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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과 고교의 열등생 25
- 이스케이프편 <하>
- 이 책은 비상업적 개인 소장용입니다.
- 2차 배포할 경우 이에 따른 책임은 해당 배포자에게 있으며,
- 배포하는 것과 동시에 이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 by. sdhioe
- 2097년 6월 9일 일요일 아침.
- 정확한 시간은 오전 5시 6분.
- 이즈 반도 중앙에서 다소 동쪽으로 치우친 고원 지대가
- 대규모 마법에 의한 폭파 공격을 받았다.
- 신소비에트 연방의 국가공인 전략급마법사 이고르 안드레이비치
- 베조브라조프의 전략급마법 『투만 봄바』에 의한 거라고 추정되는
- 마법 공격은 민간인 별장 27채를 반쯤 파괴했으며, 다행히
- 사망자는 없었지만 열 한 명의 중경상자가 발생했다.
- 폭발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 규모가 작았던 건,
- 집이 적은 지대였던 데다가 오프 시즌이라 이용객이 적었기 때문이다.
- 부상자는 전부 별장 관리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 그렇지만 국토가 부당한 공격을 받아 국민의 신체와 재산이
- 위협을 받은 건 명백한 사실이다.
- 그 날 당일 일본 정부는 국제 사회에 정체를 확정 짓지 못한
- 공격자를 향해 엄중한 항의 의사를 표명하고, 특정 국가를
- 지정하지 않은 채 범인 인도를 요구했다.
- 거기다 이 공격은 완벽한 기습, 심지어 해 뜨기 직전 시간이었음에도
- 불구하고, 국방 육군이 지상의 근접 거리에서 촬영을 했다.
- 부당한 선제공격의 확고한 증거인 그 영상은, 동시에 일본군이
- 기습을 사전에 탐지했으면서 외교상의 교섭 재료로 삼기 위해
- 국민을 내버려뒀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 국방군 대변인에게 해당 의혹을 정면으로 질문한 기골 있는 기자도
- 있었지만, 국방군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이 『트집』을 사실무근으로
- 일축했다.
- [1]
- 부엌 바닥에 쓰러진 미나미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우뚝 멈춰 선
- 미유키였지만, 패닉에 지배된 건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 아직도 패닉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몸의 경직은 풀렸다.
- "미나미 짱!"
- 쓰러진 미나미 바로 옆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는다. 이미
- 미나미 옆에 픽시가 있었고, 손목에 손가락을 대서 맥박을
- 확인하고 있다. 미유키는 그 건너편에 앉아 미나미의 코앞에 손을 댔다.
- 경악한 표정이 살짝 사라진 건, 미나미의 호흡을 확인했기 때문이겠지.
- 하지만 들어올린 손으로 목을 만지고, 미유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 "차가워……. 맥박도 약해……, 오라버니!"
- 미유키가 타츠야를 올려다보며 눈길로 매달린다.
- 자신이 지켜볼 수 없었던 호나미의 최후를, 미유키는 미나미의 모습으로
- 겹쳐보고 있었다.
- "픽시, 미나미의 용태는!"
- 타츠야도 조바심을 숨기지 못했다. 픽시에게 물어보는 목소리는
- 필요 이상으로 거칠었다.
- 『외상은 없습니다만 체온, 혈압, 맥박수 전부 위험한 수준입니다, 마스터.
- 이대로라면 쇠약사 가능성이 있습니다.』
- 타츠야의 초조함을 느낀 거겠지. 픽시는 기계 음성이 아니라
- 능동 텔레파시로 대답했다. 타츠야는 픽시에게 허가 없이
- 텔레파시를 쓰지 말라고 했지만, 지금 그는 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 타츠야는 왼손을 미나미에게 내밀었다.
- 그 손에 CAD를 쥐고 있지는 않았다.
- 오른손은 대응할 때 쓴 『미스트 디스퍼전』용 대형 권총 형태 CAD
- 『트라이던트』를 계속 쥐고 있지만, 왼손으로 『재성』용 CAD를
- 쥘 시간적 여유가 없기도 했고, 『재성』용 스토리지를 가지러 갈
- 심리적 여유도 없었다.
- 타츠야는 자신만의 힘으로 『재성』을 발동시켰다.
- 에이도스 복원마법 『재성』은 에이도스의 변경 이력을 거슬러 올라가
- 임의 상태─대부분 열화(劣化)나 손상이 없는 상태─의 에이도스를
- 복사해서 현재 에이도스에 덧씌우는 마법이다.
- 사상에는 정보가 동반된다. 정보가 바뀐 사상은 그 정보에 따라
- 변화한다.
- 정보를 바꿔 사상을 개변한다. 이것이 현대 '마법'이다.
- 사상 정보 『에이도스』에는 복구력이 있으며, 덧씌워진
- 거짓 에이도스는 시간 경과에 따라 원래의 에이도스로 다시 돌아간다.
- 그러니까 마법에 의한 개변은 영원하지 않다.
- 하지만 '과거의 에이도스'는 분명히 그 사상 자체를 기술한 정보체.
- 정보에 모순이 없으면 에이도스 복원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저
- 시간 경과에 따라 내재적 변화가 조정되는 것에 불과하다.
- 에이도스가 자기 자신의 과거 정보로 바뀐 물체는 그 시점부터
- 외적인 작용을 받지 않고 시간만 경과한 상태로 현재에 고정된다.
- 그 사상이 고유로 가지는 시간을 거슬러가, 과거의 한 지점부터
- 그 사상으로 한정해서 세계를 덧씌워 재개하는 것이다.
- 타츠야의 『재성』은 통상 마법처럼 인과의 '과(果)'를 변경하는 게
- 아니라, '인(因)'을 변경해서 '과'를 바꾸는 것이다.
- 그 고유 시간 역행, 세계 한정적 재개 마법을 미나미에게 쓴다.
- ─미나미의 육체적 정보를 읽어내 변경 이력을 거슬러 올라간다.
- 쇠약 원인은 찾을 수 없다.
- ─미나미의 육체에 부속하는 사이온 정보체 그 자체를 읽어내
- 변경 이력을 거슬러 올라간다.
- 쇠약 원인은 아직도 찾을 수 없었다.
- 타츠야는 더욱 깊게, 사쿠라이 미나미라는 소녀의 정보에 액세스했다.
- ─미나미의 육체와 정신을 잇는 사이온 정보체의 구조를 읽어내고,
- 그 변경 이력을 거슬러 올라간다.
- 이전의 타츠야에겐 어려운 것이었다.
- 5년 전 여름, 호나미 때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 그 여름보다 성장한 반 년 전에도, 1개월 전에도 아마도 불가능했다.
- 사이온 정보체인 이상 액세스 자체는 가능했다.
- 하지만 대략적인 정보를 읽어내도 구조 정보를 완전히 읽어내는 건
- 어려웠다.
- 하지만 지금 타츠야에겐 가능했다.
- 오스 완전 해주로 인해 타츠야는 진정한 힘을 되찾았다. 그건
- 머티어리얼 버스트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변화만이 아니었다.
- 에이도스 복원마법 『재성』의 대응 영역도 넓어졌다.
- 지금까지 그의 힘이 닿지 않았던 정신으로 직결되는
- 사이온 정보체 『유체(幽体)』의 구조 정보를 되짚어가
- 복사할 수 있게 됐다.
- 하지만 그래도 미나미가 쇠약해진 근본적인 원인은 찾아내지 못했다.
- 유체 구조에서 몇 군데 벌어진 곳이 보였다.
- 정보가 극소적으로 결락된 탓에 몇 군데 구멍이 뚫린 상태가 됐다.
- 하지만 그건 쇠약 원인이 아니라 결과, 사이온 정보체의 수복력이
- 약해진 탓에 생긴 구멍이다.
- 이를 수복해도 기존 수복력이 회복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치료가 안 된다.
- 하지만 정신에 부속된 정보체의 파손을 방치하면 육체에 부속된
- 정보체의 파손이 반복되어 발생하고 육체가 더욱 손상된다.
- 유체는 정신의 명령을 육체로 전달한다.
- 파손된 유체는 파손됐다는 정보를 육체로 전달해버린다.
- 육체는 정신이 파손됐다고 명령한다고 오해해버린다.
- 그 결과 육체는 물리적으로 파손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 파손된 상태와 같은 성능만 발휘할 수 있게 된다.
- 응급 처치에 불과하지만 임시방편이라고 해서 처치하지 않으면
- 결정적으로 악화된다. 그렇기에.
- 타츠야는 재성으로 미나미의 사이온 정보체를 복원했다.
- 육체에 부속하는 사이온 정보체와 육체와 정신을 연결하는
- 사이온 정보체의 구조를 공격 받기 전 구조 정보로 바꿔 쓴다.
- 덧씌운 과거 정보가 시간 경과를 가미한 조정이 자동적으로
- 이뤄진 다음, 현재로 정착된다.
- 『체온, 섭씨 35도를 회복. 혈압, 심박수 모두 위험 영역을
- 벗어났습니다.』
- 픽시가 텔레파시로 증상 개선을 알려준다.
- 하지만 미나미의 의식이 회복될 징조는 없었다.
- "픽시, 이불을 여기로 가져와서 미나미를 눕혀."
- 『알겠습니다, 마스터.』
- "미유키는 미나미 주변을 미나미의 현재 체온과 같은 온도로 덥혀줘."
- "알겠습니다!"
- 픽시가 컨트롤하는 홈오토메이션 로봇이 움직이고, 미유키의 마법이
- 바닥과 공기에 간섭한다.
- 타츠야는 그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 전화기 앞으로 달려갔다.
- 119가 아니다. 전화를 건 곳은 요츠바 본가다.
- 『타츠야 님, 무슨 일이십니까?』
-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야마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복장으로
- 화면에 나타났다.
- 반면에 타츠야는 아직 파자마 차림이었다.
- 하지만 타츠야는 이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하야마도 나무라지 않았다.
- "이런 옷차림이라 죄송합니다."
- 그래도 일단 그렇게 말해두고 본제에 들어갔다.
- "별장이 원거리 마법에 의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사용된 마법은
- 투만 봄바라고 생각됩니다."
- 하야마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 그가 놀라움을 표시한 건 그것뿐이었다.
- 『피해는 있었나요?』
- 서두르지 않았지만 적당히 긴장감이 전해지는 목소리로 하야마가 묻는다.
- "저랑 미유키는 상처 하나 없습니다. 다만 미나미가 마법연산영역의
- 오버히트로 추정되는 증상으로 인해 쓰러졌습니다. 응급 처치는 했지만,
-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 '마법연산영역의 오버히트'라는 말을 듣고 하야마의 안색이
- 즉시 변했다. 하야마가 동요를 살짝 엿보여준 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 전전대 당주 요츠바 겐조의 사인으로 추정되는 '마법연산영역의
- 오버히트'는 역시 요츠바가 중신들도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다.
- 『……알겠습니다. 이쪽에서 입원 절차를 밟겠습니다. 효고에
- 마중 나가라고 할 것이므로 잠시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 "잘 부탁합니다."
- 목적을 달성한 타츠야는 전화를 끊었다.
- ◇ ◇ ◇
- 타츠야가 체재하고 있는 별장 주변으로 대략 반경 1킬로미터에 걸쳐
- 결계가 펼쳐졌다. 요츠바 분가 츠쿠바가에 의한 정신 간섭 마법 필드다.
- 마법사인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정신 간섭 마법에 내성이 없는 사람은
-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되는 사람 물리기 결계. 그 심리 방벽을 넘어
- 내부에 침입한 사람이 있으면, 이를 술자에게 전달하는 대인 센서 기능도
- 겸하고 있다.
- 하지만 어젯밤 침공 때부터 그 결계 안에 한 대의 특수 차량이
- 정차되어 있다. 가변 서스펜션을 갖춘 위장 무늬의 장갑차.
-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국방 육군의 군용 차량이지만,
- 츠쿠바가의 술자는 그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 이곳에 올 때 공용도로를 달렸는데도 불구하고 SNS 같은 곳에서
- 화제로 삼은 시민은 전혀 없었다.
- 가변 서스펜션을 한계까지 내려 땅과 거의 접촉한 상태에서
- 투만 봄바의 폭풍에 견딘 장갑차 차내에 네 명의 군인이 타고 있었다.
- "……사이온 센서에 새로운 반응 없습니다. 원거리 마법에 의한 공격은
- 종료됐다고 생각합니다."
- 그 중 한 명이 조수석에 앉은 지휘관을 향해 그렇게 보고했다.
- "그런가."
- 조수석의 지휘관, 국방 육군 제101여단 독립마장대대의 대장인
- 카자마 중령은 대대에서 선발한 부하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 카자마는 딱히 무례한 게 아니었다. 대장이라는 입장과 계급을 생각하면
- 이상한 태도가 아니지만, 그가 돌아보지 않은 건 다.른. 용.무. 중.이었기
- 때문이다.
- 카자마는 눈꺼풀을 반쯤 닫고 양손으로 인을 맺어 등을 쭉 편 자세로
- 몇 시간이나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장갑차를 세웠기 때문이 아니라
- 주행 중에도 계속 그랬다. 차체의 동요가 카자마에게만 전해지지
- 않은 것처럼, 그의 상반신, 명치 위는 지구 중력에 대해 수직을
- 유지하고 있었다.
- 장갑차가 츠쿠바가의 결계에 걸리지 않은 건, 카자마의 술식 덕분이다.
- 인식 저해 마법, 텐구술 『카쿠레미노[隠れ蓑]』.
-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다.
- 들리는데 들리지 않는다.
- 빛이나 음파를 차단하거나 교란하는 게 아니라, 인식에 간섭해
- '거기에 없다'고 착각하는 마법.
- 츠쿠바가의 침입자를 감지하는 결계에도 경계에 닿았다는 걸
- 술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마법으로 대항하고 있다.
- 장갑차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건, 카자마의 텐구술이
- 츠쿠바가의 결계를 상회했기 때문이다.
- 카자마가 꼼짝도 못하고 공들이고 있는 건, 츠쿠바가의 결계에
- 대항하기 위해선 다른 걸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 『대텐구』 이명을 가진 카자마의 실력으로도
- 요츠바의 술자에 대항하는 건 간단하지 않았다.
- "철수한다."
- "알겠습니다. 관측 완료, 철수 준비."
- 카자마의 짧은 명령을 받아 운전석의 사관이 뒤를 돌아보고
- 지시를 내렸다.
- 각 대원이 자신이 담당하는 관측 기계에서 데이터를 기록한 미디어를
- 뽑아내고, 보호 케이스에 넣었다. 기기를 서스펜드 상태로 한
- 두 명의 하사관이 '철수 준비 완료'라고 차례차례 전달했다.
- "차체를 올리겠습니다."
- 운전석에 앉은 사관의 목소리와 동시에 서스펜션이 장갑차를
- 들어올린다. 지면에 거의 닿을 때까지 바닥을 내려 주차한 장갑차가
- 오프로드 주행 모드로 변했다.
- "발진 준비 완료."
- 장갑차를 움직일 허가를 요구한 사관에게,
- "음? 기다려."
- 카자마는 스타트 허가를 내리지 않았다.
- 인을 맺은 채, 반쯤 감은 눈을 떴다.
- 장갑차 외부 마이크가 접근하는 모터 소리를 포착한 건, 그 직후였다.
- ◇ ◇ ◇
- 타츠야가 체재하고 있는 별장 주변에는 사람이 다가오지 않도록
- 결계가 펼쳐져 있다. 이를 컨트롤하는 작은 주택에 요츠바의 분가
- 츠쿠바가의 술자가 교대로 들어가 있었다. 이 날 츠쿠바가 차기 당주인
- 유우카가 이 집에 체제한 건, 단순한 로테이션 결과였다.
- 하지만 철야 담당을 후계자인 딸에게 시킬 만큼 츠쿠바가는
- 이 임무는 긴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렬한 마법 파동에 의해
- 강제로 잠에서 깬 유우카는 파자마에 가운을 두른 막 일어난 차림새로
- 의식실로 뛰어들어갔다.
- "피해 상황을 보고해!"
- 차기 당주의 너무나도 편안한 옷차림에 젊은 남성 술자의 얼굴이
- 경련을 일으켰다. 유우카의 옷차림에 노출도는 제로였지만,
- 아마도 '열중하던 일에 갑자기 흥미를 잃었다─'와 같은 동요겠지.
- "지상 부분은 전멸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 하지만 질문에 제대로 대답했다.
- 참고로 그가 침착하게 대화할 수 있는 건, 침실도 의식실도
- 지하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감시용 주택은─
- 별장 감시가 아니라 별장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감시하기 위한 집이다─
- 지하가 본체이며 지상 부분은 위장용이다.
- "원인은?"
- 유우카는 마법 파동에 의해 억지로 깼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은 갔지만, 만약에 자신이 잠꼬대를 했을 가능성을
- 고려해서 유우카는 그렇게 물었다.
- "매우 강력한 원거리 마법에 의한 공격입니다. 공중에서 폭발했고
- 충격파가 집속된 거라고 추측됩니다."
- "충격파를 집속? 마법으로?"
- "아뇨, 폭발 자체를 그런 결과가 되도록 컨트롤한 것 같습니다."
- "흐음……."
- 솔직히 말해서 유우카는 그 원리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 하지만 그만한 위력과 컨트롤을 양립할 수 있는 마법의 정체라면
- 짐작이 갔다.
- "투만 봄바이려나?"
- "아마도."
- 부하인 술자도 같은 의견이었다.
- "타츠야 씨와 미유키 씨는?"
- "별장에 피해는 없습니다. 무사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 그걸 듣고 유우카가 의아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 타츠야와 미유키에게 피해가 없다는 추측에 위화감이 있었던 게 아니다.
- 별장에 피해가 없다는 보고가 마음에 걸렸다.
- "……충격파의 수속점은 타츠야 씨의 별장이었잖아?"
- "강력한 마법 실드가 충격파를 막아낸 모양입니다."
- "……치호 씨, 어떻게 생각합니까?"
- 유우카는 자신에게 새롭게 붙은 가디언 여성 마법사에게 물었다.
- "미나미 씨가 자신의 책무를 다한 거겠지요."
- 유우카의 새로운 가디언, 오자키[櫻崎] 치호는 망설임 없이 명확하게 대답했다.
- 그녀 또한 조정체 '사쿠라[櫻]' 시리즈 중 한 명이다. 사쿠라이 호나미,
- 사쿠라이 미나미와 다른 수정란을 기원으로 삼은, 달리 말하자면
- 다른 혈통의 제2세대. 연령은 미나미보다 8살 많으며 마법사로서는 평범한,
- 언뜻 보면 '평범한 회사원'의 외견을 갖고 있다.
- 치호의 특기 마법도 '사쿠라' 시리즈의 조정 방침에 따른 것.
- 대물ㆍ내열 방어 실드다. 무엇보다도 고체와 열을 막는 게 특기지만,
- 물리적인 물체, 에너지라면 범용적으로 방어한다.
- 충격파가 흩어졌다면 타츠야의 분해 마법, 감쇠됐다면 미유키의
- 진동 감속계 마법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마법 실드로 막아낸 거라면
- 자신과 같은 마법이 특기인 미나미가 한 거다. ─치호가 그렇게
- 추리한 건 당연하며, 논리적이었다.
- "너도 가능하려나?"
- 유우카가 서슴없이 질문했지만, 치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 "아마도 가능합니다. 다만……."
- "다만, 뭐?"
- 치호가 머뭇한 건 아주 잠시였다.
- "다만 그 뒤에도 임무를 다할 자신은 없습니다. 저 위력을 막아내면
- 마법연산영역의 오버 히트로 쓰러지겠지요."
- 유우카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요츠바 일족 중에서도
- 과부하에 의한 마법연산영역의 손상에 대해 특히 잘 알았고,
- 달리 말하자면 전문가이자 일종의 의사다. 설령 상대가
- 다른 사람의 호위자라 해도, 마법연산영역에 심각한 데미지를
- 입었을 가능성이 제시된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 "5분 안으로 준비하겠어. 너도 준비해."
- "도와드릴까요?"
- 치호는 유우카의 상태를 보고 5분 안으로 준비를 마치는 건
-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 "괜찮아."
- 유우카는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여기고 거절한 다음 침실로 돌아갔다.
- 주인과 달리 바지 정장을 입고 있었던 치호는 당장 나갈 수 있도록
- 주차장으로 향했다.
- 지상의 주차장은 폭파로 전멸했지만, 굳이 간소한 구조로 만든 게
- 역으로 좋게 작용해 차가 묻히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 외견은 시판 SUV, 실태는 장갑차 정도의 방어력을 갖춘
- 오프로드 차에 탄 다음 유우카는 새삼 떠올랐다는 것처럼
- 결계 상태를 확인했다.
- "어!?"
-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낸 유우카에게 모니터 시동 스위치를 누르고
- 드라이브 레버를 앞으로 내리려고 한 치호가 동작을 멈추고
- 이유를 물었다.
- "침입자……?"
- "결계에 걸리지 않은 겁니까?"
- 치호의 냉정한 어조 덕분에 유우카는 동요에서 벗어났다.
- "그렇네, 무시무시한 실력자야. 미나미 씨도 걱정되지만,
- 이쪽을 우선하겠습니다."
- 유우카의 판단에 치호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 "모두에게 긴급 출동을 명령하겠습니다."
- 그 대신에 여기에 있는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 의견을 제시했다.
- "응, 부탁해. 우리는 먼저 가 있자고."
- 유우카는 치호의 의도를 이해했지만, 그 조언에는 따르지 않았다.
- "알겠습니다."
- 치호는 유우카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았다.
- 유우카가 가리킨 방향으로 오프로드를 발진시킨다. 결계 내에
- 침입한 것이 누구든 간에, 아군이 올 때까지 자신의 장벽 마법으로
-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치호에겐 있었던 거겠지.
- 침입자는 별장을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9시 위치에 있었다.
- "육군의 장갑차네요."
- 위장 무늬에 날카롭게 각진 폼을 보고 치호가 그렇게 판단했다.
- 유우카는 치호만큼 차 종류를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 그런 그녀가 봐도 군의 특수 차량이라는 건 일목요연했다.
-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기 앞에 세워줘."
- 유우카의 지시에 따라 치호는 장갑차 진로를 막는 위치에
- 오프로드를 주차했다.
- "증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
- 이번에는 치호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유우카는 차 안에 머물렀다.
- ◇ ◇ ◇
- 비교적 소형인 SUV가 장갑차 앞에 멈춘 걸 보고, 운전석의 사관이
- 지시를 요구하며 카자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카자마가 인을 풀고 문 개패 스위치를 건드렸다.
- "대장님?"
- "전원 차 내에서 대기. 우리가 적대 의사를 갖고 있다고
- 상대가 오해할 만한 행위는 금지한다."
- 부하에게 못을 박고 카자마는 장갑차에서 내렸다.
- 내린 위치에서 SUV로 고개를 돌린다. 알아보기 쉬운 동작을 취했기에
- 상대방도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터이다.
- 카자마는 스스로 이 이상의 행동을 일으키지 않고 상대방의 차 안에서
- 반응이 나오길 기다렸지만, 리액션은 좀처럼 얻을 수 없었다.
- 카자마는 그 이유를 금방 깨달았다.
- 지금 있는 곳은 비교적 개방적이다. 타츠야가 있는 별장을 향한 공격을
- 기록한다는 목적 때문에 그런 지형을 골랐지만, 그래도 나무로 인해
- 이곳저곳이 시야가 차단되어 있다.
- 그 사각에 사람이 모여 있다.
- 총 11명. 카자마의 감각에 의하면 모두 다 상당히 레벨이 높은 마법사다.
- SUV의 운전석과 조수석의 문이 동시에 열렸다. 증원은 이걸로
- 끝이라는 거겠지. 카자마는 그렇게 판단했다.
- "츠쿠바 유우카라고 합니다. 요츠바가를 본가로 받드는
- 츠쿠바가의 장녀입니다."
- 조수석에서 내린 젊은 여성이 잘 들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 두 사람의 간격은 5미터가 넘지만, 바람이 부는 야외에서도
- 듣는 데에 지장은 없었다.
- "국방 육군 제101여단 독립마장대대의 카자마 중령이라고 생각됩니다."
- 자신이 누군지 알아차렸다는 사실에 카자마는 놀라지 않았다.
- 그녀가 직접 말한 신분이 맞는 거라면, 자신에 대해 알아도
- 이상하지 않았다.
- "그 말대로입니다. 저는 국방 육군의 카자마 중령입니다."
- 카자마는 장갑차 옆에서 움직이지 않고 대답했다. 손이 닿는 범위까지
- 다가오는 걸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그의 예측과 달리 유우카 쪽에서 카자마 쪽으로 다가갔다.
- 카자마도 바로 이에 반응했다.
- 상대에게 우호적인 자세를 보여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 그것만이 아니다. 20대 전반의 젊은 여성 쪽이 부하가 타고 있는
- 장갑차까지 다가오면, 자신이 겁쟁이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고
- 우려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 운전석에서 내려온 여성이 유우카 바로 뒤에서 따라온다.
- 그녀의 호위겠지. 앞에 서지 않은 건 방어 마법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 카자마는 추측했다.
- ''가디언'인가. 숙련가군.'
- 요츠바가의 '가디언'에 대해 카자마는 타츠야를 통해 어느 정도 들었다.
- 호위라고 생각되는 여성이 '가디언'이라는 건, 몸에 두른 분위기로
- 깨달았다.
- "카자마 중령.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여긴 요츠바가의
- 사유지입니다."
- 카자마가 가디언 여성─ 치호 쪽으로 의식을 쏟은 짧은 시간에
- 유우카는 평범하게 대화할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 "엄밀하게 말하자면 요츠바가 지배하는 부동산 회사의 소유입니다만,
- 지금은 어찌되든 상관없겠지요. 국방군은 사유지에서 무슨 짓을 한 겁니까?
- 그런 것까지 가져와서."
- 장갑차로 시선을 돌리며 유우카가 묻는다.
- 예상한 힐문에 카자마는 어떻게 대답해야만 할지 고민했다.
- 발견될 거라고 상정하지 않았기에 변명을 준비하지 못했다.
- 카자마에게 불행했던 건, 어제와 오늘이 유우카가 담당하는
- 날이었다는 거다. 다른 술자라면 그의 『카쿠레미노』를
- 간파하지 못했겠지.
- 하지만 그들의 침입을 유우카가 발견해버렸다. 카자마는
- 자만할 생각이었지만, 역시 왠지 모르게 얕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 그는 자책을 머릿속 한구석에 새겼다.
- "죄송합니다만, 군사 기밀이라 대답할 수 없습니다."
- 결국 카자마는 괜찮은 변명을 짜내지 못하고 민.간.인.에게 유효한
- 조커를 꺼내버렸다.
- "군사 기밀이라는 건, 즉 외국의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은 공격을
- 사전에 탐지했다는 겁니까?"
- 하지만 유우카는 '군사 기밀'이라는 말에 겁을 먹는 기특한 성격이
- 아니었다.
- "그쪽의 장갑차…… 정보 수집을 위한 장비지요?"
- 그렇게 말하고 유우카는 뒤에 있는 치호를 돌아봤다.
- "네. 정찰용 업무였다고 생각됩니다."
- 대답하는 치호의 말에 단정 짓는 단어는 없었지만, 어조는
- 이에 가까웠다.
-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요.츠.바.가.와 대치할 생각이
- 없습니다."
- 카자마는 표면적으로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민간인'을
- '요츠바'로 바꿔서 유우카의 말에 대응했다.
- "요츠바가는 민간인이 아니라고?"
