을 수는 없다.
  4580.  
  4581. 여기서 미노루를 무력화해서 붙잡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4582.  
  4583. 타츠야는 미노루에 이어 파괴된 창문을 통해 병원 안뜰로 뛰어내렸다.
  4584.  
  4585.  
  4586.  
  4587. 이 병원은 지상 4층 구조다.
  4588.  
  4589. 육체 힘만으로 뛰어내릴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미노루에게
  4590. 착지 직후의 틈을 보여주는 건 좋지 않다. 인.간.이.었.을. 때부터
  4591. 그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4592.  
  4593. 타츠야는 기억영역 안에 있는 마법식 라이브러리에서
  4594. 관성제어 술식을 불러냈다.
  4595.  
  4596. 플래쉬 캐스트로 관성제어 마법을 발동.
  4597.  
  4598. 착지 순간만 자신에게 걸린 관성을 중화한다.
  4599.  
  4600. 인공마법연산영역으로 관성 제어 술식을 쓰는 것과 동시에
  4601. 원래의 마법연산영역으로 정보체 분해 마법 『그램 디스퍼전』을 발동.
  4602. 미노루가 쏜 방출계 마법 『스파크』를 무력화한다.
  4603.  
  4604. "역시 『그램 디스퍼전』. 방금 전에 봤을 땐 착각인가 싶었지만,
  4605. 실험실에서만 성공했다는 고난이도 마법을 실전에서 성공적으로 사용하다니
  4606. 역시 요츠바 직계라고 할까요."
  4607.  
  4608. 미노루가 억제된 어조로 말을 건다. 이미 분노는 없어진 모양이다.
  4609.  
  4610. "자신이 집착하는 것을 위해 일방적인 실력 행사도 서슴지 않는다.
  4611. 미노루, 그건 패러사이트의 행동 방식이다."
  4612.  
  4613. 생각도 못한 지적을 받고 침착함을 되찾은 미노루의 표정에 동요가 생겼다.
  4614.  
  4615. "인간이었을 적의 너는 이런 독선적인 짓은 하지 않았을 터다."
  4616. "독선적인 게 아닙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4617.  
  4618. 미노루가 방출계 마법 『인체 발화』를 타츠야에게 퍼붓는다.
  4619.  
  4620. 인체의 마법적 방어를 무효화하고 세포를 구성하는 분자에서
  4621. 강제적으로 전자를 빼내어 몸 밖으로 방출시키는 마법.
  4622. 피부 위에서 발생하는 방전이 인체 자연발화 현상(SHC)과 같은 외견을
  4623. 보여주기 때문에 『인체 발화』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4624. 사실 분자간 결합에 이용되는 전자를 빼앗아 분자 레벨로
  4625. 세포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마법이다.
  4626.  
  4627. 타츠야는 자신을 향한 『인체 발화』 마법식을 발동 직전에 분해했다.
  4628.  
  4629. 타츠야의 분해 마법으로도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4630.  
  4631. 무시무시한 마법 발동 속도.
  4632.  
  4633. 원래부터 미노루의 스피드는 빨랐지만, 패러사이트와 융합해서
  4634. 더욱 발동 속도가 상향됐다.
  4635.  
  4636. 오산이었던 건, 미노루를 심리적으로 흔들 생각으로 꺼낸 말이
  4637. 역효과가 됐다는 거다.
  4638.  
  4639. 미노루에게 감정의 흔들림으로 마법의 정밀도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4640. 흥분해서 오히려 마법연산영역이 활성화된 것 같은 인상조차 있었다.
  4641.  
  4642. 더 이상 봐주는 건 불가능하다.
  4643.  
  4644. 적어도 타츠야에게 미노루와 진심으로 싸우는 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4645. 병실에 나타났을 때 미노루를 적대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4646.  
  4647. 타츠야는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을 통감했다.
  4648.  
  4649. 하지만 미노루를 무력화하지 못하면 후회도 불가능하다.
  4650. 타츠야는 미노루에게 『분해』를 쐈다.
  4651.  
  4652. CAD는 사용하지 않는다. CAD를 사용하면 미노루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한다.
  4653. 오스의 봉인을 완전히 해제하지 못했다면 미노루의 스피드에 대항할 수 없었겠지.
  4654.  
  4655. 타츠야의 정.보.체. 분.해. 마법을 받은 미노루의 모.습.이
  4656.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4657.  
  4658. 미노루의 몸.이 왼쪽으로 한 걸음 이동한 곳에 나타났다.
  4659.  
  4660. 위장 마법 『퍼레이드』. 타츠야가 분해한 건 『퍼레이드』로 만들어낸
  4661. 환영이었다.
  4662.  
  4663. 타츠야가 마법을 쏜다.
  4664.  
  4665. 환영 오른쪽 출현했다는 인식이 환영이 서 있는 곳의 왼쪽에
  4666. 실체가 존재한다는 인식으로 바뀐다.
  4667.  
  4668. 타츠야는 방위를 속이는 마법 『귀문둔갑』을 분해했다.
  4669.  
  4670. '─미노루가 융합한 건 패러사이트만이 아니다.'
  4671.  
  4672. 구 제9연은 고식마법의 기술을 현대마법에 넣는 것이 테마이다.
  4673.  
  4674. 구 제9연에서 대륙의 고식마법 『귀문둔갑』을 연구했을 가능성은
  4675. 제로가 아니다.
  4676.  
  4677. 하지만 이. 『귀문둔갑』은 같은 술식을 배운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4678.  
  4679. 마법에는 개성이 있다. 같은 마법을 사용하고 같은 효과가 발생해도
  4680. 술자가 다르면 그 프로세스나 흔적에서 미묘한 차이가 발생한다.
  4681. 마법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그 차이는 보기 어렵지만, 그것 또한
  4682. 보는 자와 관찰 당하는 것.의 상대적인 힘의 관계에 따라 다르다.
  4683.  
  4684. 타츠야의 '시력'은 미노루가 사용한 『귀문둔갑』에서 슈 코우킨의 개성을
  4685. 또렷이 보았다.
  4686.  
  4687. '언제 슈 코우킨의 망령을 흡수한 거지!?'
  4688.  
  4689. 타츠야가 마음속으로 독백하는 사이에 방전의 마.법.적.인. 징조가
  4690. 공중에 생겼다.
  4691.  
  4692. 방출계 마법 『클라우드레스 선더[青天霹靂]』.
  4693.  
  4694. 공기를 플라스마로 만들어 거기서 뽑아낸 전자 샤워를 공격 대상에게 퍼붓는다.
  4695. 음전기로 대전된 공격 대상은 그 다음에 남은 양이온의 분류에 노출된다는
  4696. 두 단계 공격이다.
  4697.  
  4698. 미노루의 『클라우드레스 선더』는 타츠야가 『퍼레이드』와
  4699. 『귀문둔갑』을 분해하는 사이에 형성됐다. 타츠야가 지금부터
  4700. 그 마법식을 분해한다 해도 『클라우드레스 선더』의 발동이 더 빠르다.
  4701.  
  4702. 타츠야는 라이브러리에서 『도전피막(導電皮膜)』의 마법식을
  4703. 선택했다. 방출계 마법 『도전피막』은 몸에 닿은 의복이나 구두의
  4704. 표면 전기 저항을 유사적으로 제로까지 내려, 이를 접지로 삼아
  4705. 전격 전류를 지면으로 흘리는 방어 마법이다.
  4706.  
  4707. 인공마법연산영역에서 불러낸 마법식을 세트. 타츠야는
  4708. 플래쉬 캐스트로 『도전피막』을 발동, 하려고 했다.
  4709.  
  4710. 하지만 동시에 전기 저항 증폭 마법식이 타츠야를 습격했다.
  4711. 그것 자체는 커다란 위력이 없는 마법이지만 '전기 저항을
  4712. 유사적으로 제로까지 내린다'라는 『도전피막』의 정의와 충돌해
  4713. 둘 다 파괴됐다.
  4714.  
  4715. 방어를 위한 마법 발동에 실패한 타츠야를 『클라우드레스 선더』의
  4716. 전자 샤워가 습격한다.
  4717.  
  4718. 고통을 씹어죽이고, 타츠야는 스스로 병원 안뜰을 굴렀다.
  4719.  
  4720. 이 안뜰은 천연 잔디. 그 밑은 흙으로 된 지면이다.
  4721.  
  4722. 타츠야가 받은 전하는 지면으로 흘러가고, 양이온은 지면에 흡수됐다.
  4723.  
  4724. 타츠야가 한쪽 무릎을 세워 일어난다.
  4725.  
  4726. 미노루는 의표를 찔린 표정으로 우뚝 서 있었다.
  4727.  
  4728. 고통은 참는다고 해도 전자의 비를 맞은 근육은 자유롭게
  4729. 움직이지 못할 터─. 미노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4730.  
  4731. 그건 미노루의 방심이 아니었다. 다만 상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4732. 부정할 수 없다.
  4733.  
  4734. 그 틈을 찔러 타츠야의 『미스트 디스퍼전』이 드디어 미노루의 육체에
  4735. 닿았다.
  4736.  
  4737. 미노루의 오른발 사타구니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4738.  
  4739. 오른발만이 아니라 왼발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엉덩방아를 찧는 것처럼
  4740. 미노루가 뒤로 쓰러졌다.
  4741.  
  4742. 타츠야는 미노루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인하기 위해 왼발, 오른쪽 어깨,
  4743. 왼쪽 어깨도 조준했다.
  4744.  
  4745. 하지만 쓰러져 있는 건 내용물이 없는 그림자였다.
  4746.  
  4747. 방전의 마.법.적. 조짐이 타츠야 바로 뒤에서 생겼다.
  4748.  
  4749. 타츠야는 돌아보지 않고, 그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4750. 『클라우드레스 선더』를 『그램 디스퍼전』으로 없앴다.
  4751. 그의 '눈'은 『클라우드레스 선더』의 마법식만 집중해서
  4752. 보고 있었던 게 아니다.
  4753.  
  4754. 360도, 방.향. 상.관.없.이. 타츠야는 미노루의 실체를 탐색하고 있었다.
  4755.  
  4756. 오른쪽에서 지면을 기는 것처럼 날아온 『열풍인(熱風刃)』─
  4757. 공기를 얇게 단열 압축해서 만들어낸 날을 날리는 공기탄의 바리에이션─을
  4758. 타츠야가 파괴할 수 있었던 건, 그 성과였다.
  4759.  
  4760. 타츠야의 『분해』로 압축이 풀린 열풍 칼날이 급속도로 팽창한다.
  4761. 아래가 잔디였기 때문에 모래먼지로 시야가 가려지는 일은 없었지만,
  4762. 상당히 강한 바람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떠버린다.
  4763.  
  4764. 눈을 반쯤 닫은 상태였지만 타츠야는 신경 쓰지 않고 지면을 박찼다.
  4765.  
  4766.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4767.  
  4768. 희미한 초조함이 왼쪽으로 구른 타츠야의 정면에서 전해져온다.
  4769.  
  4770. 발각 당했다는 초조감일까.
  4771.  
  4772. 그 기척의 흐트러짐이 타츠야에게 미노루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줬다.
  4773.  
  4774. 발목에서 기어 올라오는 전광(電光) 마법을 구현화 직전에 없앤다.
  4775.  
  4776. 신체를 포박하는 감속 우리를 발동 직전에 분해한다.
  4777.  
  4778. 다가오는 공기탄과 열풍의 날을 공기 압축을 무효화해서
  4779. 없앤다.
  4780.  
  4781. 차례차례 공격하는 미노루의 마법은, 지금은 전부 다 치사성의 위력을
  4782. 갖고 있다.
  4783.  
  4784. 그 모든 걸 무력화하고 타츠야는 미노루에게 주먹이 닿는 거리까지
  4785. 다가갔다.
  4786.  
  4787. 타츠야는 오른손을 내질렀다. 검지만을 뻗는, 다른 손가락을 접은
  4788. 한 손 끝이라 부르는 형태로.
  4789.  
  4790. 그 손가락은 미노루가 입은 옷을 관통해 피부를 뚫고
  4791. 미노루의 왼팔, 그 뿌리에 깊은 구멍을 뚫었다.
  4792.  
  4793. 가라테나 권법으로 손가락을 단련해서 얻은 성과가 아니다.
  4794. 타츠야는 자신의 손가락을 기점으로 『미스트 디스퍼전』을 발동해두었다.
  4795.  
  4796. 육안이나 마법적 시력으로 조준해버리면 쿠도가의 비술
  4797. 『퍼레이드』에 의해 표적이 엇나가버린다.
  4798.  
  4799. 그러니까 근접거리까지 접근해서 제로 거리의 『분해』를 먹인 거다.
  4800.  
  4801. 이거라면 모든 오감, 시각이나 청각만이 아니라 촉각까지 속는다 해도
  4802. 상대의 몸에 닿기만 하면 확실하게 데미지를 줄 수 있다.
  4803.  
  4804. 미노루가 비명을 지른다.
  4805.  
  4806. 미노루는 패러사이트의 정기(精氣) 흡수 능력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4807. 타츠야는 그 전에 손가락을 뺐다.
  4808.  
  4809. 이번에는 타츠야의 왼손 검지가 미노루의 오른팔 뿌리를 노린다.
  4810.  
  4811. 미노루는 반응을 못하고 오른팔 안쪽도 구멍이 뚫려버렸다.
  4812.  
  4813. 타츠야가 미노루의 몸에서 왼손을 뺀다.
  4814.  
  4815. 그런데 여기서 타츠야는 생각도 못한 반격을 받았다.
  4816.  
  4817. 움직이지 못했을 터인 미노루의 왼손이 그의 왼쪽 손목을 붙잡았다.
  4818.  
  4819. 급격한 탈력감이 타츠야를 습격한다.
  4820.  
  4821. 왼쪽 손목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간다.
  4822.  
  4823. 사이온이 아니다. 생명 에너지에 의한 것.
  4824.  
  4825. 패러사이트의 정기 흡수 능력이다.
  4826.  
  4827. 흡수한 건 한순간. 타츠야는 왼쪽 손목이 붙잡힌 직후, 반사적으로
  4828. 팔을 비틀어 미노루의 구속을 풀었다.
  4829.  
  4830. 동시에 오른쪽 손날을 휘둘러 미노루의 왼손의 손목 바로 앞을 절단했다.
  4831.  
  4832. 미노루가 낙하하는 자신의 왼손을 오른손으로 받아내고 후방으로 도약했다.
  4833.  
  4834. 위력이 그렇게 많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미노루의 몸은
  4835. 5미터나 되는 거리를 후퇴했다.
  4836.  
  4837. 미노루가 왼손을 절단면에 갖다 댔다.
  4838.  
  4839. 이번에는 타츠야가 눈을 크게 떴다.
  4840.  
  4841. 미노루의 왼손은 순식간에 원상 복귀됐다.
  4842.  
  4843. 미노루가 타츠야를 보고 방긋 웃는다.
  4844.  
  4845. 이런 표정을 지어도, 인외의 괴물이 되어도 미노루의 얼굴엔
  4846. 사악한 일그러짐이 한 조각도 없었다.
  4847.  
  4848. "패러사이트의 치유 재생 능력을 보는 건 처음입니까?"
  4849.  
  4850. 그 말을 듣고 타츠야는 딱 한 번 사례가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4851.  
  4852. 리나의 동료와 섞여 맥시밀리언 디바이스의 종업원으로서
  4853. 1고에 잠입한 패러사이트. 리나가 '미아'라고 불렀던 그 패러사이트는
  4854. 에리카의 검에 가슴이 뚫렸음에도 순식간에 그 상처가 나았다.
  4855.  
  4856. 잘 보니 잘린 왼손만이 아니라 오른발,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에
  4857. 뚫린 구멍도 전부 막혀 있다. 미노루가 '미아'라 불린 그 패러사이트와
  4858. 같은 능력을 얻은 게 분명하다.
  4859.  
  4860. "……그렇습니까. 패러사이트 능력에도 개인차가 있는 모양이군요."
  4861.  
  4862. 한편 미노루는 타츠야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통해
  4863. 모든 패러사이트가 높은 치유 능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4864. 알아차렸다.
  4865.  
  4866. "패러사이트의 능력은 종류도 레벨도 제각각이다. 미노루,
  4867. 네가 쇠약한 몸을 패러사이트가 되어 극복했다고 해도,
  4868. 미나미가 똑같이 나을 거라곤 단언할 수 없다."
  4869.  
  4870. 미노루가 숨을 들이마셨다.
  4871.  
  4872. 타츠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꽉 쥔 오른손을 내질렀다.
  4873.  
  4874. 야쿠모의 지도를 받아 대(對) 패러사이트용으로 개발한
  4875. 무계통 마법 『철갑 사이온탄』.
  4876.  
  4877. 그 마법이 원래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공중을 날아간다.
  4878.  
  4879. 원래 사이온탄의 비상에 스피드 제약은 없다.
  4880.  