- 유우카는 카자마의 암시한 부분을 즉시 추궁했다.
- 하지만 그 반응은 카자마가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 "형식은 둘째 치고 실질적으로 완벽한 비전투원은 아니지 않습니까."
- "……공무원은 형식이야말로 중요한 것 아닙니까?"
- 되받아쳤지만 아주 살짝 생긴 타임래그. 유우카가 카자마의 논법을
- 부정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 "형식으로 납득해주시는 겁니까?"
- 카자마가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물어본다. 유우카는 대답할 말이 궁했다.
- "그런 것보다 투만 봄바에 의한 공격을 군이 예측했는지
- 알고 싶습니다만."
- 이 반문은 유우카의 것이 아니었다.
- 나무 그늘에서 나온 목소리에 카자마가 서둘러 돌아봤다.
- 그의 얼굴에 미처 숨기지 못한 동요가 떠올랐다.
- "타츠야……."
- "타츠야 씨……."
- 카자마와 유우카가 동시에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 ◇ ◇ ◇
- "오라버니, 무슨 일 있으신가요?"
- 미나미의 머리맡에 있는 미유키가 타츠야의 긴장감을
- 날카롭게 파악하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 현재 미나미의 용태는 진정됐다.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 방심할 수는 없지만, 타츠야의 『재성』 덕분에 긴급한 사태는
- 벗어났다.
- 그는 미나미를 병원으로 보낼 헬기를 마중 나가기 위해 파자마에서
-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미나미를 눕힌 부엌으로 돌아왔을 때,
- 초조함은 있었지만 딱히 긴장한 느낌은 없었다.
- 그런데 갑자기 적을 경계하는 긴장감을 두른 것이다.
- 타츠야가 뭘 느낀 건지, 미유키는 알 수 없었다.
- "카자마 중령이 와 있어."
- "카자마 중령 말입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 "나도 몰랐어."
-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미유키에게 타츠야도 자신도 그렇다며
-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
- "유우카 씨의 마법으로 끌어낸 모양이다."
- "유우카 씨도 와 계신 겁니까?"
- 타츠야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유키는 납득이 가지 않은
- 모양이었지만, 그것보다 그쪽이 더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 "츠쿠바가의 술자가 사람을 물리는 마법을 쓰고 있어. 이모님의 지시겠지."
- "이모님이……."
- 마.치. 타츠야를 신경 쓰는 것 같은 마야의 지시를 어떻게 해석하면
- 좋을지 몰라, 미유키는 당황을 넘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 "나는 중령을 만나러 가겠어. 미유키, 미나미를 부탁한다."
- 하지만 마야의 진의를 현재 여기서 추측해봤자 의미는 없다.
- 억측만 나올 뿐만이 아니라 진상에 도달한다 해도 쓸모가 없다.
- 미유키가 무의미한 미로에 사로잡히기 전에 지금 해야만 하는 걸 상기시켜
- 그녀의 의식을 되돌린 다음, 타츠야는 말한 대로 카자마를 만나기 위해
- 별장 밖으로 향했다.
- 타츠야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카자마와 유우카는 대화 도중이었다.
- 그의 도착을 탐지한 츠쿠바의 술자를 손짓으로 얌전히 있게 하고,
- 타츠야는 풍경과 동화해서 카자마와 유우카의 말싸움을 귀 기울였다.
- 유우카를 상대하지 않았다면 카자마는 타츠야의 존재를 깨달았겠지.
- 카자마를 상대하지 않았다면 유우카는 타츠야의 존재를 깨달았겠지.
- 서로 상대를 '방심할 수 없는 정신 간섭계 마법 사용자'라고 인식한 탓에,
- 다른 부분에 대한 주의가 어설펐다. 유우카는 둘째 치고 『대텐구』의
- 이명을 가진 카자마치고는 허술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한다.
- 타츠야는 모르지만, 분명 츠쿠바가의 결계를 홀로 계속 속인 탓에
- 피로가 축적됐기 때문이다.
- 『군사 기밀이라는 건, 즉 외국의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은 공격을
- 사전에 탐지했다는 겁니까?』
- 유우카의 지적이 타츠야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 카자마가 타고 온 게 분명한 장갑차는 전투보다도 정보 수집이 목적인
- 위장 차량이다. 심지어 실려 있는 건, 상당히 고액의 기기다.
-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오늘 여기서 귀중한 데이터를 관측할 수 있다고
- 기대해서 출동했다고 추측된다.
- 유우카의 말대로 국방군은 투만 봄바에 의한 기습을 사전에 탐지했다……?
- 그건 타츠야가 지나칠 수 없는 의혹이었다.
- 『형식으로 납득해주시는 겁니까?』
- 심지어 얼굴로 드러난 카자마의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에
- 유우카가 반론할 말을 잃었다.
- 애초에 시간적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이 이상의 관측은
- 필요 없다고 타츠야는 판단했다.
- "그런 것보다 투만 봄바에 의한 공격을 군이 예측했는지
- 알고 싶습니다만."
- 은형을 풀고 나무 그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타츠야를,
- "타츠야……."
- "타츠야 씨……."
- 카자마와 유우카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 "카자마 중령, 대답해주세요."
- 타츠야는 카자마에게 경례하지 않았다. 평범한 인사도 생략했다.
- 호의적인 인사 교환으로 자신의 날카로운 말이 부드러워지는 걸
- 타츠야는 싫어했다.
- "……츠쿠바 씨에게도 말했지만, 대답할 수 없다."
- "즉 긍정이라는 겁니까?"
- "노코멘트다."
- 타츠야는 카자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 "카자마 중령. 저는 중령에게 의리와 은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 "…………."
- "미리 경고해주셨다면 신소련의 기습을 간단히 허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 "……원거리 마법에 의한 기습이 신소련의 것이라는 게 확실한 건가?"
- 카자마가 거기에 관심을 가진 건 당연했다.
- 하지만 타츠야가 문제 삼은 건, 다른 포인트였다.
- "근거를 대답하면 제 의문도 해결해주시는 겁니까?"
- 카자마는 방금 전 공격이 신소련의 전략급마법사 13사도
- 베조브라조프의 투만 봄바에 의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 확신은 가지지 못했다.
- 타츠야는 카자마가 원거리 마법을 사용한 기습이 있을 것을
- 알고 있었다고 확신했다.
- "……좋지."
- 신소련에 의한 기습 공격이 있었다는 증거. 언질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로
- 고집 피워봤자 이익은 없다고 다시 생각하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 "기습 공격에 사용된 마법은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노선 위에서
- 사용된 겁니다."
- "노선 위?"
- "투만 봄바라고 추정되는 마법을 사용한 술자에게 속한 정보를
- 읽어낸 결과입니다."
- "베조브라조프를 포착했다는 거야!?"
- 저도 모르게 유우카가 끼어들었다.
- "술자는 쓰러뜨렸습니다만, 그건 베조브라조프가 아니겠죠.
- 두 사람 다 여성이었으니까."
- "여성!?"
- 유우카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 "두 명……. 미공개 전략급마법사인가."
- 카자마가 즉시 진상에 도달했다.
- "베조브라조프가 전혀 관계되지 않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 제가 본 술자는 그 두 사람입니다. 그들은 분명 신소련의
- 극동 지역에 있었습니다."
- "노선 위라는 말은 신 시베리아 철도의 군용 차량인가."
- 국방군에게 그건 커다란 의미를 가진 정보였다.
- 투만 봄바 발동에는 한 차량을 통째로 점유하는 대형 CAD를
- 써야 된다는 말은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그 가설의 근거가 없었다.
- 게다가 소야 해협에서 투만 봄바 같은 마법이 사용됐을 때
- 그런 열차 이동은 관측되지 않았다. 그런 탓에 국방군은
- 전용 열차를 쓴다는 정보가 잘못됐거나, 그게 아니면 그 때의 마법이
- 투만 봄바가 아닌 다른 술식이었던 거라고 고민하던 참이었다.
- 하지만 타츠야의 증언으로 투만 봄바를 사용하기 위해선
- 전용 열차가 필요하다는 점이 사실로 판명됐다.
- 타츠야는 '투만 봄바라고 추정되는 마법'이라고 표현했지만,
- 위력이나 사정거리를 보면 방금 사용된 마법이 투만 봄바인 건
- 확실했다. 그렇다면 신소련은 투만 봄바와는 다른 초장거리 사정ㆍ
- 고위력의 마법을 갖고 있다는 게 된다.
- 그게 투만 봄바이든 아니든 일본에게 위협적인 마법이
- 전용 열차를 사용한다는 걸 알아냈다. 군이 갖고 있는
- 관측을 위한 리소스는 유한하다. 우선적인 감시 대상이 밝혀지면
- 그 리소스를 유효하게 배치할 수 있다.
- 하지만 카자마는 만족감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 "중령, 이번엔 당신 차례입니다."
- 타츠야는 독립마장대대의 일원으로서, 카자마의 부하로서
- 보고를 한 게 아니다. 이건 거래였다.
- "국방군은 오늘 아침 이 자리에서 기습 공격이 있을 걸 알았다.
- 그렇지요?"
- "알았던 건 아니다. 게다가 일시는 예측하지 못했다."
- "즉 이곳이 습격을 받을 거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 그건 어째서입니까?"
- 카자마는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이건 군의 정보 수집 능력에 관한
- 질문이었다. 타츠야는 반쯤 국방군 신분이지만, 아니 국방군 사람이기에
- 그에게 이를 알 권한이 있는 건지 카자마는 잠시 망설였다.
- "국방군은─ 아니 사에키 각하는 베조브라조프의 동향에 관한 정보를
- 입수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절 표적으로 삼은 기습 공격을 예측한 것
- 아닙니까?"
- 타츠야는 카자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사실을 정확히 맞췄다.
- 카자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가 대답하지 못하는 걸 보고
- 타츠야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고 알아차렸다.
- 만약 기습이 있을 거라고 경고했다면 미나미가 쓰러지는 사태는
- 피했을 터이다. 애초에 미유키와 미나미를 별장으로 부르지 않았을 거다.
- 타츠야 혼자서 방금 전 공격을 받았다고 해도 데미지는 남.지.
- 않.았.을. 터.이다.
- "부상자가 있으므로 저는 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 타츠야는 원망을 집어삼켰다. 카자마에게 말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 없으니까.
-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중령. 유우카 씨,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 "잠깐, 타츠야 씨. 부상자라는 건……, 미나미 씨?"
- 불러 세운 유우카의 말에 등을 돌린 타츠야가 돌아본다.
- "그렇습니다. 유우카 씨는 미나미가 어떤 상태인지 아는 모양이군요."
- 미나미에게 부상이라고 할 만한 외상은 없다. 하지만 마법연산영역─
- 정신의 무의식 영역이 상처를 입었다. 그 의미로 타츠야는
- '부상자'라고 표현했고, 유우카는 이를 이해했다.
- "당장 병원으로 옮겨야지! 우리 집 사람들에게 도우라고 할까?"
- 유우카가 서둘러 수송을 준비하라고 했다. 예측했음에도 불구하고
- 그녀는 동요를 억누르지 못했다.
- "이미 본가가 헬기를 준비해줬습니다. 슬슬 도착할 때이므로……."
- 그러니까 돌아가야만 한다고 타츠야가 은근하게 말한다.
- "그, 그래? 그…… 몸조심하길."
- "감사합니다."
- 유우카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타츠야는 이번에야 말로
- 두 사람에게서 등을 돌려 걸어갔다.
- 그 뒷모습을 걱정된다는 것처럼 유우카가 배웅한다.
- 카자마의 입에서는 마지막까지 '부상자'를 염려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 [2]
- 미나미가 수용된 병원은 쵸후에 있는 맨션 근처였다.
- 물론 우연이 아니다. 미유키가 살고 있는 쵸후의 빌딩은 요츠바가의
- 도쿄 본부로서 세워진 건물. 부상자 대책은 처음부터 고려했다.
- 타츠야는 미유키와 함께 새로운 자택인 맨션으로 돌아갔다.
- 미유키는 미나미와 붙어 있고 싶어 했지만, 담당 의사가
- 정중하게 거부했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방출하는 마법력이
- 치료에 방해된다는 말을 들어, 미유키도 억지를 부릴 수 없었다.
- "미나미 짱, 괜찮을까요……."
- 타츠야 옆에 전혀 거리를 두지 않고 앉은 미유키가 불안감을
- 숨기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 아마도 숨길 생각도 없는 게 분명하다.
- "목숨에 지장이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 타츠야가 기대한 것과 비슷한 대답을 해주자 미유키의 얼굴에서
- 불안이 조금 옅어졌다.
- "……그렇겠죠. 오라버니가 『재성』을 썼는걸요. 만약의 일은
- 없을 겁니다."
- 타츠야가 망설임을 담은 눈동자로 미유키를 응시한다.
-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미유키를 상대로
- 안이한 위로를 주어 얼버무리는 짓은 불성실하다고 느낀 거다.
- "……내가 한 건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에 불과해. 치료는 할 수 없었다."
- 우선 사실을 말하고, 미유키의 불안감이 증폭되기 전에 즉시
- 보충 설명을 더한다.
- "하지만 육체의 쇠약이 치명적인 레벨까지 진행되는 건 피했을 터다.
- 게다가 미나미는 제2세대. 제1세대인 호나미 씨보다 자신의
-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강할 터이다."
- "그렇지요!"
- 미유키가 숙인 고개를 들어올린다. 내리깔았던 시선이 기댈 곳을 요구하며
- 타츠야의 시선을 포착한다.
- "세대를 거듭하여 마법이 유전자에 정착된다……. 이 경향은
- 우.리. 조.정.체.에게도 해당되는 거지요?"
- 미유키가 자신을 '조정체'라고 말하자 타츠야는 저항감을 느꼈다.
- "평.범.한. 조정체는 제1세대보다 제2세대 쪽이 안정되어 있지.
- 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그런 경향인 건 분명해."
- 일반적으로 조정체는 생물로서 안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 어느 날 갑자기 급격히 쇠약해져서 죽는 경우도 있고,
- 어떠한 징조도 없이 갑자기 죽는 케이스도 많이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 그 원인에 대해선 아직 정설이 없다. 하지만 몇 가지 가설이 있다.
- 그 중 타츠야가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하는 건, '조정체의 마법은
- 정신 리미터가 벗어난 상태로 행사된다'라는 가설, '리미터 불완전설'이다.
- 이 설에 따르면 원래 인간의 정신은 마법 행사가 가능하지 않다.
- 마법연산영역은 마법사에게 있는 고유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 일반적인 정신에 갖춰져 있다. 하지만 마법 행사는 인간의 정신에
- 허용 한도를 넘은 부하를 주기 때문에, 보통은 무의식 영역에 있는
- 리미터로 백 퍼센트 가동을 제한한다. 즉 완전히 동결되어 있다.
- 하지만 드물게 마법에 대한 강한 내구력을 가진 정신의 소유자가 있으며,
- 그런 자의 리미터는 살짝 해제되어 있다. 백 퍼센트의 리미터가
- 99 퍼센트나 98 퍼센트 상태로 설정되어 탄생하는 거다.
- 설령 1퍼센트나 2퍼센트라 해도 가용 가능한 용량이 제로 퍼센트인 것과
- 본질적으로 다르다. 설령 처음엔 1퍼센트라 해도 어쨌든
- 쓸 수 없을 터인 마법을 쓸 수 있게 된다.
- 근육과 똑같이 마법연산영역도 사용하면 출력이 늘어난다.
- 그리고 뼈나 근육이 근력 증대를 버티기 위해 강도를 높이는 것처럼
- 정신도 마법이라는 부하에 대한 내구력을 기른다고 '리미터 불완전설'을
- 믿는 사람이 말한다. 육체의 경우와 달리 우선 내구력이 상승하고,
- 그 뒤에 마법연산영역의 리미터 해방과 출력의 강화가
- 병행적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 이런 식으로 평범한 마법사는 마법을 쓰면서 마법행사에 대한
- 원래의 내구력을 점차 높여, 이로 인해 리미터 해방도가 점점 높아진다.
- 그런데 조정체 마법사는 마법을 쓰 수 있는 상태를 인공적으로
- 만들기 때문에 이 리미터가 기능하지 않는다는 게 '리미터 불완전설'의
- 주장이다.
- 정신의 대(對) 마법 내구력 상승에 따라 해방될 터인 마법연산영역이
- 처음부터 해방되어 있다. 정신은 내구력을 넘은 마법 부하에
- 계속 노출되어 끝내는 파손되고, 이게 육체의 생명 활동에
- 영향을 끼친다. 조정체의 불완전한 생명력을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 그런데 정신의 대 마법 내구력은 획득형질로서 유전된다고 한다.
- 육체의 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하는 네오라마르키즘은 진화설의
- 주류가 되지 못했지만, 마법 적응이라는 정신 분야에서는
- 획득형질 유전이 '마법이 유전자에 익숙해진다'라는 관측 현상을
-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가설로 본다.
- 이 정신적 라마르키즘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이 사실이라면,
- '제2세대'는 '제1세대'가 자멸의 길을 걸으면서 얻어낸 대 마법 내구력을
- 태어나면서 지니게 된다. '제3세대'는 '제2세대'가 높인 내구력을
- 더욱 많이 받게 된다.
- 모든 건 가설에 불과하다. 게다가 옳다는 증거는 없다.
- 하지만 '제2세대'인 미나미는 '제1세대'인 호나미와 달리
- 마법 과잉 행사에 견딜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다.
- 그렇게 생각해서 미유키는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 미유키의 얼굴에서 비장감과 죄악감이 옅어진다. 그녀는
- 미나미가 자신을 위해 희생된 거라고 적지 않은 죄의식을
- 품고 있었다.
- 그걸 보고 타츠야가 미유키에게 미소를 지었다. 마음 속 우려를 숨기고.
- 미유키가 조정체라는 건 타츠야에게 불쾌한 사실이었다.
- 가능하다면 믿고 싶지 않지만, 부정할 근거가 없다.
- 조정체에게 기피감이나 차별 의식을 품고 있는 건 아니고,
- 설령 그게 태어나기 전이라 해도 누군가가 미유키를
- 만지작거렸다고 생각하면 불쾌감이 들어버렸다.
- 타츠야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일종의 독점욕이었다.
- 하지만 그런 감정을 빼고 미유키가 조정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 심각한 우려를 무시할 수 없게 된다.
- 그건 마야가 말한 대로 제1세대가 가진 생명력의 안정성 결여를
- 정말로 극복했는가 안 했는가라는 불안.
- 마야의 말을 방금 전 가설에 맞춰보면 미유키는 조정체이면서
- 리미터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거겠지. 혹은
- 리미터가 애초에 필요 없을 정도로 원래부터 대 마법 내구력이 높거나.
- 이를 확인 할 수단은 타츠야에게 없다. 봉인에서 완전히 해방된 지금도
- 그의 힘은 정신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다.
- 그러니까 믿을 수밖에 없다.
- 만약 마야가 타츠야에게 말한 것이 거짓이며 미유키가 조정체의 결함을
- 품고 있다면.
- 그리고 미유키에게 조정체의 숙명인 갑작스런 죽음이 찾아온다면.
- 타츠야는 그 이후의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 그 때 자신은 살아 있지 않겠지.
- 그 때 자신만으로 멈출 자신감이, 타츠야에겐 없었다.
- ◇ ◇ ◇
- 기습 공격에 대해 일본 정부가 특정 국가를 지정하지 않은 채
- 국제 사회에 항의 의사를 표명한 건, 일본 시각으로 오후 2시였다.
- 하지만 일본의 이즈 반도가 원거리 마법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 거의 리얼 타임으로 USNA에 알려졌다.
- USNA의 탐지 위성은 이즈가 공격 받은 것과 같은 시각에
- 극동 신소련 영토 내에서 강력한 마법 반응을 탐지했다.
- 이 두 가지를 연결 짓지 않는 너무나도 어수룩한, 혹은
- 회의적인 사람은 USNA 정부에도, 군에도 없었다.
- 그리고 그 사실을 몇 시간 뒤에 리나도 알게 됐다.
- USNA 뉴멕시코 주에 있는 스타즈 본부는 아직 6월 8일 토요일이다.
- 그날 저녁 훈련 종료 뒤의 미팅에서 리나 이하의 스타즈 간부 군인은
- 놀라운 뉴스를 접했다.
- 일본의 한 지방, 심지어 떨어진 섬이나 해상이 아니라 수도 근처에서
- 현지 시각으로 해 뜰 녘에 신소련의 전략급마법에 의한 공격을
- 받았다는 보고다.
- "참고로 이 공격의 타깃은 일본의 새롭게 판명된 전략급마법사
- 타츠야 시바라고 생각됩니다."
- 브리핑 룸에서 이 뉴스를 알린 건, 워커 기지사령관의 마법사가 아닌
- 남성 부관이었다.
- "타츠야 시바의 상태는?"
- 이렇게 질문한 건 리나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직 쇼크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 조리 있는 질문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기지사령관의 부관에게
- 타츠야의 안전을 물어본 건 카노프스였다.
- 부관이 워커 사령관을 본다.
- 워커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그는,
- "상세한 건 불명입니다만, 건재라고 생각됩니다."
- 그렇게 대답했다.
- 마법사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 리나는 안도감을 숨기지 못했다.
- 카노프스는 타츠야의 복수를 경계하는 건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 아르크투루스가 낙담한 표정으로 보이는 건, 암살 임무가
- 중지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 같은 임무를 받은 베가는 대조적으로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다.
- 여기서 워커 대령이 입을 열었다.
- "우리나라는 이 건에 대해 기본적으로 불간섭 자세를 취하겠다고
- 참모본부가 통지했다. 제군이 대외적으로 발언할 기회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 염두에 두어두게."
- 모두 긍정했다. 이 판단에 납득하지 못한 사람은 리나만이 아니었지만,
- 그들은 모두 자신의 입장을 헤아리고 있었다.
- "그럼, 해산."
- 워커의 말에 USNA의 정점에 선 13인의 마법사가 일제히 경례했다.
- 리나부터 순서에 따라 퇴실하는 그들 뒤에서,
- "아르크투루스 대위, 자네는 남게."
- 한 사람을 불러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 원래 스타즈의 작전은 총대장인 리나를 통하는 게 룰이지만,
- 그녀보다 위에서 지령이 내려오는 예.외.적.인. 일.은 그렇게
- 드문 게 아니다.
- 리나 본인도 보.통.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 리나와 다른 11명의 각 부대 대장만이 아니라 부관까지 나가고,
- 브리핑 룸에 워커와 아르크투루스 두 사람만 남았다.
- 이 방에는 강고한 방첩 시스템이 깔려 있다. 당연히 지금도 가동 중이다.
- "대위, 차음 필드를 펼치게."
- 그런데다가 워커는 아르크투루스에게 그렇게 명령했다.
- "넵."
- 아르크투루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명령대로 실내와 실외의 소리를
- 차단했다.
- "차음 필드, 전개 완료."
- 마법적인 자질이 없는 워커는 아르크투루스의 말이 사실인지
-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안심할 재료는 되는 건지,
- '그래'라고 대답하며 본제로 들어갔다.
- "대위. 예의 실험의 실시가 결정됐다."
- 아르크투루스의 얼굴에 긴장감이 생겼다.
- "마이크로 블랙홀 실험 말입니까?"
- 그는 스스로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 저도 모르게 소리를 죽여 말했다.
- "그렇다. 장소는 저번과 똑같이 댈러스 국립 가속기 연구소.
- 날짜는 다음 주 6월 15일 11시. 귀관은 스타즈에서도 뛰어난
- 루나 매직 사용자다. 가령 패러사이트가 출현한다 해도
- 대처는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만, 필요하다면 제11대도
- 출동시킬 수 있다만."
- 미군에서는 정신 간섭계 마법을 루나 매직이라고 부른다.
- 아르크투루스는 강력한 정신 간섭계 마법 사용자다.
- 하지만 아르크투루스는 그런 종류의 마법을 이용한 실전 경험이 부족했다.
- 그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선민사상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았다.
- 그의 할머니는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순혈 원주민
- 샤먼이었다. 그의 정신 간섭계 마법의 소질은 할머니에게서
- 물려받았다고 추측된다.
- 원래 있어선 안 되지만 그는 이 핏줄 때문에 정신 공격이 특기인
- 고식마법사-'요술사'나 '주술사'라 불리는 자-를 상대하는 미션에서
- 배제됐다.
- '요술사'는 원주민계 고식마법사 중에, '주술사'는 흑인계
- 고식마법사 중에 많다. 아니 실태는 백.인.을. 비.롯.한.
- 아.시.아.계. 사.람.들.이 원주민계 고식마법사를 '요술사'라고,
- 흑인계 고식마법사를 '주술사'라고 부른다는 게 맞지만,
- 아르크투루스는 그런 민.족.계. 고식마법사에게 강한 공감을
- 품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인종적 편견을 받고 있었다.
- 반면에 제11대 항성급 마법사는 세 사람 모두 루나틱 마법이
- 특기이지만 그런 종류의 편견을 받고 있지 않았다. 정신 간섭계 마법이
- 특기인 고식마법사가 상대인 작전에 팀으로 출격하는 일이 많고,
- 정신을 좀먹는 공격에 대한 대응도 익숙하다.
- "아뇨, 소관만으로 충분합니다."
- 실전 경험 부족은 아르크투루스도 자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 그에게도 자부심은 있다. 게다가 이 건에 관련되는 사람은
- 스타즈 내부에서도 필요 최소한으로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 "그런가. 알겠다."
- 관여한 인간이 적은 편이 좋다는 생각은 워커의 판단과 같았다.
- 이 대화로 실.험. 현.장.에 투입되는 건 아르크투루스의 제3부대만으로
- 결정 났다.
- "연구소 밖에 제6부대를 대기시켜두겠다.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면
- 바로 알리게."
- 하지만 그건 미션에 투입되는 게 제3부대만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 제6부대의 항성급 대원은 리겔, 벨라트릭스, 알닐람으로
- 오리온자리별의 이름을 받았으며, '오리온 팀'이라고 불린다.
- 이건 우연이 아니라 제6부대는 추적이 특기인 마법사를 모은
- 헌터 팀이었다.
- "알겠습니다. 리겔 대위에겐……."
- "걱정하지 마라. 실험에 대해선 숨겨두지."
- 워커의 말에 아르크투루스가 잠시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 마이크로 블랙홀 실험은 일본 공작원을 색출해내는 게 목적이다.
- 확실하게 잡기 위해 다른 부대의 협력은 있는 게 좋다. 하지만
- 스스로도 필요 이상으로 위험한 다리를 건너고 있다는 걸 아는
- 아르크투루스는 가능한 한 다른 부대 사람에게 실험에 대해
- 알리고 싶지 않았다.
- 이건 워커도 똑같았다. 둘 다 몸보신이 동기는 아니었지만
- 결과적으로 공유해야만 하는 정보를 은닉해버리고 말았다.
- ◇ ◇ ◇
- 일본 정부는 이즈 반도의 별장 지대가 마법적 공격을 받았다는 걸
- 공표하고, 공격 상대를 특정하지 않은 채 엄하게 비난했다.
- 동시에 마법에 의한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선 마법 전력을
- 충실하게 갖추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 마법사 배척은 인도적 문제에 불과한 게 아니라 외국 세력의
- 마법 공격에 대한 자위력을 저하시켜 국민의 생명을 위험에
- 노출시키기도 한다며, 간접적으로 반마법주의 운동을 비판했다.
- 하지만 이 공격의 타깃 또한 마법사라는 건 숨겨뒀다.