  4881. 질량이 없고 물리적인 실태가 없는 사이온탄은 광속조차 넘는다.
  4882.  
  4883. 하지만 『철갑 사이온탄』은 단순한 사이온탄이 아니다.
  4884. 그저 단단할 뿐인 사이온탄도 아니다.
  4885.  
  4886. 『철갑 사이온탄』은 정보 차원을 비상하는 탄환.
  4887.  
  4888. 원래 정보 차원으로 이동한다는 개념은 없다.
  4889.  
  4890. '이동한다'라는 정보는 존재해도 정보 그 자체의 위치변화는
  4891. 불연속이며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어디에 적용되는 정보인가'를
  4892. 바꿔 쓸 뿐이니까 1초도 필요하지 않다.
  4893.  
  4894. 『철갑 사이온탄』은 그 정보 차원으로 이동하는 개념을 갖고 있다.
  4895. '정보 차원을 연속적이며 배타적으로 이동한다'라는 정의가 부여된,
  4896. 정보 소자인 사이온 덩어리. 그게 『철갑 사이온탄』이다.
  4897.  
  4898. 그런 탓에 이동 속도는 술자, 즉 타츠야가 이동을 인식할 수 있는
  4899. 범위 안으로 제한된다. 그것도 스스로 던.지.는. 속도의 한도 안이다.
  4900. 그는 『철갑 사이온탄』을 투척 감각을 작용해서 쏘았기 때문이다.
  4901.  
  4902. 그래도 이동 속도는 시속 백 킬로미터를 크게 상회했지만,
  4903. 총알보다는 훨씬 떨어진다. 화살 속도보다도 훨씬 떨어진다.
  4904. 개인차가 있겠지만, 보고 피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4905.  
  4906. 미노루는 『철갑 사이온탄』을 시인하고 반사적으로 비상했다.
  4907.  
  4908. 점프가 아니다.
  4909.  
  4910. 비상 마법으로 『철갑 사이온탄』을 피한다. 『철갑 사이온탄』은
  4911. 정보 차원에서 '지상'에 남은 『퍼레이드』의 환영을 관통하고 사라졌다.
  4912.  
  4913. 미노루가 사용한 비행 마법은 타츠야가 개발한 현대 마법의 술식이 아니다.
  4914. '구름'에 타는 신선술 계통 고식마법의 비행 술식이다.
  4915.  
  4916. '구름'이 될 물체를 만들어내, 이에 발판 기능과 부유 기능,
  4917. 수평 이동 기능을 부여해 허공을 나는 마법. 그 미노루가 탄 구름을
  4918. 타츠야가 마법으로 분해했다.
  4919.  
  4920. 하지만 미노루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엔 가중계 현대 마법으로
  4921. 중력을 중화해 떠오른다. 비행 마법이 '가중계 마법의 삼대 난제'라 불린 건
  4922. 자유로운 공중 기동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며, 그저
  4923. 허공에 떠있을 뿐이라면 어렵지 않다.
  4924.  
  4925. 미노루가 손바닥을 지상 쪽으로 돌려 양손을 뻗는다. 그 손바닥에서
  4926. 차례로 플라스마탄이 튀어나온다.
  4927.  
  4928. 대기를 골프공 크기로 압축하고 이온화. 그걸 지상으로 사출하는
  4929. 간단한 마법이다.
  4930.  
  4931. 타츠야는 플라스마탄 생성을 방해, 또는 공중에서 플라스마를 확산시켜
  4932. 이 공격을 막으면서 『미스트 디스퍼전』을 미노루에게로 조준했다.
  4933.  
  4934. 하지만 좀처럼 마법 발동까지 이르지 못했다.
  4935.  
  4936. 미노루는 부유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연속 점프의 요령으로
  4937. 공중을 이동했다.
  4938.  
  4939. 비행이 아니라 공중에 만들어낸 발판을 차고 뛴다.
  4940.  
  4941. 『퍼레이드』의 환영을 잔상처럼 남기면서.
  4942.  
  4943. 문제는 본체를 포착하는 게 어렵다는 점이 아니다.
  4944.  
  4945. 타츠야는 망설였다.
  4946.  
  4947. 부분 분해로 상처를 입어도 미노루에겐 그 치유 재생 능력이 있다.
  4948.  
  4949. 미노루를 제압하기 위해선 의식을 빼앗아야만 하겠지.
  4950.  
  4951. 하지만 손목을 잘라도 미노루는 멈추지 않았다.
  4952.  
  4953. 『미스트 디스퍼전』으로 죽이는 것 외에 무력화 방법이 없는 게 아닐까…….
  4954.  
  4955. 타츠야는 미노루를 죽이는 걸 망설였다.
  4956.  
  4957. 미노루의 공격은 치.사.성.이긴 하지만 타츠야를 죽.일. 순. 없.는. 거.다..
  4958.  
  4959. 『클라우드레스 선더』로도 『인체발화』로도 타츠야는 죽일 수 없다.
  4960. 하물며 플라스마탄으로는 움직임을 봉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4961.  
  4962. 타츠야에게 진짜 위협적인 마법은 그의 『재성』이 미치지 않는
  4963. 정신을 공격하는 마법이지만, 미노루는 현재 정신 간섭 마법을
  4964. 쓸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쓰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4965. 어쨌든 지금 그가 사용하는 마법은 타츠야에게 진정으로 위협이 되지 못했다.
  4966.  
  4967. 게다가 무엇보다 타츠야와 미유키에게 칼을 들이댄 게 아니다.
  4968.  
  4969. 미노루의 동기는 미나미의 치료다.
  4970.  
  4971. 즉 현재 시점에서 봤을 때 적대는 일시적일 뿐이라고 판단된다.
  4972.  
  4973. 설령 패러사이트로 변했다 해도 미노루는 앞으로 이.용. 가.능.할.
  4974. 가.능.성.이. 높.다..
  4975.  
  4976. 쿠도 미노루라는 귀.중.한. 전.력.을 지금 여기서 잃어도 괜찮은 건가─.
  4977.  
  4978. 그 망설임이 타츠야의 공격을 둔하게 만들었다.
  4979.  
  4980. '하지만 이대론 결말이 나지 않아.'
  4981.  
  4982. 육체를 전부 분해하면 치유 재생 능력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겠지.
  4983.  
  4984. 육체를 재로 만들지 않아도 심장을 날려버리면 패러사이트가
  4985.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
  4986.  
  4987. 심장을 분해해 소생 가능한 시간 안에 『그램 데몰리션』의 요령으로
  4988. 패러사이트를 날려버릴 수 있다면, 그 뒤에 심장을 『재성』해서
  4989. 미노루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4990.  
  4991. '─해볼까.'
  4992.  
  4993. 타츠야가 사태를 타개할 결의를 다진 그 순간,
  4994.  
  4995. 미노루의 공격이 멈췄다.
  4996.  
  4997. "타츠야 씨, 이대로는 결말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4998.  
  4999. 미노루는 그야말로 타츠야가 생각한 걸 그대로 입에 담았다.
  5000.  
  5001. "아무래도 전 죽이는 것 이외의 방법으로 타츠야 씨의 벽을
  5002. 파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5003.  
  5004. 그리고 치명상을 주겠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도 타츠야도 똑같았다.
  5005. 미노루는 그렇게 말했다.
  5006.  
  5007. "그런 모양이군."
  5008.  
  5009. 타츠야가 맞장구를 치자 미노루가 공중에 뜬 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5010.  
  5011. "타츠야 씨. 저는 패러사이트가 되어 『건강』한 몸을 되찾는 게,
  5012. 미나미 씨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5013.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5014. "그렇네요. 우.리.의. 의견은 평행선입니다."
  5015.  
  5016. 미노루가 유리가 없어진 창문을 본다. 그 너머엔 미나미의 병실이 있다.
  5017.  
  5018. "하지만 제 생각을 미나미 씨에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5019.  
  5020. 미노루가 타츠야 쪽으로 시선을 되돌린다.
  5021.  
  5022. "오늘은 이걸로 만족하겠습니다."
  5023.  
  5024. 미노루의 몸이 스윽 상승한다.
  5025.  
  5026. 그의 발밑에 공기 변형으로 형성된 구름이 부활했다.
  5027.  
  5028. 그대로 미노루는 구름을 타고 자리를 떴다.
  5029.  
  5030.  
  5031.  
  5032. "……간 건가."
  5033.  
  5034. 미노루가 탄 '구름'이 안 보이게 되자 타츠야는 한숨을 쉬는 것처럼
  5035. 작게 중얼거렸다.
  5036.  
  5037. 이걸로 끝이 아니다.
  5038.  
  5039. 아직 하나도 정리되지 않았다.
  5040.  
  5041. 미노루는 또 오겠지
  5042.  
  5043. 하지만 오늘은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거다.
  5044.  
  5045. 타츠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5046.  
  5047.  
  5048. ◇ ◇ ◇
  5049.  
  5050.  
  5051. 병실에 있는 미나미에겐 그저 '미노루는 돌아갔다'라고만 말했다.
  5052.  
  5053. 영역 간섭은 마법 실행을 방해하는 것이지 마법 파동을
  5054. 차단하는 게 아니다. 이건 미유키의 영역 간섭도 똑같다.
  5055. 타츠야와 미노루가 싸운 것도, 그 싸움이 격했다는 것도
  5056. 미나미 또한 느꼈을 터이다.
  5057.  
  5058. 하지만 미나미는 타츠야에게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5059.  
  5060. 타츠야는 미노루의 습격에 대해 병원에서 마야에게 보고하고,
  5061. 경비 증강을 요청한 다음 자택으로 돌아갔다.
  5062.  
  5063. 거실 소파에 앉은 타츠야에게 미유키가 커피를 가져왔다.
  5064.  
  5065. 픽시는 이 맨션에 없다. 화요일에 학교로 돌아갔을 때
  5066. 픽시를 학교에 두고 왔다.
  5067.  
  5068. 타츠야가 마시던 커피컵을 테이블로 되돌렸다. 탈력감이 엿보인 건,
  5069. 한순간이지만 정기를 빼앗겼기 때문일까.
  5070.  
  5071. "오라버니, 괜찮으신 겁니까……?"
  5072.  
  5073. 텅 빈 쟁반을 안고 낮은 테이블 맞은편에 서 있었던 미유키가
  5074. 타츠야에게 조심조심 묻는다.
  5075.  
  5076. "고전했지만 괜찮아."
  5077.  
  5078. 타츠야는 고전했다는 사실을 얼버무리지 않았다.
  5079.  
  5080. "패러사이트가 된 미노루 군은 그렇게 만만찮은 상대였나요?"
  5081. "그렇군. 미노루는 애초에 마법 발동 속도가 무척 빨랐지만,
  5082. 패러사이트가 되어 더욱 빨라졌다. 게다가 그 치유 재생 능력도 성가셔."
  5083. "치유 재생 능력이라고요?"
  5084. "그래. 1고 출입문에서 싸운, 리나 쪽에 숨어든 패러사이트가
  5085. 있었던 거겠지."
  5086. "리나가 『미아』라고 부른 그 패러사이트 말인가요? 그러고 보니
  5087. 그 개체는 강력한 자기 치유 능력을 갖고 있었지요."
  5088. "미노루가 갖춘 치유 재생 능력은 그 개체에 필적하거나 능가한다."
  5089. "그건…… 확실히 성가시네요."
  5090.  
  5091. 미유키가 그 미모를 흐리며 중얼거린다.
  5092.  
  5093. "하지만 정말로 경계해야만 하는 건 패러사이트로 인해 생긴 능력이 아니야.
  5094. 미노루가 원래 가진 힘. 그리고 다른 한 명의 힘이다."
  5095. "원래의 힘과…… 다른 한 명, 말입니까?"
  5096. "그래."
  5097.  
  5098. 타츠야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5099.  
  5100. 의식하고 한 연기를 제외하면 타츠야가 이렇게 엄한 표정을 짓는 건
  5101. 드문 일이었다.
  5102.  
  5103. "미노루는 엘레멘탈 사이트 소유자다. 전부터 그럴 거라고 의심했지만,
  5104. 오늘 확신했다."
  5105.  
  5106. 미노루는 타츠야가 플래쉬 캐스트로 발동하려고 한 마법을
  5107. 반대 사상 개변을 정의하는 마법을 부딪쳐 무효화했다.
  5108.  
  5109.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예측이 적중한 것도 아니다.
  5110. 상대, 즉 자신이 출력한 마법식을 읽어낸 결과라고 타츠야는 알아차렸다.
  5111.  
  5112. "그건!"
  5113.  
  5114. 미유키가 경악해서 소리를 높였지만, '설마'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5115. '정말입니까?'라고도 묻지 않았다. 타츠야가 '확신했다'라고 말했다.
  5116. 미유키의 의식과 무의식 모두 이를 의심하는 말은 솟아나오지 않았다.
  5117.  
  5118. "……오라버니. 그래서 다른 한 명, 이라는 건……?"
  5119.  
  5120. 다만 이 경우 다른 의문에 정신이 팔렸다는 점도 있었다.
  5121.  
  5122. "어떤 경위인지 모르겠지만, 미노루는 슈 코우킨의 지식과
  5123. 마법 기능을 흡수했어."
  5124.  
  5125. 타츠야는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5126. 상식 이상으로 확실한 사실을 그는 포착했다.
  5127.  
  5128. "슈 코우킨이라는 건, 그 슈 코우킨을 말하는 겁니까!?"
  5129. "그렇다."
  5130. "미노루 군이…… 예를 들면 슈 코우킨이 남긴 마법 해주서를 발견해서
  5131. 그 내용을 습득했다는 의미인가요?"
  5132.  
  5133. 미유키는 타츠야의 말을 상식 범위 안에서 해석했다.
  5134.  
  5135. 그렇게 생각해두면 마음이 심란해지는 일은 없겠지.
  5136.  
  5137. 하지만 타츠야는 얼버무리지 않았다.
  5138.  
  5139. "그게 아니야. 굳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쓰자면 미노루는
  5140. 슈 코우킨의 망령을 흡수했다고 생각돼."
  5141.  
  5142. 미유키가 한손으로 입을 막았다. 양손이 아니었던 건,
  5143. 다른 한 손은 쟁반을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5144.  
  5145. "……쿠도가에 그런 마법까지 있었던 겁니까?"
  5146.  
  5147.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미유키에게 타츠야는 고개를 흔들었다.
  5148.  
  5149. 세로가 아니라 좌우로.
  5150.  
  5151. "아무리 그래도 망령과 일체화하는 게 목적인 마법은 없었을 터다.
  5152. 그건 현대마법의 목적에서 벗어났어. 하지만 정신체를 지배하는 마법이라면
  5153. 있었다고 생각된다."
  5154.  
  5155. 타츠야는 일단 말을 끊고, 미유키가 이해하기 쉬운 예시를
  5156.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5157.  
  5158. "예를 들면 패러사이돌. 그 인형 병기를 완성시키기 위해선
  5159. 패러사이트의 본체를 제어하는 마법이 필요하다. 미노루는
  5160. 그런 종류의 마법을 응용해서 슈 코우킨의 잔류 사념을
  5161. 흡수한 게 아닐까 싶어. 그 녀석은 오늘 싸움에서 『귀문둔갑』을
  5162. 사용했는데, 그 사용 방식은 슈 코우킨의 것이었다."
  5163. "그렇습니까……."
  5164.  
  5165. 솔직히 말해서 미유키는 몇 개월 전에 죽은 마법사의 망령을
  5166. 흡수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을 믿기 어려웠다.
  5167.  
  5168. 하지만 그게 타츠야의 말이라면 미유키는 믿을 수 있었다.
  5169.  
  5170. "……대책을 세워야만 해. 구 제9연의 마법과 대륙식 고식 마법과
  5171. 패러사이트의 이능. 이 모든 걸 갖춘 상대에게 평범한 전투 방식으로
  5172. 대항하는 건 어려워."
  5173.  
  5174. 거기서 타츠야는 울적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5175.  
  5176. "게다가 쿠도 각하에게 미노루에 대해 말해야만 해. 이모님이
  5177.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말해야만 하겠지. 그 다음에
  5178. 쿠도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5179.  
  5180. 가뜩이나 디오네 계획 대책에 리소스를 할당해야만 하는데,
  5181. 그 상황에 이 문제가 더해졌다. 타츠야가 우울해지는 건
  5182. 당연했다.
  5183.  
  5184. 그런 타츠야를 미유키는 선 채로 걱정된다는 것처럼 바라봤다.
  5185.  
  5186.  
  5187. ◇ ◇ ◇
  5188.  
  5189.  
  5190. 마야가 미노루와 관련된 정보를 묵살할지도 모른다는 타츠야의 우려는
  5191. 기우로 끝났다.
  5192.  
  5193. 6월 17일 월요일.
  5194.  
  5195. 타츠야와 미노루가 쵸후 병원에서 불.행.한. 충돌을 일으킨 다음날.
  5196.  