- 표적이 타츠야고 피해자가 미나미라는 사실은 엄중한 함구령이
- 내려왔다.
- 하지만 완벽한 은폐는 불가능했다.
- 타츠야가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그와 마법 공격을 매우 자연스럽게
- 연관 지었다.
- 이를 몰라도 예민한 마법적 지각력으로 사실에 도달한 사람도 있었다.
- 정부에 의한 기습 공격 공표와 이에 대한 비난이 끝난 직후,
- 후지바야시 중위는 사적인 전화를 받았다. 근무 중임에도 불구하고
- 개인적인 통화가 가능했던 건, 그녀가 여차할 때에 대비해
- 사령부의 공인을 받아 쿠도가에게 설정한 가상 핫라인의 호출이었기
- 때문이다.
- 『쿄코 누나? 미노루입니다.』
- "미노루 군?"
- 가상 핫라인은 소리만이다. 발신자는 '쿠도가'로 표시되므로,
-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 누군지 모른다. 할아버지거나 삼촌이거나
- 혹은 이모거나. 미노루가 전화한 건, 후지바야시에게 완전히
- 예상외의 일이었다.
- 『업무 도중에 죄송합니다.』
- "괜찮아. 지금은 한가하니까."
- 이건 상대방을 위한 거짓말이 아니다. 방금 전까지 후지바야시는
- 카자마가 가져온 이즈 고원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발표용 자료 작업에
- 쫓기고 있었다.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인 현재, 이와 관련된 사람들은
- 모두 일시적으로 일이 없는 상태였다.
- "그래서, 무슨 급한 용건이라도 있는 거야?"
- 후지바야시는 마음속으로 초조함을 감추면서 물었다. 가뜩이나
- 이 직통 전화가 쓰이는 일은 드물다. 미노루가 건 것은 처음이다.
- 방약무인과 거리가 먼─ 적어도 후지바야시 앞에서 그런 태도를
- 취한 적이 없는 미노루가, 군무 중이라는 걸 알면서 전화한 거다.
- 뭔가 긴급한 사태가 발생한 거라고 후지바야시가 짐작하는 건,
- 당연한 일이었다.
- 『급한 용건인 건 아니지만, 꼭 좀 알고 싶은 것이 있어서…….
- 방금 정부 발표 말인데요.』
- "응."
- 엄청난 고동을 느끼면서 목소리만은 평소대로 후지바야시는
- 뒷말을 재촉했다.
- 『원거리 마법의 공격을 받은 건, 타츠야 씨네 아닙니까?』
- "어째서 그걸……?"
- 이건 부주의한 반응이었다. 상대가 미노루이긴 하지만
- 후지바야시는 정부가 숨긴 사실을 밝혀버렸다.
- 후지바야시를 습격한 충격은 그만큼 컸다. 1고의 타츠야와
- 각별히 친한 친구는 그의 거주지를 알고 있으므로
- 오늘 아침의 공격과 타츠야를 연결 짓는 게 이상하진 않다.
- 하지만 1고 중에서도 그가 이즈 고원의 별장에 체재 중이라는 걸
- 아는 사람은 적을 터이다. 혹시 작년 가을에 교토에서 친해진
- 사이죠 레온하르트나 요시다 미키히코에게서 타츠야가
- 이즈에 있다는 걸 들은 걸까…….
- 이 후지바야시의 예상은 빗나갔다.
- 『동쪽 방향에서 격돌하는 강한 마법의 파동을 느꼈습니다.
- 한 쪽은 타츠야 씨의 기척이었던 것 같아서…….』
- 미노루의 말에 후지바야시는 저도 모르게 경악했다.
- 미노루의 말이 사실이라면 타츠야의 엘레멘탈 사이트를
- 뛰어넘었다.
- 타츠야의 엘레멘탈 사이트는 단서만 있으면 어떤 거든 '본'다.
- 단 엘레멘탈 사이트는 지향성─ 의지의 지향성이 필요하다.
- '보'려고 하지 않으면, 의식을 쏟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 미유키를 향한 적의를 수동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건,
- 그런 식으로 대상을 골라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 이번에는 실제로 공격이 발동하기 전까지 지각하지 못했다.
- 하지만 미노루가 정말로 투만 봄바의 파동을 포착했다고 한다면,
- 4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마법의 발동을 무작위로 지각했다는 것이다.
- 분명 투만 봄바처럼 강력한 마법이었기에 느꼈다는 부분도 있겠지만,
- 수동적인 감수성 부분에서는 미노루가 타츠야를 명백히 능가한다.
- 적어도 후지바야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 엘레멘탈 사이트의 재능이 각성한 건가……?
- "……미노루 군. 너 어느 틈에 그런 지각력을……?"
- 후지바야시의 질문은 대답을 얻지 못했다.
- 『그래서, 타츠야 씨 일행은 무사합니까!? 미유키 짱이나 사쿠라이 씨는!?』
- 미노루는 후지바야시의 질문을 듣지 않았다. 그의 의식은
- 그들의 안전으로 가득 찼다.
- ─아니, 미노루가 정말로 걱정하는 건 타츠야나 미유키가 아니라…….
- "타츠야 군과 미유키 씨는 무사해. 하지만 사쿠라이 씨는……."
- 그런 직감이 뇌리에 스친 탓에 후지바야시는 또 다시 미처
- 얼버무리지 못했다.
- 『사쿠라이 씨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 미노루의 필사적인 목소리에 후지바야시는 묵비할 수 없었다.
- "……입원했어. 대대의 야마나카 선생님은 마법을 너무 써서
- 정신적으로 데미지를 입은 거라고 추측했어."
- 『추측이라니, 독립마장대대는 치료하지 않은 겁니까!?
- 현장에 있었잖아요!?』
- '미노루 군, 너, 대체……?'
- 이번 질문은 말로 나오지 않았다. 오늘 아침 현장에 독립마장대대가
- 출동해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사에키, 카자마, 출동한 부원과
- 대대 중 일부. 그리고 타츠야, 미유키 및 요츠바가.
- 정부에게도 구체적인 출동 멤버는 보고하지 않았다.
- 기습 데이터를 얻어낸 게 독립마장대대라는 걸,
- 미노루가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하지만 미노루의 말은 적당한 추측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 그는 확신을 가지고 독립마장대대의 작전 행동을 맞췄다.
- 후지바야시가 아는 미노루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녀의 '사촌 동생'은
- 확실히 전부터 뛰어난 마법사였다. 소질만이 아니라 세계에서도
- 톱클래스에 도달했다고 후지바야시는 생각했다. 하지만
- 이런 천리안 같은 능력은 없었을 터이다.
- 마치 금단의 지혜를 주는 악마가 미노루에게 쓰인 것 같다…….
- 그런 미신 같은 망상을 품어버릴 정도로.
- ─이 때 그녀가 자신의 직감을 망상이라고 치부하지 않았다면.
- 어쩌면 미래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 ◇ ◇ ◇
- 후지바야시를 통해 아침 일에 대해 듣고도 미노루는 딱히
- 분노를 품지 않았다. 조금 실망은 했지만, 군은 냉혹하다는 선입관이
- 있었기에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 그런 것보다도 미노루는 미나미가 너무 걱정됐다.
- 마법을 너무 써서 정신이 데미지를 받았다는 건, 마법연산영역의
- 오버 히트겠지. 지금은 아직 치료법이 확립되지 않은
- 마법사 고유의 병이다.
- 특히 유전자 조정을 받은 마법사가 걸리기 쉽다.
- 슈 코우킨에게서 흡수한 지식에 의하면 미노루 자신의
- 불안정한 체질도 마법연산영역의 과부하가 원인이다.
- 미노루의 경우 육체가 견딜 수 있는 레벨로 마법력을 억제하는
- 리미터가 잘 작동하지 않는 거였지만, 평.범.한. 마법사라 해도
- 전투에 따른 마법 과잉 사용으로 마법연산영역의 가동 수준이
- 허용 레벨을 넘어가버리면 리미터가 부서져버린다. 그걸
- 수복하는 기술은 슈 코우킨의 지식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 ''나'는 치료할 수 없지만 요츠바가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 그건 추측보다도 소원이었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초조함을
- 억누르기 위해선 그것 외에 없었다.
- '……병문안 가자. 직접 만나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 알 거야.'
- 타츠야가 자신의 식.구.를 죽게 내버려둘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 자신이 안달 낼 필요도 없이, 적절한 치료를 하는 중일 터이다.
- 이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러 가자─.
- 미노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일은 학교다. 사실 몸 상태가
- 안정됐을 때 출석 일수를 벌어둬야만 하지만, 그의 성적이라면
- 여차할 때 시험과 리포트로 대체할 수 있다.
- 잠시 뒤 미노루는 결석하기로 마음먹었다.
- ◇ ◇ ◇
- 각성은 쾌적하지 않았다. 몸이 무겁다. 조금도 피로가 풀리지 않은 건지,
- 엄청난 권태감이 몸을 침식한다.
- 눈을 뜨자 보인 건 온화한 크림색 천장.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 같은 색 벽. 그리고 청결한 하얀 이불 커버와 시트.
- 왼팔에 점적 주사의 바늘이 꽂혀 있다.
- '여긴…… 병원?'
- 이 인식 뒤에 기억이 되살아난다.
- '……맞아! 미유키 님은!?'
- 미나미는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그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 자신이 쇠약해졌다는 걸 알았다.
- "으윽……."
- 몸에 힘을 주고, 그 힘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목소리가 되어 흘러나온다.
- 침대에 드러누운 상태로 숨을 가다듬는 미나미의 귀에 노크 소리가
- 들려왔다.
- "……들어오세요."
- 그 목소리는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연약했다.
- "실례할게."
- '미유키 님!?'
- 아직 의식에 어렴풋하게 안개가 끼어있지만, 그 목소리가
- 누군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 미나미는 서둘러 다시 일어나려고 했다.
- 결과는 같았다.
- 머리를 조금 들어올렸을 뿐이다.
- 그것도 바로 침대로 되돌아갔다.
- 괴로워하는 목소리가 미나미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 "미나미 짱!?"
- 서둘러 달려오는 발소리.
- 고개를 옆으로 돌린 미나미의 시야에 걱정한 나머지
- 초조함이 가득 찬 표정인 미유키의 얼굴이 비친다.
- '……아름다워…….'
- 그런 표정임에도 미유키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닐 정도로 아름답다.
- 미나미의 의식에 그런 부적절한 사념이 가득 찬다.
- "미나미, 무리하지 마."
- "타츠야 님……."
- 환각 상태였던 미나미의 의식이 타츠야의 목소리에 의해
- 현실로 되돌아온다.
- "……두 분 다 무사했군요."
- 제정신을 차린 미나미의 첫 말은 자신의 상태를 묻는 게 아니었다.
- "그래. 미나미 네 덕분이다."
- "─영광입니다."
- 미나미의 눈이 부옇게 된 건, 지켜냈다는 안도감과
- 인정받았다는 감격, 그 양쪽의 감정이 드높아졌기 때문이다.
- "안 되지, 누워 있어야지."
- 몸을 달싹이는 미나미를 미유키가 말렸다.
-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대로도 괜찮다."
- 타츠야까지 그렇게 말하자 미나미는 억지로 일어나는 걸 멈췄다.
- "타츠야 님, 미유키 님, 죄송합니다."
- 예상치 못한 사과에 미유키는 돌려줄 말을 못 찾았다.
- "─뭘 사과하는 거지. 네 덕분에 살았다는 건 거짓도,
- 과장도 아니다. 사실이다."
- 타츠야조차 타임래그를 피할 수 없었다.
- "하지만 저는 도중에 힘이 다했습니다. 호위는 주인을
- 끝까지 지켜내야지 임무를 완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저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 목소리에 힘은 없다. 몸은 자각 직후와 똑같이 일어나는 것도
- 불가능하다.
- 하지만 미나미의 눈동자에 깃든 빛은 그것이 약한 마음에서 나오는
- 우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에서 나온 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미나미. 심신 모두 지친 너랑 논쟁을 할 생각은 없어.
- 하지만 두 가지, 들어줬으면 하는 게 있다."
- "……알겠습니다."
- 미나미의 대답을 받고 타츠야는 머리맡의 스툴에 앉았다.
- 그렇게 해서 시선의 고도 차이를 줄여, 미나미가 받을 터인
- 내려다보는 시선의 인상을 완화했다.
- "미나미, 네 사명감은 훌륭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네 마법이
- 투만 봄바의 충격파를 막은 건 분명한 사실이야. 그 공적을
- 스스로 부정하는 건 그만 둬."
- "……네."
- 미나미는 움직이지 않고 말만으로 긍정했지만, 진심으로
- 납득한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 "그게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다."
- 타츠야의 진지한 목소리.
- 미나미만이 아니라 옆에서 듣고 있는 미유키도 동시에
- 숨을 들이마셨다.
- "나는 미유키를 호위하는 일만으로 널 믿고 있는 게 아니다."
- "…………."
- 미나미가 누운 채 타츠야를 말없이 바라본다. 그 시선은
- 자신에게 뭘 시키고 싶은 건지 묻고 있다. 자.신.의. 존.재. 의.의.를
- 대답해주길 바란다.
- "내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 레오나 에리카, 미즈키,
- 미키히코, 호노카, 시즈쿠. 1고 동급생은 신용할 수 있지만
- 우리 사정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 요츠바가는 지금은 아군이지만
- 내가 방해가 된다면 주저 없이 날 없애려고 하겠지. 후미야와 아야코는
- 개인으로서는 신뢰가 가지만, 두 사람에겐 자신들의 임무가 있어.
- 여차할 때 믿을 수 없을지도 몰라. 사부나 카자마 중령은
- 미래에 적이 될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어."
- 저는, 이라고 미나미가 시선으로 묻는다.
- "미나미. 너는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 그러니까 나는 너에게 호위로서가 아니라 미유키의 시중을 드는 사람으로서
- 미유키 곁에 있어줬으면 해."
- "호위로서가 아니라, 시중드는 사람…… 말입니까?"
- "내 희망이다. 강제가 아니야. 하지만 가능하다면 미유키 곁에
- 붙어 있어줬으면 해. 호위로서 죽음을 재촉하는 게 아니라,
- 가능한 한 길게. 적어도 네가 언젠가 평생을 함께 할 상대를
- 찾기 전까지."
- 파랗게 질린 미나미의 얼굴이 살짝 붉게 물든다.
- 타츠야가 자신의 결혼까지 언급하다니 너무나도 예상 외였다.
- ─미나미에게 마지막 말은 너무한 기습이었다.
- "……미나미 짱. 나도 네가 옆에 있어준다면 기뻐.
- 그러니까 자신을 소홀히 다루는 생각은 안 해줬으면 해."
- 타츠야의 옆에 앉은 미유키가 몸을 내밀며 미나미의 얼굴을
- 들여다보며 그렇게 말한다.
- 미나미의 두 눈이 다시 글썽인다. 타츠야와 미유키가 자신을
- 소중히 여긴다고, 미나미는 이 때 이론 없이 실감했다.
- "부탁이니까 푹 요양해 줘. 그게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 "……알겠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건강해지겠습니다.
- 그러면 또 미유키 님 곁에서 모셔도 괜찮을까요?"
- "그럼, 내 쪽에서 부탁할게."
- 타츠야 뒤에서 병실 문이 열렸다.
-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오는 걸 타츠야는 돌아보지도 않고
- 탐지했다.
- "내일 또 오지."
- 그렇게 말하면서 타츠야가 스툴에서 일어났다.
- "미나미 짱, 내일 봐."
- "네. 타츠야 님, 미유키 님, 병문안 감사합니다."
- 타츠야에 이어 일어난 미유키와 침대 위의 미나미가 인사를 나눈다.
- 타츠야네는 의사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병실에서 나갔다.
- ◇ ◇ ◇
- 타츠야는 미유키와 함께 쵸후의 맨션으로 돌아왔다.
- 거실에 앉은 타츠야에게 다시 나갈 낌새는 없다.
- "오라버니……. 오늘 밤은 이쪽에서 묵을 생각이십니까?"
- 타츠야의 앞에 커피컵을 놓으면서 미유키가 물어본다.
- 미나미가 올 때까지 타츠야에게 커피를 내주는 건 미유키만의
- 역할이었다. 미나미가 시바가에 익숙해진 뒤로도 타츠야의
- 음료수 준비는 미유키의 역할이었지만, 방심하고 있으면
- 그 일을 미나미에게 뺏기는 일도 있었다.
- 그 때마다 미유키는 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일을 빼앗길 걱정이
- 없어지고 나니 쓸쓸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미유키가 특히
- 제멋대로인 게 아니라, 사람이란 원래 그런 거겠지.
- "이즈의 별장에서 퇴거할 생각이야. 괜찮다면 내일이라도
- 저쪽에 두고 온 짐을 가져올 생각이다."
- "여기로 돌아오시는 겁니까?"
- 미유키가 가볍게 눈을 크게 뜬다. 그녀의 눈동자는 기쁨으로 반짝였다.
- 만약 미나미가 입원 중이 아니었다면, 좀 더 알기 쉽게
- 환희를 표현했겠지.
- "돌아온다……, 그렇군. 여기로 돌아오겠어."
- 타츠야는 이 맨션에서 머문 적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산 적은 없다.
- 그 탓에 '돌아온다'라고 해도 괜찮은 건지 망설였지만, 타츠야가
- 있어야 할 곳은 미유키의 옆이다.
- ─미유키가 이 집에서 산다면 여기로 '돌아온다'라고 표현하는 게
- 맞다.
- 타츠야는 그렇게 생각을 고쳤다.
- "알겠습니다. 바로 방을 준비하겠습니다."
- "굳이 번거롭게 준비할 필요는 없어. 미유키도 조금 쉬도록 해."
- 미나미가 쓰러져서 미유키는 자신보다 큰 쇼크를 받았을 거라고
- 타츠야는 생각했다. 불안을 얼버무리기 위해 가만히 있는 것보다
- 움직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상상이 간다.
- 하지만 휴식도 중요하다.
- 방 준비라고 해봤자 침대 정리는 홈오토메이션이 해준다.
- 지금은 미유키도 일단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고 타츠야는 판단했다.
- 미유키는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타츠야의 말에 따랐다.
- 미유키가 타츠야의 맞은편 소파에 깊게 앉았다. 잠시 미유키는
- 진정되지 않는 것처럼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지만, 이윽고
- 망설이며 타츠야와 눈을 마주봤다.
- "왜 그러지?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는 건가?"
- 타츠야가 말문을 트자 미유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 "오라버니는…… 미나미 짱에게 뭘 시킬 생각이십니까?"
- "무엇, 이라니? 미나미의 의지에 반하여 뭔가를 강제할 생각은 없다만."
- "죄,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 타츠야가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하자 미유키는 서둘러 양손을
- 가로로 휘둘렀다.
- "그런가? 아아…… 설마 앞으로 미나미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 거냐고
- 묻고 싶은 건가?"
- "네……. 아뇨, 그것도 있습니다만……."
- 미유키가 말하기 어렵다는 것처럼 얼버무린다.
- 그걸로 간신히 미유키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타츠야는 이해했다.
- "……이제 미나미에게 무리는 시키지 않을 거야."
- 타츠야도 그걸 확실하게 말하는 건 망설였다. 평소와 달리
- 추리력이 좋지 않았던 건, 그 탓일지도 모른다.
- "그건…… 미나미 짱을 가디언의 임무에서 제외하겠다는 의미지요?"
- "그렇다."
- 하지만 일단 꺼낸 이상 타츠야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 "마법연산영역의 손상이 나을 때까지 마법을 쓸 수 없고,
- 애초에 나을지도 불명확해. 그건 우리 마법사에게 블랙박스 같은 거다.
- 구조도 성질도 판명되지 않은 게 너무 많아."
- "그렇네요……. 이치죠가의 당주님은 순조롭게 좋아지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 그렇다고 해서 미나미 짱도 똑같이 회복되리라고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 "같은 십사족 당주 중에서도 쥬몬지가의 전 당주는 의도적인
- 마법연산영역의 과부하를 많이 사용한 결과 마법 기능을 잃었다.
- 치료에 대해 낙관할 수는 없겠지."
- 타츠야와 미유키 두 사람의 얼굴이 우려로 인해 어두워진다.
- "……게다가 이번에 회복된다 해도 또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거라고
- 확신할 수 없어."
- "마법을 계속 사용하는 한, 말입니까?"
- "그렇다. 그리고 다음엔 응급처치가 늦을지도 몰라."
- 미유키의 얼굴을 뒤덮은 우울한 색이 한층 짙어졌다.
- "이제…… 미나미 짱은 마법사로서 일할 수 없게 된다는 겁니까?"
- "아니, 평.범.한. 마법사로서 계속 활동할 수는 있겠지."
- "격한 전투에는 견딜 수 없다…… 라는 거군요?"
- "그 말대로야, 미유키. 우선 후퇴가 불가능한 가디언의 임무는 무리다.
- 거듭되는 전투도 피하는 게 좋아."
- "미나미 짱이 납득할까요?"
- "싸움만이 삶의 방식인 건 아니야. 미나미는 앞으로 평화로운 인생을
- 보내줬으면 한다고 생각해."
- 미유키의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 하지만 이맛살을 필 정도는 아니었다.
- "오라버니…… 아뇨,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
- 미나미에게 평화로운 삶의 방식을 권하는 타츠야 본인은 어떤가.
- 타츠야에게도 평화로운 삶을 살 권리는 있는 것 아닌가.
- 미유키는 그렇게 물으려다가 도중에 멈췄다.
- 그게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는 물음이라고 미유키도 알았다.
- 그 질문을 저도 모르게 꺼내려다가, 도중에 꺼내지 못하고
- 생각에 그친 거다.
- 타츠야가 평화로운 삶을 바란다 해도 주변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 타츠야가 쓸 생각이 없다 해도 전략급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 적도 아군도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건 예측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다.
- "그런가."
- 타츠야 자신도 당연히 이를 알고 있다. 아마도 미유키 이상으로
- 깊이 이해하고 있다.
- 미유키가 물어보고 싶었던 것, 말하고 싶었던 걸 이해하고도
- 타츠야는 그렇게 대답하는 것 외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 [3]
- 6월 10일, 월요일.
- 바다를 사이에 둔 원거리 마법 공격을 받았다는 극히 비일상적인 일이
- 발생한 게 어제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용서 없이 찾아온다.
- 미유키는 미나미의 상태를 우려하며 평소대로 1고로 등교했다.
- "타츠야 님도 여러모로 바쁘신 것 아닙니까……?"
- 리클라이닝을 올린 침대에 등을 기댄 미나미가 죄송하다는 목소리로
- 타츠야에게 묻는다. 참고로 그녀는 아직 자력으로 몸을 일으킬 수 없기에
- 보조 외골격─치료용인 장착형 파워 어시스트 장치─을 상반신에
- 장착하고 있다.
- "지금은 통학이 면제된 상태야. 날 신경 쓸 필요는 없다."
- "하지만……."
- "그것보다 아직은 누워 있는 편이 좋은 것 아닌가?"
- 아무리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해도 미나미는 납득하지 않겠지.
- 필요 없는 문답을 끊기 위해 타츠야는 억지로 화제를 바꿨다.
- 다만 화제를 전환한다는 목적만이 아니라 미나미가 장착한
- 외골격이 마음에 걸린 부분도 분명 있었다.
- "아뇨. 어시스트를 받으면서 계속 누워 있지 않는 쪽이
- 일상생활에 빨리 복귀할 수 있을 거라고 의사 선생님이 권했습니다."
- "하지만 착용감이 그다지 좋은 건 아닐 텐데."
- 파워 어시스트 기능 자체는 타츠야도 무벌 슈트 덕분에 익숙하다.
- 현재의 어시스트 시스템은 피드백 스피드가 빠르기에 움직임에
- 방해가 되는 일은 없다고 알고 있다. 최첨단 군사용 장비와는
- 성능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동작을 방해한다는 인식은
- 없을 터이다.
- 무게도 외골격 자체가 접지면을 통해 자체 무게를 지탱하고 있으므로
- 장착한 사람이 무게를 느끼는 일은 없을 터이다. 하지만
- 몸에 확실히 고정해야만 하니까 어느 정도 조이는 느낌은
- 피할 수 없다. 결코 쾌적하지는 않겠지.
- 타츠야는 그렇게 예상했지만,
- "괜찮습니다. 아직 피부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기에
- 이걸 장착해도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 미나미의 생각하지도 못한 대답에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 "촉감이 마비된 건가……?"
- 의도적으로 눈을 원래 상태로 되돌린 타츠야가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 목소리 톤은 의식한 게 아니었다.
- "마비라고 할 정도로 큰일은 아니라……. 조금 둔하게 느낄 뿐입니다."
- 타츠야의 진지한 목소리에 미나미가 조금 겁에 질린 것처럼
- 횡설수설했다.
- 하지만 자신의 몸에 생긴 이상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는 기색은 없었다.
- "의사는 뭐라고 했지?"
- "뇌에도 신경 조직에도 손상은 보이지 않으니까 쇠약에 의한
- 일시적인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 그렇게 말했지만 타츠야의 얼굴엔 여전히 걱정하는 표정이 있었다.
- "타츠야 님……. 한 가지 여쭈어 봐도 괜찮을까요?"
- 자신이 어째서 그런 걸 질문하는 건지, 나중에도 미나미는
- 이해할 수 없었다.
- "말해보렴."
- 하지만 이 때는 의문을 마음에 담아두는 게 도저히 불가능했다.
- "타츠야 님은 어째서 절 그렇게 걱정하시는 겁니까?"
- 처음에 질문의 의도를 몰랐던 건지 타츠야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 하지만 바로 '이해가 간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조적인 쓴웃음을 지었다.
- "감정이 결락된 내가 생판 남을 걱정하는 모습은 확실히 기묘할지도
- 모르겠군."
- "아, 아뇨, 그런!"
- 미나미가 서둘러 타츠야의 착각을 정정하려고 했다.
- "괜찮아. 네 인식은 틀리지 않았어."
- 하지만 이렇게 말하자, 확실히 자신의 질문의 뒤엔 타츠야의 말과 같은
- 생각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 미나미는 자신의 무례함을 부끄러워했다.
- 변명조차 못할 정도로.
- "미나미가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내가 널 타인으로 생각하지
- 않는다는 점이다."
- 미나미의 입에서 '어……?'라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온다.
- 이 반응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꽤 실례되는 행동이다.
- 물론 타츠야는 악의적인 해석은 하지 않았다.
- "미나미는 날 얼마나 잘 알지?"
- 타츠야의 반문.
- 하지만 미나미의 입장으로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 타츠야는 이를 이해한 거겠지. 그는 스스로 정답을 꺼냈다.
- "나는 미유키와 관련된 것 이외에 진정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아.
- 강한 감정을 갖지 못한다고 표현하는 쪽이 정확할지도 모르겠군."
- 미나미는 이를 알고 있다. 그러니까 더욱 말할 수 없었다.
- 그건 타.인.이 알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비밀이었다.
- "그리고 미유키는 널 자매처럼 생각해. 미나미, 너는 이미
- 미유키의 가족이다. 그러니까 나는 사쿠라이 미나미라는 소녀를,
- 미유키와 매우 관련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어. 내가 널 걱정하는 건,
- 미유키가 널 진심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네겐 실례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 나는 미.유.키.를. 향.한. 마.음.을. 통.해. 널 진.심.으.로. 걱정할 생.각.이.야.."
- "……황송하고, 영광입니다."
- 미유키가 자신을 자매처럼 생각한다. 이에 대해 미나미는
- '황송하다'고 말했다.
- 타츠야가 자신을 미유키에 대한 감정을 통해 걱정해준다.
- 이에 대해 미나미는 '영광'이라고 말했다. 타츠야 자신이 말한 대로,
- 미유키를 향한 감정에 속한 감정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 미나미는 이해하고 있다.
-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
- 타츠야는 미나미의 말이 어떤 사고 프로세스를 거친 결과인지
-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 "……죄송합니다.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 미나미도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 그녀는 억지로 대답을 쥐어짜내는 게 아니라, 얼버무리는 쪽을 선택했다.
- "……밤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미유키와 함께 오지. 지금은
- 일을 잊고 요양해 줘."
- 타츠야는 대답에 집착하지 않았다.
- "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 미나미는 간신히 움직이는 목을 세로로 움직여 타츠야에게
- 가볍게 인사를 했다.
- ◇ ◇ ◇
- 사실을 말하자면 미유키는 오늘 학교를 쉬고 싶었다.
- 미나미가 걱정이 되어 학업에 집중할 자신이 없었다. 그것보다도
- 미나미의 곁에 붙어 있고 싶었다.
- 하지만 자신이 있어봤자 치료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러기는커녕
- 장기간 가까이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방출하는 사이온파가
- 미나미의 마법연산영역을 자극해서 회복이 저해된다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 말을 들어 참을 수밖에 없었다.
- 그녀는 사이온파를 그렇게까지 화려하게 흩뿌릴 생각이 없었다.
- 오스에게 마법 억제력을 빼.앗.기.고. 있.는. 상태였을 때라면
- 그런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마법 억제력을 되찾은 지금이라면
- 다른 마법사를 무턱대고 압도하는 짓은 하지 않을 터.이다.
- 다만 자신의 사이온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타츠야에 비하면
- 자신은 컨트롤이 아직 어설프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미유키는 자신이 타츠야 정도는 아니더라도 마법사의 평균보다
- 훨씬 많은 사이온량의 소유자라고 자각하고 있으므로,
- 미나미의 병 상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했다.
- 그런 사정이 있어서 미나미의 간병은 포기하고 미유키는
- 평소대로 1고에 등교한 거다.
-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자리에 앉아 있었던 호노카와 시즈쿠가
-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 "미유키, 괜찮았어!?"
- "뭐가?"
- 시치미 떼는 게 아니다. 갑자기 괜찮으냐고 물어보면 미유키로선
- '뭐가'라고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짐작이 가는 게 있어도,
- 그게 자신의 착각이었다면 원래 비밀로 해둬야만 하는 정보를
- 불필요하게 알리게 되어버리니까.
- 다만 이번 경우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런 경계는 필요 없었다.
- "어제 정부가 발표한 그거, 타츠야 씨의 별장이 있는 곳이지!?
- 미유키가 자고 온다고 했잖아!"
- 역시 호노카도 시즈쿠도 원거리 마법의 표적이 타츠야라는 걸
- 눈치 챘다.
- "응. ……타츠야 님과 난 괜찮지만, 미나미 짱이 입원해서
- 치료를 받고 있어."
- 그렇게 말하면서 미유키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 "뭐어!?"
- "……부상?"
- 그 옆에서 호노카는 멈춰 섰고, 시즈쿠는 옆으로 돌아앉으면서
- 상반신을 뒤로 돌려 물었다. ─시즈쿠의 자리는 미유키 바로 앞이었다.
- "부상은 아니지만……. 비슷한 거야."
- 시즈쿠의 질문에 미유키는 말을 얼버무렸다. 마법연산영역의 오버 히트는
- 마법사 사이에서도 아직 일반적인 병은 아니었다. 게다가
- 마음과 몸의 차이는 있지만 '부상 같은 거'라는 사실이 틀린 건 아니니까
- 거짓말은 아니었다.
- "그래……. 상태가 나쁜 거야?"
- 시즈쿠는 상태를 끈질기게 물어보는 짓은 하지 않았다.
- 그저 어느 정도 다쳤는지를 물었다.
-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어……."
- 미유키의 얼굴이 흐려진다.
- "그래……. 걱정이네."
- 호노카와 시즈쿠도 염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 "병문안 가 봐도 돼?"
- "감염 증세는 없으니까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볼게."
- 시즈쿠의 제안에 미유키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병문안은
- 미유키에게도 기쁜 일이었지만, 사정이 사정인 만큼
- 양손 들고 환영할 수는 없었다.
- "그렇네."
- "의사 선생님의 허가가 나오면 알려줘."
- "알겠어."
- 자신의 책상 옆에 쭈그리고 앉은 호노카에게 미유키는
-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
- 개인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미나미는 '누구십니까'라고 물어봤다.
- 지금은 오전 11시 쯤. 타츠야는 이즈에, 미유키는 1고에 있을 터이다.
- 여긴 요츠바가의 입김이 닿은 병원이지만, 요츠바가 전용은 아니다.
- 종합병원으로서 일반인 환자도 이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 이 병실이 있는 블록은 출입을 엄격하게 체크하고 있다고 들었다.
- 수상한 인물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미나미도 생각했다.
- 그게 아니라 자신과 똑같은 요츠바 관계자의 병문안을 온 사람이
- 방을 착각한 거라고 생각했다.
- "쿠도 미노루입니다."
- 문 너머에서 돌아온 대답은 미나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 "미, 미노루 님입니까!?"
- 말 첫머리가 막혀버렸지만 어떻게든 의미가 있는 대답을 돌려준 미나미지만,
- 마음속으로는 '어째서!'라고 절규했다.
- 그 외치는 '어째서 자신이 입원한 걸 미노루가 아는 거지',
- '미노루는 어디에서 이 병원을 알아낸 거지' 같은 논리적인 의문에
- 충실한 게 아니었고, 미나미의 의식은 당혹한 나머지
- 새하얗게 됐다.
- 하지만 그녀가 망연자실한 건 한순간뿐이었다. 그 나이 또래의
- 여자아이의 몸가짐을 신경 쓰는 마음이, 지금 자신이
- 어떤 상태인지 강제적으로 떠올리게 했다.
- 아침에 타츠야가 오기 전에 일단 몸단장은 마쳤다.
- 하지만 그 뒤에 계속 반쯤 자고 있는 상태로 멍하니 누워 있었으니까
- 머리카락은 헝클어졌을 터이다. 게다가 이런 칠칠치 못한 상태에서
- 미노루를 맞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 "조금 기다려주세요!"
- 미나미는 서둘러 반응이 느린 오른손을 움직여, 침대 안에 설치된
- 유선 컨트롤러의 커다란 버튼을 눌렀다.
- 침대의 상반신 쪽이 올라가고, 누워 있는 미나미의 몸을 일으킨다.
- 좌우에서 보조 외골격이 이동하는 것과 동시에 미나미의 등을
- 등받이가 된 침대 아래에서 가볍게 민다.
- 침대 일부가 튀어나와 등과 침대 사이에 일부 틈이 생겼다.
- 그 틈을 통해 외골격의 오른쪽 파츠와 왼쪽 파츠가 연결된다.
- 보조 외골격이 미나미의 상반신을 고정하고 그녀의 몸을 지탱한다.
- 팔 파츠의 어시스트를 빌려 미나미가 손거울과 빗을 쥔다.
- 서둘러 거울을 엿보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돈한다.
- 사실은 메이크업도 하고 싶었지만, 병실에서는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게
- 한계였다. 게다가 이 이상 기다리게 할 수도 없었다.
-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들어오세요."
- 미나미의 말을 병실 AI가 분석해서 문 잠금을 해제한다.
- "실례하겠습니다……."
- 망설이는 목소리와 함께 미노루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 그 순간 방 안에 신성한 빛이 비쳤다.
- 깨끗한 순백색으로 칠한 공간에 단 한 명, 밝은 색을 두른
- 천상계 주민이 강림했다. ─미나미는 그런 환각을 봤다.
- "사쿠라이 씨, 그…… 몸 상태는 어때?"
-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물어본 미노루는 자신을 보는
- 미나미의 기묘한 시선을 깨닫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시선을
- 받는 일이 많아서 신경 안 쓰는 걸지도 모른다.
- 미노루가 평범하게 말을 건 덕분에 미나미도 몽환의 세계에서
- 현실로 귀환할 수 있었다.
- 이성을 되찾자 방금 전에 느꼈지만 날아가버린 의문이 드디어
- 형태를 이뤘다.
- ─미노루는 어째서 자신이 입원했다는 걸 아는 건가?
- ─미노루는 어디에서 어떻게 자신이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걸
- 알아낸 걸까.
- 하지만 미나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미노루를 추궁하는 말이 아니었다.
- "네. 괴롭다거나 아프다거나 그런 불편함은 없습니다. 아직
-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만, 그것도 곧 좋아질 거라고
- 의사 선생님께서 말했습니다."
- 미노루의 질문에 대한 순종적인 대답이었다.
- "그건 다행이다."
- 미노루가 방긋 웃는다.
- 핏기가 부족한 미나미의 뺨이 살짝 붉어진다.
- 미노루의 미소가 조금 더 길었다면 권태감과 다른 원인으로
- 미나미는 의식을 유지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 미노루가 진지한 표정으로 미나미를 바라본다.
- 미나미는 의식이 점점 멀어지는 걸 자각할 수도 없었다.
- 문 너머에서 말을 걸었을 때 품은 학교는 어떻게 된 거냐는
- 사소한 의문조차 의식에서 사라졌다.
- "─사쿠라이 씨. 달리 안 좋은 곳은 없어?"
- "아, 네. 다른 곳 말입니까?"
- 마치 의사처럼 물어본다. 그렇게 의심하는 마음이 미나미의 의식을
- 계속 유지했다.
- "예를 들면 눈이 흐릿하다든지, 잘 안 들린다든지."
- "…………."
- 확실히 촉각이 둔해졌다는 자각 증상은 있다. 하지만 이를
- 미노루에게 알려줘도 괜찮은가? 단순히 걱정할 뿐인 것 아닌가.
- ─미나미는 그런 식으로 망설였다.
- "내게 대답해봤자 의미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해.
- 하지만 중요한 거야. 사쿠라이 씨, 솔직히 대답해줬으면 해!"
- 하지만 그 망설임도 미노루의 진지한 시선에 저항할 수 없었다.
- "……피부 감각이 조금."
- "촉감이 둔해진 거네!?"
- 미노루의 얼굴이 미나미의 얼굴로 다가온다.
- 미나미는 견디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 시점에서는 아직
-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했다'라는 것보다 '계속 직시할 수 없었다'라는
- 측면이 더 강했다. 말할 것도 없지만 혐오감 때문에 시선을 돌린 건
- 결코 아니었다.
- "아, 네. ……그리고 미노루 님. 전부터 말했습니다만,
- 저를 미나미라고 불러주세요."
- 생각도 못한 요청에 미노루의 의식이 미나미의 병 상태에서
- 조금 벗어났다.
- 그 덕분에 자신의 위험한 자세를 깨달은 미노루는 아무렇지도
- 않게라고 할 수 없는 스피드로 몸을 뺐다.
- 미나미가 뭘 바란 건지, 그게 의식에 닿은 건 충분히 거리를 둔
- 다음이었다.
- "어, 하지만……."
- 미노루는 절세의 미소년이지만 남녀 교제 경험치가 제로다.
- 신비함조차 느껴지는 미모 탓에 여자아이들이 주저하며
- 다가오지 않은 탓이다.
- 흔히 말하는 '인기 없는 남자'와 대조적인 이유지만, 그래도
- '비인기 남자' 중 하나인 미노루에겐 '귀여운 소녀를 이름으로 부르기'는
- 조금 허들이 높았다. 미유키만큼 미소녀이면 오히려 저항을 느끼는
- 감각 자체가 마비되어버리지만, 미나미는 고등학교 2학년 소년에게─
- 아니 미.노.루.에.게. 조금 부끄러움이 자극되는 '귀여운 소녀'였다.
- "그렇게 안 부르면 저도 『쿠도 님』이라고 불러야만 합니다……."
- 미나미가 눈가를 붉게 물들이면서 미노루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 그렇게 덧붙였다.
- 미나미와 미노루의 입장을 생각하면 원래 '쿠도 님'이라고 불러야만 한다.
- 애초에 미나미가 미노루를 '미노루 님'이라고 부르는 건, 미노루가
- 타츠야와 미유키를 '시바 씨'라고 부르면 구별이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타츠야와 미유키가
- 없는 곳에서는 '쿠도 님'이 올바르다.
- 아마도 그건 미나미도 알고 있다. 이해할 터인데 그녀는
- '미노루 님'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게 아쉬운 것처럼 보였다.
- "알겠어, 미나미 씨."
- 미나미의 표정을 보고 미노루는 수치심을 잊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 미노루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미노루도 이름으로
- 불러주지 않으면 아쉽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 "네, 미노루 님."
- "…………."
- "…………."
- 하지만 쑥스러움이 사라진 건 아니다. 심지어 이번에는
- 미노루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수치심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 실로 청소년다운 공기가 병실에 가득 찼다.
- "……그러니까…… 감각 둔화에 대해 의사는 뭐라고 했어?"
- "아, 네, 그……, 뇌나 신경 조직에 손상은 없으니까
- 일시적인 이상이라고……."
- 미나미의 대답을 듣고 미노루의 표정이 굳어졌다.
- 미노루의 변화를 보고 미나미의 마음속에 억눌러둔 불안감이 증폭됐다.
-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그녀도 사실 자신의 몸에 생긴 이상에
- 겁을 먹고 있었다.
- 미나미는 조정체의 불안정성에 대해 요츠바가에서 배웠다.
- 그게 언젠가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 ─그 '언젠가'가 온 걸지도 모른다.
- 미나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 단순히 몸이 나른할 뿐이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겠지.
- 하지만 명백히 보통이 아닌 오감의 이상. 그게 마법연산영역의
- 과부하에 의해 생겼다는 걸 미나미는 알고 있다. 조정체에게 찾아오는
- 돌연사가, 마법 과잉 사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 미유키를 지키기 위해 힘을 쥐어짰다. 그 사실에 후회는 없다.
- 그 때의 미나미는 포즈가 아니라 진심으로 목숨을 걸 각오가 있었고,
- 지금도 이를 후회하지 않는다.
- 하지만 역시 죽음을 인식하는 건 무섭다. 그러니까 가능한 한
-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평범한 척을 하며 자신을 얼버무렸다.
- 하지만 지금 심각한 표정을 지은 미노루를 마주보고,
- 외면한 불안감이 미나미를 습격했다.
- "미나미 씨, 그, 손을 만져 봐도 괜찮을까……?"
- "……네, 여기."
- 이런 때가 아니면 미나미는 이렇게까지 평범하게 대답하지 못했겠지.
- 마음속에 퍼진 불안감이 그녀의 수치심을 둔하게 했다.
- 미나미가 외골격의 어시스트를 받아 오른손을 미노루에게 내민다.
- 오히려 미노루 쪽이 부끄러워했다. 자신이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 미노루의 하얀 뺨에 옅게 홍조가 떠올랐다.
- 미노루가 미나미의 오른손에 아래로 슬쩍 자신의 오른손을 포갰다.
- 거기다 미노루는 미나미의 오른 손등에 왼손을 포갰다.
- 미나미의 오른손을 좌우의 손으로 포갠 거다.
- 이 사실에 아무리 미나미라 해도 얼굴이 붉어졌다.
- 미노루가 왼손을 천천히 움직인다.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 진지한 표정으로.
- 열이 담긴 미노루의 눈동자를 미나미는 빨려들어갈 것처럼 바라봤다.
- 미노루가 가끔 눈살을 찌푸리는 건, 의사나 미나미 본인도 모르는
-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일까.
- 1분 가까이 그런 다음 미노루는 미나미의 손을 놓고 크게
- 한 숨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호흡을 잊을 정도로 집중한 거겠지.
- 동시에 미나미도 몰래 숨을 내쉬었지만, 이건 긴장의 반동이다.
- 미노루는 미나미의 동작을 눈치 채지 못했다.
- "……미나미 씨. 잔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미나미 씨의 부.상.은
- 낫지 않을 거야. 마법연산영역은 계속 상처가 난 상태일 거야.
- 일시적으로 몸 상태가 회복되어도, 언제 또 다시 쓰러질지 몰라."
- "……그런가요."
- "믿을 수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 미나미는 미노루의 말이 믿기 어려웠던 게 아니라 '역시'라는
- 생각뿐이었다.
- 스스로도 어렴풋이 느낀 사실을 인정할 뿐이다. 미나미는
- 체념과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다.
- "하지만 믿어줬으면 해."
- 미나미는 목소리로 내지 못하고 '어?'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 뭘 믿으라는 건가……. 미노루의 말은 미나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 그녀의 의문은 바로 해소됐다.
- "내가 반드시 치료법을 찾을 거야.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아줬으면 해."
- 미나미의 뇌리에 떠오른 건 '어째서?'라는 의문이었다.
- 오늘 아침 미나미는 타츠야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 하지만 미노루에게 같은 질문을 하는 건, 왠지 망설여졌다.
- "……네. 잘 부탁합니다, 미노루 님."
- 미나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미노루에게도, 그녀 자신에게도
-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 ◇ ◇ ◇
- 이즈의 별장을 떠나는 작업을 하던 타츠야가 점심을 먹은 건
- 13시 지나서였다. 짐 꾸리기나 짐 싣기를 타츠야가 할 필요는 없었지만,
- 연구 데이터 이동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었던 거다.
- 부엌 도구는 별장에 구비된 것이므로, 점심은 평소대로 픽시가 조리했다.
- 부엌 용품만이 아니라 이 별장에 있는 가구도 갈아입을 옷도 대부분
- 요츠바 본가에서 준비해준 거라, 쵸후의 맨션으로 가져갈 짐은 적다.
- 점심식사가 늦어진 것도 작업의 끝이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있는 건 타츠야 혼자다. 다른 작업원은
-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다. '높으신 분'과 동석하는 걸
- 피하는 마음은 타츠야도 이해가 갔기에, 억지로 테이블 동석을
- 권하지 않았다.
- "타츠야 님, 식사 도중에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타츠야가 접시를 전부 치우고 식후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 하나비시 효고가 들어왔다. 오늘 그는 평소에 입는 스리피스가 아니라
- 운송 회사의 유니폼 같은 작업복 바지와 점퍼 차림이었다.
- 젊기 때문인지 그런 편안한 옷차림도 잘 어울렸다. 참고로
- 이 경우 '잘 어울렸다'라는 건, '패셔너블'의 뉘앙스가 아니라
- '위화감이 없다'라는 의미다.
- 그렇기에 평소대로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모습은 형용하기 어려운
- 위화감을 줬다.
- "아뇨, 이미 다 먹었습니다. 무슨 일 있었나요?"
- "쵸후 아오바 의원에서 담당자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 쵸후 아오바 의원은 미나미가 입원한 병원의 이름이다.
- 미나미의 용태가 급변한 건가 싶어서 잠시 초조해졌지만,
- 타츠야는 곧 그 생각을 스스로 기각했다.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 효고의 어조는 좀 더 긴장감이 있었을 터. 효고는 그런 부분에서
-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 "무슨 얘깁니까?"
- "오전 11시 넘어서 사쿠라이의 병실에 방문객이 찾아왔습니다."
- 효고 입장에서 볼 때 미나미는 요츠바가를 모시는 메이드 중 한 명.
- 집사인 그 쪽이 지위가 더 높다. 자연스럽게 그런 호칭이 됐다.
- "병문안 입니까? 면회는 제한했을 터입니다만."
- 타츠야가 의아한 듯 반문했다.
- "그건 병원 사람들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 쫓아낼 수도 없어서 본가에게 물어보니, 들어가도 된다는 허가가
- 내려온 모양입니다."
- "누굽니까?"
- 쫓아낼 수 없는 상대라는 단계에서 평범한 방문객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 거기다 본가에서 허락했다고 한다. 그 방문객이 누구인지
- 타츠야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 "쿠도가의 삼남이신 쿠도 미노루 님입니다."
- 미노루는 다섯 형제자매 중 막내다. 가장 위부터 누나, 형, 누나, 형 순서로,
- 다섯째이자 삼남이다.
- "미노루가……?"
- 가장 먼저 타츠야의 뇌리에 떠오른 건, 어째서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 미노루가 병문안을 온 건가라는 당연한 의문이었다.
- 미나미의 입원을 미노루가 알아낸 이유에 대해선, 딱히 고민할 필요가
- 없었다.
- 후지바야시가 가르쳐준 거겠지. ─타츠야는 바로 그렇게 생각했다.
- 원래 군 내부에서만 아는 정보여야 할 터이지만, 후지바야시는
- 미노루에게 왠지 물렀다. 미노루가 간절히 바라면 이 정도 정보는
- 세어나갈 게 분명하다. 국방군에게도 특별히 기밀로 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 아니었다.
- 하지만 이를 알고 있다 해도 오늘 학교를 결석하면서까지 병문안을
- 오는 이유를 타츠야는 몰랐다. 미노루가 미나미와 함께 있었던 건
- 순수하게 삼 일도 안 될 터이다. 확실히 상성은 좋아 보였지만,
-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호감이 느껴지는 행동은 없었다.
- 교토에서 미나미가 간병해줘서 미노루가 미나미에게 어떤 종류의 감정을
- 품었을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너무나도
- 확고한 결단력이다.
- 미노루답지 않다고 말할 만큼 타츠야는 그의 성격을 잘 모른다.
- 하지만 학교를 쉬고 나라에서 도쿄까지 병문안 하러 오는 정열적인 행동은
- 미노루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고 느꼈다.
- "그래서 미노루는 아직 병원에 있는 겁니까?"
- 만약 아직도 쵸후 아오바 의원에 있다면 직접 물어볼 생각이었다.
- "아뇨, 이미 돌아가셨다고. 병실에는 20분 정도 있었다는 모양입니다."
-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상일은 타츠야의 의도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 그건 둘째 치고 타츠야는 꽤 일찍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 일반적인 병문안 시간과 비교했을 때 20분이 긴 건지 짧은 건지
- 타츠야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를 결석하면서까지
- 병실을 찾아온 열.정.적.인 행동을 고려해보면, 너무나도 빨리
- 돌아갔다는 인상이 들었다.
- '단순한 병문안이 아니라 뭔가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건가?'
- 미노루의 진의를 추리하려고 해도 재료가 너무 적었다.
- "미노루 건은 잘 알겠습니다. 그 밖엔?"
- "딱히 없습니다."
- 공손하게 허리를 수인 효고에게 퇴실을 지시했다.
- 홀.로. 남은 타츠야는 조각상이 된 다이닝 구석에 서 있는 픽시를
- 돌아봤다.
- "픽시, 정보 단말을 가져다 줘."
- "알겠습니다."
- 능동 텔레파시가 아니라 기계 몸의 스피커로 대답하며 픽시가
- 바로 단말을 가져왔다.
- 타츠야는 작년 가을에 미노루와 연락처를 교환했다. 슈 코우킨 사건이
- 일단락된 이후, 서로 한 번도 전화를 건 적은 없지만 미노루가
- ID를 바꾸지 않았다면 연결될 터이다.
- 하지만 여기서도 타츠야의 생각은 빗나갔다. 스피커에서
- 호출음이 들렸으니까 ID가 없어진 건 아니다. 정보단말에 부속된
- 통신용 ID는 돌려쓰는 게 불가능하니까 ID를 바꾸면
- 전 ID는 무효가 된다. 즉 호출음이 들리지 않고 ID 무효 메시지가
- 들려온다.
- 단말 전원이 켜져 있지 않을 경우에도 그 사실을 알리는 메시지가
- 들려온다. 즉 미노루는 현재 정보 단말을 안 갖고 있는 상태이든가
- 부재중 상태로 해뒀다는 것이다.
- '……부재중이라는 것도 그 녀석 답지 않은 것 같군.'
- 하지만 이것도 재료 부족 상태에서 가진 이미지에 불과하다.
- 타츠야는 미노루의 행동에 관한 의문을 일단 제쳐뒀다.
- ◇ ◇ ◇
- 타츠야가 미노루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미노루는 이미 나라로 가는
- 장거리 열차 『트레일러』에 타고 있었다.
- 하지만 그건 전화를 받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다.
- 트레일러는 캐비닛을 수납해서 달리는 카트레인의 아종이었다.
- 이용객은 트레일러 자체에 탑승해서 휴식을 취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 캐비닛 안에 머무는 것도 가능하다. 미노루는 사정이 있어서
- 그렇게 했다.
- 캐비닛 내부는 완벽한 개인실이다. 전화를 받아도 민폐라고
-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 그럼 어째서 미노루는 전화를 받지 않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 미노루는 호출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 그 때 미노루는 마침 마음속으로 대화 중이었다.
- 사고 기술 중 하나인 자기 자신과의 대화가 아니다. 계통 외 마법으로
- 흡수한, 한 때 슈 코우킨의 망령이었던 '지식'과 대화하는 것에 집중해서
-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 미노루가 물어본 건, 미나미 치료법.
- '지식'의 대답은 비정했다.
- '그녀의 마법연산영역을 수복하는 건 어렵습니다.'
- '치료할 수 없다는 건가? 어째서? 이치죠가 당주는 순조롭게
- 회복되고 있잖아.'
- 이치죠 고우키가 쓰러진 원인은 공표되지 않았지만, 마법연산영역의
- 오버 히트가 분명하다는 게 십사족의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다는 건 이치죠가의 발표이며, 그게
- 사실이라는 건 쿠도가도 확인했다.
- '이치죠 고우키의 데미지는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었던 거겠지요.'
- '그럼 미나미 씨는 계속 저 상태라는 말이야!?'
- '육체적으로는 회복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은 의원도
-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 '육체적으로는?'
- '안정을 취한다면 신체의 쇠약이나 촉각 둔화는 비교적 단시간에
-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고 봅니다.'
- 그걸 듣고 물.어.보.는. 쪽.인. 미노루는 조금 안도했다.
- 하지만 곧 우려가 되살아났다.
- '하지만 몸 상태 불량은 마법연산영역의 손상이 원인이잖아?
- 원인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재발하는 거 아냐?'
- '자연스럽게 재발할 가능성은 낮겠죠. 그녀는 '나'랑 달리
- 육체가 견딜 수 없는 레벨로 사이온이 상시 과잉으로 활성화된 게
- 아니니까요.'
- '지식'의 냉정한 지적이 미노루의 신경에 거슬렸다. 일반적으로 볼 때
- 사이온의 활성도가 높다는 건 뛰어난 마법사라는 증거다.
- 하지만 미노루의 경우 그게 병상에 묶이는 족쇄가 됐다.
- 갈 곳 없는 분노를 미노루는 마음속으로 억눌렀다.
- 지금 우선시해야 할 건, 미나미의 치료법이다.
-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의 결함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다.
- '그 말은 즉, 사이온 활성도가 높아지면 몸 상태 불량이 재발하는 건가?'
- 마법을 행사할 때 마법사의 육체에서 사이온이 활성화된다.
- 강한 마법일수록 활성도는 상승한다. 사이온 활성도 상승이
- 육체를 손상한다면, 앞으로 미나미는 고위력 마법을 쓸 때마다
- 쓰러진다는 거다. 고위력 마법은 사실상 쓸 수 없게 된다.
- '그 말대로입니다. '나'랑 달리 조건이 명확하니까
-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겠죠. 다만 '나'랑 똑같이
- 마법사적 활동은 제한됩니다.'
- 미노루는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물었다.
- 마법사로서 활동할 수 없다. 그것이야 말로 미노루를 계속 괴롭혔던 거다.