  5197. 타츠야는 마법협회 관동지부로 불려갔다.
  5198.  
  5199. 오늘의 용건은 디오네 계획과 관련된 설.득.이 아니다.
  5200.  
  5201. 그는 임시 사족회의에 옵저버로서 출석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5202. 아니, 증인이라고 표현하는 쪽이 실상에 가깝겠지.
  5203.  
  5204. 마법협회 관동지부가 있는 요코하마 베이힐즈 타워의 회의실에
  5205. 와 있는 건 카츠토와 타츠야 두 사람뿐. 카츠토는 타츠야를
  5206. 요츠바 관계자로서 대하고 사무적으로 접근했다.
  5207.  
  5208. 카츠토는 저번 달 마지막 일요일에 벌인 결투가 느껴지는 태도는
  5209.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행동하는 건,
  5210. 카츠토가 아직 그 사건을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5211.  
  5212. 물론 서먹한 태도는 타츠야도 똑같았지만.
  5213.  
  5214. 관동 지부 스크린에 비친 얼굴은 10개. 사족회의의 정규 멤버도 열 명.
  5215.  
  5216. 한 명은 이 회의실에 있는 카츠토이며, 그는 스크린에 표시되는 영상에
  5217. 포함되어 있지 않다.
  5218.  
  5219. 타츠야도 그렇다.
  5220.  
  5221. 아홉 명의 십사족 당주와 또 다른 한 명. 마지막 인물은 쿠도 레츠였다.
  5222.  
  5223. 회의는 의례적인 인사를 최소한으로 끝내고 갑자기 본제로 들어갔다.
  5224.  
  5225. 『─신용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재차 묻고 싶네.』
  5226.  
  5227. 병상에서 막 복귀한 이치죠 고우키가 얼마 전까지 환자였던 게
  5228. 느껴지지 않는 기백이 담긴 목소리로 발언했다.
  5229.  
  5230. 질문 상대는 타츠야다.
  5231.  
  5232. 『쿠도가의 미노루 공이 패러사이트가 됐다는 게 사실인가?』
  5233. "본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한 제가 상대해본 감각에 의하면
  5234. 그는 패러사이트가 되었습니다."
  5235.  
  5236. 스크린에 비친 10명은 재차 놀라는 사람,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는 사람,
  5237. 슬프게 눈을 내리깐 사람, 이렇게 세 종류로 반응이 갈렸다.
  5238.  
  5239. 『……미노루 군의 표적이 요츠바가 휘하의 마법사,
  5240. 사쿠라이 미나미라는 것도?』
  5241.  
  5242. 이렇게 질문한 건, 놀란 사람에 속하는 미츠야 겐이었다.
  5243.  
  5244. "그것도 본인이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5245. 『그…… 미노루 공과 사쿠라이 양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겁니까?』
  5246.  
  5247. 싯포 타쿠미의 질문에 타츠야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5248. 추측은 됐지만 두 사람에게서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듣지 못했다.
  5249. 아마 미나미는 직접 물어봐도 타츠야와 같은 대답을 했겠지.
  5250. 자신이 미노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미나미는 한창 고민 중일 게
  5251. 분명하다.
  5252.  
  5253. 『미노루 공의 동기는 일단 제쳐두죠.』
  5254.  
  5255. 그 때 사에구사 코이치가 끼어들었다.
  5256.  
  5257. 『미노루 공이 패러사이트로 변한 것도, 요츠바가의 마법사를
  5258. 노린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만, 저는 미노루 공에게 씐 패러사이트가
  5259. 어디서 온 건지 신경 쓰입니다.』
  5260. 『확실히 그렇군요. 패러사이트가 다시 일본에 침입한 것이든,
  5261. 국내에 발생원이 생긴 것이든 이를 방치하면 피해가 확대될 우려가 있습니다.』
  5262.  
  5263. 이츠와 이사미가 코이치의 의견에 동의했다.
  5264.  
  5265. 『……그건.』
  5266. "저번에."
  5267.  
  5268. 쿠도 레츠가 고뇌가 담긴 목소리로 대답하려고 했다.
  5269. 그 대답을 빼앗는 것처럼 타츠야가 끼어들었다.
  5270.  
  5271. "패러사이트가 침입했을 때 저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패러사이트 둘을
  5272. 봉인했습니다. 그 시점에선 패러사이트를 최종적으로 부술 수단을
  5273. 몰랐기 때문에 그랬습니다만, 그 봉인체는 누군가가 빼앗아 갔습니다.
  5274. 아마도 그 두 개가 발생원이라고 생각됩니다."
  5275. 『누가 빼앗은 건지 모르는 겁니까?』
  5276. "모릅니다."
  5277.  
  5278. 코이치의 질책하는 목소리에 타츠야는 겁먹지 않고 그저 한 마디로 응수했다.
  5279.  
  5280. 『조사는 하지 않은 겁니까?』
  5281. "도쿄는 요츠바의 영역이 아니므로."
  5282.  
  5283. 타츠야의 뻔뻔한 대답에 코이치는 코웃음 쳤다.
  5284.  
  5285. "당시 사에구사가의 마유미 양, 쥬몬지가, 치바가의 에리카 양과 공투해서
  5286. 패러사이트에 대처했습니다. 빼앗긴 봉인체에 대해서도 정보를
  5287. 공유했을 터입니다만."
  5288. "확실히 들었습니다."
  5289.  
  5290. 카츠토가 당사자로서 증언하자 코이치는 그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5291. 마유미가 들었다면 사에구사의 책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5292.  
  5293. 『하나는 제가 갖고 있습니다.』
  5294.  
  5295. 여기서 마야가 생각도 못한 말을 던졌다.
  5296.  
  5297. 『타츠야는 남은 패러사이트와 교전 중이었기에 제가 회수를 지시했습니다만,
  5298. 하나만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5299. 『……그걸 타츠야 공에게 알리지 않은 겁니까?』
  5300.  
  5301. 후타츠기 마이가 기가 막힌다는, 나무라는 어조로 말한다.
  5302.  
  5303. 『타츠야는 학업에 전념해줬으면 했으므로.』
  5304.  
  5305. 마야는 그 반응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누가 들어도 거짓말이라는 걸
  5306. 알 만한 변명을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5307.  
  5308. 『타츠야에게서 이번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혹여나 싶어
  5309. 확인했습니다만, 우리 가문이 확보한 패러사이트에 이상은 없었답니다.』
  5310.  
  5311. 그리고 결백을 주장한다.
  5312.  
  5313. 『그럼 다른 하나가 감.염.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까?』
  5314. 『결론을 서두르는 건 위험하겠죠. 감.염.원.에 대해선 정보가 너무나도 없소.』
  5315.  
  5316. 무츠즈카 아츠코가 경솔하게 앞질러 말하자, 야츠시로 라이조가
  5317. 제지한다.
  5318.  
  5319. 『사에구사 공이나 이츠와 공의 우려는 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5320. 지금은 알고 있는 문제에 대한 대책을 우선해야만 하는 것 아닌지?』
  5321. 『그렇네요. 그 말대로 라고 생각합니다.』
  5322.  
  5323. 라이조의 지적에 아츠코가 긍정한다.
  5324.  
  5325. 알고 있는 문제, 즉 미노루의 처우다.
  5326.  
  5327. 『……노사껜 죄송합니다만, 패러사이트로 판명된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5328. 『그렇겠지.』
  5329.  
  5330. 쿠도 레츠가 감정을 억누르는 게 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5331. 아들인 쿠도 마코토는 이렇게 의연한 태도를 취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5332.  
  5333. 미노루의 아버지이자 쿠도가의 당주인 마코토가 아니라 레츠가
  5334. 회의에 참석한 건, 겉으론 마코토가 쿠도가 내부 대응으로 바쁘기 때문이다.
  5335. 하지만 진실은 마코토는 대화가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
  5336.  
  5337. "숙주를 잃은 패러사이트는 새로운 숙주를 찾아 떠나는 게 확인됐습니다."
  5338.  
  5339. 그 상황에 타츠야가 주의를 환기했다.
  5340.  
  5341. 이 사실은 참가자 모두 알고 있을 터이지만, 새삼 떠올렸다는 표정을
  5342. 지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5343.  
  5344. 『그럼 정보체를 공격할 수 있는 마법사의 동원이 필수라는 건가?』
  5345.  
  5346. 고우키의 말에,
  5347.  
  5348. 『미노루 공을 죽이지 않고 무력화하는 게 더 안전한 것 아닌지?』
  5349.  
  5350. 타쿠미가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했다
  5351.  
  5352. 『저도 그 의견에 찬성합니다.』
  5353.  
  5354. 겐이 타쿠미의 의견을 지지했다.
  5355.  
  5356. 『타츠야 공은 봉인 방법을 아는 거지요?』
  5357.  
  5358. 화면 속에서 이사미가 물었다.
  5359.  
  5360. 『그 노하우는 내가 제공하지.』
  5361.  
  5362. 타츠야가 대답하기 전에 레츠가 그렇게 제안했다.
  5363.  
  5364. 『노사께서 말입니까?』
  5365. 『실례합니다만, 노사께선 어디서 패러사이트 봉인 방법을 알아낸 겁니까?』
  5366.  
  5367. 이사미가 반사적으로 질문하는 옆에서 고우키가 레츠에게 물어봤다.
  5368. 고우키의 시선엔 의혹이 깃들어 있었다. 스크린 너머임에도 느껴졌다.
  5369.  
  5370.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알고 계시겠지요. 우리 가문이 패러사이트 봉인에
  5371. 사용한 술식도 애초에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거니까요.』
  5372.  
  5373. 그 상황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마야가 끼어든다.
  5374.  
  5375. 고우키의 안광에서 확실하게 날카로움이 옅어졌다.
  5376.  
  5377. 『미노루 공을 사로잡을 때의 대처법은 노사께서 알려준다고 쳐도
  5378. 그 상황까지 이끌어가기 위한 대책 말입니다만…….』
  5379.  
  5380. 마이가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분위기를 수정하려고 말을 꺼냈다.
  5381.  
  5382. 『미노루 공의 표적은 사쿠라이 미나미 양. 이렇게 생각하면 되나요?』
  5383. "그의 최종적인 목표는 우리 집의 미나미라고 생각합니다."
  5384.  
  5385. 확인하는 의미가 강한 마이의 질문에 타츠야가 긍정했다.
  5386.  
  5387. 『그럼 도쿄의 병원에 있는 미나미 양 근처에서 망을 펼치는 게
  5388. 효과적이겠군요.』
  5389.  
  5390. 코이치가 뻔뻔하게 미나미를 인질로 쓰는 작전을 제시했다.
  5391.  
  5392. 『네, 그걸로 괜찮을 거라고 봅니다. 미나미 보호는 우리 쪽에서
  5393. 준비하도록 하죠.』
  5394.  
  5395. 마야는 이에 항의하는 대신에 점잔 빼는 미소로 매정한 대답을
  5396. 돌려줬다. 듣기에 따라선 '호위를 위해 사에구사가의 힘을
  5397. 빌릴 필요는 없다'라는 매우 신랄한 말이었다.
  5398.  
  5399. 이에 코이치가 눈살을 찌푸렸다.
  5400.  
  5401. "요츠바공. 우리 집안에서도 호위를 도와주고 싶습니다만."
  5402.  
  5403. 카츠토가 공기를 읽은 건지 아닌 건지 알기 힘든 제안을 꺼냈다.
  5404.  
  5405. 『병원 밖이어도 괜찮다면.』
  5406. "그걸로 괜찮습니다."
  5407.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5408.  
  5409. 코이치를 배제하고 마야와 카츠토 사이에서 얘기가 마무리 지어졌다.
  5410.  
  5411.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5412. 『미노루 공의 최종적인 목적은 사쿠라이 미나미 양이라고
  5413. 생각됩니다만, 쿠도가로 돌아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5414.  
  5415. 아츠코의 문제 제기에 타쿠미가 대답했다.
  5416.  
  5417. 미노루는 어제부터 행방불명이다. 쿠도가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5418. 계속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타쿠미는 이를 지적했다.
  5419.  
  5420. 『물론 집에 온다면 붙잡는다. 숨겨주지 않네.』
  5421.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5422.  
  5423. 레츠의 말에 마이가 달래는 어조로 말한다.
  5424.  
  5425. 『미노루 공은 건강이 불안정했습니다만 애초에 무척 뛰어난
  5426. 마법사였습니다. 패러사이트가 된 미노루 공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5427. 예측이 가지 않습니다. 괜찮다면 제 쪽에서도 사람을 보낼까 합니다만.』
  5428.  
  5429. 그리고 마이가 레츠에게 원군 파견을 제안했다.
  5430.  
  5431. 『필요하다면 저도.』
  5432.  
  5433. 이에 고우키가 편승했다.
  5434.  
  5435. 『고맙소. 그럼 후타츠기 공, 조력을 부탁해도 괜찮겠소?
  5436. 이치죠 공도 만약 원군이 필요해지면 힘을 빌려주면 고맙겠소.』
  5437. 『잘 알겠습니다.』
  5438. 『알겠소.』
  5439.  
  5440. 레츠가 화면 속에서 고개를 숙이자 마이와 고우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5441.  
  5442. "그럼 요츠바가가 사쿠라이 미나미 양의 호위. 사에구사가가
  5443. 미노루 공과 맞서 싸우고 포박. 우리 쥬몬지가는 사쿠라이 미나미 양의
  5444. 병원 밖에서 경비. 쿠도가의 원군으로 후타츠기가, 원군 2진으로
  5445. 이치죠가. 다른 가문은 각자 경계하는 것으로 괜찮겠습니까?"
  5446.  
  5447. 카츠토의 말에 차례차례 찬동했다.
  5448.  
  5449. 십사족의 방침은 그렇게 결정됐다.
  5450.  
  5451.  
  5452. ◇ ◇ ◇
  5453.  
  5454.  
  5455. 회의실 뒷정리는 마법협회 직원이 맡았다.
  5456.  
  5457. 타츠야는 카츠토와 함께 퇴실하고 엘리베이터 홀로 향했다.
  5458.  
  5459. 두 사람은 나란히 걷는 게 아니라 타츠야가 카츠토의 대각선으로
  5460. 한 걸음 뒤에 위치하고 있었다.
  5461.  
  5462. 바로 뒤에 있지 않은 건, 사각에 들어가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
  5463. 카츠토가 싫어한 게 아니라 타츠야 쪽에서 배려한 결과였다.
  5464.  
  5465.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없다. 둘 다 말없이 걷고 있다.
  5466.  
  5467. 그걸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은
  5468. 그들이 아니었다면 둘 중 하나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5469. 그 뒤로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서로 적의를 보이지 않은 만큼
  5470. 둘 다 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지. 혹은 전투를 자주 하는 사람의
  5471. 마음가짐일까.
  5472.  
  5473. 하지만 두 사람의 침묵은 엘리베이터 홀 사각에 숨어 있었던
  5474. 사람의 목소리로 깨졌다.
  5475.  
  5476. "쥬몬지 군, 타츠야 군, 회의는 끝난 거야?"
  5477. "사에구사……. 어째서 여기에?"
  5478.  
  5479. 저번 달 충돌의 당사자 중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경박하게
  5480. 말을 건 것은 마유미였다.
  5481.  
  5482. "신경 쓰였으니까."
  5483.  
  5484. 마유미의 어이없는 대답에 카츠토가 관자놀이를 누른다.
  5485.  
  5486. 그 마음은 잘 안다고 타츠야는 생각했다.
  5487.  
  5488. "회의는 끝났다."
  5489. "의외로 빨리 끝났네.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됐어?"
  5490.  
  5491. 카츠토는 아버지에게 물으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유미가
  5492. 그걸로 물러날 여성이 아니라는 걸, 그도 오래 알고 지내면서 알게 됐다.
  5493.  
  5494. "……여기서는 얘기할 수 없어."
  5495. "그럼 휴게실로 가자."
  5496.  
  5497. 마법협회 관동지부에는─교토 본부도 그렇지만─, 외부에
  5498. 새어나가는 걸 꺼려하는 상담을 하기 위한 개인실이 몇 개 준비되어 있다.
  5499. 마유미는 단골일 정도는 아니지만 이 개인실을 종종 이용했다.
  5500.  
  5501. "타츠야 군도."
  5502.  
  5503. 마유미가 한 번 말을 꺼내면 듣지 않는다는 건, 타츠야도 알고 있다.
  5504. 오늘은 이 다음에 특별한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미유키의
  5505. 하교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다.
  5506.  
  5507. "……알겠습니다."
  5508.  
  5509. 타츠야는 '기꺼이'는 아니었지만, 마유미의 제안에 응했다.
  5510.  
  5511.  
  5512.  
  5513. "타츠야 군도 홍차로 괜찮을까나?"
  5514. "선택은 맡기겠습니다."
  5515.  
  5516. 휴게실을 빌리고 마유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차를 끓이는 것이었다.
  5517.  