- 미노루라면 결코 견딜 수 없다.
- 하지만 미나미는 어떨까?
- 그녀에게 마법을 쓸 수 없다는 건 불행인가?
- '……마법을 쓰지 않으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거지?'
- '유감이지만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조정체의 피를 잇고 있습니다.
- 아마도 부모님 모두 조정체인 혈통이겠죠. 스스로 마법을 쓰지 않아도
- 마법연산영역이 폭주해서 육체 허용 범위를 넘는 사태는 충분히
- 있을 수 있습니다.'
- '나처럼 되는 건가.'
- '그렇게 되면 상태는 '나'보다도 심각합니다. '내' 혼은 강도는
- 부족하지만 높은 수복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 쓰러지는 일이 많아도 죽음에 이르지 않고 끝납니다.
- 하지만 그녀의 경우 일단 혼이 파괴되면 그대로 죽을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이번에는 살아남았어.'
- '누군가가 혼을 그 자리에서 수복한 거겠죠.'
- 타츠야라고 미노루는 직감했다.
- 타츠야가 갖고 있는 마법 능력의 전모를 미노루는 모른다.
- 하지만 2년 전 여름에 텔레비전으로 관전한 신인전 모놀리스 코드.
- 그 시합에서 타츠야는 이치죠 마사키에게서 치명상으로도 이어지는
- 과잉 공격을 받았으면서도 기적적으로 수복해 대역전을 이뤘다.
- 그 상황을 봤을 때 타츠야는 고도의 자기수복능력을 갖고 있다.
- 그걸 다른 사람에게도 쓸 수 있는 게 분명하다.
- '그럼 그 '누군가'가 없는 곳에서 '발작'을 일으킨다면…….'
- '살 수 없겠지요. 조정체에겐 태어나면서부터 따라다니는 비극이지만,
- '미나미 씨'의 경우 이번 일로 그게 발생하기 쉽게 된 거라고 추측합니다.'
- '최종적인 치.료. 방법도 나랑 같은가……?'
- '패러사이트와 융합. 그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미노루는 '지식'과 하는 대화를 마쳤다.
- 미나미를 구하기 위해 그녀를 패러사이트로 만들어야만 한다.
- 터무니없다고 미노루는 생각했다.
- 하지만 자신과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미노루는 왠지 그 생각에
-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다.
- ◇ ◇ ◇
- 예고대로 밤에 미유키를 데리고 병문안을 온 타츠야는
- 미나미의 입을 통해 미노루가 뭘 하러 왔는지 들었다.
- "미노루는 치료법을 찾겠다고 말한 건가?"
- "네, 타츠야 님."
- 역시 단순한 병문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미나미의 대답을 듣고
- 타츠야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손을 쥐었다든지 손바닥을 더듬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 발칙한 의도도 의심했지만, 미노루의 진의는 미나미 치료라고
- 타츠야는 일.단. 안심했다.
- "오라버니, 미노루에게 그런 지식이 있는 건가요?"
- 함께 미나미의 얘기를 들은 미유키가 지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 마법연산영역 치료는 요츠바가가 오랫동안 연구한,
- 아직 골이 보이지 않는 난제이다.
-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어. 작년 논문 공모전에서 알아차렸겠지만,
- 『정신』에 관한 미노루의 지식은 고등학생 레벨을 훨씬 뛰어넘었어.
- 게다가 고식 마법의 요소를 집어넣은 구 제9연의 마법에는
- 정신 간섭계 술식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미노루가 구 제9연의
- 연구 성과라면 마법연산영역의 치료에 관한 단서를 갖고 있는 건
- 말도 안 되는 얘기는 아냐."
- "하지만 마법연산영역 그 자체의 연구는 구 제9연 시절부터
- 요츠바의 연구자에게 일임한 테마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직 치료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미노루 군 자신도
- 마법연산영역과 육체의 언밸런스를 품고 있습니다.
- 그런 지식이 있다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치료하지 않을까요?"
-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으니까 특히 잘 아는 경우도
- 생각해볼 수 있어."
- 미유키의 부정적인 추측에 반론한 타츠야였지만 여기서 '아니……'라고
- 말하면서 한 번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 "여기서 미노루의 능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의논해봤자 의미는 없어.
- 미나미의 치료법을 찾겠다고 한 거다. 지금은 미노루의 호의를
- 호의로서 받아들이도록 하자."
- "……그렇네요. 별 수 없는 얘기를 해버렸네요."
- 타츠야는 미유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미나미 쪽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 "미나미의 치료에 대해선 이곳 의사도 노력하고 있다.
- 본가 쪽에서도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양이고
- 나도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없어. 안심하고 좋은 소식을 기다려줘."
- 타츠야는 미나미를 안심시킬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다.
- "네. 저기, 타츠야 님……."
- 하지만 미나미가 불안한 목소리를 내자, '역효과였나'라고
- 가볍게 후회했다.
- "왜 그러지?"
- 물론 그걸 드러내지는 않았다. 침착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 미나미에게 뒷말을 재촉했다.
- "기회가 생긴다면 미노루 님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전해주시겠습니까?"
- 타츠야는 마음속으로 '어라?'라고 중얼거렸다. 미나미가
- 불안을 느낀 부분은 치료 성공 여부가 아니라 미노루에 대한 것이었던
- 모양이다.
- "미노루에게서 뭔가 느낀 건가?"
- "네. ……무척 긴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절 걱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 뭔가 다른, 좀 더 심각한 고민을 숨기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 "미노루의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잖아."
- "네. 몸은 특별히 무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 "……신경 쓰이네요, 오라버니."
- 미나미의 불안이 전염된 건지 미유키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 타츠야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 "미노루는 총명한 남자다. 무모한 짓은 안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 그렇게 말하면서 타츠야는 충분한 확신이 없었다.
- 그도 미노루의 인품을 숙지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 작년 가을에 만난 미노루라면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미노루의 행동은 그 때의
- 미노루의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았다. 타츠야는 막연히
- 그렇게 느꼈다.
- [4]
- 제1고교 통학로는 가장 가까운 역에서 똑바로 직진하면 된다.
- 샛길은 있지만, 사실상 외길이다.
- 대부분의 1고 학생들은 등하교 할 때 이 길을 지나간다.
- 예외는 학교에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사는 학생들 정도다.
- 6월 11일, 화요일 아침. 이 통학로를 등교하는 학생들 사이에
- 술렁임이 있었다. 1고 학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학생회장,
- 시바 미유키가 남학생에게 딱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 그 남학생도 학생회장과 비슷하게 유명인이다. 현재
- 사회적인 지명도는 남자 쪽이 더 높겠지.
- 그 학생의 이름은 시바 타츠야.
- 오랜 만의 등교였다.
- "타츠야 씨!"
- 1고 교문과 교사 사이에 긴 직선 가로수길이 있다.
- 그 길에 들어선 직후 앞에서 누군가가 타츠야를 불렀다.
- 등교하는 학생 무리를 역주행하는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 "타츠야 씨, 돌아오신 거지요!?"
- 사정을 아는 사람의 '어쩔 수 없지……'라는 시선,
- 사정을 모르는 학생의 기이한 시선을 받으면서 호노카는
- 이를 신경 쓰지 않고 타츠야 곁으로 달려왔다.
- "그래. 오늘부터 또 잘 부탁해."
- 타츠야는 살짝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래도 민폐라는 몸짓은
- 보이지 않고 호노카에게 말했다.
- 타츠야는 걸어가면서 호노카 뒤로 시선을 보냈다.
- 호노카 바로 뒤에서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시즈쿠가 눈으로 인사했다.
- 더욱 뒤에는 '이런 이런'이라는 표정의 에리카, 레오, 미키히코,
- 미즈키가 있다. 타츠야의 시선을 깨달은 에리카가 가벼운 동작으로
- 손을 흔들었다.
- 타츠야는 왼쪽 옆이라는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 미유키와
- 오른쪽에 선 호노카와 함께 교사를 향해 나아갔다.
- 마공과 승강구는 2과생 쪽에 있다. 이건 A반~D반,
- E반~H반으로 승강구가 나눠져 있기 때문이며
- 교사 구조상 어쩔 수 없는 거다.
- 미유키, 호노카, 시즈쿠, 미키히코와 헤어지고,
- 타츠야는 에리카, 레오, 미즈키와 함께 교실로 향했다.
- 3학년 E반 교실도 오랜만이다. 참고로 에리카와 레오는 F반이지만
- 그대로 E반으로 따라왔다.
- "책상은 남아 있었군."
- 창가 자리에 앉은 타츠야의 입에서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 소박한 감상으로서 그 말이 흘러나왔다.
- 에리카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쓴웃음을 지었다.
- 미즈키가 옆자리에 앉고, 옆으로 앉아 타츠야 쪽으로 몸을 돌렸다.
- "항성로 프로젝트 쪽은 괜찮은 겁니까?"
- "아니, 물론 바빠. 그러니까 매일 통학하는 건 어려울지도 몰라."
- 타츠야의 대답을 듣고 미즈키의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살짝 떠올랐다.
- 하지만 바로 미소로 이를 감췄다.
- "그런가요. 하지만 가끔 와 주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 미즈키의 말에 반대편 창틀에 앉은 에리카가 '응응'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 "아침과 귀가 때 미유키 에스코트만 해도 좋으니까 말이야.
- 역시 타츠야 군이 없으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라고."
- "미유키의 에스코트인가."
- 학교의 의의를 완전히 무시한 에리카의 말에 타츠야는
- 쓴웃음을 금치 못했다.
- 하지만 에리카의 말은 의외로 핵심을 찔렀다.
- "그러고 보니 타츠야, 사쿠라이는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거야?"
- 레오가 미나미의 부재를 신경 쓰는 건, 그녀가 부활동 후배이기 때문이다.
- "의사는 후유증은 남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 하지만 조금 걸릴 것 같군."
- "그런가……."
- 레오가 신경 쓰는 건 미나미의 상태뿐이지만, 타츠야는
- 그것만이 아니었다.
- 물론 순수하게 회복을 바라는 건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 미유키의 호위를 어떻게 할지 타츠야는 신경 쓰였다.
- 어제는 홀로 등하교했다. 미유키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은
- 마법사든 비마법사이든 좀처럼 없고, 근처에 있지 않아도
- 타츠야는 미유키를 지킬 수 있다.
- 하지만 곁에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피할 수 있는 트러블도 있다.
- 아무리 요츠바가라 해도 지금부터 교내에 사람을 파견하는 건 어렵겠지.
- 아니 직원이나 사무원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 항상 곁에 있는 학생을 준비하는 건 불가능하다. 등하교 할 때만이라도
- 자신이 에스코트를 하는 건, 에리카가 말하기 전부터 타츠야도
- 생각했던 것이었다.
- ◇ ◇ ◇
- 타츠야가 1고로 복학(?)한 건 디오네 계획에 관한 소동이
- 잦아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저번 주 타츠야가 대항책을 내세워서
- 소동은 오히려 가열됐다.
- 1고 주위에 매스컴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 건, 권총에 의한
- 살인미수사건이 영향을 끼친 거겠지. '토러스 실버'의 정체는
- 이미 밝혀졌기 때문에, 이제 목숨 걸고 취재할 필요는 없다는 걸지도 모른다.
- 현재 소동은 타츠야 주변을 벗어나 세계 규모로 퍼진 느낌이 있다.
- 네 개의 대국 중 신소비에트 연방이 USNA의 디오네 계획을 지지하는 한편,
- 인도 페르시아 연방은 정부 공식성명은 없지만 사실상
- 타츠야의 ESCAPES 계획을 지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 대아연합은 아직 태도를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 사대국 이외의 국가들도 유럽은 대체로 디오네 계획 지지,
- 서아시아랑 동아시아는 ESCAPES 계획 지지, 브라질과 오스트레일리아는
- 대아연합과 똑같이 방침을 밝히지 않았다.
- 양쪽 진영 모두 표면적으로는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 사태는 복잡해졌다. 디오네 계획도 ESCAPES 계획도 마법의
- 평화적 이용이라는 점에선 일치한다. 그리고 둘 다 명.목.상.
- 상대방을 배제하지 않는다. 공.개.된. 자.료.만.으.로. 판.단.하.면.
- 디오네 계획을 실시한다고 해서 ESCAPES 계획을 추진할 수 없는 건
- 아니고, 그 반대도 똑같다. 그저 한. 마.법.사.가. 두. 계.획.에.
- 동.시.에. 참.가.하.는. 게. 불.가.능.할. 뿐이었다.
- 두 계획이 양립한다는 인지를 받아 타츠야와 클러크 사이에 펼쳐진
- 선전전(宣傳戰)은, 타츠야의 우세로 진행되고 있다.
- 이건 타츠야의 머리가 클러크보다 뛰어나기보다 '늦게 내기'의
- 유리함 때문이었지만, 이 싸움은 판정이 있는 경기가 아니다.
- 늦게 내기이든 사기이든 승리만이 가치 있다.
- 이론 싸움에서 지고 있는 에드워드 클러크는 권력이라는
- 공격 수단에 의지했다.
- ◇ ◇ ◇
- 1고에서 1교시 수업을 하고 있는 시각, 국방육군 제101여단의 총책임자인
- 사에키 히로미 소장은 방위성 청사 빌딩을 방문했다. 종합 군사령부도
- 여기에 있지만, 오늘 출두 명령을 받은 곳은 정장 직원이 근무하는
- 섹션이다.
- 점심 전에 기지로 돌아온 사에키는 사령실로 돌아오자마자
- 카자마를 호출했다.
- "……타츠야를, 아니, 시바 타츠야 씨를."
- "굳이 다시 말할 필요는 없다고요, 중령."
- 이런 식으로 말허리를 자르는 건 사에키답지 않다. 그녀는
- 불쾌감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 당황보다도 웃음이 나와 데스크 앞에 선 카자마는
- 실소를 흘리지 않기 위해 배에 힘을 줘야만 했다.
- "……실례했습니다. 디오네 계획에 참가하도록 타츠야를
- 설득하라고 명령 받은 겁니까."
- "외무성 과장에겐 제게 명령할 권한이 없습니다."
- 방위성 회의실에서 사에키를 기다린 건, 외무성 북미국 과장이었다.
- 사에키 말대로 외무성은 국방군에게 명령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 회의실에서 들은 말도 의뢰 형태였다. 하지만 방위성 서기관도 동석한
- 그 자리의 발언은 사실상 강제, 즉 명령이었다.
- 군인은 명령계통을 어기는 걸 싫어한다. 상관은 그 경향이 강하고,
- 사에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의 불쾌감은 대부분 이게 원인이었다.
- "각하께 이런 의뢰를 한 건, 타츠야가 『오오구로 류우야 특위』이기
- 때문입니까?"
- "그런 모양입니다."
- 무뚝뚝한 표정을 지은 사에키 앞에서 카자마는 숨기지도 않고
- 한숨을 내쉬었다.
- "정장 직원들은 아무래도 타츠야에게 주어진 『특무사관』의 성질을
- 잘 모르는 모양이군요."
- "오오구로 특위의 지위는 어떤 의미로 초법규적인 겁니다.
- 사무직이 몰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 사에키 말대로 현재 국방군에 제.도.적.으.로. '특무사관'은
-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역사적으로 봐도 타츠야를 '특무사관'이라고
- 부르는 건, 타당하지 않다.
- '임시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정규군에 소속된 사관 대우를 받는 민병'이라고
- 부르는 쪽이 적절하겠지. 마침 이에 해당하는 언어가 없었기에
- 편의상 '특무사관'이라고 부르는 것에 불과하다.
- 그러니까 실태를 모르는 사람이 특무사관의 원래 의미에 따라
- 타츠야를 정규 군인이라고 이해해도 어쩔 수 없었다.
- "법률과 제도를 관리하는 사무직이니까 당연히 알아둬야만 한다고
- 생각합니다만."
- 하지만 어디까지나 '초법규적.'인 것이지, 국방군 내부에서
- 법적인 문제는 해결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해당 정장 직원의 허가를
- 받으니까, 방위성 직원이 모르는 건 태만이라고 비난해도
- 변명할 수 없을 터이다.
- "중령의 지적은 타당하지만, 이즘 문제로 삼아야할 부분은
- 다른 겁니다."
- "실례했습니다. 문제는 과연 타츠야를 설득할 수 있을지,
- 설득해야만 하는 건지였지요."
- 얘기가 벗어난 걸 사죄하며 카자마는 두 개의 문제점을 나열했다.
- "그렇습니다."
- 사에키도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 "우선 이 건의 출발점으로 타츠야가 머티어리얼 버스트의 술자라는 걸
- 방위성과 외무성은 인식하고 있습니까?"
- "오늘 느낌으로 보건데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군요."
- "과연. 그렇다면 이런 엉뚱한 지시가 나오는 것도 납득이 갑니다."
- 타츠야는 일본이 보유한 최대의 마법 전력, 아니 전.력.이다.
- 홀로 세계의 군사 밸런스를 바꾸는 조커, 최강의 비장의 수를 만드는
- 다섯 번째 에이스.
- 룰에 따라선 배제될 수 있는 성가신 사람이지만, 이 세계에선
- 조커의 사용이 인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넘기다니,
- 제정신으로 할 소리는 아니다. 타츠야가 최강의 전략급마법사라는 걸
- 안다면, 디오네 계획에 참가하게 하라는 생각은 하지 않겠지.
- "차라리 타츠야를 14번째 『사도』로 인정하는 건 어떻습니까?"
- 사에키는 의표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경악한 건
- 한순간이었다.
-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 "각하?"
- 이 반응에 카자마 쪽이 놀라버렸다. 그는 단순한 농담으로 꺼낸 거였다.
- "이 이상 사태가 악화된다면 검토해야만 할지도 모릅니다.
- 그가 전략급마법사라는 걸 공표하면, 관료도 USNA에게
- 넘겨주라고는 하지 않겠지요."
- "그건 그렇습니다만……."
- "뭐 그것도 향후 사정에 달려 있습니다. 일단 눈앞의 문제를
- 해치우도록 하죠."
- 그렇게 말하고 사에키는 지친 표정을 다시 지었다.
- "일의 시비는 제쳐두고, 카자마 중령, 시바 군을 설득할 수 있다고
- 생각합니까?"
- "불가능하겠죠."
- 설령 가능하다 해도 타츠야에게 아메리카로 가라고 권하지 않겠지만,
- 설득 그 자체가 무리라고 카자마는 즉답했다.
- "최근에 타츠야와 우리의 관계는 양호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 이건 소관의 실태입니다만, 저번에 몰래 촬영한 사건에서도
- 커다란 불신감을 줘버렸습니다."
- "그 건은 제 판단 미스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설득해봤자
- 성공 가능성은 없고, 오히려 그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결과만
- 남는다는 거군요."
- "소관은 그렇게 판단합니다."
- 카자마의 판단에 사에키도 다른 의견은 없었다.
- "그럼 외무성의 요청을 거절해서 시바 군의 환심을 사는 게
-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 "그건…… 글쎄요."
- 한편 카자마는 사에키의 아이디어를 긍정하지 않았다.
-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든 타츠야가 디오네 계획에 참가하는 일은
-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감사하게 여기진 않겠지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 이 경우 가장 좋은 선택지가 아닐까요."
- "과연……."
- 사에키가 손으로 시선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긴다.
- 카자마는 데스크 앞에 가만히 선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 "귀관의 의견을 채용하도록 하지."
- "그건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겁니까?"
- "그렇습니다. 외무성의 요청은 정규 절차를 밟지 않은
- 비공식적인 것이었습니다. 방치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 그렇게 말했지만 사에키는 처음부터 외무성의 의뢰를
- 무시할 생각이었다고 카자마는 생각했다. 그를 부른 건,
- 이 건을 역으로 이용해 타츠야에게 은혜를 팔지 말지
-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카자마는 그렇게 이해했다.
- "중령, 수고했습니다."
- "네. 실례하겠습니다."
- 카자마는 사령관실에서 나갔다.
- 일단 타츠야에게 알려줘야 할지 카자마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가
- 즉시 기각했다.
- 외무성이나 국방군의 생각은 타츠야에게 의미가 없는 거다.
- 아무리 생각해도 수복할 재료는 아니었다.
- 그것보다 열네 번째 『사도』로서 인정한다는 얘기가 현실적이게 된다면
- 타츠야의 의향을 확실히 확인해야만 하겠지.
- 이미 타츠야는 토러스 실버로서 세계적으로 원하지 않는 지명도를
- 얻어버렸다. 이전보다 표면적으로 나서는 걸 기피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타츠야가 전략급마법사로서 공인되는 걸 바라냐고
- 물어본다면, 카자마는 확실하게 'No'라고 대답할 거다. 여기서
- 대응을 잘못해 그의 기분을 해치는 일은 좋은 책략이 아니다.
- ……이런 걸 생각할 정도로 타츠야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걸
- 카자마는 신경 썼다.
- ◇ ◇ ◇
- 타츠야와 에드워드 클러크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건,
- 외무성만이 아니었다.
- 산업성(産業省)은 대신인 여당 중진의 사무소에서 내려오는 압력에
- 고뇌하고 있었다. 과거에 통상 산업성이라고 불린 것처럼
- 무역은 산업성의 중요한 관할 분야다. USNA는 이 시대에서도
-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며, 산업성의 관료로서는
- 통상(通商) 마찰의 씨앗을 가능한 한 작을 때 제거하고 싶었다.
- 그로서는 민간인 한 명의 거취로 USNA와 사이가 나빠지다니
- 농담이 아니었고, 타츠야는 얼른 아메리카로 가 줬으면 하는 게
- 본심이었다.
- 그런데 오늘 아침 대신의 사무소에서 '마법 항성로 에너지 플랜트 계획'을
- 실행하는데 필요한 입법 장치에 대한 문의가 있었다. 이건 즉
- USNA의 디오네 계획에는 참가하지 않는 방향으로
- 구체적인 검토를 하라는 거다.
- 애초에 디오네 계획도 마법 항성로 플랜트 계획도 정부가 정한
- 공공사업이 아니므로 일본으로서 참가이고 자시고 없었다.
- 가장 협력적으로 보는 신소련도 협력을 표명한 건 정부가 아니라
- 아카데미였다. 여기서 일본 정부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 표면적으로 USNA의 비판을 받을 단계는 아니었다.
- 플랜트 계획 쪽은 국내에서 하는 사업이므로 그 법적 측면에 대해
- 검토하는 건 산업성 원래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 그걸 대신의 사무소에서 직접 조회하라고 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 '지지하라'라는 압력이다.
- 어째서 그렇게 된 건지 산업성은 이미 조사했다. 대신의 사무소에
- 진정이 있었다. 그것도 여당의 커다란 자금원인 여러 대기업 그룹에서.
- 모든 경제계는 아니었으니까 USNA의 기분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은
- 플랜트 계획에 반대하는 재계인도 적지 않을 거라고 본다.
- 하지만 산업성이 보기에는 그저 1고 학생이 꺼낸 프로젝트가
- 경제계를 두 세력으로 나눈 거다.
- 도대체 어디서 그런 연줄을 잡아낸 건지, 어느 틈에
- 산전수전 다 겪은 거물 경영자들을 꾀.어.낸. 건.지,
- 일에 쫓기면서 산업성 직원은 크게 목을 비틀었다.
- ◇ ◇ ◇
- 오전 수업이 끝날 때까지 타츠야는 교실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3학년이 되면 마법에 관한 전문적인 과목이 늘어난다. 하지만
- 일반 교양과목이 없는 건 아니다. 타츠야는 결석 중
- 일반 과목을 세 배 속도로 집중적으로 수강했다.
- 유감스럽게도 한나절로 끝날 분량은 아니었지만, 그도
- 오늘 하루 만에 뒤쳐진 걸 모두 끝낼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 점심시간이 됐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러 일어났다.
- "타츠야 씨, 식사하러─."
- "타츠야 군."
- 옆자리에서 미즈키가 '식사하러 가는 건가요?'라고 묻는 목소리를
- 소년의 목소리가 덧씌웠다.
- 목소리의 주인은 토미츠카였다.
- "미즈키, 먼저 식당으로 가 있어줘."
- 타츠야는 미즈키에게 그렇게 대답하면서 토미츠카를 향해 돌아섰다.
- "토미츠카, 무슨 용건이지?"
- "……잠시 얘기하고 싶은데."
- 토미츠카는 살짝 주저한 다음,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타츠야에게
- 대답했다.
- "그건 시간이 걸리는 얘기인가?"
- 토미츠카와는 대조적으로 타츠야는 그다지 얘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 "아마도."
- "방과 후에는 안 되는 건가?"
- 그래도 일단 들을 자세는 취했다.
- "가능하다면 당장."
- "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얘기 아닌가?"
- "그건…… 그렇지만."
- 토미츠카는 말을 우물거렸다.
- "뭐야, 젠체하고. 얘기 정돈 들어줘도 되잖아."
- 그 상황에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난입했다.
- "히라카와 씨……?"
- 타츠야를 노려보는 히라카와 치아키. 당황한 건 타츠야보다도
- 토미츠카 같았다.
- "뭔가요, 그 말투……! 타츠야 씨가 얘기를 안 듣는다고는
- 하지 않았잖아요!"
- 치아키에게 반론한 건, 먼저 식당에 가 있으라는 말을 듣고도
-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미즈키였다.
- 예상치 못한 여자들의 장외 난전은 타츠야의 '그만 둬, 미즈키'라는 제지로
- 발발하지 않고 끝났다.
- "미즈키. 미안하지만 오늘 점심시간엔 토미츠카의 얘기를 들어야겠어.
- 모두에게 그렇게 전해주지 않겠어?"
- "……알겠습니다."
- 미즈키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언뜻 보이면서, 타츠야에게 인사를 하고
- 교실에서 나갔다.
- "토미츠카, 어디서 얘기를 할 거지?"
- "그러니까, 그럼 옥상에서."
- 타츠야의 눈썹이 살짝 올라간 건, 옥상에서 얘기하면 다른 학생들도
- 듣기 때문이다.
- "알겠다."
- 하지만 토미츠카가 그래도 괜찮다면, 타츠야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 "히라카와 씨, 고마워."
- 토미츠카는 들어올린 주먹이 갈 곳을 잃은 치아키에게 작은 목소리로
- 그렇게 말하고, 벌써 교실을 나간 타츠야의 뒤를 쫓아갔다.
- 타츠야의 예상과 달리 옥상엔 사람이 없었다. 도쿄는 저번 주부터
- 장마철이라 오늘도 우중충한 하늘,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 하늘이었다. 점심시간에 옥상에 있으려고 하는 학생이 없는 게
- 당연할지도 모른다.
- 옥상엔 벤치도 있었지만 타츠야도 토미츠카도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 선 채로 마주보는 두 사람.
- "그래서 내게 할 얘기는 뭐지?"
- 먼저 말문을 연 건 타츠야였다.
- "……요전에 어머니가 쓰러졌어."
- "마법협회의 토미츠카 히스이 회장이 입원했다고 하더군.
- 미유키에게서 들었다. 큰일이었던 모양이군."
- 남의 일처럼 평가하는 타츠야에게 토미츠카는 화가 치민 표정을 지었다.
- "하지만 그건 마법협회의 회장과 외무성 사이의 문제다.
- 내게 불평하면 곤란해."
- 타츠야는 토미츠카의 표정이 보였지만, 그의 심정을 전혀
- 참작하지 않았다.
- "그렇게 말할 건 없잖아!"
- 타츠야의 박정한 말에 토미츠카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
- "연하의 여자아이에게 싸움을 걸었으니, '그렇게 말하고' 자시고
- 할 것도 없다."
- 하지만 타츠야의 비아냥거림이라기엔 너무나도 신랄한 말에
- 토미츠카는 주눅 들었다.
- 토미츠카는 그제야 타츠야의 눈동자에 차가운 분노가 서렸다는 걸
- 깨달았다.
- "그래서 토미츠카. 너의 볼일이란 마법협회 회장의 마음고생을
- 없애기 위해 나보고 산제물이 되라는 건가?"
- "산제물이라고 말한 적 없어!"
- "하지만 나를 USNA로 쫓아내고 싶은 것 아닌가?"
- "쫓아내다니……."
- 타츠야의 말에 담긴 독은 토미츠카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 "나는…… 정말로 그 계획이 마법사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고……."
- "토미츠카. 너는 디오네 계획의 진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 이번에는 타츠야의 목소리에 살짝 짜증이 담겼다.
- 타츠야가 일부러 목소리를 그렇게 냈다는 걸 모르는 토미츠카는
- 타츠야의 비정한 태도에 대한 분노를 잊고 당황했다.
- "진짜 목적……?"
- "디오네 계획의 진짜 목적은 마법사를 지구에서 쫓아내고
- 목성권, 소혹성대, 금성권에 묶어두는 것이다."
- "……뭐라고?"
- "위성 궤도에도 마법사를 배치하겠지만, 이 포지션엔
- USNA나 신소련, 영국의 마법사가 자리 잡겠지. 가령 내가
- 디오네 계획에 참가한다면, 목성의 위성 궤도로 날아가
- 10년도 넘게 못 돌아올 거다. 평생 귀양을 가는 것도
- 충분히 있을 법 하군."
- 귀양보다 귀성(星)인가, 라고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덧붙여 말한
- 타츠야의 목소리는 토미츠카의 의식에 닿지 않았다.
-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런……. 그거 시바 군의 지나친 생각 아냐……?"
-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어. 스스로
- 공표된 자료를 다시 한 번 검토해 봐라. 뒷얘기는 그 다음이다."
- 타츠야는 그렇게 말하고 토미츠카에게서 등을 돌렸다.
- 뒤에서 그를 불러세우는 목소리는 없었다.
- 가령 토미츠카가 스스로 디오네 계획을 유익한 프로젝트라고 판단하고
- 타츠야에게 다시 쫓아온다 해도, 타츠야는 그의 설득을 받아들일 생각이
- 없었다.
- 디오네 계획엔 참가하지 않는다.
- 미유키를 지구에 남겨두고 우주로 가진 않는다.
- 미유키를 두고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 그건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결단이다.
- 즉 방금 타츠야가 한 행동은 시간벌기다.
- 하지만 토미츠카가 디오네 계획에 숨겨진 악의를 스스로 알아차리길
- 바란 것도 거짓은 아니었다.
- 타츠야를 멍하니 배웅한 토미츠카는 그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도
- 잠시 그대로 굳어 있었다.
- "……뭐야, 그거."
- 토미츠카가 그렇게 중얼거린 건, 떨어지는 빗방울의 감촉으로
- 제정신이 돌아온 덕분이었다.
- "진짜 목적? 우주로 귀양? 하, 완전히 음모론이잖아."
- 비웃는 것처럼 내뱉는다.
- 하지만 제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타츠야의 말이 마음에 박힌 채
- 뽑히질 않는다.
- 비는 곧 본격적으로 내렸다.
- 토미츠카는 비에 젖는 걸 신경 쓰지 않고, 어쩌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 옥상에 우뚝 서 있었다.
- "나는 그런 거 듣지 못했어. 그런 말, 그 누구도 하지 않았어."
-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주위에선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 그가 시청한 방송에서 그런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 그것뿐이다.
- 아무리 정보화가 진전 되도, 한 명의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데이터엔
- 한계가 있다.
- 결국 기반은 자기 자신의 사고다.
- "진짜 목적이라고? 그건 지나친 생각이야. 우주로 귀양이라니,
- 여론이 허락할 리가 없어."
- 하지만 '자신의 생각'도 자신이 홀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 자신이 접한 정보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 타츠야와 토미츠카는 경험과 얻은 정보, 쌓아온 사고방식이 너무나도
- 달랐다.
- 우열이 아니라, 서로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 타츠야가 내린 결론은 현재의 토미츠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 아마도 토미츠카 쪽이 보통이겠지.
- 그가 보인 거절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 ◇ ◇ ◇
- 이즈 고원 공격을 실패한 뒤로 에드워드 클러크는 베조브라조프에게
- 종종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연결되지 않았다.
- 『역시 베조브라조프 박사와 연락이 되질 않나요.』
- "네, 서(Sir.) 윌리엄."
- 클러크가 지금 대화하는 상대는 영국의 마크로드다.
- 클러크가 있는 로스앤젤레스는 한밤중, 마크로드가 있는 런던은
- 이른 아침이었지만, 베조브라조프가 지금 극동에 있는지 아닌지 모르기에
- 클러크도 시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았다.
- "유감스럽게도 베조브라조프 박사는 이쪽의 접촉을 거부할 생각인
- 모양입니다."
- 『어쩔 수 없군요……. 박사는 우리와 적대하는 공산권의 인간이다.
- 그와 우리는 동상이몽.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겠다고 한
- 베조브라조프 박사를 컨트롤하는 건, 처음부터 무리였던 거겠죠.』
- "그럼 역시 베조브라조프는 재공격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말인지?"
- 클러크의 호칭이 '베조브라조프 박사'에서 '베조브라조프'로 변했다.
- 『그렇겠죠. 계속해서 실력 행사로 질량 에너지 변환 마법을
- 없앨 생각인 거겠죠.』
-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걸……"
- 클러크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난폭하게 휘저었다.
- "서 윌리엄……. 성공 가능성은 있는 겁니까?"
-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반 정도겠죠.
- 저번엔 좋게 몰아넣은 모양입니다만, 시바 타츠야의 실력이
-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 "시바 타츠야의 마법력에 따라 다르다고? ……확실히 그렇겠군요."
- 마크로드의 추측은 매우 염려되는 내용이었지만, 클러크는
- 이에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 『클러크 박사. 당신의 '흘리드스캴프'로도 시바 타츠야의 실력을
- 알 수 없는 겁니까?』
- "……유감스럽게도. 『언터쳐블』이라는 이명은 장식이 아니었던
- 모양입니다."
- '언터쳐블'은 요츠바가의 이명. 타츠야가 겉무대에 등장하기 전부터,
- 그와는 관계없이 클러크는 요츠바를 언젠가 없애야만 하는 상대로
- 지정했다. 마야에게 흘리드스캴프의 단말을 건넨 건, 사실 클러크가
- 요츠바가의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 하지만 요츠바가의 당주는 클러크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 요츠바 마야의 사용 이력을 봐도 시바 타츠야의 능력이나
- 다른 분가 마법사의 능력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거의 포착하지 못했다.
- 『그런가요…….』
- 실망한 것처럼 마크로드가 탄식했다.
- 마크로드에게 모멸할 의도는 없었지만 클러크의 자존심은
- 크게 상처를 입었다.
- 『이렇게 된 이상 베조브라조프 박사의 재공격이 성공하도록
- 빌 수밖에 없겠군요……. 클러크 박사, 밤늦게 실례가 많았습니다.』
- "아뇨, 호출은 이쪽이 했으니까요. 이른 아침부터 실례했습니다."
- 『저는 평소에도 일어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박사, 좋은 밤 보내시길.』
- "네, 서 윌리엄. 좋은 하루되시길."
- 마크로드와 연결된 전화를 끊었다.
- 마크로드는 마지막에 형식적으로 '좋은 밤'이라고 표현했다.
- 하지만 클러크는 도저히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 [5]
- 수, 목, 금요일에 국내에도 해외에도 특별히 커다란 움직임은 없었다.
- 타츠야와 에드워드 클러크의 싸움은 소강상태로 이행한 것처럼 보였다.
- 하지만 그 뒤에서 레.이.몬.드. 클러크의 음모가 착실하게 진행 중이었다.
- 6월 15일 토요일, 북아메리카대륙합중국 텍사스주 댈러스 교외.
- 여기엔 총 길이 30킬로미터에 이르는 장대한 선형 가속기를 갖춘
- 국립 가속기 연구소가 있다.
- 그 가속기 주변에선 아침부터 비밀 실험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 실시되는 내용은 잉여차원 이론을 기반으로 삼은 마이크로 블랙홀 생성ㆍ
- 증발 실험. 2095년 12월에 같은 실험을 한 적이 있지만,
- 그 때의 목적은 질량 에너지 변환 마법의 단서를 얻는 것이었다.
- 하지만 이번 실험의 목적은 마이크로 블랙홀 증발로 인해 생기는
- 에너지의 관측이 아니었다. 마이크로 블랙홀의 생성 자체를
- 성공할 필요는 없다. 오늘의 비밀 실험은 그 연구소에 잠입했다고 추정되는
- 공작원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 하지만 과학자들에겐 간신히 재실험 허가가 내려온 귀중한 기회였다.
- 그들은 이 찬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짧은 준비 기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 의욕에 넘쳐 있었다.
- 공작원에 대처하는 건 정보부원도 카운터 테러 부대도 아니다.
- 참모본부에 직속한 마법사 부대, 스타즈다.
- 공작원이 정말로 있다면 높은 마법 기능을 갖고 있을 터이다.
- 이것도 스타즈가 출동한 이유지만, 그래도 다른 부대가 오지 않은 건
- 애초에 이 작전이 스타즈에서 개진했다는 경위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 "잭, 이상은 없나?"
- 『이상 없습니다, 대장. 현시점까지 공작원 같은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 연구소 내부를 전부 모니터할 수 있는 경비 센터에는 스타즈 제3부대 대장인
- 알렉산더 아르크투루스 대위가 있다. 그가 통신한 상대는
- 제3부대의 일등성급 대원 제이콥 레굴루스 중위. 레굴루스는
- 가속기 관제실에서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일 공작원을 찾기 위해
- 눈알을 굴리는 중이었다.
- "그런가. 감시를 속행해라."
- 『알겠습니다.』
- "대장."
- 통신기에서 입을 뗀 아르크투루스에게 성좌급 대원이 말을 걸었다.
- ─참고로 스타즈의 서열은 일등성급, 이등성급, 성좌급, 행성급,
- 항성급 순서이다. 이 서열은 계급과 별개이지만, 작전 행동할 땐
- 하사관인 성좌급이 준사관인 행성급의 지휘 아래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 "뭐지."
- 아르크투루스는 부하의 말에 한 마디로 대답하고 시선으로
- 뒷말을 재촉했다.
- "포말하우트 중위의 건에 일본이 관여했다는 건, 근거가 있는
- 정보인 건가요? 솔직히 일본 공작원이 그렇게까지 유능하다고는
-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 작전 실시 중인 단계에서 그런 너무나도 새삼스러운 의문이 튀어나온 건,
- 공작원의 낌새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좌급 대원들이
- 이 국립 가속기 연구소를 감시하는 건, 오늘이 전부가 아니다.
- 재실험이 결정된 다음날, 이번 주 일요일까지 계속 감시한다.
- 그런데 실험 직전임에도 적의 그림자도 형태로 보이지 않는다면,
- 다소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도 어쩔 수 없겠지.
- "일본군은 작년에 패러사이트를 사용한 자율인형병기 개발에
- 성공했다."
- 아르크투루스는 사기 저하를 막기 위해 기밀성 낮은 정보를
- 부하에 공개했다.
- "패러사이트를 이용한 자율병기 말입니까?"
- "사전 준비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다.
- 직접적인 근거는 없지만, 포말하우트 중위의 사건에
- 일본군이 개입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 이 추리엔 오인이 있었다. 패러사이트를 사용한 자율병기─
- 패러사이돌은 애초에 식신술을 응용해서 움직인다는 구상이었다.
- 하지만 식신이나 인조정령으로는 기체를 움직일 수는 있어도
- 기대한 마법 기능이 발휘되지 않아, 전자두뇌로 제어되는 기체보다
- 우위를 획득하지 못했다. 그 이유로 패러사이트를 얻을 때까지
- 실용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 즉 올바르게 말하자면 성공 직전까지 이른 병기에 패러사이트를
- 이용한 것이며, 패러사이돌은 처음부터 패러사이트 이용을 상정하고
- 개발된 물건이 아니었다.
- 이것만이 아니라 레굴루스에게 제공하였고 아르크투루스와
- 워커 기지사령에게 전달된 '근거'는 전부 표면적인 사실에
- 왜곡된 '정보'가 가미된 것이었다. 그리고 마이크로 블랙홀 실험을
- 다시 실시하도록 '일본 공작원의 관여'를 믿게 만든 것이다.
- "그런 일이 있었다니…… 실례했습니다!'
- 이 성좌급 대원도 왜곡된 근거를 의심하지 않았다.
- 그런데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수상쩍은 사람은 이미 연구소에
- 침입한 상태였다.
-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발견되지 않은 게 아니라 수상한 사람이라는
- 인식을 받지 않은 것이었다.
- 그것도 당연하다.
- 침입한 사람은 국가과학국이 발행한 구내 출입 패스를 소지하고 있었다.
- 아버지의 연줄로 과학자 패스가 아니라 임시 직원 패스를 얻어낸
- 레이몬드 클러크는 연구소 사무동 옥상에서 가속기의 위용을
- 바라보고 있었다.
- 있지도 않은 '일본 공작원의 관여'를 날조해서 이번에 실험이
- 실시되도록 추진한 사람은 레이몬드다. 그는 타츠야에 대항할 전력을
- 만.들.어.내.기. 위해, 패러사이트를 다시 불러들이기로 했다.
- 그러기 위해 레굴루스의 복수심을 이용했다.
- 친구인 포말하우트가 무참히 처형된 걸 납득하지 못한 레굴루스의
- 갈 곳을 잃은 분노에게 방향을 주었다. 그것만으로 레굴루스는
- 레이몬드의 기대대로 움직여줬다.
- 마법사로서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레굴루스가, 아르크투루스가
- 자신이 쓴 대본대로 삼류 연극을 연기하고 있다. 자신은
-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스타즈라는 엘리트 집단에 속한 마법사가,
- 자신이 계획한 무대에서 희극을 연기하고 있다. 레이몬드는
- 이를 구경하러 왔다.
- 하지만 이 희극엔 웃을 수 없는 심각한 결말이 준비되어 있다.
- 레이몬드는 이를 확인하러 왔다.
- 흘리드스캴프에 의한 중계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보러.
- 단순한 호기심과 달성감을 충족하기 위해서.
- 진.짜. 직원은 모두 두 번 다시없을 기회라 생각하고
- 마이크로 블랙홀 실험에 매달리고 있다. 아무 짓도 안하고
- 옥상 난간에서 두 팔꿈치를 괸 레이몬드를 보고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 오적 11시. 실험 예정 시각이다.
- 실험 자체에 스타즈는 관여하지 않는다. 가속기 관제실에 있는 레굴루스도
- 참견은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다.
- 애초에 레굴루스는 실험에 참견할 생각이 없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 관심이 없다.
- 그의 마음은 포말하우트를 함정에 빠뜨린 사람을 향한 복수심으로
- 꽉 차 있었다.
- 패러사이트를 불러들이는 실험을 실시하도록 꾀한 공작원만이 아니다.
- 공작원을 붙잡아, 그 뒤에 있는 조직을 밝혀내 철저하게 때려부순다.
- 그는 강하게, 순수하게 이를 염원했다.
- 수상쩍은 짓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레굴루스가 눈에 빛을 켜고
- 둘러보는 와중에, 실험을 지휘하는 과학자가 가속기 시동을 선고했다.
- 막대한 전력을 집어삼키고 선형 가속기가 가동했다.
- 가속기 양끝에 양자빔을 주입해, 정반대 방향으로 충돌 궤도로 가속한다.
- 첫 실험은 순식간에 끝났다. 그걸 원하는 데이터를 얻을 때까지
-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것이지만, 오늘은 첫 실행만 할 뿐,
- 두 번째를 하는 일은 없었다.
- 가속기에 트러블이 있었던 게 아니다.
- 한 번에 실험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 실험 개시 목소리가 들린 직후, 가속기 관제실에 있는 레굴루스의 시야가
- 어두워졌다.
- 레굴루스는 정전이라고 잠시 의심했다.
- 의문을 느낀 건, 한순간뿐이었다.
- 다음 순간 레굴루스는 엄청난 아픔과 압박감을 느꼈다.
- '뭔가'가 '자신'을 침식하고 있다. 속으로 억지로 들어오려고 한다.
- 물리적인 게 아니다. 육체적 침입이 아니라고, 그는 직감적으로
- 이해했다.
- 하지만 훈련을 받은 정신간섭공격과 고통 종류가 전혀 달랐다.
- 만약 레굴루스가 경.험.이 있는 여성이었다면 처녀막이 파열되는
- 고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남성이다.
- 이 고통을 뭐로 비유하면 좋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 레굴루스는 고통보다도 자신의 안에 자신 이외의 무언가가 들어오는
- 기분 나쁨 느낌에서 벗어나려고 '무언가'를 밀어내려고 버둥댔다.
- 정신 간섭계 마법에 적성이 없는 레굴루스는 손발을 다루는 것처럼
- 정신을 움직이는 방법을 몰랐다. 그 대신에 정신 간섭계 마법에
- 대항하기 위한 사이온 조작이나 무계통 마법, 결국엔 자신의 특기 마법인
- 방출계 마법으로 전격을 뒤집어쓰는 것까지 시도했다.
- 하지만 정신 간섭계 마법에 대한 대항 기술이나 무계통 마법은
- 침입자에게 효과가 없었다. 자폭 같은 전격 마법은 발동조차 하지 않았다.
- 침식이 진행된다.
- 침입해온 '무언가'의 자체적인 의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 그저 '무언가'가 자신과 섞인다.
- '침식'은 어느 샌가 '동화'로 변했다.
- 고통이 사라진다.
- 압박감이 옅어진다.
- ─설마 이건 패러사이트!? ──.
- 급격히 공포감이 솟아올랐다.
- 하지만 그건 꺼져가는 양초의 마지막 반짝임과 같았고,
- 급격히 조용해졌다.
- 공포도, 가공의 공작원에게 품은 분노도 의식 저 밑으로 가라앉고,
- 마음이 잔잔해졌다.
- '─나는 제이콥 레굴루스라고 불린다.'
- '─나는/우리는 이 세계의 인간에게 『패러사이트』라고 불린다.'
- 이렇게 레굴루스는 패러사이트가 됐다.
- 경비 센터에 있는 아르크투루스는 실험 직후에 자신의 정신에
- 뭔가가 침입하는 걸 명확하게 인식했다.
- '정령……?'
- 그가 레굴루스처럼 아픔이나 압박감을 느끼지 않은 건,
- 정령 마법 사용자였기 때문이다.
- 아르크투루스는 이동계 마법이 특기인 한편 정령을 소환하는
- 고식마법도 통달했다.
- 자신의 몸에 정령을 소환해서 그 힘을 행사하는 고식마법.
- 현대인의 감각으로 말하자면 마물을 자신에게 빙의시켜
- 그 힘을 이용하는 마법이라는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 아르크투루스는 자신 이외의 '무언가'가 자신에게 깃드는 감각이 익숙했다.
-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가 침입해도 허둥대지 않았다.
- 정신에 침입한 것에 대한 대항 수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아르크투루스의 오산은 침입자─ 패러사이트가 자아를
-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 자신 이외의 정신적인 실체를 가진 '무언가'.
- 하지만 그것 자체에 의사는 없다.
- 그러니까 자기 자신과 구분할 수 없었다.
- 그건 어떠한 의도도 없이 그저 그의 속에 있었다.
- 마치 물이 다 마른 천에 스며드는 것처럼, 자신의 심지에 파고들었다.
- 자신이 습득한 기술이 이 침입자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 아르크투루스의 마음에 공포가 발생했다.
- 그는 정령을 소환해서 이 '무언가'를 쫓아내려고 했다.
- 하지만 정령은 아르크투루스의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 아르크투루스의 '안'은 이 침입자로 이미 꽉 찼다.
- 자신의 안에 자신 이외의 무언가가 파고든다.
- 자신과 자신 이외의 무언가가 섞인다.
- '침식'은 어느 샌가 '동화'로 변했다.
- 아르크투루스는 자신이 꽉. 찬. 걸. 느꼈다.
- 정령 소환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진정한 일체감.
- ─그것이야 말로 사람과 성.령.의 진정한 합일─.
- 그게 순.수.하게 아르크투루스로서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 '─나는 알렉산더 아르크투루스라고 불린다.'
- '─나는/우리는 이 세계의 인간에게 『패러사이트』라고 불린다.'
- 이렇게 아르크투루스는 패러사이트가 됐다.
- "아파, 아파, 아파."
- 사무동 옥상에서 레이몬드는 몸부림치고 있었다.
- "아파아파아파아파."
- 그의 입은 오로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 정신에 자신 이외의 '무언가'가 침입하는 격통.
- 정신 간섭계 마법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한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 레이몬드에겐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 고통에 잠식된 그는 '무언가'가 닥쳐오는 압박감을 인식하지 못했다.
- 그러면서 단단한 레이몬드의 자아는 정신을 침입하는 자신 이외의 존재를
- 강하게 거부했다.
- 저항이 격하니까 고통도 격하다.
- 스스로 저항한다는 걸 모르니까 이를 막을 수도 없다.
-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 끊기지 않는 고통에 정신이 무너진다.
- 그게 자아의 저항을 약하게 한 건, 과연 레이몬드에게 행복이었을까.
- 자아의 저항력이 저하되고, 침식이 가속된다.
- 레이몬드는 몸부림 칠 힘도 잃고, '아파'라는 말을 내뱉지도 못하고
- 옥상 끝에 축 늘어져 누워 있었다.
- 마치 시체 같은 레이몬드의 안에서, 그의 사고도 이미 시.체.처.럼.
-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
- 급속도로 침식이 진행된다.
- 급속도로 동화가 진행된다.
- 그를 침식하는 '무언가'는 무저항이었기에 있는 그대로
- 레이몬드의 의식을 집어삼켰다.
- 레이몬드의 사고가 '무언가'를 그의 색깔로 덧칠했다.
- 레이몬드는 자신에게 주역이 될 힘이 없다고 포기하고 있었다.
- 하지만 사실 주역이 되고 싶었다.
- 레이몬드는 영웅이야기처럼 로망이 넘치는 활약을 하고 싶었다.
- 마법으로 우주를 정복한다. 그건 무척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 레이몬드는 그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시바 타츠야가 방해됐다.
- 시바 타츠야를 굴복시키기 위해 그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했다.
- 스타즈 최강의 마법사 '시리우스'의 힘으로도 이길 수 없었다.
- 그러니까 패러사이트의 힘을 원했다.
- 스타즈의 마법사에게 패러사이트를 빙의시키면 시바 타츠야를
- 굴복시킬 수 있을 게 분명하다. ─레이몬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러기 위해 이 무대를 준비했다.
- 패러사이트의 힘으로 시바 타츠야를 쓰러뜨리기 위해─.
- '─그게 레이몬드의/우리의 소망.'
- '─시바 타츠야를 쓰러뜨리길, 레이몬드는/우리는 원한다.'
- '─나는 레이몬드 클러크라고 불린다.'
- '─나는/우리는 이 세계의 인간에게 『패러사이트』라고 불린다.'
- '─레이몬드는/우리는 시바 타츠야를 굴복시킨다.'
- 이렇게 레이몬드 속에서 일그러진 소망이 맹세가 됐다.
- 패러사이트는 다시 이 세계의 초대를 받았다.
- 패러사이트가 동화한 건, 레굴루스, 아르크투루스, 레이몬드
- 세 사람만이 아니었다. 건물 밖에 대기한 스타즈 제6부대
- 『오리온 팀』 세 사람도 패러사이트와 동화됐다.
- 레이몬드를 제외한 다섯 명은 실험 종료 뒤, 인.간.들이
- 이를 깨닫는 일도 없이 뉴멕시코의 스타즈 본부 기지로 귀환했다.
- 레이몬드는 아무 일 없었다는 표정으로 캘리포니아의 자택으로
- 돌아갔다.
- ◇ ◇ ◇
- 6월 16일, 일요일.
- 쿠도 미노루는 다시 패러사이돌을 수납하는 창고로 찾아갔다.
- 지금은 아직 해가 뜨기 전, 밖은 암흑과 정적으로 덮여 있다.
- 그가 여기에 온 걸, 가족 중 그 누구도 모르겠지. 아버지도 형도
- 사용인도 미노루는 방에서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거다.
- 저번에 학교를 빼먹고 미나미에게 병문안을 가기 위해
- 무박으로 도쿄를 왕복한 미노루를 가족 중 그 누구도 질책하지 않았다.
- 할아버지 쿠도 레츠만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미노루에게 사정을 물었지만,
- 이유를 설명하자 '그런가'라고 한 마디로 납득했다.
- 할아버지는 둘째 치고 아버지와 형은 단념한 거다.
- 미노루는 그들의 반응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 그리고 생각대로 다음날부터 미노루를 대하는 태도는
- 지금까지 이상으로 방임주의가 됐다. 어쩌면 그들은
- 결국 미노루가 자포자기한 거라고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
- 언제 갑자기 죽을지도 모르니까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자는 걸지도
- 모른다.
- 미노루에겐 고마운 착각이었다. 지금 그는 가족이나 사용인을
- 상대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 미나미를 치료하고 싶다.
- 미노루의 마음은 이걸로 가득 차 있었다.
-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건지, 미노루는
-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다. 어쩌면 고작 삼 일만에 사랑에 빠지는,
- 한눈에 반했다는 경.박.한. 마음이 원동력이 아니라는 고집이
- 있는 걸지도 모른다.
- 저번과 달리 해제 마법을 써서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 마법은
- 슈 코우킨의 지식 속에서 찾아낸 『전자금잠』의 응용마법이다.
- 첸샹센이 마법협회 관동지부에 침입할 때 사용한 마법이지만
- 첸의 술식보다 세련된 것이라 경보가 울리는 일은 전혀 없었다.
- 서늘하고 건조한 공기가 미노루의 몸을 감싼다.
- 저번과 똑같이 거기에 프시온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 "역시 이것밖에 없나……."
- 미노루의 입에서 혼잣말이 흘러나온다.
- 그의 속에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 이 말은 질문이 아니라 결의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다.
- 미노루는 창고 가장 안쪽에 놓인 '상자'로 다가갔다.
- 그 안엔 동아시아계 남성의 시체가 언 상태로 안치되어 있다.
- 이건 작년 겨울, 제1고교의 연습림에서 타츠야와 미키히코에 의해 봉인된
- 패러사이트 중 하나. 시체와 반시체 중 시체 쪽이었다. 시체의 피부엔
- 패러사이트를 가둬두기 위한 문자와 문양이 새겨져 있다.
- 이 시체는 패러사이돌에 사용한 패러사이트의 공급원이다.
- 패러사이트가 부분적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봉인을 느슨하게 하면,
- 시체에 갇혀 있었던 패러사이트는 자신의 카피를 내보내
- 새로운 개체를 만들려고 한다.
- 그 카피를 가이노이드에 가두고 시체는 다시 봉인한다.
- 그렇게 구제9연, 현재의 『제9종 마법개발연구소』의 연구자는
- 패러사이돌을 제조했다.
- 이 봉인 술식은 패러사이돌의 생산이 동결된 지금도 12시간마다
- 쿠도가 휘하의 마법사가 계속 갱신하고 있다.
- 갱신 시간은 오전과 오후 각각 6시.