  5518. 음료수 취향은 타츠야에게만 물었다. 카츠토에겐 묻지 않았다.
  5519.  
  5520. 여러 가지로 의심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 타츠야였지만,
  5521. 귀찮아질 게 자명했기에 자중했다.
  5522.  
  5523. 마유미가 세 사람 몫의 홍차를 테이블에 늘여놓고 앉았다.
  5524. 포지션은 카츠토 맞은 편, 타츠야의 옆이다.
  5525.  
  5526. "차가워지기 전에 마셔."
  5527.  
  5528. 권유라는 이름의 강제를 받고 타츠야와 카츠토가 티컵에 입을 댔다.
  5529.  
  5530. 마유미가 끓인 홍차는 고등학생 시절보다 맛있었다.
  5531.  
  5532. 본인에게도 회심의 역작이었던 거겠지. 마유미는 기분 좋아진 표정으로
  5533. 컵을 내려놨다.
  5534.  
  5535. 모두 컵을 받침대에 올려놓자, 카츠토가 마유미를 바라봤다.
  5536.  
  5537. "그래서 뭐가 듣고 싶지?"
  5538.  
  5539. 카츠토의 질문에 마유미는 '전부'라고 대답했다.
  5540.  
  5541. "회의 테마가 뭐였는지 사에구사는 알고 있는 건가?"
  5542. "미노루 군이 패러사이트가 됐다."
  5543.  
  5544. 카츠토의 이어지는 질문에도 마유미는 바로 대답했다.
  5545.  
  5546. "그 대책, 맞지?"
  5547.  
  5548. 하지만 사태를 이해한 것치고 마유미의 어조는 가벼웠다.
  5549. 타츠야는 그게 신경 쓰였다.
  5550.  
  5551. "정말로 의미를 이해한 건가? 미노루 공과 나름대로 친했을 텐데."
  5552.  
  5553. 카츠토도 그 점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5554.  
  5555. "당연히 이해하고 있다고."
  5556.  
  5557. 마유미는 그 질문에 기대에 어긋난 반응이라며 심통 내지도 않고
  5558. 침착하게 대답했다.
  5559.  
  5560. "나도 저번 패러사이트 소동에 관여했다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5561.  
  5562. 덧붙인 마지막 말에 살짝 불만이 묻어나 있었다. 그 이외의 부분에서
  5563. 마유미는 냉정함 그 자체였다.
  5564.  
  5565. "……미노루가 패러사이트가 됐다는 걸 안다면, 결론도 쉽게
  5566. 상상이 가는 것 아닙니까?"
  5567.  
  5568. 당황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은 카츠토 대신에 타츠야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5569.  
  5570. "미노루 군을 붙잡아 봉인하거나 패러사이트를 떼어내어 처치하는 거잖아?
  5571. 하지만 구체적으로 대체 어떻게 붙잡을 거야?"
  5572.  
  5573. 타츠야와 카츠토가 눈짓을 주고받는다. 마유미에게 얘기해도 좋은지
  5574. 확인하고, 누가 얘기할지 상담.
  5575.  
  5576. 입을 연 건 카츠토였다.
  5577.  
  5578. "……미노루 공이 사쿠라이 미나미 양을 납치하러 오는 걸 기다려,
  5579. 매복해서 붙잡는다."
  5580. "쥬몬지 군이?"
  5581. "아니. 사에구사 공이 이 역할을 받아들였다."
  5582. "어, 우리 집……?"
  5583.  
  5584. 마유미의 냉정한 표정에 금이 생겼다. 하지만 곧 불쾌하게 일그러진 입술을
  5585. 사교적인 미소로 덧칠했다.
  5586.  
  5587. "사쿠라이 미나미 씨라는 거, 카스미 짱의 클래스메이트인
  5588. 『사쿠라이 씨』 맞지?"
  5589. "네. 미나미와 그쪽의 동생분은 클래스메이트입니다."
  5590.  
  5591. 타츠야는 평소처럼 '카스미'라고 편하게 부르지 않고, '동생분'이라는
  5592. 표현으로 대답했다.
  5593.  
  5594. "고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를 미끼로 쓰는 거야? 타츠야 군은
  5595. 그걸로 괜찮아?"
  5596.  
  5597. 마유미가 비난 어린 시선으로 타츠야를 봤다.
  5598.  
  5599. "우리의 생각과 상관없이 미노루는 또 미나미에게 올 겁니다."
  5600. "사쿠라이 양이 입원한 병원은 요츠바가, 병원 밖은 우리
  5601. 쥬몬지가가 경비한다. 사쿠라이 양의 안전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아."
  5602.  
  5603. 카츠토가 타츠야의 말을 보충했다.
  5604.  
  5605. "단단히 경계하면 아무리 미노루 군이라 해도 태평하게
  5606. 오진 않을 것 같은데?"
  5607. "그럴 경우 다른 책략을 생각하면 될 뿐이다."
  5608.  
  5609. 마유미가 제시한 우려에 카츠토는 단호히 대답했다.
  5610.  
  5611. "그래……."
  5612.  
  5613. 마유미의 목소리는 무뚝뚝했지만, 왠지 불만인 것 같았다.
  5614.  
  5615. "그래서 쥬몬지 군과 타츠야 군은 손을 잡고 이 사태의 해결에
  5616. 임한다는 거네?"
  5617.  
  5618. 마유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카츠토는 눈살을 찌푸렸다.
  5619.  
  5620. 하지만 타츠야는 '참견쟁이다'라며 그녀의 선량함에 대해
  5621.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5622.  
  5623. "이 건만이 아니라 쥬몬지가와 요츠바가는 십사족 일원으로서
  5624. 협력 관계입니다. 일.시.적.인. 대립을 계속 질질 끌지는 않습니다."
  5625. "그래……."
  5626.  
  5627. 방금 전과 같은 대답. 하지만 아까와 달리 마유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5628.  
  5629.  
  5630.  
  5631. [7]
  5632.  
  5633.  
  5634.  
  5635. 북아메리카 대륙 합중국 뉴맥시코주 로즈웰 외곽.
  5636.  
  5637. 여기에 스타즈 본부 기지가 있다.
  5638.  
  5639. 스타즈는 12개의 부대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부대가 독자적으로
  5640. 명령을 받고 출동하는 일도 많다. 원래 총대장인 리나는
  5641. 각 부대가 맡고 있는 임무를 전부 파악할 필요가 있지만,
  5642. 사실 리나에게 내용을 말하지 않은 임무도 많다.
  5643.  
  5644. 선대 시리우스는 스타즈를 완전히 파악했지만, 리나는 그 레벨에
  5645. 이르지 못했다. 그것보다 아직 한참 멀었다. 그녀는 장식뿐인
  5646. 총대장이라고 뒤에서 험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완전히
  5647.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5648.  
  5649. "오늘은 모든 부대가 있었지만……."
  5650.  
  5651. 방에서 샤워를 하고 파자마로 갈아입은 리나는 침대 위에서
  5652. 혼잣말 했다.
  5653.  
  5654. "저번 주엔 갑자기 제3부대와 제6부대가 어디론가 가버렸고.
  5655. 모르는 건 나만이 아니었으니까 아직 다행이지만."
  5656.  
  5657. 토요일 아침에 제3부대의 아르크투루스와 제6부대의 리겔의 모습이
  5658. 보이지 않아, 리나는 서둘러 카노프스에게 행방을 물어봤다.
  5659. 카노프스는 리나보다도 각 부대의 동향을 잘 파악하고 있어서
  5660. 그가 총대장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 정도이지만, 그 카노프스도
  5661. 아르크투루스와 리겔이 출동한 곳을 몰랐다.
  5662.  
  5663. 그 일은 리나만 소외된 게 아니라며 리나를 위로해줬지만,
  5664. 총대장의 지위를 등한시하는 사태는 변하지 않았다며
  5665. 다시 침울해졌다.
  5666.  
  5667. 평소에 머리 한 구석에 눌어붙어 있는 스트레스 원인이지만,
  5668. 오늘 밤은 왠지 두개골 안쪽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5669.  
  5670.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정도로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됐다.
  5671.  
  5672. ─대체 제3부대와 제6부대는 어디로, 뭘 하러 갔던 건가.
  5673.  
  5674. ─어째서 내게 출동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은 건가.
  5675.  
  5676. 신경 쓰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타이를 정도로 짜증이 일어났다.
  5677.  
  5678. ─나는 결국 전략급마법을 쓸 수 있을 뿐인, 힘이 강할 뿐인
  5679. 장식용 총대장인 건가.
  5680.  
  5681. 힘. 목적을 달성할 힘, Power가 아니라 장해물을 쓰러뜨릴 뿐인 Force.
  5682. 자신이 인정을 받은 건 결국 Force뿐……. 리나는 자조적으로
  5683.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5684.  
  5685. "……그야 나는 아직 17살 꼬맹이이고. 엄청나게 뛰어난 두뇌도 없고.
  5686. 애초에 그렇게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부대 지휘 교육 같은 거
  5687. 제대로 받은 적도 없고. 키도 작고. 동안이고."
  5688.  
  5689. 어느 샌가 리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푸념으로 더욱 침울해지는
  5690. 마이너스 스파이럴에 빠져버렸다. 자기 연민은 좋지 않다고
  5691. 이성이 경고를 했지만, 스스로 멈출 수 없었다.
  5692.  
  5693. "하지만 출동 이유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잖아. 자리를 비울 거라면
  5694. 미리 보고하라고. 예정 변경 여파는 『총대장』에게 오니까."
  5695.  
  5696. 혼잣말이 멈춘다.
  5697.  
  5698. "내가 총대장이라 불만이라면 언제든 그만 둬 주겠다고.
  5699. 믿음직하지 못한 총대장이라 미안하네. 하지만 내가 스스로
  5700. 지원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지."
  5701.  
  5702. 리나는 이불을 말고 안으로 들어가, 음성 커맨드로 방의 조명을 껐다.
  5703. 설령 듣는 사람이 없다 해도 불평을 토로하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5704. 게다가 자학의 늪에서 발버둥치는 것도 지쳐버렸다.
  5705.  
  5706.  
  5707.  
  5708. 그날 밤 리나는 그리운 꿈을 꿨다.
  5709.  
  5710. 사실로만 본다면 그다지 좋은 꿈은 아니다.
  5711.  
  5712. 잠입한 제1고교의 뒷산에서 패러사이트를 차례차례 죽인 기억.
  5713.  
  5714. 패러사이트를 발견한다.
  5715.  
  5716. 이동마법을 건 나이프로 목을 뒤통수에서 꿰뚫는다.
  5717.  
  5718. 패러사이트가 습격해 온다.
  5719.  
  5720. 플라스마화 공기의 포탄으로 꿰뚫는다.
  5721.  
  5722. 패러사이트를 발견한다.
  5723.  
  5724. 마법으로 쓰러뜨린다.
  5725.  
  5726. 패러사이트가 습격해 온다.
  5727.  
  5728. 마법으로 쓰러뜨린다.
  5729.  
  5730. 어느 샌가 꿈은 반복됐다.
  5731.  
  5732. 공격하는 패러사이트를 쓰러뜨린다. 마치 좀비 플래시 게임 같았다.
  5733.  
  5734. 패러사이트를 몰살하며 리나는 목을 비틀었다.
  5735.  
  5736. ─타츠야와 미유키는 언제 등장하지?
  5737.  
  5738. 등장인물이자 관객이기도 한, 그 꿈의 독특한 다중 시점 속에서
  5739. 관객쪽 의식이 의아함을 느꼈다.
  5740.  
  5741. 그 때 자신은 타츠야와 함께 패러사이트와 싸웠다. 리나는 이를
  5742. 잊지 않았다.
  5743.  
  5744. 잊을 수 없다.
  5745.  
  5746. 마지막에 도움을 받은 건 의도한 게 아니었지만, 대등한 시선에서
  5747. 함께 싸우는 동료가 있다는 감각은 나쁘지 않았다.
  5748.  
  5749. 사실 '동료'가 아니라 '적'이었을 터이지만.
  5750.  
  5751. 타츠야는 대등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었던 것 같은 기분도
  5752. 들지만.
  5753.  
  5754. 그저,
  5755.  
  5756. 타츠야와 미유키는 리나를 '꼬맹이'라며 깔보지 않았다.
  5757.  
  5758. 타츠야와 미유키는 리나를 '13사도'라며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5759.  
  5760. 같은 나이니까 '꼬맹이' 취급하지 않은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기뻤다.
  5761.  
  5762. 타츠야는 헤비 메탈 버스트를 뛰어넘는 전략급마법의 사용자니까
  5763. 특별 취급할 이유도 없었던 거겠지만, 그걸 안 지금도
  5764. 대등하게 대해줘서 기뻤다는 마음은 옅어지지 않았다.
  5765.  
  5766. 일본 체재 중에 자기 자신의 마음임에도 그런 감정을 품었다는 걸
  5767. 인정하지 않았다.
  5768.  
  5769. 하지만 '연상 부하'로만 가득한 환경으로 돌아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5770. 솔직하게 인정하게 됐다. ─실제로 타츠야 앞에 서면 또 고집을 피우겠지만.
  5771.  
  5772. 옆에 미유키가 없다.
  5773.  
  5774. 옆에 타츠야가 없다.
  5775.  
  5776. 그 사실에 살짝 쓸쓸함을 느끼면서, 그 쓸쓸함을 얼버무리는 것처럼
  5777. 리나는 계속 패러사이트를 쓰러뜨렸다.
  5778.  
  5779.  
  5780. ◇ ◇ ◇
  5781.  
  5782.  
  5783. '─총대장의 정신에 침입할 수 없어.'
  5784. '─총대장에겐 정신계 마법 적성이 없었던 게 아닌가?'
  5785. '─총대장에게 루나 매직 적성은 없을 터다.'
  5786. '─그럼 어째서 침입할 수 없지?'
  5787. '─어째서 침입할 수 없지?'
  5788. '─되받아치고 있어.'
  5789. '─쓰러뜨릴 수 없어.'
  5790. '─격퇴할 수 없어.'
  5791.  
  5792. 밤의 어둠 속에 모기장에서 들려오는 날개소리 같은 술렁임이 가득 찬다.
  5793.  
  5794. 육체적 귀로는 들리지 않는 소리다.
  5795.  
  5796. 정신체끼리 교환하고 공유하는 소리─ 대화다.
  5797.  
  5798. 패러사이트끼리 상담하는 소리. 자.문.자.답.의 목소리.
  5799.  
  5800. '─총대장 동화는 어렵다.'
  5801. '─총대장 동화는 불가능하다.'
  5802. '─총대장은 위험하다.'
  5803. '─그녀는 위험하다.'
  5804. '─그녀는 우리의 적이 되겠지.'
  5805. '─그녀는 배제해야만 한다.'
  5806. '─그녀를 배제하자.'
  5807.  
  5808. 술렁거림은 이윽고 하나의 목소리가 됐다.
  5809.  
  5810.  
  5811. ◇ ◇ ◇
  5812.  
  5813.  
  5814. 6월 18일 화요일. 시간은 아직 오전 5시도 되지 않았다.
  5815.  
  5816. 아무리 군인이라 해도 미션 중이 아니라면 아직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5817.  
  5818. "꿈 때문일까……."
  5819.  
  5820. 날이 밝기도 전에 잠에서 깬 리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5821.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5822.  
  5823. 어떤 꿈이었는지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좋은 꿈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5824. 스트레스 발산에는 도움이 된 기분이 든다. 적어도 기분은
  5825. 잠들기 전에 비하면 개운해졌다.
  5826.  
  5827. 원래 리나는 잠에서 잘 깨는 타입이 아니다. 홈오토메이션으로 끓인
  5828. 쓴 커피를 억지로 넣어 강제적으로 의식을 각성시키는 게 최근 습관이다.
  5829.  
  5830. 하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6월.
  5831. 한낮에 80도(섭씨 27도)를 넘는 것도 당연한 계절이지만,
  5832. 해 뜨기 전인 이 시간대라면 고작 60도(섭씨 16도) 정도.
  5833. 산책하기에 알맞다.
  5834.  
  5835. 리나는 그 생각을 즉시 실행으로 옮겼다.
  5836.  
  5837.  
  5838.  
  5839. 그렇지만 리나는 한창 나이 때의 소녀. 자신의 방에서 나가기 전에
  5840. 해야만 하는 일이 많다. 미션 중인 게 아니니까 대충하고
  5841. 둘러댈 변명거리도 없다.
  5842.  
  5843. 몸단장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을 때, 하늘은 이미 하얗게 되고 있었다.
  5844.  
  5845. 그럼에도 아직 기지 부지 내에 움직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5846. '전혀 없었다'가 아닌 건, 당직 병사나 경비원이 깨어 있기 때문이다.
  5847. 종종 마주친 근무 중인 그들의 모습에 마.음.속.으.로. '수고하네'라고
  5848. 말을 걸며, 리나는 훈련용 그라운드를 돌아서 기지 밖과 안을 구분하는
  5849. 펜스 앞까지 갔다.