- 현재 시간은 오전 4시.
- 슬슬 술식 효력이 약해졌을 즈음이다.
- 미노루가 관 측면에 있는 스위치를 누른다.
- 관 뚜껑이 자동적으로 열린다.
- 시체는 소복을 입고 있었다. 이건 미노루에게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 지저분한 남자의 전라 따위 시체라 해도 보고 싶지 않다.
- 미노루는 오른손을 얼어붙은 시체의 가슴에 댔다.
- 딱딱한 감촉만 있을 뿐, 당연히 고동은 느껴지지 않는다.
- 미노루는 손바닥에서 얼어붙은 시체로 사이온을 보냈다.
- 몇 초 타임래그를 두고 프시온 파동이 생긴다.
- 시체 안에서 휴면 상태였던 패러사이트가 눈을 떴다.
- 미노루는 꿀꺽 숨을 들이마셨다.
- 어금니를 꽉 물고 입술을 꽉 다물며 숨을 멈춘다.
- 한순간의 망설임을 뛰어넘어,
- 미노루는 시체에 걸린 봉인 술식을 해제했다.
- 다음 순간,
- 시체 안에서,
- 빛으로 된 슬라임이 튀어나왔다.
- 미노루가 본 광경은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흐리멍덩하게 빛나는
- 비실체 부정형(不定形) 생물. 그건 크기로 봐도 '아메바'보다 '슬라임'이라고
- 표현하는 쪽이 더 그럴듯했다.
- '슬라임'이 미노루에게 닥쳐온다.
- 미노루는 이를 피하지 않았다.
- 오히려 '슬라임'─ 패러사이트를 환영하는 것처럼 양손을 펼쳤다.
- 미노루가 입고 있는 서머 스웨터, 그 가슴 중앙에 기하학적인
- 문양과 문자가 떠오른다.
- 미노루가 스스로 스웨터에 장치한 마법진이다.
- 패러사이트는 그 마법진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뛰어들었다.
- 미노루의 입에서 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그는 정신을 괴롭히는 이물감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창고 바닥에 앉았다.
-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로 올린다.
- 반가부좌라고 하는 앉는 방법이다.
- 고통을 억누르고 그 자세를 유지하고, 미노루는 냉각 마법을 발동했다.
- 체온을 내려 가사 상태로 만드는 마법.
- 발동 대상은 자기 자신.
- 미노루는 육체를 거의 가사 상태로 만들면서 의식을 내부로 돌렸다.
- 가사 상태는 패러사이트에 대한 생물적인 거부 반응을 억누르기 위해.
- 의식은 주도권을 놓지 않도록.
- 미노루는 스스로 패러사이트의 침식을 받으면서 패러사이트를
- 지배하려고 했다.
- 그는 자신의 의지를 단 한 조각도 패러사이트에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 그는 자기 자신을 유지한 상태로 패러사이트의 힘만을 얻을 생각이었다.
- '자아를 갖지 못한 생.물.체.에게 지진 않아!'
- 패러사이트를 없애버리지 않도록 세심히 주의하면서 패러사이트를
- 예속시키는 술식을 몸속에서 행사한다.
- '나는 이 마음을 잃을 순 없어.'
-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리면 인간으로 있는 걸 포기하는 의미가 없어!'
- 패러사이트를 상대로 스스로 핸디캡을 둔 싸움을 계속 하면서
- 미노루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 '나 자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주제에 그녀를 그녀로 유지시켜 줄 수
- 있을 리가 없잖아!'
- 그가 패러사이트가 되겠다고 결심한 건 미나미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다.
- 허약한 육체에서 벗어난다. 그것뿐이라면 미노루는 인간이기를
- 포기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 그는 슈 코우킨의 지식이 주는 유혹에 굴복한 것이 아니다.
- 패러사이트가 되어서도 자신의 마음을, 자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 스스로 확인한다.
- 사람의 육체는 패러사이트와 싸워 패배한다 해도 사람의 마음은
- 패러사이트를 정복할 수 있다고 확인된다면, 미나미를 치료하기 위해
- 처음으로 이 방법을 쓴다.
- 이건 자기 자신을 실험체로 삼은 일종의 자기희생이다.
- 혹은,
- 자신의 육체를 제물로 바쳐 마(魔)의 힘을 얻는 의식이다.
- 자신의 인생에 대한 포기를 품고 있었기에 가능한 결단일지도 모른다.
- 하지만 미노루에겐 승산이 있었다. 아니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 의지가 있었다.
- 그는 달리 방법을 찾지 못했다.
- 슈 코우킨의 지식을 얻어버린 탓에 오히려 다른 방법이 없다고
- 알아버렸다.
- 다른 방법이 없다면 이 술식을 성공시킬 수밖에 없다.
- 실패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 이 강한 마음이 현재 미노루의 최대의 무기였다.
- 정신 생명체를 쓰러뜨리는 거라면 기술이 결정타가 되는 경우도 있다.
- 예를 들면 패러사이트 융합체를 없앤 미유키의 『코큐토스』처럼.
- 하지만 정신 생명체를 거.느.리.고. 싶.다.면.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 상대는 슈 코우킨 같은 망령─ 생명을 잃은 잔해가 아니다.
- 물질적인 형태야 없지만 스스로 포식하고 증식하는 생명체이다.
- 이를 자신의 일부로 잡아먹고 길들이기 위해선, 상대에게 먹히지 않는
- 강한 마음이 필요하다.
- 맹목적인 일념이 미노루를 이 어리석은 행위로 몰아넣었다.
- 하지만 그 강한 마음이 무모해 보이는 이 내기에 승리를 주려고 했다.
- ─나를 따르고, 내 일부가 되라!
- 미노루의 포효와 동시에 패러사이트의 동화가 끝났다.
- '─나는, 쿠도 미노루.'
- '─나와 연결되고자 하는 목소리가 들려와.'
- '─하나가 되라고 속삭여.'
- '─하지만.'
- '─나는, 나야.'
- '─'우리'가 아니야.'
- 패러사이트와 동화 되도 미노루는 계속 '쿠도 미노루'였다.
- 그는 육체에 건 냉각 마법을 해제하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 동상이 시간이 지나면서 아문다.
- 이 치유 재생 능력은 패러사이트가 되어 받은 은혜겠지.
- 이마 안쪽에 지금까지 없었던 기관이 형성된 걸 어렴풋이 알아차린다.
- 하지만 그건 현.재. 미노루의 의식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았다.
- 웃음이 치밀어 오르려고 한다.
- 미노루는 창고 바닥에 드러누운 채, 즐거운 것처럼 드높이 웃었다.
- [6]
- 6월 16일, 일요일 저녁.
- 병문안을 온 미유키가 슬슬 돌아가려고 했을 때 미나미의 병실에
- 새로운 방문객이 왔다.
- "네, 누구십니까?"
- 노크 소리에 미유키가 대답하고, 황송해하는 미나미를 손으로 제지하고
- 의자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 "쿠도 미노루입니다."
- "미노루 군?"
- 미유키가 도중에 멈춰 서서 미나미 쪽을 돌아본다.
- 미나미는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미유키의 입술에 저도 모르게 웃음꽃이 피었다.
- "네, 지금 열게요."
- 미유키가 병실 문을 연다.
- 미유키와 미노루가 손이 닿을 거리에서 서로 마주본다.
- 이 광경을 본 사람이 없었던 건 다행인지 불행인지.
- 천상의 미를 가진 소녀와
- 인외의 미를 두른 소년.
- 어떤 화가는 이 순간을 캠버스에 그려내기 위해서라면
- 혼을 대가로 지불한다는 양피지에 사인했을지도 모른다.
- 어떤 시인은 이 광경을 칭송하는 말을 찾아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절망해
- 죽었을지도 모른다.
- "미노루 군, 어서와. 미나미 짱 병문안을 와준 거야?"
- "네. 저기, 들어가도 될까요?"
- 하지만 당사자에겐 단순한 일상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
- "들어와요."
- 미유키는 미노루를 안내하는 게 아니라 그를 위해 길을 터줬다.
- 미노루는 밝은 분홍색 장미와 같은 색 거베라, 주황색 카네이션을 모은
- 꽃꽂이를 들고 있었다. 이건 직접 전하는 쪽이 좋다고 보고,
- 미유키가 배려해준 것이다.
- 예상대로 꽃꽂이를 건넨 미노루는 뺨을 살짝 붉게 물들이고
- 미묘하게 미나미에게서 시선을 돌렸고, 받아든 미나미는
- 눈가를 붉게 물들이고 부끄럽다는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 이대로 계속 보고 싶다는 유혹에 휩싸인 미유키였지만,
-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짓궂다고 다시 생각했다.
- "미노루 군, 고마워. 미나미 짱, 어디에 장식할까?"
- 미노루와 미나미가 동시에 움찔 몸을 떨었다.
- 미유키는 미소를 유지하는 게 조금 힘들었다.
- "저, 저기, 그럼, 저기에……."
- 미유키는 미소를 지으며 미나미에게서 꽃꽂이를 넘겨받아
- 그녀가 지정한 이동식 서랍 위에 놓았다.
- "저, 저기, 타츠야 씨는 어디에……."
- 근질거리는 공기를 견디지 못한 미노루가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 "어라. 미노루 군, 타츠야 님에게도 용건이 있었던 거니?"
- 미유키가 바로 대답한 건, 미노루가 불쌍해 보여서 그런 걸까
- 그게 아니면 타츠야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인 걸까.
- 아마도 둘 다 해당되겠지.
- "방금 전에 의사 선생님에게 갔으니까 지금도 거기에 있을 텐데.
- 급한 거야?"
- "아뇨, 급한 건 아닙니다만 조금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서."
- "내게 상담할 게 있다고?"
- 그 목소리는 열려 있는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 "타츠야 님! 의사 선생님과 얘기는 다 한 겁니까?"
- "그래. 물어보고 싶었던 건 일단 들었다."
- 미유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병실로 들어와 타츠야는 문을 닫았다.
- ─참고로 미유키가 문을 닫지 않은 건, 닫는 걸 잊은 게 아니라
- 여자가 둘이라 해도 남자가 들어온 방의 문을 닫는 건
-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미노루."
- 그렇게 말하며 미노루와 마주 본 타츠야는 말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렸다.
- 의식하고 한 행동은 아닌 듯, 그는 곧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서,
- "내게 상담하고 싶다는 건 뭐지?"
- 중단한 말을 계속했다.
- 대화를 넘겨받은 미노루지만, 곧장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열 수 없었다.
- "……미나미 씨의 몸에 대한 겁니다."
- 이윽고 괴롭게 그런 말을 쥐어짜냈다.
- "알겠다. 장소를 바꾸도록 하지."
- "기다려주세요!"
- 미노루의 심상찮은 모습을 보고 배려한 타츠야였지만, 다름 아닌
- 미나미 본인이 그 판단에 이의를 제기했다.
- "타츠야 님, 미노루 님. 제 몸에 대한 거라면 저도 듣고 싶습니다."
- "하지만……."
- 미나미의 청원에 미노루가 난색을 보였다.
- "부탁합니다! 저는 사실을 알고 싶습니다."
- "……알겠어, 미나미 씨."
- 하지만 결국 그는 미나미의 소원에 고개를 끄덕였다.
- "저는 자리를 비우는 게 좋을까요?"
- "아뇨."
- 미유키가 물어본 상대는 타츠야였지만 미노루와 미나미가
-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 미노루와 미나미가 눈짓으로 뒷말을 서로 양보한다.
- "……미유키 씨도 듣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 미노루의 대답에 미나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문답하는 와중에 타츠야는 방구석에서 미노루와 자신 몫의 스툴을
- 가져왔다.
- "우선 앉아."
- 미노루는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타츠야가 가져온 스툴에 앉았다.
- 미유키가 미노루가 오기 전까지 앉아 있었던 머리맡의 스툴로 돌아가고,
- 타츠야는 그 옆에 앉고, 미노루는 침대 아래쪽에 앉았다.
- 타츠야, 미유키, 미나미와 마주보게 된 미노루는 아직 망설임을
- 버리지 못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미나미 씨의
- 『부상』이 완치되는 일은 없습니다."
- 표현이 완곡하지 않은 건, 미노루에게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 그의 말에 가장 쇼크를 받은 건, 미유키였다. 그녀는
- 양손으로 입을 막고 눈을 크게 뜬 채로 경직해버렸다.
- 미나미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쇼크를 받은 척을 하지 않고
- 미노루의 말을 받아들였다.
- 그리고 타츠야는,
- "─타츠야 씨도 알고 있었군요."
- 그저 냉정한 눈동자로 미노루를 바라보고 있다.
- "아니. 모르고 있었고,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에 동의도 하지 않아.
- 아무래도 미노루가 생각하는 『완치』와 내가 생각하는 『완치』는
- 의미가 다른 것 같군. 미노루가 말하고 싶은 건, 미나미의 마법연산영역이
-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오는 일이 없다는 것 아닌가?"
- "타츠야 씨는 증상이 악화되지 않으면 완치라고 생각하는군요."
- "그것도 아니야. 하지만 자잘한 정의 차이를 두고 싸워봤자 의미가 없다.
- 미노루가 정말로 꺼내고 싶은 문제는 뭐지?"
- "……조정체의 육체는 생물로서 안정성이 부족합니다."
- "돌연사 문제인가."
- "네, 그렇습니다. 의학적으로 어떠한 이상도 없을 텐데,
- 예상치 못한 바람에 양촛불이 꺼지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 타츠야의 시선 끝에서 미노루의 눈동자가 어두워진다.
- "─나도 미나미 씨도 짊어지고 있는 숙명입니다."
- "어째서……."
- 어째서 미나미가 조정체라는 걸 알고 있는 거지.
- 그렇게 중얼거리려고 한 건 미유키였다.
- 미나미는 가만히 미노루를 응시할 뿐이었다.
- "마법연산영역의 부상으로 인해 돌연사 위험성이 높아졌다.
- 미노루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 "네. 타츠야 씨도 알고 있었군요."
- "조정체의 돌연사에 대해선 전부터 조사했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 그걸로 인해 죽어버렸으니까 말이지."
- "그랬군요……."
- 미노루는 여기서 조문의 말을 건넬지 망설였지만, 사정을 모르는 자신이
- 무슨 말을 해봤자 진심이 담기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 뒀다.
- "마법연산영역의 과열이 육체에 부속된 정보체를 뒤흔들고,
- 결국 부서져버린다. 정보체의 파손은 실체에 피드백 된다.
- 보통 마법연산영역의 활동은 자기 자신을 부서뜨리지 않을 범위로
- 억제되어 있지만, 조정체는 이 안전장치가 잘 기능하지 않는다.
- ─이게 내가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가설이다."
- "저도 그 가설이 맞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법연산영역의 오버 히트는
- 항상 그 세이프티 파손을 동반한다고 생각합니다."
- "세이프티 파손이 오버 히트를 불러일으킨다고?"
- "세이프티가 파손된 결과 오버 히트가 발생하는 건지, 오버 히트가
- 세이프티를 파손하는 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 말과 달리 미노루의 얼굴에 자신감 결여에 따른 믿음직스럽지 못한 표정은
- 없었다.
- "하지만 인과 관계는 이 경우 관계없습니다."
- 미노루는 타츠야를 외면하지 않고 단언했다.
- "세이프가 부서졌다. 이 결과야 말로 중요합니다."
- 지금 뭐가 문제인지. 그 핵심을.
- "그렇지 않습니까?"
- "확실히 그렇군."
- 미노루의 주장을 타츠야는 전면적으로 긍정했다.
- "미노루는 미나미가 의도치 않은 갑작스런 마법연산영역의
- 이상 가동에 휘말려, 심각한 데미지를 받는 걸 걱정하는 거군?"
- "그렇습니다."
- 이번에는 미노루가 타츠야의 말을 긍정했다.
- "미나미 씨의 현재 상태는 조정체의 비극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 높아진 상태입니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 "하지만 마법연산영역을 복구할 방법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 그게 아니면 세이프티만은 별개인가?"
- 미노루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 "……미노루. 너는 뭔가 해결책을 가지고 온 거겠지?"
- 타츠야가 더욱 파고든 질문을 던졌다.
- 미노루는 타츠야의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고개를 숙였다.
- "……네."
- 그 짧은 대답은 타츠야와 마주본 상태론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 "그건 뭐지?"
- "…………."
- "미노루."
- 타츠야가 스툴에서 일어나 반걸음 옆으로 이동했다.
- 침대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침대 가까이로.
- 미유키와 미나미를 등으로 감싸는 것처럼.
- "너, 뭐가 된 거지?"
- 미노루가 숙인 고개를 들었다.
- 타츠야를 올려다보며 입술 양 끝을 끌어올린다.
- 타츠야는 그 미소를 잊지 않았다.
- 그건 교토에서 본, 슈 코우킨의 미소와 매우 닮았다.
- "─이거라면 알아보겠나요?"
- 미유키가 기세 좋게 일어났다.
- 미유키는 미노루의 몸에서 짙게 나오는 사이온 파동, 요기(妖氣)를
- 본 적이 있었다.
- "패러사이트!? 그런, 설마……!"
- 미나미는 눈을 깜박이는 것도 잊고 타츠야의 등을 바라봤다.
- 타츠야의 몸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미노루에게 시선이 박혔다.
- "걱정하지 마세요."
- 미노루가 일어나 타츠야와 미유키에게 미소를 짓는다.
- 그 미소에 슈 코우킨의 그림자는 없다.
- "저는 패러사이돌을 만든 쿠도가의 사람입니다. 쿠도가 중에서도
- 할아버지 다음인 제2위의 마법사. 패러사이트를 지배하는 방법은
- 이미 습득했습니다."
- "틀렸어."
- 타츠야가 미노루의 말을 부정한다.
- 미노루는 의미를 몰라 타츠야에게 시선으로 되물었다.
- "넘버 투가 아니야. 너는 쿠도 가의 넘버 원. 『9』가 붙은
- 마법사의 최고봉이다."
- 웃지도 않고 엄격한 표정과 평이한 어조로 대답하는 타츠야.
- "……기쁘네요."
- 미노루는 대조적으로 순수하게 미소를 짓는다.
- "타츠야 씨가 인정해주다니."
- 그 상대하는 사람의 혼을 뺄 것 같은 미소에도 타츠야는
-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 방심도 전혀 없다.
- "기쁘지 않네요, 그렇게 경계하지 말아주세요."
- 긴장감이 결여된 건 미노루 쪽이었다.
-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굴렸다.
- "패러사이트가 되도 저는 계속 저입니다. 자아 침식은 받지 않았어요.
- 인간을 습격할 생각도 없고, 그것 외에도 이전의 제게 없었던 욕구로 인해
-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 "하지만 쿠도 미노루는 인간이었다. 지금의 넌 패러사이트다."
- "그건…… 그렇습니다만."
- 미노루는 조금 상처 받은 표정을 지었다.
- "그래도 저는 저입니다. 저는 지금도 쿠도 미노루입니다.
- 올바르게 대처하는 지식과 힘이 있으면 패러사이트와 융합해도
- 자아를 잃지 않습니다. 저는 그걸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 다시 기운을 차린 표정으로, 강한 확신을 담아 미노루가
- 타츠야와 미유키와 미나미에게 말을 걸었다.
- "패러사이트가 되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 "미노루. 너는─."
- 타츠야가 낮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미나미를 패러사이트로 만들고 싶은 건가?"
- 미유키가 계속 쥐고 있었던 핸드백에서 재빨리 CAD를 꺼냈다.
- "─패러사이트의 몸은 사이온 파동에 대한 높은 내성을 갖고 있습니다."
- 미노루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건 어쩌면 미노루가
-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 "패러사이트와 융합하면 마법연산영역이 폭주해도 육체가
- 데미지를 받을 거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뇨,
- 인간 마법사보다도 마.법.에. 가.까.운. 패러사이트는
- 마법연산영역이 폭주할 우려조차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 "이런 경우 원래대로라면 미나미 본인의 의사를 물어봐야겠지."
- 타츠야는 미노루와 미나미 사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두 사람의 시선을 가로막은 채다.
- "하지만 여기선 주인으로서 내 고집을 관철하겠다."
- 정확히 말하자면 미나미의 주인은 미유키지만, 그런 엄밀함이
-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 필요한 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근거.
- "기각이다. 미나미를 패러사이트로 만들 순 없어."
- "타츠야 씨!?"
- 미노루는 진심으로 경악했다. 그는 아무래도 타츠야가
- 자신의 아이디어를 반대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 "하지만 이대로라면 미나미 씨는 언제 갑작스럽게 죽을지 모른다고요!"
- "마법연산영역의 폭주가 원인이라면 패러사이트가 되지 않아도
- 대처법은 있어."
- "그러니까 마법연산영역의 수복은 불가능합니다!
- 세이프티 기능만 되찾을 수 있다면 처음부터 이런 제안
- 하지 않는다고요!"
- "세이프티에 의존하지 않아도 마법연산영역을 외부에서
- 봉인해버리면 폭주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진다."
- 미노루는 크게 눈을 떴다.
-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나고, 간신히 자세를
- 다시 잡는다.
- "타츠야 씨, 당신은…… 미나미에게서 마법을 배제하겠다는 겁니까!?"
- 그건 미노루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 마법사에게서 마법을 배제한다. 그건 마법사의 존재 의의를
- 빼앗는 짓이다.
- 우.수.한. 마법사라는 유일한 버팀목으로 살아온 미노루에게,
- 설령 말뿐이라고 해도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
- "미나미가 살았으면 하니까 그렇다."
- "그러기 위해 그녀에게서 마법을 없애는 겁니까!"
- "마법사만이 인.간.의 삶의 방식이 아니다. 미나미에겐
- 좀 더 평화롭게 평범한 여자아이로서 사는 인생이 있어."
- "그건 타츠야 씨의 소망이잖아! 당신에게 미나미 씨에게서
- 마법을 빼앗을 권리는 없어!"
- "과연, 확실히 내 소망은 미나미에게서 마법을 빼앗는 것이 되겠군.
- 하지만 미노루 네. 소.망.은 미나미에게서 『사람으로 있는 것』을
- 빼앗는 결과가 된다. 그건 이해하고 있는 건가?"
- "그럼 미나미 씨에게 고르라고 하죠! 그녀의 인생이야.
- 미나미 씨가 패러사이트가 되는 걸 거부하면, 저도 포기합니다.
- 미나미 씨!"
- 타츠야는 여전히 미노루의 시선을 가로막은 채다.
- 하지만 미노루는 개의치 않고 미나미를 향해 외쳤다.
- "나는 널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 너에게서 마법을 빼앗고 싶지 않아!
- 부탁이야, 나.랑. 똑.같.은. 존.재.가. 되.어. 줘.!"
- 미나미의 얼굴에 엄청난 동요가 생겼다.
- 그녀는 패러사이트가 될 생각이 없었다.
- 인간성을 버릴 결의가 당장 될 리가 없다.
- 그러니까 마법을 버릴지 말지는 별개로 치고, 이 자리는 타츠야에게
- 맡길 생각이었다.
- 하지만,
- 미노루의 그 말은,
- 미나미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 "이미 말했다, 미노루."
- 하지만 그 망설임을 끊어버리는 것처럼,
- "기각이다."
- 타츠야는 강철의 목소리로 미노루의 말을 내버렸다.
- "타츠야 씨, 비켜주세요! 나는 미나미 씨랑 얘기를 하고 싶은 거라고!"
- 결국 미노루가 격분했다.
- 미노루가 타츠야에게 마법을 쐈다.
- 그 마법은 단순한 이동 마법이었다. 대화를 방해하는 타츠야를
- 옆으로 이동시킨다는 의도가 형태가 된 것.
- 하지만 거기엔 가속 공정도 감속 공정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 순식간에 톱 스피드에 다다르는 명백한 공격성 마법.
- 타츠야의 반응은 반사적이면서 정확했다.
- 자신에게 닥쳐오는 마법식을 『그램 디스퍼전』으로 분해했다.
- "미노루, 무슨 생각이지."
- "시끄러워, 비켜 줘!"
- 미노루는 우.수.한. 마법사가 버팀목이었다.
- 마법 기능면에서 지지 않는 게 그의 마음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 그 마법이 무효화 되자, 그 순간 미노루는 분노했다.
- 정색했다.
- 부전패 이외에서 진 적이 없다. 그 경험 부족이 여기서 탈이 됐다.
- 자주 병에 걸리는 몸 때문에 모든 걸 포기했던 미노루에게
- '몸만 건강하다면'이라는 마음은 망집에 가깝다.
- ─몸만 건강하다면 마법으로는 지지 않아.
- 그 마음이, 고작 한 번의 공방이라지만 뒤집혀졌다.
- 올해 17살인 미숙한 소년이 제정신을 잃어도 동정할 여지는
- 충분히 있었다. ─그가 평범한 소년이었다면.
- 하지만 미노루는 '평범'하지 않다.
- 지금은 '인간'조차도 아니다.
- 방금 전보다 강하고 빠른 마법이 타츠야를 습격한다.
- 이번에도 타츠야는 그 마법을 『그램 디스퍼전』으로 무력화했지만,
- 첫 번째와 달리 여유가 없었다.
- 타츠야의 의식이 용서 없는 전투 마법사로 바뀐다.
- 닥쳐오는 마법을 분해한 타츠야는 그들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 순식간에 좁혔다.
- 왼쪽 손바닥을 미노루의 배에 밀어서 댄다.
- 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기세는 '살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 다음 순간 타츠야의 오른손에서 마법이 튀어나왔다.
- 제로 거리에서 쏘는 '가속' 마법.
- 그 마법은 손바닥에 닿은 부분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미노루의 몸 전체를
- 뒤로 날려버리는 것. 실제로 미노루의 몸은 공중으로 날아갔다.
- 하지만 타츠야에게 해냈다는 느낌은 남지 않았다.
- 문에 부딪칠 터인 미노루의 몸은 소리도 없이 문 앞에서 멈춰 서서
- 조용히 바닥에 내려섰다.
- 미노루는 타츠야가 발동한 가속 마법을 발판 삼아 자신을 대상으로
- 가속 마법을 써서 문까지 날아가 관성을 중화해서 충격을 소거,
- 타츠야에게서 거리를 뒀다.
- "미유키, 영역간섭 최대 출력!"
- "네!"
- 타츠야의 지시는 미노루의 발이 아직 바닥에 닿지 않았을 때 나왔다.
- 미노루가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미유키의 영역간섭이 병실을 뒤덮었다.
- 미노루는 시선이 닿은 미나미를 슬쩍 보고, 문의 잠금 장치를 풀고
- 기세 좋게 열어젖혔다.
- 미유키는 영역 간섭 효력 범위를 병실 안으로 지정했다.
- 타츠야가 간격을 좁히는 것보다 빨리 미노루가 복도로─
- 영역간섭 효력 범위 밖으로 나갔다.
- 붙박이창의 유리가 잘게 부서지고 밖으로 흩뿌려진다.
- 미노루는 타츠야와 잠시 마주 보고 유리가 없어진 창밖으로 뛰어나갔다.
- 미노루의 시선의 의미를 타츠야는 오해하지 않았다.
- "미유키, 미나미를 곁에서 지켜줘."
- "오라버니는!?"
- "미노루의 도전에 응한다."
- 미노루는 미유키의 영역간섭에서 꽁무니를 빼고 도망친 게 아니다.
- ─병실 안에서 싸우면 쓸데없는 피해가 생긴다.
- ─미나미가 다칠지도 모른다.
- 미노루는 이게 싫어서 타츠야를 밖으로 유인한 거다.