  5850.  
  5851. 여긴 USNA의 구 본국.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 세력의 손길도
  5852. 여기까진 닿지 않는다. 분쟁 지대처럼 펜스 앞에 서 있어도
  5853. 저격을 당할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럴 터이다.
  5854.  
  5855. 살의는 소리도 없이 찾아왔다. 보이지 않는 저격을 피한 건,
  5856. 완전히 우연이었다.
  5857.  
  5858. 아니, 피했다고도 할 수 없겠지.
  5859.  
  5860. 고에너지 레이저는 리나의 환영을 뚫고 안쪽에서 펜스를 태웠다.
  5861.  
  5862. 때 마침 리나가 산책할 겸 자주적 트레이닝으로 『퍼레이드』를
  5863. 1야드(0.9미터) 떨어진 곳에 전개해두지 않았다면, 저격은
  5864. 리나의 즉사라는 형태로 성공됐겠지.
  5865.  
  5866. 하지만 리나가 쇼크를 받은 건, 하마터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5867. 아니었다. 물론 저격을 인식했을 때에는 식은땀을 흘렸고,
  5868. 목숨을 건졌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5869. 하지만 그녀의 마음에 충격을 준 건, 그게 기지 안에서 온
  5870. 공격이었다는 점이었다.
  5871.  
  5872. "반란!?"
  5873.  
  5874. 시간차로 다가오는 대인 미사일을 이동마법으로 튕겨내고,
  5875. 열과 파편을 마법장벽으로 막으면서 저격 사선을 되짚어가
  5876. 창고 옥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5877.  
  5878. "잭!? 역시!"
  5879.  
  5880. 거기에 엎드려 쏘기 자세로 라이플 같은 걸 쥔 남성의 모습이 있었다.
  5881.  
  5882. 창고까지 거리는 백 미터 이상이나 된다. 아직 어렴풋하게 어두워서
  5883. 육안으로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5884.  
  5885. 하지만 그 남자가 방출한 사이온 파동은 분명 리나가 알고 있는
  5886. 스타즈 대원의 것이었다.
  5887.  
  5888. 스타즈 제3부대 일등성급 대원 제이콥 레굴루스 중위.
  5889. 애칭은 잭.
  5890.  
  5891. 특기 마법은 라이플과 닮은 무장 디바이스로 쏘는
  5892. 고에너지 적외선 레이저탄 『레이저 스나이핑』.
  5893.  
  5894. 방금 전에 리나를 공격한 것은 그야 말로 『레이저 스나이핑』이었다.
  5895.  
  5896. "잭! 어째서 날 노리는 겁니까!?"
  5897.  
  5898. 대답은 없다.
  5899.  
  5900. 높아지는 마법 기척에 리나는 전자파 반사 마법 『미러 실드』를
  5901. 전개했다.
  5902.  
  5903. 『레이저 스나이핑』의 광탄을 『미러 실드』로 반사한다.
  5904. 『레이저 스나이핑』은 소리도 없고 사용한 총알도 남지 않는
  5905. 저격에 적합한 마법이지만, 발사까지 1초 정도 시.간.을. 끌.
  5906. 필요가 있다는 결점이 있다. 마법 발동에 필요한 시간이 아니라
  5907. 빛의 증폭에 필요한 시간이다. 마법 발동 기척을 탐지하고 전개한 실드로
  5908. 튕겨낼 수 있었던 건, 이 성질 덕분이다.
  5909.  
  5910. 『미러 실드』는 실드 너머에서 오는 전자파를 전부 반사한다.
  5911. 당연히 가시광선도. 실드를 펼치는 와중 적의 모습은 실드에 가려져
  5912. 보이지 않는다.
  5913.  
  5914. 『미러 실드』를 해제했을 때, 창고 옥상에 레굴루스의 모습은 없었다.
  5915. 리나는 마법 탐지를 최고 레벨로 올리고 창고 쪽으로 달려갔다.
  5916.  
  5917. 그녀의 탐지에 마법을 두른 비행물이 걸렸다. 스타즈의
  5918. 전투 마법사가 공유하고 있는 마법 『댄싱 브레이즈』다.
  5919.  
  5920. "알렉!?"
  5921.  
  5922. 이 『댄싱 블레이즈』에 깃든 사이온 파동은 알렉─
  5923. 알렉산더 아르크투루스 대위의 것이었다. 리나의 마법 감각은
  5924. 그녀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5925.  
  5926. 리나가 『영역간섭』을 펼친다. 자신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게 아니라,
  5927. 날아오는 네 자루의 나이프에 겹쳐 자신의 사상 간섭력을 부딪친다.
  5928.  
  5929. 용솟음치는 것처럼 나선궤도로 리나에게 다가오던 나이프는
  5930. 컨트롤을 잃고 내팽개치는 것처럼 지면으로 떨어졌다.
  5931.  
  5932. "제3대 대장인 알렉까지 반란에 가담했다는 거야!? 그게 아니면……."
  5933.  
  5934. 그게 아니면 자신을 향한 개인적인 원한인가.
  5935.  
  5936. 리나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혼잣말이라지만 그 의문을
  5937. 확실하게 입으로 내뱉는 건, 아직 17살인 소녀에게는 힘들었다.
  5938.  
  5939. 자신이 질투를 받는 입장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리나는
  5940. 스타즈의 동.료.와 잘 지낼 생각이었다. 제4대의 베가나 데네브는
  5941. 자주 비아냥거리긴 했지만, 진심으로 미워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5942.  
  5943. 하지만 지금 그녀는 끙끙대며 고민할 틈이 없었다.
  5944.  
  5945. 추격 『댄싱 블레이즈』가 다가온다.
  5946.  
  5947. 이번엔 네 자루가 아니라 한 자루. 단 질량은 훨씬 크다.
  5948.  
  5949. '토머호크!?'
  5950.  
  5951. 이 공격은 영역간섭으로 무력화할 수 없다.
  5952.  
  5953. 아르크투루스는 백인과 흑인과 원주민의 하이브리드이며,
  5954. 혈통적으로는 원주민 쿼터이지만 마법 부분에서는 그 피를
  5955. 강하게 이어받았다.
  5956.  
  5957. 세계적으로 고식마법 중 무장에 '마음'을 쏟아 부어 마법적으로 강화해
  5958. 다른 사람의 마법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술식이 자주 보인다.
  5959. 아메리카 원주민의 마법에도 그 술식이 있었다.
  5960.  
  5961. 그리고 아르크투루스는 그 기술을 사용해 강화한 한손용 도끼를
  5962. 대 마법사 전투의 비장의 수단으로 쓰고 있다. 백병전 무기로서도
  5963. 이용하지만, 오로지 이동계 마법을 투척 무기에 담아 사용하는 방식이
  5964. 아르크투루스의 장기이다. 그의 토머호크 공격은 리나의 영역 간섭으로도
  5965. 떨어뜨릴 수 없다.
  5966.  
  5967. 그걸 아는 리나는 수평으로 날.아. 피했다. 지면에 아슬아슬하게
  5968. 닿는 높이에서 한 번에 20미터 정도 미끄러지는 것처럼 이동했다.
  5969. 착지하자마자 『미러 실드』를 다시 전개. 착탄의 느낌과 동시에
  5970. 리나는 차폐물을 찾아 달렸다.
  5971.  
  5972. 차폐물이나 사격용 타깃이 산재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멀리 잘 보이는
  5973. 그라운드다. 여기선 그녀가 좋은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5974.  
  5975. 리나는 특수 차량 격납고로 뛰어갔다.
  5976.  
  5977. 특수 차량이라고 해도 중기나 전차는 아니다. 마법을 이용해
  5978. 단거리라면 날아갈 수 있는 자동차라든지 해저를 달리는 왜건이라든지
  5979. 라이딩 슈트와 일체화해 강화 외골격으로 변형하는 바이크라든지
  5980. 일부 실용성을 도외시한 실험 병기가 격납되어 있는 창고이다.
  5981.  
  5982. 리나는 오늘은 비행 기능이 달린 자동차의 장거리 주행 테스트를 한다고
  5983. 들었다. 문이 열려 있는 건 경비원이 출입했기 때문이겠지.
  5984.  
  5985. "시리우스 소령입니다!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여기서 피난해주세요!"
  5986.  
  5987. 격납고에 굴러 들어갔을 때 이미 리나는 '안지 시리우스'의 환영을
  5988. 두르고 있었다. '훈련용 전투복을 입고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5989.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리나는 격납고 내부의 상황을 확인하지 않고
  5990. 외쳤다. 실비의 지.적.으로 사둔 '여자아이다운 옷'으로는
  5991. 폼이 살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5992.  
  5993. 리나에겐 정비원이 도망쳤는지, 애초에 격납고 안에 사람이
  5994. 남아 있는지 확인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격납고 입구 오른쪽에서
  5995. 한쪽 무릎을 꿇고 조심조심 밖의 상황을 살펴봤다.
  5996.  
  5997. 그 무엇도 놓치지 않도록 신경을 갈고닦고, 외부의 저격을 받지 않도록
  5998. 신중하게 적을 탐색했다.
  5999.  
  6000. 리나는 침착하게 사건에 대응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6001. 냉정과 먼 정신 상태였다.
  6002.  
  6003. 방에서 나올 때 프라이빗용 정보단말과 사관용 정보단말을 바꿔서
  6004. 잘못 들고 나온 건 너무나도 멍청한 짓이었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은
  6005.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아직 근무 시간이 아니니까 이런 사태가
  6006. 벌어지지 않았다면 문제가 없었을 터이다. 그런 탓에 기지 사령부와
  6007. 연락을 취할 수 없는 건, 자업자득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었지만,
  6008. 어쩔 수 없다.
  6009.  
  6010. 하지만 머리 바로 위의 벽에 붙어 있는 전화기를 눈치 채지 못한 건,
  6011. 조금 멍청한 짓이었다. 기지 사령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6012. 그저 그 행위만으로 향후 전개는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6013.  
  6014. 리나의 주의는 격납고 밖을 향해 있다. 하지만 애초에 그녀는
  6015. 아르크투루스가 어디에 있는지 한 번도 파악하지 못했다.
  6016.  
  6017. 게다가 적은 레굴루스와 아르크투루스 두 사람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6018.  
  6019. 뒤에서 굴러오는 수류탄에 대응한 건, 우연에 가까웠다.
  6020.  
  6021. 격납고 벽은 폭발을 견뎠다. 그 탓에 오히려 갖은 파편이
  6022. 리나에게 쏟아졌다.
  6023.  
  6024. 마법 실드 속에서 폭발과 그 여파를 견딘 리나는 돌아보고
  6025. 깨끗해진 시야 속에서 범인을 찾아냈다.
  6026.  
  6027. "레일라! 당신도!?"
  6028.  
  6029. 스타즈 제4부대 일등성급 레일라 데네브 소위. 북유럽계의 장신이며
  6030. 글래머러스한 여성이 리나를 증오스럽게 노려본다.
  6031.  
  6032. "친근하게 레일라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이 배신자!"
  6033. "배신!? 무슨 말입니까!"
  6034. "시치미 떼지 마, 단념하라고!"
  6035.  
  6036. 데네브가 오른손에 쥔 나이프를 치켜들었다. 그 직후 변.신. 전의 리나를
  6037. 키로 10센티미터 넘게 상회하는─가슴과 엉덩이 사이즈도 똑같이 상회하는─
  6038. 여성이 눈앞에 서 있었다.
  6039.  
  6040. 내려오는 전투용 나이프.
  6041.  
  6042. 반사적으로 이동마법을 발동한 리나가 격납고 입구의 반대쪽에 출현했다.
  6043.  
  6044. 소음기로 억누른 총소리와 리나의 실드에 맞아 바닥에 떨어지는
  6045. 짜부라진 총알.
  6046.  
  6047. 데네브가 혀를 찬다. 나이프와 권총 콤비네이션은 그녀의 특기 마법이다.
  6048.  
  6049. 리나가 이동 마법과 동시에 마법 실드를 펼친 건, 그걸 기억하고 있었기에
  6050. 불과하다.
  6051.  
  6052. "시치미 떼는 게 아닙니다! 제가 언제 배신했다는 겁니까!?"
  6053.  
  6054. 실드를 펼친 상태로 리나가 외친다.
  6055.  
  6056. "뻔뻔하네. 그럼 확실하게 말해주지. 너는 총대장의 지위를 갖고 있으면서
  6057. 남자에게 홀려 제6부대를 일본에 팔아넘겼다!"
  6058. "제6부대? 란디네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겁니까!?"
  6059.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다는 거네."
  6060.  
  6061. 그 목소리는 리나의 뒤에서 들렸다.
  6062.  
  6063. 서둘러 뒤를 돌아보는 리나.
  6064.  
  6065. 즉시 데네브가 뒤에서 쏜 총알은 다시 대물 실드로 튕겨냈다.
  6066. 데네브가 총알에 첨가한 관통 마법─방해물을 뚫고 전진하는 이동 마법─보다도
  6067. 리나의 실드 마법의 사상 간섭력이 훨씬 뛰어났기에 가능한 결과다.
  6068.  
  6069. 하지만 새로운 등장인물의 공격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왔다.
  6070.  
  6071. 리나의 몸이 실드째로 끌려올라간다.
  6072.  
  6073. 리나에게 이동 마법이나 가속 마법을 건 게 아니다. 극소적
  6074. 중력 반전 마법이다. 리나를 중심으로 반경 1미터의 원형 안의 중력이
  6075. 역전 증폭된 것이다.
  6076.  
  6077. 리나는 자유낙하의 10배의 가속도로 격납고 천장에 처박혔다.
  6078.  
  6079. 천장은 부서지지 않았다. 기세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소리를 내며
  6080. 흔들릴 뿐이었다. 리나가 반사적으로 자신의 관성을 중화했다.
  6081. 그게 효과가 있었던 거다.
  6082.  
  6083. 하지만 완벽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충격을 받고 리나가 낙하했다.
  6084.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10배의 가속도가 작용했다.
  6085.  
  6086. 하지만 리나가 아픔을 견디고 자기 자신에게 감속 마법을 걸었다.
  6087. 그 이상 데미지를 받는 일 없이 그녀는 바닥으로 복귀했다.
  6088.  
  6089. 그것만이 아니다. 낙하 도중에 공중에서 공기탄을 흩뿌렸다.
  6090. 살상력은 부족했지만 적을 견제할 순 있었다.
  6091.  
  6092. "샤르……."
  6093.  
  6094. 착지한 리나가 무너질 것 같은 다리를 지탱하며 자신을
  6095. 천장에 처박은 샤르─ 셜롯 베가 대위를 노려봤다.
  6096.  
  6097. "호오……. 확실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시리우스네.
  6098. 그 마법력만.은 이름에 걸맞다고 인정해줄게."
  6099.  
  6100. 방금 전 공방으로 리나의 『퍼레이드』는 풀렸다. 선명한 금발벽안에
  6101. 늠름함보다 귀여움을 두른 미소녀가 괴롭게 숨을 헐떡인다.
  6102. 그걸 보고 베가의 입술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떠올랐다.
  6103.  
  6104. "하지만 꽤 괴로워 보이네. 남자에게 홀려 부하를 판 배신자에게
  6105. 어울리는 꼴이야."
  6106. "그러니까! 배신 따위 모릅니다! 제6부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6107. 남자라니 대체 무슨 소립니까!?"
  6108. "너, 아직도!"
  6109.  
  6110. 결백을 주장하는 리나에게 데네브가 분노했다.
  6111.  
  6112. "상관없잖아. 가르쳐주자고."
  6113.  
  6114. 하지만 베가가 데네브를 제지했다.
  6115.  
  6116. 그리고 리나를 조소하는 시선으로 봤다.
  6117.  
  6118. "당신에게 걸린 용의는 일본 공작원과 내통해서 마이크로 블랙홀 실험을
  6119. 재실시하도록 꾀하고, 경비로 파견된 제6부대 세 사람을 일본이 획책한
  6120. 인체실험의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거야. 일본의 전략급마법사,
  6121. 시바 타츠야에게 농락당해서 말이지!"
  6122. "타츠야에게!?"
  6123.  
  6124. 리나가 그 부분에 반응해버린 건, 뜻밖이라는 생각을 억누를 수
  6125. 없었기 때문이었다.
  6126.  
  6127. 하지만 베가와 데네브가 볼 땐 그야말로 허니 트랩에 걸려
  6128. 배신했다는 증거였다.
  6129.  
  6130. "그래. 란디, 이안, 샘 세 사람은 밤에 정신을 잃고 폭주하다가
  6131. 격리 보호됐다고. 그들은 당신 때문에 패러사이트가 들러붙었다고!"
  6132.  
  6133. 란디─ 올랜도 리겔 대위.
  6134.  
  6135. 이안─ 이안 벨라트릭스 소위.
  6136.  
  6137. 샘─ 사무엘 알닐람 소위.
  6138.  
  6139. 스타즈 제6부대, 통칭 오리온 팀의 이름을 애처롭게 부르고,
  6140. 베가는 리나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6141.  
  6142. "패러사이트라고요……?"
  6143.  
  6144. 쇼크를 받아 우뚝 서 있는 리나의 모습도 베가에겐 뻔뻔한 연기로만 보였다.
  6145.  
  6146. "배신자에겐 죽음을! 당신이 시리우스로서 처단해야만 했던 대원들과
  6147. 같은 결말을 선사하도록 하지!"
  6148.  
  6149. 바로 리나가 자세를 다시 잡았다. 하지만 제6부대가 패러사이트에게
  6150. 빙의됐다는 말을 듣고 생겨난 틈은 너무나도 컸다.
  6151.  
  6152. 리나는 격납고 안쪽에서 나타난 베가 쪽을 보고 있다.
  6153.  
  6154. 입구와 등지고 있다.
  6155.  
  6156. 그리고 지금 격납고 밖에서 회전하는 토머호크가 리나의 등을 노렸다.
  6157.  
  6158. 아르크투루스의 공격이 격납고로 침입하려고 했을 때.
  6159.  
  6160. 50미터 이상으로 뻗은 분자 디바이더의 날이 마법으로 강화된
  6161. 토머호크를 잘라버렸다!
  6162.  
  6163. "총대장님! 무사하십니까!?"
  6164.  
  6165. 1초 미만의 타임래그를 두고 격납고 입구에 나타난 커다란 몸집의 인영.
  6166.  
  6167. "벤!"
  6168. "카노프스 소령……."
  6169.  
  6170. 리나와 베가가 각자의 표현으로 그 인물의 이름을 불렀다.
  6171.  
  6172. "소령, 당신은 이 배신자의 편을 드는 겁니까?"
  6173. "총대장님은 배신 따위 하지 않았다. 베가 대위, 그대는
  6174. 패러사이트에게 속고 있어!"
  6175.  
  6176. 베가의 규탄에 카노프스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되받아쳤다.
  6177.  
  6178. "하아? 속고자시고 나는 보호된 란디네와 얘기한 적 없다고."
  6179. "그게 아니다! 패러사이트는!"
  6180.  
  6181. 카노프스는 그 말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6182.  
  6183. 자신을 공격하는 고에너지 레이저와 자유로운 곡선을 그리며
  6184. 날아오는 새로운 토머호크를 튕겨내기 위해.
  6185.  
  6186. 격납고 안에 갑자기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오늘 쓸 예정이었을 터인
  6187. 실험용 차량이 급발진해서 리나와 베가를 향해 돌진해온다.
  6188.  
  6189. 좌우로 갈라져 리나와 베가가 뛰었다.
  6190.  
  6191. 리나 옆에 급정지한 차의 오른쪽 앞문이 기세 좋게 열렸다.
  6192.  
  6193. "총대장님, 타세요!"
  6194. "하디!?"
  6195.  
  6196. 조수석에서 부른 건 스타즈 제1부대 이등성급 대원 랄프
  6197. 하디 미르파크 소위였다.
  6198.  
  6199. 리나는 반사적으로 그 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6200.  
  6201. 미르파크가 운전 콘솔째 왼쪽으로 피했다. 이 실험용 차량은
  6202. USNA처럼 왼쪽 운전석인 나라만이 아니라 영국처럼
  6203. 오른쪽 운전석인 나라에서도 쓸 수 있도록 운전 콘솔을
  6204. 좌우로 움직일 수 있고, 앞좌석도 중간에 나누는 부분이 없고
  6205. 쭉 연결되어 있다. 또한 페달도 없다.
  6206.  
  6207. 리나가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미르파크가 차를 발진시켰다.
  6208.  
  6209. "총대장님, 일단 기지 밖으로 탈출합니다!"
  6210. "네?"
  6211.  
  6212. 당연히 리나에겐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6213.  
  6214. "카노프스 대장의 지시입니다!"
  6215.  
  6216. 하지만 그녀가 가장 신뢰하는 카노프스의 의견이라는 걸 알자
  6217. 리나는 반론이 막혀버렸다.
  6218.  
  6219. 또한 반론할 여유도 없었다.
  6220.  
  6221. 이 차는 픽업트럭 형태이다.
  6222.  
  6223. 그 짐칸에서 쿵 하고 무거운 소리가 들렸다.
  6224.  
  6225. "멈춰!"
  6226.  
  6227. 자신을 고속 이동시키는 마법이 특기인 데네브가 유사 순간이동으로
  6228. 짐칸에 올라탄 거다.
  6229.  
  6230. "안 멈춘다고."
  6231.  
  6232. 하지만 곧 데네브는 차에서 떨어지게 됐다.
  6233.  
  6234. 짐칸에 몰래 탑승한 젊은 남자가 그녀에게 달려들어 함께 굴러 떨어졌다.
  6235.  
  6236. "랄프!?"
  6237.  
  6238. 데네브를 길동무 삼아 차량 밖으로 굴러떨어진 건, 미르파크와 똑같이
  6239. 스타즈 제1부대 이등성급 대원 랄프 알골 소위였다.
  6240.  
  6241. "여긴 알골 소위에게 맡기죠! 흔들릴 테니까 조심해주세요!"
  6242.  
  6243. 미르파크의 말에 리나가 서둘러 시트벨트를 착용했다.
  6244.  
  6245. 픽업트럭이 날았다.
  6246.  
  6247. 기지 펜스를 넘어 착지. 그대로 앨버커키를 향해 달렸다.
  6248.  
  6249.  
  6250.  
  6251. "하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6252.  
  6253. 기지가 보이지 않게 되자 한숨 돌린 거겠지. 리나는 운전 중인
  6254. 미르파크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6255.  
  6256. "정확한 시간은 모릅니다만 다섯 시 전후로 제3부대 아르크투루스 대위와
  6257. 레굴루스 중위가 주모자인 반란이 발생했습니다. 그 밖에 현시점에서
  6258. 반란에 가담했다고 판단된 대원은 제4부대의 베가 대위, 스피카 중위,
  6259. 데네브 소위, 제6부대의 리겔 대위, 벨라트릭스 소위, 알닐람 소위,
  6260. 제11부대의 안타레스 소령, 사르가스 중위입니다."
  6261. "잠깐 기다려주세요! 샤르가 제6부대의 란디 일행이 패러사이트에게
  6262. 빙의됐다고 했습니다만, 거짓말이죠!?"
  6263. "……유감스럽게도 사실이라고 추정됩니다. 제6부대의 세 사람만이 아닙니다.
  6264. 제3부대의 두 사람과 제11부대의 두 사람도 패러사이트가 됐을 거라고
  6265. 추측됩니다."
  6266. "그럴 리가!?"
  6267. "우리에게 이 정보를 준 건, 제11부대의 샤우라 소위입니다.
  6268. 그녀가 안타레스 소령과 사르가스 중위의 이상을 깨닫고
  6269. 카노프스 대장에게 지시를 부탁했습니다."
  6270.  
  6271. 제11부대는 전부 정신간섭계 마법이 특기이지만, 샤우라 소위는
  6272. 프시온 파동에 대한 감수성과 정신간섭계 마법에 대한 방어가
  6273. 특히 뛰어났다. 그녀가 패러사이트에게 침식당하지 않고
  6274. 가장 먼저 그 암약을 탐지한 건, 설득력이 있었다.
  6275.  
  6276. "그, 총대장님은 방에 안 계셨던 모양이라."
  6277.  
  6278. 미르파크가 변명처럼 덧붙인다. 리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기보다
  6279. 눈치 채지 못했지만, 총대장인 리나가 아니라 제1부대 대장인
  6280. 카노프스에게 상담하러 간 걸, 리나가 불쾌하게 생각한 게 아닐까 라고
  6281. 착각한 거다.
  6282.  
  6283. "저랑 알골 소위가 긴급 소집을 받아 대장의 방에 모인 직후,
  6284. 안타레스 소령의 『히프노스 가든』이 발동. 우리는
  6285. 샤우라 소위의 『루나 이클립스』으로 재난을 피했습니다만,
  6286. 우리 이외의 숙소 일대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무력화됐습니다."
  6287.  
  6288. 안타레스가 사용한 『히프노스 가든』은 영역 안의 인간을 재우는
  6289. 계통 외 마법. 광범위에 흩어져 있는 불특정 다수가 대상인 만큼
  6290. 강제력이 그렇게 높지 않다. 예를 들면 전투로 인해 흥분 상태인 병사를
  6291. 재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 대신에 수면 중인 사람이 각성하지 못하도록
  6292. 만들거나, 막 잠에서 깬 사람, 피로가 축적된 사람을 전부 다 재울 때는
  6293. 높은 효과를 발휘한다.
  6294.  
  6295. 반면에 샤우라 소위가 사용한 『루나 이클립스』는 아메리카에서
  6296. 『루나 매직』이라고 불리는 전투용 정신계 마법에 의한 공격을
  6297. 정신 레벨에서 표적을 놓치게 만들어 무력화시키는 실드 마법이다.
  6298. 그녀가 패러사이트의 동화를 피한 것도 반사적으로 전개한
  6299. 『루나 이클립스』 덕분이었다.
  6300.  
  6301.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6302.  
  6303. 리나의 말이 불안감으로 떨리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6304. 항상 스타즈의 백업을 받고 활동해왔다. 현재 상황에서
  6305. 이를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장비도 돈도 없는 상태에서
  6306. 항성급 마법사를 몇 명이나 상대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6307.  
  6308. 리나의 목소리가 들린 건 아니겠지만, 마치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6309. 미르파크의 가슴 포켓에서 메일 착신음이 울렸다. 미르파크는
  6310. 차를 자동 운전으로 바꾸고 포켓에서 단말을 꺼냈다.
  6311.  
  6312. 그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이는 건, 암호를 해제하기 위해서인가.
  6313. 상당히 복잡한 암호로 짠 모양이었다.
  6314.  
  6315. 간신히 다 해독한 메시지를 미르파크가 굳은 표정으로 읽었다.
  6316.  
  6317. 그는 다 읽은 단말을 리나에게 내밀었다.
  6318.  
  6319. "총대장님, 밸런스 대령님의 지시입니다."
  6320.  
  6321. 리나가 단말을 받고, 미르파크는 다시 운전 레버를 쥐었다.
  6322.  
  6323. "대장님은 총대장님을 향한 제3부대의 습격을 안 직후,
  6324. 밸런스 대령님에게 향후 방침을 요구했습니다."
  6325.  
  6326. 리나가 꿀꺽 숨을 들이삼키고 미르파크의 단말을 내려다봤다.
  6327.  
  6328. 밸런스의 메일을 읽으면서 리나는 경악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6329.  
  6330. "─일본으로!?"
  6331.  
  6332. 밸런스의 지시는 일본으로 탈출해 요츠바가의 보호를 받으라는 거였다.
  6333.  
  6334. "……어째서 굳이……."
  6335.  
  6336. 어째서 굳이 연합국에서 벗어나 일본까지 도망쳐야만 하는 거냐는
  6337. 리나의 의문을, 미르파크는 정확하게 이해했다.
  6338.  
  6339. "아마도 밸런스 대령님은 총대장님을 표적으로 삼은 음모를
  6340. 우려한 거겠지요. 전략급마법사인 총대장님을 암살하는
  6341. 그런 어리석은 짓은 생각하지 않겠지만, 총대장님을 세뇌해서
  6342.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하는 세력이 군 내부에서
  6343. 암약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6344.  
  6345. 미르파크의 추측에 리나는 초대형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스』
  6346. 내부에서 '목격'한 군.기.밀.을 떠올렸다.
  6347.  
  6348. ─강제로 마법을 사용하고 발전기의 연료가 되어버린 마법사들.
  6349.  
  6350. ─나를 그들처럼 군사 시스템의 부품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6351.  
  6352. 확실히 현재 세계정세에서 『헤비 메탈 버스트』을 잃으면
  6353. 국가의 자살 행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에 가까운 어리석은 행위다.
  6354. 하지만 리나를 세뇌해서 사용하기 편리한 장기짝으로 바꾸는 건,
  6355. 전력 부분에서만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는 아니다…….
  6356.  
  6357. "하지만 그래선 탈주가 되어버리는 게……."
  6358. "그 점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총대장님, 첨부 파일을 봐주세요."
  6359.  
  6360. 그 말을 듣고 리나는 서둘러 단말을 조작했다. 첨부 파일도
  6361. 본문과 함께 암호화되어 있었다. 리나가 연 파일은,
  6362.  
  6363. "명령서!?"
  6364.  
  6365. 재일(在日) 무관의 비밀 감사를 위해 일본으로 잠입하라는 내용의
  6366. 명령서였다.
  6367.  
  6368. "대령님은 자신의 권한이 먹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6369. 편의를 봐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6370.  
  6371. 밸런스 대령은 군인 부정행위를 단속하기 위한 감사 부문의
  6372. 넘버 투다. 일본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근무하는 무관의
  6373. 조사를 위해 리나를 일본으로 파견한다는 건, 지휘계통 부분에서
  6374. 문제가 많이 있지만 아슬아슬하게 밸런스의 권한 안이라고 할 수 있겠지.
  6375.  
  6376. "그 단말은 그대로 가져가세요. 제 개인 정보는 들어있지 않으니
  6377. 걱정 마시길. 패스워드는 제1부대의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6378.  
  6379. 리나에겐 총대장으로서 각 부대의 정보 문서를 검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6380. 하지만 그 권한은 스타즈 내부에서 거의 무시됐다. 리나도 이를
  6381. 문제 삼지 않았다. 다만 카노프스와 제5부대의 카펠라 소령만은
  6382. 패스워드를 변경할 때마다 성실하게 리나에게 보고했다.
  6383.  
  6384. "그리고 잠입 임무용 여권과 신용카드, 화폐카드, 각종 장비를
  6385. 뒷좌석 캐리어에 넣어뒀습니다. 도항을 고려해 무장 디바이스는
  6386. 넣지 않았습니다. 또한 총대장님의 옷을 가져올 시간이 없었으므로
  6387. 공항에서 구입해주세요. 항공권은 밸런스 대령님이 준비해주셨습니다."
  6388.  
  6389. 미르파크의 말에 리나가 다시 한 번 단말을 본다. 확실히
  6390. 거기엔 티켓 데이터가 전송되어 있었다.
  6391.  
  6392. "이대로 앨버커키 공항으로 갑니다. 대장님이 제압하고 있으므로
  6393. 추적은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만일에 대비해 대(對) 탐지 실드를
  6394. 사용할 테니, 총대장님은 마법사용을 자제해주세요."
  6395. "……알겠습니다."
  6396.  
  6397. 미르파크의 대 탐지 실드 마법은 스타즈에서 가장 뛰어나다.
  6398. 추적 미션에서 가장 뛰어난 제6부대 『오리온 팀』도 발견하기
  6399. 힘들겠지. 리나는 얌전히 미르파크의 말에 따랐다.
  6400.  
  6401.  
  6402. ◇ ◇ ◇
  6403.  
  6404.  
  6405. 리나가 무사히 일본에 도착한 건, 일본 시간으로 6월 19일 오후였다.
  6406. 그녀는 바로 밸런스가 가르쳐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
  6407. 마야의 명령을 받아 쿠로바가에게 보호됐다.
  6408.  
  6409. 그 쯤 스타즈 본부 기지에선 카노프스와 알골 그리고 샤우라가
  6410. 약식 재판 결과 미드웨이 섬의 마법사용 군사형무소로 보내지는 게
  6411. 결정됐다.
  6412.  
  6413. 또한 미르파크는 기지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서해안 방면으로
  6414. 도주했다.
  6415.  
  6416.  
  6417.  
  6418. [8]
  6419.  
  6420.  
  6421.  
  6422. USNA에서 스타즈 반란 소동이 일어났을 때, 신소련에선
  6423. 베조브라조프 전용 대형 CAD 『오르간』의 수리가 급속도로
  6424. 진행됐다.
  6425.  
  6426. "진척은 어떻습니까?"
  6427. "박사님!"
  6428.  
  6429. 베조브라조프가 말을 건 작업 책임자가 놀란 표정으로 돌아본다.
  6430. 그 남자가 놀란 건, 베조브라조프에겐 귀족 학자 같은 느낌이 있으며
  6431. 기름 냄새 나는 수리 현장에 오는 일이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다.
  6432.  
  6433. "수리는 오늘 중으로 끝납니다. 박사님께서 내일 테스트를 해주셨으면 합니다만."
  6434.  
  6435. 또한 작업 책임자가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여 딱딱하게 말한 건,
  6436. 베조브라조프가 정부 고관, 군의 장관급의 중요인물이며
  6437. 이에 걸맞은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6438.  
  6439. "좋습니다. 몇 시 정도에 오면 될까요?"
  6440.  
  6441. 베조브라조프가 일.반.인.에게 그 권력을 휘두르는 일은 없다.
  6442. 딱히 직책이 없는 기술자에게 오만한 태도를 취한 적은 없다.
  6443. 하지만 그건 그가 인격자라서 그렇다기보다 아.랫.사.람.들.에.게.
  6444.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6445.  
  6446. "이른 아침부터 언제든 가능합니다!"
  6447. "그렇습니까. 그럼…… 9시 반에."
  6448. "알겠습니다!"
  6449.  
  6450. 책임자만이 아니라 수리를 담당한 기술자 전원에게 배웅을 받고
  6451. 베조브라조프는 정비 공장에서 나갔다.
  6452.  
  6453. 그가 드물게도 공장에 방문한 건, 무엇보다도 시급히
  6454. 『오르간』을 사용한 작전을 실행해야만 하기 때문이지만,
  6455. 그가 타츠야로 인해 강한 굴욕감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6456.  
  6457. 분명히 성공할 거라고 자신했던 『투만 봄바』에 의한 기습 공격.
  6458.  
  6459. 하지만 『투만 봄바』 전용 생체 증폭기인 『이고르크』까지
  6460.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바 타츠야 암살에 실패했다.
  6461. 그것만이 아니라 사용한 두 『이고르크』도 사라지고
  6462. 『오르간』도 사용 불가능하게 됐다. 『이고르크』를
  6463. 사용하지 않았다면 베조브라조프 본인이 반격을 당했겠지.
  6464.  
  6465. 베조브라조프는 지금까지 전략급마법사의 임무를 실패한 적이 없었다.
  6466. 베링 해협을 사이에 두고 USNA와 맞붙은, 소규모이지만 격렬한 전투에서도
  6467. 선대 스타즈 총대장 윌리엄 시리우스를 『투만 봄바』로 죽였다.
  6468.  
  6469. 그런 자신이 임무에 실패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패배를 당했다.
  6470.  
  6471. 베조브라조프는 그 굴욕을 복수하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6472. 작전 재개를 원했던 거다.
  6473.  
  6474.  
  6475. ◇ ◇ ◇
  6476.  
  6477.  
  6478. 6월 20일 목요일.
  6479.  
  6480. 도쿄에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국립마법대학 부속 제1고교가 있는
  6481. 하치오지 주변도 부슬부슬 계속 내리는 비로 거리가 젖어 있다.
  6482.  
  6483. 울적한 건 우기니까 어쩔 수 없다. 다른 학생들은 태평하게
  6484. 그렇게 생각했지만, 타츠야는 아침부터 경계심 맥스로 지내고 있었다.
  6485.  
  6486. 옆자리의 미즈키가 수상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타츠야는
  6487. 적당히 말을 얼버무릴 뿐 긴장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6488.  
  6489. 계절은 우기이지만 올해의 도쿄는 예년에 비해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6490. 한 달의 절반은 비가 자주 왔지만, 후반에 들어서 아침부터 계속
  6491. 비가 내리는 건 오랜만이었다.
  6492.  
  6493. 단속적이지만 비가 내리고 있으니까 가뭄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6494. 다만 우기치고는 비 오는 날이 적었다.
  6495.  
  6496. 타츠야는 그게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있는 곳에
  6497. 비가 내리지 않는 건 환영할 일이었다. 애초에 비를 좋아하는 성격도
  6498. 아니었지만, 올해는 특히 환영할 수 없었다.
  6499.  
  6500. 그런 기분으로 바뀐 건, 이즈에서 도쿄로 돌아온 뒤부터다.
  6501.  
  6502. 하루 종일 약한 비가 계속 내리고 바람이 안 부는 날씨는
  6503. 『투만 봄바』에게 최고의 기상 조건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거의 무풍.
  6504. 베조브라조프가 공격을 한다면 오늘이라고 타츠야는 추측했다.
  6505.  
  6506. 베조브라조프는 포기하지 않았다.
  6507.  
  6508. 타츠야는 이를 확신했다. 11일 전에 타츠야가 없앤 건
  6509. 베조브라조프가 아니었다. 하지만 관계가 없진 않다고
  6510. 타츠야는 생각했다.
  6511.  
  6512. 투만 봄바 사용자가 베조브라조프 한 사람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6513. 신소련은 베조브라조프의 스페어를 생.산.했을지도 모른다.
  6514.  
  6515. 공표된 전략급마법사 『13사도』만 봐도 『리바이어선』 사용자는
  6516. USNA에 두 명, 『오존 서클』 사용자는 영국과 독일에 한 명씩,
  6517. 『아그니 다운버스트』은 인도 페르시아 연방과 타이에 한 명씩.
  6518.  
  6519. 전략급마법의 술식 공유는 드문 일이 아니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마법이니까
  6520. 같은 나라의 마법사라면 더욱 적성만 맞는다면 적극적으로 습득하도록
  6521. 조성하겠지.
  6522.  
  6523. 하지만 그래도 투만 봄바의 발동에 베조브라조프가 관여했다고
  6524. 타츠야는 짐작했다.
  6525.  
  6526. 그 증거는 이즈 고원의 저격으로 분해한 두 명의 마법사의
  6527. 육체 정보다.
  6528.  
  6529. 그 두 사람의 성.분.은 완전히 똑같았다. 동일 유전자로
  6530. 완전히 똑같이 만든 인체.
  6531.  
  6532. 일란성 쌍둥이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타츠야는 '클론이겠지'라고
  6533. 추측했다. 그 두 사람의 정보 구조에는─자연물의 대의어를 인공물,
  6534. 인공적의 유의어를 부자연스러움으로 정의한다면─조정체 이상으로
  6535. 부자연스러운 비틀림이 있었다.
  6536.  
  6537. 그 때 자신에게 『투만 봄바』를 쏜 건 베조브라조프의 지시에
  6538. 기초한 것이며, 그 두 사람의 여성 마법사는 베조브라조프의 도구에
  6539. 불과하다. 그게 타츠야의 추리였다.
  6540.  
  6541. 레이몬드 클러크는 타츠야가 『머티어리얼 버스트』의 술자라는 걸
  6542. 알고 있다. 분명 이 정보도 신소련에게 전해졌겠지.
  6543.  
  6544. 신소련은 타츠야의 전략급마법의 완벽한 무력화 = 전략급마법
  6545. 『머티어리얼 버스트』의 술자인 타츠야를 처단하기로 결단했다.
  6546. 이즈 별장을 공격한 건 그 결과다. 타츠야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6547.  
  6548. 이 사실은 오늘 아침 미유키에게도 전달했다.
  6549.  
  6550. 다시 1고 시스템에 접속한 픽시에게도 최대한 경계하라고 명령했다.
  6551.  
  6552. 이런 식으로 기다리던 타츠야가 공격 징후를 탐지한 건,
  6553. 마지막 오전 수업 종료 30분 전. 3학년 E반은 단말을 이용해
  6554. 앉아서 수업 중이었다.
  6555.  
  6556.  
  6557. ◇ ◇ ◇
  6558.  
  6559.  
  6560. 베조브라조프는 정오가 지나 소규모 개량을 마친 대형 CAD
  6561. 『오르곤』의 오퍼레이터 자리에 앉았다. 일본 시간으로
  6562. 정오 전이었지만, 신소련 연해주의 시간은 일본 표준시보다
  6563. 1시간 빠르다. 마침 점심식사를 할 때였지만 베조브라조프는
  6564. 식탁을 보지도 않고 작전 실시에만 몰두했다.
  6565.  
  6566. 저번의 반성을 디딤돌 삼아 『오르간』은 『이고르크』가
  6567. 분자간 결합력 중화 마법─ 베조브라조프는 타츠야의 분해마법을
  6568. 이런 식으로 이해했다─에 의한 기화에도 데미지를 받지 않도록
  6569. 개량했다.
  6570.  
  6571. 또한 『오르간』에 연결된 신 시베리아 철도의 열차는
  6572. 블라디보스토크의 외곽이 아니라 그 북방인 우수리스크 외곽에
  6573. 멈췄다. 저번 지리 데이터를 기초로 공격을 받지 않도록 조심한 거다.
  6574.  
  6575. 데리고 온 『이고르크』도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다섯.
  6576. 이 작전에 남은 『이고르크』를 전부 투입했다.
  6577.  
  6578. 포메이션은 발동용 외부 연산 장치로 『이고르크』를 두 개,
  6579. 파이어월용─ 여차할 때 대신 희생될 『이고르크』를 하나,
  6580. 예비용 『이고르크』를 두 개 준비했다.
  6581.  
  6582. ─타츠야의 공격에 겁먹고 대형 CAD 『오르간』을 탑재한
  6583. 열차 차량에서 굴러떨어지는 것처럼 도망쳤다.
  6584.  
  6585. 그 기억이 베조브라조프의 자존심을 긁었다. 이 굴욕은
  6586. 반드시 풀어야만 했다.
  6587.  
  6588. 방치해둘 수록 점점 머리가 돌아버린다.
  6589.  
  6590. 그게 베조브라조프의 실감이었다.
  6591.  
  6592. 그리고 그 꺼림칙한 치욕을 잊기 위한 유일한 길은 시바 타츠야를
  6593. 없애는 거다.
  6594.  
  6595. 그게 베조브라조프의 의식에 자리 잡은 망집이었다.
  6596.  
  6597. 콘솔에 정보부에서 온 데이터가 표시된다. 시바 타츠야는
  6598. 현재 제1고교에 있다.
  6599.  
  6600. 핵융합로 프로젝트를 기획할 정도의 두뇌를 가진 사람이
  6601. 고등학교에서 뭘 배우는 건지 베조브라조프는 전혀 모르겠다.
  6602.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6603.  
  6604. 하지만 학습적인 의미는 별개로 치고, 제1고교 내부에 있는 건
  6605. 성가셨다. 튼튼한 철골 콘크리트 건물은 충격파로 파괴하기 어렵다.
  6606. 구세기의 콘크리트가 아니라 제3차 세계대전 중에 개발된
  6607. 고강도의 건물이니 더욱 그렇다. 창유리를 깬다고 해도
  6608. 치명상은 안 되겠지.
  6609.  
  6610. 하지만 『투만 봄바』는 이동 중의 상대를 노리기엔 적합하지 않다.
  6611. 저택 빌딩은 위성사진으로 추측하건데 학교 이상으로 튼튼하다.
  6612.  
  6613. ─충격파로 창문을 파괴하고 안개를 침입시켜 내부에서 폭파한다.
  6614.  
  6615. 베조브라조프는 미리 준비한 작전안 중, 이 플랜을 스토리지에서
  6616. 불러냈다. 베조브라조프가 앉은 의자가 『오르간』으로 빨려들어간다.
  6617.  
  6618. 그는 『이고르크』를 조종해 파괴와 살육의 곡을 연주하는
  6619. 『디리죠르』로서 지휘봉을 휘두르는 대신에 콘솔 스위치를 조작했다.
  6620.  
  6621.  
  6622. ◇ ◇ ◇
  6623.  
  6624.  
  6625. '마스터. 마법 발동 징조를 탐지했습니다. 발동점은 1고의
  6626. 2백 미터 위입니다.'
  6627.  
  6628. 픽시가 능동 텔레파시로 경고한다.
  6629.  
  6630. 타츠야는 그 시점에 이미 마법식을 복사해서 시간차로 발동되는
  6631. 마법 기술 『체인 캐스트』의 발동을 확실히 포착했다.
  6632.  
  6633. 일어나 품에서 대형 권총 형태의 CAD를 뽑았다.
  6634.  
  6635. 지금은 아직 수업 중.
  6636.  
  6637.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며 술렁거리는 클래스메이트는 보지도 않고,
  6638. 타츠야는 천장을 향해 CAD 실버 혼 커스텀 『트라이던트』를
  6639. 똑바로 들어올렸다.
  6640.  
  6641. 그의 동작에 일말의 정체도 없었다.
  6642.  
  6643. 조준이 정확히 고정된 순간, 그는 『트라이던트』의 방아쇠를 당겼다.
  6644.  
  6645.  
  6646. ◇ ◇ ◇
  6647.  
  6648.  
  6649. 대형 CAD 『오르간』 내부에 시끄러운 경보가 울린다.
  6650.  
  6651. 콘솔에 표시된 경고 메시지는 발동용 『이고르크』가
  6652. 마법식 전개 도중, 1초도 되지 않는 제로 콤마 몇 초 사이에
  6653. 없어졌다는 것이다.
  6654.  
  6655. 마법식은 마법사가 구축하는 것. 마법연산영역에서 다 짰다 해도
  6656. 그걸 목표 좌표로 고정하지 못하면 마법은 발동하지 않는다.
  6657. 마법식을 투사해 마법식을 고정하는 그 짧은 순간에 마법사 그 자체가
  6658. 사라져버렸다면, 마법은 발동되지 못한 채 흩어진다.
  6659.  
  6660. "『이고르크』를 예비품.으로 교환. 서둘러."
  6661.  
  6662. 베조브라조프는 『오르간』 내부에 머무른 채 외부 작업원에게 명령했다.
  6663.  
  6664. 이번에는 도망칠 수 없었다.
  6665.  
  6666. 그는 육체 소실이라는 불길한 죽음의 그림자에 겁을 먹으면서,
  6667. 교환 작업 완료를 기다렸다.
  6668.  
  6669.  
  6670. ◇ ◇ ◇
  6671.  
  6672.  
  6673. 『투만 봄바』의 발동을 저지하는 건 어렵다.
  6674.  
  6675.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체인 캐스트』로 발동되는 『투만 봄바』를
  6676. 『그램 디스퍼전』으로 무효화하는 건 어렵다.
  6677.  
  6678. 이것이 두 번에 걸친 대결로 타츠야가 이끌어낸 결론이었다.
  6679.  
  6680. 『체인 캐스트』에 의해 전개되는 마법식은 하나하나가
  6681. 조금씩 다르다. 그 차이는 좌표가 떨어져 있을수록 커진다.
  6682. 그룹으로 묶어서 분해하려고 해도 전부 다 한 번에 없앨 수 없다.
  6683.  
  6684. 그렇다고 해서 『그램 디스퍼전』 연사로 대응하려고 해도
  6685. 도중에 『투만 봄바』가 발동하여 강력한 폭발에 노출되겠지.
  6686.  
  6687. 그렇다면 마법 발동을 근원부터 뿌리 뽑을 수밖에 없다.
  6688.  
  6689. 그게 타츠야의 작전이었다.
  6690.  
  6691. 저번 전투에서 『투만 봄바』 발동원을 역탐지하는 노하우를 익혔다.
  6692. 『체인 캐스트』가 시작된 순간, 그 마법적 경로를 거슬러 올라가
  6693. 술자를 삼연속 분해 마법 『트라이던트』로 분해한다.
  6694.  
  6695. 『체인 캐스트』는 마법식을 광범위하게 복사 고정한 다음,
  6696. 그 모든 마법식을 동시에 작용시키는 마법이다. 마법식
  6697. 광역 부설이라는 단계를 거치는 만큼 단순히 한 개체를
  6698. 분해하는 『트라이던트』 쪽이 더욱 빠르다. 대상이
  6699. 두 개여도 그 정도는 오차 범위 안이다.
  6700.  
  6701. 이건 도박이 아니었다. 명확한 승산에 근거한, 카운터 공격에 의한
  6702. 방어였다.
  6703.  
  6704.  
  6705. ◇ ◇ ◇
  6706.  
  6707.  
  6708. "『이고르크』 교환 완료."
  6709.  
  6710. 작업원의 보고에 대답하지도 않고 베조브라조프는 콘솔의 위성영상을
  6711. 응시했다. 방금 전의 『투만 봄바』가 미발동으로 끝났기에,
  6712. 좌표 상공의 대기 상태에 변화는 없다. 여전히 두꺼운 구름에
  6713. 비가 내리며, 바람은 거의 불지 않는다. 재공격은 당장 가능하다.
  6714.  
  6715. 저번 전투에서 두 『이고르크』를 없앤 다음 분자간 결합력을
  6716. 중화하는 마법의 제2파는 오지 않았다.
  6717.  
  6718. 그 현상을 시뮬레이션 한 결과 『오르간』의 연산 능력으로도
  6719. 발동까지 5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복잡한 마법이었다고
  6720. 추정된다.
  6721.  
  6722. 휴대용 CAD만 갖고 있는 상태에서 연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6723. 가령 가능하다고 해도 10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베조브라조프는
  6724. 그렇게 계산했다.
  6725.  
  6726. 그렇다면 『투만 봄바』의 제2사가 먼저 발동된다. 만일에 대비해
  6727. 제3사가 가능하도록 『이고르크』를 하나씩 사용하도록 설정을 변경하고,
  6728. 베조브라조프는 이번에야말로 시바 타츠야를 없애기 위해
  6729. 자신의 마법연산영역에 『오르간』이 짠 마법식을 집어넣었다.
  6730.  
  6731.  
  6732. ◇ ◇ ◇
  6733.  
  6734.  
  6735. '『투만 봄바』의 발동 지점을 확인.'
  6736.  
  6737. 타츠야는 자신이 카운터 공격으로 쏜 『트라이던트』의 '기억'을 바탕으로
  6738. 1고 위로 투사된 『투만 봄바』의 경로를 의식 속에서 재현했다.
  6739.  
  6740. '대상을 술자가 접속한 CAD로 변경.'
  6741.  
  6742. 마법 발동 중, 마법사와 CAD 사이엔 밀접한 관계성이 형성된다.
  6743. 정.보.적.으로 CAD는 마법사의 일부가 되며, 마법사는 CAD와 함께
  6744. '마법'이라는 시스템의 부품이 된다. 그건 마법사에게 마법을 강.요.하.는.
  6745. 대형 CAD라 해도 똑같다.
  6746.  
  6747. 타츠야는 『오르간』을 조준했다.
  6748.  
  6749. '전술 목표, 화물차량형 CAD의 완전 파괴.'
  6750.  
  6751. 타츠야가 '보'고 있는 CAD 안에서 마법식 구축 프로세스가
  6752. 시작되려고 했다.
  6753.  
  6754. 하지만 아직 기동식 읽기 단계다. 상당히 복잡한 기동식인 모양이라,
  6755. 1초 이상이 경과해도 읽기가 끝나지 않았다.
  6756.  
  6757. 타츠야의 분해 마법도 원래는 그것과 동급, 혹은 그 이상 준비 시간이
  6758. 필요하다. 하지만 타츠야의 마법연산영역은 『분해』와 『재성』에
  6759. 특화되어 있다. 『분해』와 『재성』용 서브시스템이 미리
  6760. 준비되어 있어서, 거기에 추가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만으로
  6761. 극히 복잡한 마법을 발동할 수 있게 된다.
  6762.  
  6763. 따라서 '물질을 원소 레벨로 분해한다', '정보체를 사이온 레벨로
  6764. 분해한다'라는 복잡한 처리를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실행할 수 있다.
  6765.  
  6766. '『그램 디스퍼전』', '미스트 디스퍼전' 발동.'
  6767.  
  6768. 대형 CAD 주위에 발생한 사상 간섭력의 역장을 분해하고
  6769. 『오르간』을 원소 레벨로 분해한다. 천 킬로미터를 넘는 거리를 두고도
  6770. 순식간에 두 종류의 마법을 연속 발동할 수 있는 것도,
  6771. 그가 이 마법, 『분해』를 사용하기 위한 시스템을
  6772. 다른 마법 기능을 희생해서 정신 안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6773.  
  6774. 정보체 분해 마법과 물질 분해 마법이 연속적으로 발동했다.
  6775.  
  6776.  
  6777. ◇ ◇ ◇
  6778.  
  6779.  
  6780. 베조브라조프는 처음에 지진이 발생한 거라고 생각했다.
  6781.  
  6782. 눈앞의 광경이 이중으로 번진다.
  6783.  
  6784. 하지만 몸은 흔들림을 느끼지 못했다.
  6785.  
  6786. 그 이상의 착각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6787.  
  6788. 낙하 감각.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6789.  
  6790. 자신이 앉아 있었던 의자가 갑자기 자신의 체중을 지탱하는 기능을 잃었다.
  6791.  
  6792. 의자만이 아니다. 콘솔도 바닥도 벽도 전부 다 형태를 잃었다.
  6793.  
  6794. 바닥이 빠져나간다.
  6795.  
  6796. 천장이 떨어진다.
  6797.  
  6798. 벽이 무너진다.
  6799.  
  6800. 모든 게 모래가 된다. 먼지가 된다.
  6801.  
  6802. 지면에 강하게 부딪치고 베조브라조프가 신음소리를 냈다.
  6803.  
  6804. 곧장 일어나지 못할 정도의 고통이다.
  6805.  
  6806. 데미지는 몸만이 아니었다. 외부적 고통만이 아니었다.
  6807.  
  6808. 머리가 안쪽에서 무척 아팠다.
  6809.  
  6810.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6811.  
  6812. 그게 CAD 접속이 강제적으로 끊어진 것으로 인한 쇼크라는 것도
  6813. 깨닫지 못할 정도의 두통이다.
  6814.  
  6815. 그래도 머리에 쓴 모래를 성가시다고 느꼈다.
  6816.  
  6817. 고생해서 몸을 일으키고, 얼굴의 모래를 턴다. 지금의 베조브라조프에게
  6818. 그 모래가 『오르간』의 잔해라는 걸 깨달을 사고 능력은 없었다.
  6819.  
  6820. 눈앞에 우수리스크 광경이 펼쳐진다. 자신이 밖으로 내팽개쳐졌다는 걸,
  6821. 그 광경을 보고 간신히 인식한다.
  6822.  
  6823. 베조브라조프는 엄청난 두통 속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6824.  
  6825. 세 『이고르크』의 심장이 CAD 접속이 강제 절단된 쇼크로
  6826. 멈췄다.
  6827.  
  6828. 그 소동도 베조브라조프에겐 들리지 않았다.
  6829.  
  6830.  
  6831.  
  6832. [9]
  6833.  
  6834.  
  6835.  
  6836. 제1고교를 향한 마법 공격은 미수였지만 확실히 관측됐다.
  6837.  
  6838. 국립마법대학 부속 고등학교 중에서도 가장 설비가 갖춰진 게 1고다.
  6839. 마법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충실하게 갖춰진 학교 주위를 관측하는 기기들은
  6840. 국방군의 주요기지에 필적했다.
  6841.  
  6842. 1고의 관측 기기 무리는 학교 위에 산수소 가스를 형성해 폭발시키는
  6843. 마법이 발동될 뻔 했다는 것과 그 마법이 신소비에트 연방 연해주에서
  6844. 온 것이라는 걸, 객관적인 데이터와 함께 제시했다.
  6845.  
  6846. 그 데이터는 마법대학을 경유해 정부로 넘어갔다.
  6847.  
  6848. 외무대신은 신소련에게 미수이지만 침략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6849. 국제 사회에 신소련에 대한 제재를 호소했다.
  6850.  
  6851. 토도 아오바의 뜻을 받은 산업대신의 코멘트는 더욱 파고든 것이었다.
  6852. 어디까지나 데이터에 기초한 추측이라고 양해를 구하면서,
  6853. 이번 미발동 공격은 신소련의 『13사도』 베조브라조프의 짓이라고
  6854. 발표했다. 거기다 베조브라조프가 협력하고 있는 디오네 계획의
  6855. 평화적 성격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생겼다고 단언했다.
  6856.  
  6857.  
  6858. ◇ ◇ ◇
  6859.  
  6860.  
  6861. "생각지도 못한 부산물이군……."
  6862.  
  6863. 타츠야는 아침식사 자리에서 어제자 산업대신의 기자 회견 뉴스를 보면서
  6864.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6865.  
  6866. "어라, 오라버니께선 거기까지 계산하셨던 게 아닙니까?"
  6867.  
  6868. 건너편 자리에서 놀리는 느낌이 섞인 목소리가 날아온다.
  6869.  
  6870. 타츠야는 미소를 짓고 있는 미유키에게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6871.  
  6872. "이것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투만 봄바』를 요격한 건
  6873. 우연이라고. 오히려 낮에 공격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했다."
  6874. "오라버니라 해도 계산 오류는 있군요."
  6875. "당연하다."
  6876.  
  6877. 계산 오류라고 하니, 미나미의 입원은 심각한 계산 오류였다.
  6878. 타츠야는 이를 미유키가 깨닫지 못하도록 후회를 의식 속으로 밀어 넣고
  6879. 계속 웃었다.
  6880.  
  6881. 뉴스 화면이 바뀐다. 타츠야와 미유키는 멈춘 식사를 재개했다.
  6882.  
  6883. "하지만 이걸로 여론 분위기는 제법 달라지지 않을까요."
  6884.  
  6885. 다만 미유키의 관심사는 변하지 않았다.
  6886.  
  6887. "일본 국내에서는 디오네 계획에 대한 역풍을 기대할 수 있겠지."
  6888.  
  6889. 타츠야 스스로도 심술궂은 말을 했다는 자각이 있었지만,
  6890. 숨길 생각은 없었다.
  6891.  
  6892. 애초에 디오네 계획 자체가 음모의 산물이다. 여론 조작으로
  6893. 자신을 우주로 추방하려고 하는 꿍꿍이를 여론 조작으로 격파하는 것에
  6894. 죄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적어도 타츠야는 그럴 필요성은 못 느꼈다.
  6895.  
  6896. "하지만 오라버니. 상황이 변해도 ESCAPES 계획은 이대로
  6897. 진행하실 거지요?"
  6898. "당연하다. 원래 ESCAPES 계획은 디오네 계획에 대항하기
  6899.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이밍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니까.
  6900. 진심을 말하자면 좀 더 준비 기간이 필요했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6901. 멈출 순 없어."
  6902. "네. 오라버니께서 나아가는 길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6903.  
  6904. 타츠야가 세계 정복을 획책해도 미유키는 같은 말을 했을 게 분명하지만,
  6905. 지금은 의미 없는 가정이다. 타츠야가 목표로 삼은 건, 어디까지나
  6906. 마법의 평화적 이용이니까.
  6907.  
  6908. "그러고 보니 이모님께서 한 번 미야키시마에 시찰하러 가라고
  6909. 권하시지 않았습니까?"
  6910. "그래. 나도 신경 쓰인다. 이모님이 미야키시마에 예정한 연구 시설을
  6911. ESCAPES 계획 추진을 위한 시설로 변경해줬다는 건,
  6912. 지금도 일이 너무 잘 풀렸다고 생각하지만."
  6913. "이모님은 분명 요츠바가의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요."
  6914. "그렇다면 좋겠지만…… 잘 먹었어."
  6915.  
  6916. 타츠야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6917.  
  6918. "커피를 준비할게요."
  6919.  
  6920. 자신의 접시에 아직 한 입 정도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6921. 미유키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6922.  
  6923.  
  6924. ◇ ◇ ◇
  6925.  
  6926.  
  6927. 타츠야와 미유키가 아침식사 자리에서 미야키시마 얘기를 한 건,
  6928. 단순한 얘기의 흐름에 의한 것이며, 딱히 예감이 있었던 건 아니다.
  6929.  
  6930. 하지만 저녁식사 전에 온 손님이 꺼낸 얘기에, 타츠야는
  6931. 아침에 한 잡담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6932.  
  6933.  
  6934.  
  6935. "하, 하이……."
  6936.  
  6937. 겸연쩍은 표정으로 손을 들며 타츠야와 미유키에게 그렇게 인사한 건,
  6938.  
  6939. "리나!?"
  6940.  
  6941. 미유키가 말한 대로 리나, 안젤리나 쿠도 실즈였다.
  6942.  
  6943. "타츠야 씨, 미유키 언니,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6944. "아니, 아직 저녁식사 전이라 상관은 없다만……."
  6945.  
  6946. 타츠야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야코에게 대답하면서
  6947. 그의 의식도 리나로 쏠려 있다.
  6948.  
  6949. "어쨌든 현관에서 서서 얘기도 뭣하니 안으로 들어와."
  6950. "그렇네요. 리나, 아야코 짱, 들어와요."
  6951.  
  6952. 타츠야에 이어 미유키가 두 사람을 안으로 초대했다.
  6953.  
  6954. "네. 실즈 씨도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어떤지?"
  6955. "아, 네. 그…… 실례하겠습니다."
  6956.  
  6957. 아야코가 익숙한 느낌으로, 리나는 주눅 든 표정으로 문을 붙잡은
  6958. 미유키의 옆을 지나 타츠야의 등을 따라갔다.
  6959.  
  6960.  
  6961.  
  6962. "……반란, 그리고 아메리카 탈출인가."
  6963. "리나, 큰일이었구나."
  6964.  
  6965. 사정은 아야코가 설명했다. 믿기 어려운 얘기였지만 그녀가
  6966. 타츠야를 속일 이유는 없다. 타츠야와 미유키는 이를 사실이라고
  6967. 받아들였다.
  6968.  
  6969. "실즈 씨, 아니 시리우스 소령은 일단 우리 쿠로바가에서
  6970.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만, 당주님은 소령이 숨어 있을 곳으로
  6971. 미야키시마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6972. "미야키시마에 리나가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건가?"
  6973. "그 점은 문제없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충분하다고 생각해도
  6974. 시리우스 소령에겐 불충분할지도 모릅니다."
  6975. "……나 그렇게 사치 부리는 사람은 아닌데."
  6976.  
  6977. 리나가 작은 목소리로 항의했다.
  6978.  
  6979. "그러니까 미리 소령께서 미야키시마를 살펴보도록 할 겁니다."
  6980.  
  6981. 하지만 아야코는 리나의 말을 무시했다.
  6982.  
  6983. "이모님이 그렇게 말하신 거야?"
  6984.  
  6985. 미유키도 리나의 항의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6986.  
  6987. 리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위축된다.
  6988.  
  6989. 타츠야는 이를 보고 작게 쓴웃음을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6990.  
  6991. "네. 그리고 소령을 미야키시마로 안내하는 역할을 타츠야 씨에게
  6992. 맡긴다고."
  6993. "타츠야 님에게?"
  6994.  
  6995. 미유키는 생각도 못한 얘기 흐름에 눈을 크게 떴다.
  6996.  
  6997. "과연."
  6998.  
  6999. 하지만 타츠야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7000.  
  7001. "리나의 도주가 위장이며 진짜 목적이 요츠바가 내부에서 일으키는
  7002. 파괴공작일 경우, 리나를 확실하게 제압해야만 할 걸 생각하면,
  7003. 안내 역할로 같은 전략급마법사인 내가 적임이라고 판단한 거겠지."
  7004.  
  7005. 시선으로 물어보는 미유키에게 타츠야는 청산유수로 대답했다.
  7006.  
  7007. "그런 짓 안 한다고!"
  7008.  
  7009. 리나가 일어섰다.
  7010.  
  7011. "알고 있어."
  7012.  
  7013. 이번에 타츠야는 그걸 무시하지 않았다.
  7014.  
  7015. "당주인 요츠바 마야도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아. 이건
  7016. 요츠바가 내부에게 보여주는 포즈다."
  7017. "아, 아아…… 그런 거."
  7018.  
  7019. 리나도 조직 역학에서 고생을 했다. 타츠야의 설명으로
  7020. 납득한 모양이다.
  7021.  
  7022. "아야코, 오늘은 일정이 어떻게 되지?"
  7023. "사실 하룻밤 자고 가고 싶습니다만, 당주님께서 타츠야 씨의 대답을
  7024. 당장 가져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7025. "전화로는 불안한가……. 알겠어. 어.머.니.께 명령을 받아들이겠다고
  7026. 전달해 줘."
  7027.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7028. "오늘은 시간이 많이 늦었다. 미야키시마에 내일 가도록 하지.
  7029. 미유키도 데려갈 테니까 미나미의 가드를 한 층 강화하도록
  7030. 하나비시 씨에게 전달해 줘."
  7031.  
  7032. 타츠야가 아야코에게 전언을 부탁한 상대는 효고가 아니라
  7033. 그의 아버지인 하나비시 집사였다.
  7034.  
  7035. "그 건도 잘 알겠습니다."
  7036.  
  7037. 타츠야는 아야코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미유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7038.  
  7039. "미유키, 미안하지만 리나의 침실을 준비해주지 않겠어?"
  7040. "알겠습니다."
  7041. "자, 잠깐……."
  7042.  
  7043. 리나 본인의 의사를 배제하고 점점 예정이 진행됐다.
  7044.  
  7045. "그럼 타츠야 씨, 미유키 언니,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만
  7046. 오늘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7047. "그래. 다음에 천천히 얘기할 시간을 만들도록 하지."
  7048. "부디 그래주세요. 후미야도 기뻐할 겁니다."
  7049.  
  7050. 타츠야의 말에 아야코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7051.  
  7052. 약혼자라는 입장에서 오는 여유인지 미유키도 미소를 유지했다.
  7053.  
  7054. "아야코 짱, 리나를 데려와줘서 고마워."
  7055.  
  7056. 아야코를 배웅하기 위해 그녀와 함께 거실에서 나간 미유키가
  7057. 복도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계속 열려 있는 문 사이로 들려왔다.
  7058.  
  7059. "천만에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7060.  
  7061. 현관문이 닫힌다.
  7062.  
  7063. 미유키가 돌아오자,
  7064.  
  7065. "리나,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지 않겠어?"
  7066.  
  7067. 타츠야가 리나에게 일방적인 요구를 들이밀었다.
  7068.  
  7069. "내 쪽에서도 부탁할게. 정말로 패러사이트가 또 출현한 거야?"
  7070.  
  7071. 절대로 흥미 때문이 아닌 두 사람의 진지한 표정에 리나는
  7072.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7073.  
  7074.  
  7075. [이스케이프편 <하>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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