- 타츠야가 계속 병실에 남으면 미노루는 일단 물러나겠지.
- 하지만 미노루는 미나미에게 집착하고 있다. 그건 방금 전의
- 짧은 전투로 싫을 정도 확실히 알았다.
- 언제 또 미나미를 납치하러 올지 모른다.
- 타츠야의 최우선 사항은 미유키의 호위다.
- 게다가 가뜩이나 남자와 여자다. 24시간, 미나미 곁에 붙어 있을 수는 없다.
- 여기서 미노루를 무력화해서 붙잡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 타츠야는 미노루에 이어 파괴된 창문을 통해 병원 안뜰로 뛰어내렸다.
- 이 병원은 지상 4층 구조다.
- 육체 힘만으로 뛰어내릴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미노루에게
- 착지 직후의 틈을 보여주는 건 좋지 않다. 인.간.이.었.을. 때부터
- 그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 타츠야는 기억영역 안에 있는 마법식 라이브러리에서
- 관성제어 술식을 불러냈다.
- 플래쉬 캐스트로 관성제어 마법을 발동.
- 착지 순간만 자신에게 걸린 관성을 중화한다.
- 인공마법연산영역으로 관성 제어 술식을 쓰는 것과 동시에
- 원래의 마법연산영역으로 정보체 분해 마법 『그램 디스퍼전』을 발동.
- 미노루가 쏜 방출계 마법 『스파크』를 무력화한다.
- "역시 『그램 디스퍼전』. 방금 전에 봤을 땐 착각인가 싶었지만,
- 실험실에서만 성공했다는 고난이도 마법을 실전에서 성공적으로 사용하다니
- 역시 요츠바 직계라고 할까요."
- 미노루가 억제된 어조로 말을 건다. 이미 분노는 없어진 모양이다.
- "자신이 집착하는 것을 위해 일방적인 실력 행사도 서슴지 않는다.
- 미노루, 그건 패러사이트의 행동 방식이다."
- 생각도 못한 지적을 받고 침착함을 되찾은 미노루의 표정에 동요가 생겼다.
- "인간이었을 적의 너는 이런 독선적인 짓은 하지 않았을 터다."
- "독선적인 게 아닙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 미노루가 방출계 마법 『인체 발화』를 타츠야에게 퍼붓는다.
- 인체의 마법적 방어를 무효화하고 세포를 구성하는 분자에서
- 강제적으로 전자를 빼내어 몸 밖으로 방출시키는 마법.
- 피부 위에서 발생하는 방전이 인체 자연발화 현상(SHC)과 같은 외견을
- 보여주기 때문에 『인체 발화』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 사실 분자간 결합에 이용되는 전자를 빼앗아 분자 레벨로
- 세포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마법이다.
- 타츠야는 자신을 향한 『인체 발화』 마법식을 발동 직전에 분해했다.
- 타츠야의 분해 마법으로도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 무시무시한 마법 발동 속도.
- 원래부터 미노루의 스피드는 빨랐지만, 패러사이트와 융합해서
- 더욱 발동 속도가 상향됐다.
- 오산이었던 건, 미노루를 심리적으로 흔들 생각으로 꺼낸 말이
- 역효과가 됐다는 거다.
- 미노루에게 감정의 흔들림으로 마법의 정밀도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 흥분해서 오히려 마법연산영역이 활성화된 것 같은 인상조차 있었다.
- 더 이상 봐주는 건 불가능하다.
- 적어도 타츠야에게 미노루와 진심으로 싸우는 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 병실에 나타났을 때 미노루를 적대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 타츠야는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을 통감했다.
- 하지만 미노루를 무력화하지 못하면 후회도 불가능하다.
- 타츠야는 미노루에게 『분해』를 쐈다.
- CAD는 사용하지 않는다. CAD를 사용하면 미노루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한다.
- 오스의 봉인을 완전히 해제하지 못했다면 미노루의 스피드에 대항할 수 없었겠지.
- 타츠야의 정.보.체. 분.해. 마법을 받은 미노루의 모.습.이
-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미노루의 몸.이 왼쪽으로 한 걸음 이동한 곳에 나타났다.
- 위장 마법 『퍼레이드』. 타츠야가 분해한 건 『퍼레이드』로 만들어낸
- 환영이었다.
- 타츠야가 마법을 쏜다.
- 환영 오른쪽 출현했다는 인식이 환영이 서 있는 곳의 왼쪽에
- 실체가 존재한다는 인식으로 바뀐다.
- 타츠야는 방위를 속이는 마법 『귀문둔갑』을 분해했다.
- '─미노루가 융합한 건 패러사이트만이 아니다.'
- 구 제9연은 고식마법의 기술을 현대마법에 넣는 것이 테마이다.
- 구 제9연에서 대륙의 고식마법 『귀문둔갑』을 연구했을 가능성은
- 제로가 아니다.
- 하지만 이. 『귀문둔갑』은 같은 술식을 배운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 마법에는 개성이 있다. 같은 마법을 사용하고 같은 효과가 발생해도
- 술자가 다르면 그 프로세스나 흔적에서 미묘한 차이가 발생한다.
- 마법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그 차이는 보기 어렵지만, 그것 또한
- 보는 자와 관찰 당하는 것.의 상대적인 힘의 관계에 따라 다르다.
- 타츠야의 '시력'은 미노루가 사용한 『귀문둔갑』에서 슈 코우킨의 개성을
- 또렷이 보았다.
- '언제 슈 코우킨의 망령을 흡수한 거지!?'
- 타츠야가 마음속으로 독백하는 사이에 방전의 마.법.적.인. 징조가
- 공중에 생겼다.
- 방출계 마법 『클라우드레스 선더[青天霹靂]』.
- 공기를 플라스마로 만들어 거기서 뽑아낸 전자 샤워를 공격 대상에게 퍼붓는다.
- 음전기로 대전된 공격 대상은 그 다음에 남은 양이온의 분류에 노출된다는
- 두 단계 공격이다.
- 미노루의 『클라우드레스 선더』는 타츠야가 『퍼레이드』와
- 『귀문둔갑』을 분해하는 사이에 형성됐다. 타츠야가 지금부터
- 그 마법식을 분해한다 해도 『클라우드레스 선더』의 발동이 더 빠르다.
- 타츠야는 라이브러리에서 『도전피막(導電皮膜)』의 마법식을
- 선택했다. 방출계 마법 『도전피막』은 몸에 닿은 의복이나 구두의
- 표면 전기 저항을 유사적으로 제로까지 내려, 이를 접지로 삼아
- 전격 전류를 지면으로 흘리는 방어 마법이다.
- 인공마법연산영역에서 불러낸 마법식을 세트. 타츠야는
- 플래쉬 캐스트로 『도전피막』을 발동, 하려고 했다.
- 하지만 동시에 전기 저항 증폭 마법식이 타츠야를 습격했다.
- 그것 자체는 커다란 위력이 없는 마법이지만 '전기 저항을
- 유사적으로 제로까지 내린다'라는 『도전피막』의 정의와 충돌해
- 둘 다 파괴됐다.
- 방어를 위한 마법 발동에 실패한 타츠야를 『클라우드레스 선더』의
- 전자 샤워가 습격한다.
- 고통을 씹어죽이고, 타츠야는 스스로 병원 안뜰을 굴렀다.
- 이 안뜰은 천연 잔디. 그 밑은 흙으로 된 지면이다.
- 타츠야가 받은 전하는 지면으로 흘러가고, 양이온은 지면에 흡수됐다.
- 타츠야가 한쪽 무릎을 세워 일어난다.
- 미노루는 의표를 찔린 표정으로 우뚝 서 있었다.
- 고통은 참는다고 해도 전자의 비를 맞은 근육은 자유롭게
- 움직이지 못할 터─. 미노루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건 미노루의 방심이 아니었다. 다만 상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 부정할 수 없다.
- 그 틈을 찔러 타츠야의 『미스트 디스퍼전』이 드디어 미노루의 육체에
- 닿았다.
- 미노루의 오른발 사타구니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 오른발만이 아니라 왼발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엉덩방아를 찧는 것처럼
- 미노루가 뒤로 쓰러졌다.
- 타츠야는 미노루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인하기 위해 왼발, 오른쪽 어깨,
- 왼쪽 어깨도 조준했다.
- 하지만 쓰러져 있는 건 내용물이 없는 그림자였다.
- 방전의 마.법.적. 조짐이 타츠야 바로 뒤에서 생겼다.
- 타츠야는 돌아보지 않고, 그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 『클라우드레스 선더』를 『그램 디스퍼전』으로 없앴다.
- 그의 '눈'은 『클라우드레스 선더』의 마법식만 집중해서
- 보고 있었던 게 아니다.
- 360도, 방.향. 상.관.없.이. 타츠야는 미노루의 실체를 탐색하고 있었다.
- 오른쪽에서 지면을 기는 것처럼 날아온 『열풍인(熱風刃)』─
- 공기를 얇게 단열 압축해서 만들어낸 날을 날리는 공기탄의 바리에이션─을
- 타츠야가 파괴할 수 있었던 건, 그 성과였다.
- 타츠야의 『분해』로 압축이 풀린 열풍 칼날이 급속도로 팽창한다.
- 아래가 잔디였기 때문에 모래먼지로 시야가 가려지는 일은 없었지만,
- 상당히 강한 바람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떠버린다.
- 눈을 반쯤 닫은 상태였지만 타츠야는 신경 쓰지 않고 지면을 박찼다.
-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 희미한 초조함이 왼쪽으로 구른 타츠야의 정면에서 전해져온다.
- 발각 당했다는 초조감일까.
- 그 기척의 흐트러짐이 타츠야에게 미노루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줬다.
- 발목에서 기어 올라오는 전광(電光) 마법을 구현화 직전에 없앤다.
- 신체를 포박하는 감속 우리를 발동 직전에 분해한다.
- 다가오는 공기탄과 열풍의 날을 공기 압축을 무효화해서
- 없앤다.
- 차례차례 공격하는 미노루의 마법은, 지금은 전부 다 치사성의 위력을
- 갖고 있다.
- 그 모든 걸 무력화하고 타츠야는 미노루에게 주먹이 닿는 거리까지
- 다가갔다.
- 타츠야는 오른손을 내질렀다. 검지만을 뻗는, 다른 손가락을 접은
- 한 손 끝이라 부르는 형태로.
- 그 손가락은 미노루가 입은 옷을 관통해 피부를 뚫고
- 미노루의 왼팔, 그 뿌리에 깊은 구멍을 뚫었다.
- 가라테나 권법으로 손가락을 단련해서 얻은 성과가 아니다.
- 타츠야는 자신의 손가락을 기점으로 『미스트 디스퍼전』을 발동해두었다.
- 육안이나 마법적 시력으로 조준해버리면 쿠도가의 비술
- 『퍼레이드』에 의해 표적이 엇나가버린다.
- 그러니까 근접거리까지 접근해서 제로 거리의 『분해』를 먹인 거다.
- 이거라면 모든 오감, 시각이나 청각만이 아니라 촉각까지 속는다 해도
- 상대의 몸에 닿기만 하면 확실하게 데미지를 줄 수 있다.
- 미노루가 비명을 지른다.
- 미노루는 패러사이트의 정기(精氣) 흡수 능력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 타츠야는 그 전에 손가락을 뺐다.
- 이번에는 타츠야의 왼손 검지가 미노루의 오른팔 뿌리를 노린다.
- 미노루는 반응을 못하고 오른팔 안쪽도 구멍이 뚫려버렸다.
- 타츠야가 미노루의 몸에서 왼손을 뺀다.
- 그런데 여기서 타츠야는 생각도 못한 반격을 받았다.
- 움직이지 못했을 터인 미노루의 왼손이 그의 왼쪽 손목을 붙잡았다.
- 급격한 탈력감이 타츠야를 습격한다.
- 왼쪽 손목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간다.
- 사이온이 아니다. 생명 에너지에 의한 것.
- 패러사이트의 정기 흡수 능력이다.
- 흡수한 건 한순간. 타츠야는 왼쪽 손목이 붙잡힌 직후, 반사적으로
- 팔을 비틀어 미노루의 구속을 풀었다.
- 동시에 오른쪽 손날을 휘둘러 미노루의 왼손의 손목 바로 앞을 절단했다.
- 미노루가 낙하하는 자신의 왼손을 오른손으로 받아내고 후방으로 도약했다.
- 위력이 그렇게 많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미노루의 몸은
- 5미터나 되는 거리를 후퇴했다.
- 미노루가 왼손을 절단면에 갖다 댔다.
- 이번에는 타츠야가 눈을 크게 떴다.
- 미노루의 왼손은 순식간에 원상 복귀됐다.
- 미노루가 타츠야를 보고 방긋 웃는다.
- 이런 표정을 지어도, 인외의 괴물이 되어도 미노루의 얼굴엔
- 사악한 일그러짐이 한 조각도 없었다.
- "패러사이트의 치유 재생 능력을 보는 건 처음입니까?"
- 그 말을 듣고 타츠야는 딱 한 번 사례가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 리나의 동료와 섞여 맥시밀리언 디바이스의 종업원으로서
- 1고에 잠입한 패러사이트. 리나가 '미아'라고 불렀던 그 패러사이트는
- 에리카의 검에 가슴이 뚫렸음에도 순식간에 그 상처가 나았다.
- 잘 보니 잘린 왼손만이 아니라 오른발,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에
- 뚫린 구멍도 전부 막혀 있다. 미노루가 '미아'라 불린 그 패러사이트와
- 같은 능력을 얻은 게 분명하다.
- "……그렇습니까. 패러사이트 능력에도 개인차가 있는 모양이군요."
- 한편 미노루는 타츠야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통해
- 모든 패러사이트가 높은 치유 능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 알아차렸다.
- "패러사이트의 능력은 종류도 레벨도 제각각이다. 미노루,
- 네가 쇠약한 몸을 패러사이트가 되어 극복했다고 해도,
- 미나미가 똑같이 나을 거라곤 단언할 수 없다."
- 미노루가 숨을 들이마셨다.
- 타츠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꽉 쥔 오른손을 내질렀다.
- 야쿠모의 지도를 받아 대(對) 패러사이트용으로 개발한
- 무계통 마법 『철갑 사이온탄』.
- 그 마법이 원래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공중을 날아간다.
- 원래 사이온탄의 비상에 스피드 제약은 없다.
- 질량이 없고 물리적인 실태가 없는 사이온탄은 광속조차 넘는다.
- 하지만 『철갑 사이온탄』은 단순한 사이온탄이 아니다.
- 그저 단단할 뿐인 사이온탄도 아니다.
- 『철갑 사이온탄』은 정보 차원을 비상하는 탄환.
- 원래 정보 차원으로 이동한다는 개념은 없다.
- '이동한다'라는 정보는 존재해도 정보 그 자체의 위치변화는
- 불연속이며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어디에 적용되는 정보인가'를
- 바꿔 쓸 뿐이니까 1초도 필요하지 않다.
- 『철갑 사이온탄』은 그 정보 차원으로 이동하는 개념을 갖고 있다.
- '정보 차원을 연속적이며 배타적으로 이동한다'라는 정의가 부여된,
- 정보 소자인 사이온 덩어리. 그게 『철갑 사이온탄』이다.
- 그런 탓에 이동 속도는 술자, 즉 타츠야가 이동을 인식할 수 있는
- 범위 안으로 제한된다. 그것도 스스로 던.지.는. 속도의 한도 안이다.
- 그는 『철갑 사이온탄』을 투척 감각을 작용해서 쏘았기 때문이다.
- 그래도 이동 속도는 시속 백 킬로미터를 크게 상회했지만,
- 총알보다는 훨씬 떨어진다. 화살 속도보다도 훨씬 떨어진다.
- 개인차가 있겠지만, 보고 피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 미노루는 『철갑 사이온탄』을 시인하고 반사적으로 비상했다.
- 점프가 아니다.
- 비상 마법으로 『철갑 사이온탄』을 피한다. 『철갑 사이온탄』은
- 정보 차원에서 '지상'에 남은 『퍼레이드』의 환영을 관통하고 사라졌다.
- 미노루가 사용한 비행 마법은 타츠야가 개발한 현대 마법의 술식이 아니다.
- '구름'에 타는 신선술 계통 고식마법의 비행 술식이다.
- '구름'이 될 물체를 만들어내, 이에 발판 기능과 부유 기능,
- 수평 이동 기능을 부여해 허공을 나는 마법. 그 미노루가 탄 구름을
- 타츠야가 마법으로 분해했다.
- 하지만 미노루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엔 가중계 현대 마법으로
- 중력을 중화해 떠오른다. 비행 마법이 '가중계 마법의 삼대 난제'라 불린 건
- 자유로운 공중 기동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며, 그저
- 허공에 떠있을 뿐이라면 어렵지 않다.
- 미노루가 손바닥을 지상 쪽으로 돌려 양손을 뻗는다. 그 손바닥에서
- 차례로 플라스마탄이 튀어나온다.
- 대기를 골프공 크기로 압축하고 이온화. 그걸 지상으로 사출하는
- 간단한 마법이다.
- 타츠야는 플라스마탄 생성을 방해, 또는 공중에서 플라스마를 확산시켜
- 이 공격을 막으면서 『미스트 디스퍼전』을 미노루에게로 조준했다.
- 하지만 좀처럼 마법 발동까지 이르지 못했다.
- 미노루는 부유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연속 점프의 요령으로
- 공중을 이동했다.
- 비행이 아니라 공중에 만들어낸 발판을 차고 뛴다.
- 『퍼레이드』의 환영을 잔상처럼 남기면서.
- 문제는 본체를 포착하는 게 어렵다는 점이 아니다.
- 타츠야는 망설였다.
- 부분 분해로 상처를 입어도 미노루에겐 그 치유 재생 능력이 있다.
- 미노루를 제압하기 위해선 의식을 빼앗아야만 하겠지.
- 하지만 손목을 잘라도 미노루는 멈추지 않았다.
- 『미스트 디스퍼전』으로 죽이는 것 외에 무력화 방법이 없는 게 아닐까…….
- 타츠야는 미노루를 죽이는 걸 망설였다.
- 미노루의 공격은 치.사.성.이긴 하지만 타츠야를 죽.일. 순. 없.는. 거.다..
- 『클라우드레스 선더』로도 『인체발화』로도 타츠야는 죽일 수 없다.
- 하물며 플라스마탄으로는 움직임을 봉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 타츠야에게 진짜 위협적인 마법은 그의 『재성』이 미치지 않는
- 정신을 공격하는 마법이지만, 미노루는 현재 정신 간섭 마법을
- 쓸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쓰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 어쨌든 지금 그가 사용하는 마법은 타츠야에게 진정으로 위협이 되지 못했다.
- 게다가 무엇보다 타츠야와 미유키에게 칼을 들이댄 게 아니다.
- 미노루의 동기는 미나미의 치료다.
- 즉 현재 시점에서 봤을 때 적대는 일시적일 뿐이라고 판단된다.
- 설령 패러사이트로 변했다 해도 미노루는 앞으로 이.용. 가.능.할.
- 가.능.성.이. 높.다..
- 쿠도 미노루라는 귀.중.한. 전.력.을 지금 여기서 잃어도 괜찮은 건가─.
- 그 망설임이 타츠야의 공격을 둔하게 만들었다.
- '하지만 이대론 결말이 나지 않아.'
- 육체를 전부 분해하면 치유 재생 능력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겠지.
- 육체를 재로 만들지 않아도 심장을 날려버리면 패러사이트가
-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
- 심장을 분해해 소생 가능한 시간 안에 『그램 데몰리션』의 요령으로
- 패러사이트를 날려버릴 수 있다면, 그 뒤에 심장을 『재성』해서
- 미노루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해볼까.'
- 타츠야가 사태를 타개할 결의를 다진 그 순간,
- 미노루의 공격이 멈췄다.
- "타츠야 씨, 이대로는 결말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 미노루는 그야말로 타츠야가 생각한 걸 그대로 입에 담았다.
- "아무래도 전 죽이는 것 이외의 방법으로 타츠야 씨의 벽을
- 파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치명상을 주겠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도 타츠야도 똑같았다.
- 미노루는 그렇게 말했다.
- "그런 모양이군."
- 타츠야가 맞장구를 치자 미노루가 공중에 뜬 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타츠야 씨. 저는 패러사이트가 되어 『건강』한 몸을 되찾는 게,
- 미나미 씨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그렇네요. 우.리.의. 의견은 평행선입니다."
- 미노루가 유리가 없어진 창문을 본다. 그 너머엔 미나미의 병실이 있다.
- "하지만 제 생각을 미나미 씨에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 미노루가 타츠야 쪽으로 시선을 되돌린다.
- "오늘은 이걸로 만족하겠습니다."
- 미노루의 몸이 스윽 상승한다.
- 그의 발밑에 공기 변형으로 형성된 구름이 부활했다.
- 그대로 미노루는 구름을 타고 자리를 떴다.
- "……간 건가."
- 미노루가 탄 '구름'이 안 보이게 되자 타츠야는 한숨을 쉬는 것처럼
- 작게 중얼거렸다.
- 이걸로 끝이 아니다.
- 아직 하나도 정리되지 않았다.
- 미노루는 또 오겠지
- 하지만 오늘은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거다.
- 타츠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
- 병실에 있는 미나미에겐 그저 '미노루는 돌아갔다'라고만 말했다.
- 영역 간섭은 마법 실행을 방해하는 것이지 마법 파동을
- 차단하는 게 아니다. 이건 미유키의 영역 간섭도 똑같다.
- 타츠야와 미노루가 싸운 것도, 그 싸움이 격했다는 것도
- 미나미 또한 느꼈을 터이다.
- 하지만 미나미는 타츠야에게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 타츠야는 미노루의 습격에 대해 병원에서 마야에게 보고하고,
- 경비 증강을 요청한 다음 자택으로 돌아갔다.
- 거실 소파에 앉은 타츠야에게 미유키가 커피를 가져왔다.
- 픽시는 이 맨션에 없다. 화요일에 학교로 돌아갔을 때
- 픽시를 학교에 두고 왔다.
- 타츠야가 마시던 커피컵을 테이블로 되돌렸다. 탈력감이 엿보인 건,
- 한순간이지만 정기를 빼앗겼기 때문일까.
- "오라버니, 괜찮으신 겁니까……?"
- 텅 빈 쟁반을 안고 낮은 테이블 맞은편에 서 있었던 미유키가
- 타츠야에게 조심조심 묻는다.
- "고전했지만 괜찮아."
- 타츠야는 고전했다는 사실을 얼버무리지 않았다.
- "패러사이트가 된 미노루 군은 그렇게 만만찮은 상대였나요?"
- "그렇군. 미노루는 애초에 마법 발동 속도가 무척 빨랐지만,
- 패러사이트가 되어 더욱 빨라졌다. 게다가 그 치유 재생 능력도 성가셔."
- "치유 재생 능력이라고요?"
- "그래. 1고 출입문에서 싸운, 리나 쪽에 숨어든 패러사이트가
- 있었던 거겠지."
- "리나가 『미아』라고 부른 그 패러사이트 말인가요? 그러고 보니
- 그 개체는 강력한 자기 치유 능력을 갖고 있었지요."
- "미노루가 갖춘 치유 재생 능력은 그 개체에 필적하거나 능가한다."
- "그건…… 확실히 성가시네요."
- 미유키가 그 미모를 흐리며 중얼거린다.
- "하지만 정말로 경계해야만 하는 건 패러사이트로 인해 생긴 능력이 아니야.
- 미노루가 원래 가진 힘. 그리고 다른 한 명의 힘이다."
- "원래의 힘과…… 다른 한 명, 말입니까?"
- "그래."
- 타츠야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 의식하고 한 연기를 제외하면 타츠야가 이렇게 엄한 표정을 짓는 건
- 드문 일이었다.
- "미노루는 엘레멘탈 사이트 소유자다. 전부터 그럴 거라고 의심했지만,
- 오늘 확신했다."
- 미노루는 타츠야가 플래쉬 캐스트로 발동하려고 한 마법을
- 반대 사상 개변을 정의하는 마법을 부딪쳐 무효화했다.
-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예측이 적중한 것도 아니다.
- 상대, 즉 자신이 출력한 마법식을 읽어낸 결과라고 타츠야는 알아차렸다.
- "그건!"
- 미유키가 경악해서 소리를 높였지만, '설마'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 '정말입니까?'라고도 묻지 않았다. 타츠야가 '확신했다'라고 말했다.
- 미유키의 의식과 무의식 모두 이를 의심하는 말은 솟아나오지 않았다.
- "……오라버니. 그래서 다른 한 명, 이라는 건……?"
- 다만 이 경우 다른 의문에 정신이 팔렸다는 점도 있었다.
- "어떤 경위인지 모르겠지만, 미노루는 슈 코우킨의 지식과
- 마법 기능을 흡수했어."
- 타츠야는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 상식 이상으로 확실한 사실을 그는 포착했다.
- "슈 코우킨이라는 건, 그 슈 코우킨을 말하는 겁니까!?"
- "그렇다."
- "미노루 군이…… 예를 들면 슈 코우킨이 남긴 마법 해주서를 발견해서
- 그 내용을 습득했다는 의미인가요?"
- 미유키는 타츠야의 말을 상식 범위 안에서 해석했다.
- 그렇게 생각해두면 마음이 심란해지는 일은 없겠지.
- 하지만 타츠야는 얼버무리지 않았다.
- "그게 아니야. 굳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쓰자면 미노루는
- 슈 코우킨의 망령을 흡수했다고 생각돼."
- 미유키가 한손으로 입을 막았다. 양손이 아니었던 건,
- 다른 한 손은 쟁반을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 "……쿠도가에 그런 마법까지 있었던 겁니까?"
-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미유키에게 타츠야는 고개를 흔들었다.
- 세로가 아니라 좌우로.
- "아무리 그래도 망령과 일체화하는 게 목적인 마법은 없었을 터다.
- 그건 현대마법의 목적에서 벗어났어. 하지만 정신체를 지배하는 마법이라면
- 있었다고 생각된다."
- 타츠야는 일단 말을 끊고, 미유키가 이해하기 쉬운 예시를
-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 "예를 들면 패러사이돌. 그 인형 병기를 완성시키기 위해선
- 패러사이트의 본체를 제어하는 마법이 필요하다. 미노루는
- 그런 종류의 마법을 응용해서 슈 코우킨의 잔류 사념을
- 흡수한 게 아닐까 싶어. 그 녀석은 오늘 싸움에서 『귀문둔갑』을
- 사용했는데, 그 사용 방식은 슈 코우킨의 것이었다."
- "그렇습니까……."
- 솔직히 말해서 미유키는 몇 개월 전에 죽은 마법사의 망령을
- 흡수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을 믿기 어려웠다.
- 하지만 그게 타츠야의 말이라면 미유키는 믿을 수 있었다.
- "……대책을 세워야만 해. 구 제9연의 마법과 대륙식 고식 마법과
- 패러사이트의 이능. 이 모든 걸 갖춘 상대에게 평범한 전투 방식으로
- 대항하는 건 어려워."
- 거기서 타츠야는 울적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 "게다가 쿠도 각하에게 미노루에 대해 말해야만 해. 이모님이
-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말해야만 하겠지. 그 다음에
- 쿠도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 가뜩이나 디오네 계획 대책에 리소스를 할당해야만 하는데,
- 그 상황에 이 문제가 더해졌다. 타츠야가 우울해지는 건
- 당연했다.
- 그런 타츠야를 미유키는 선 채로 걱정된다는 것처럼 바라봤다.
- ◇ ◇ ◇
- 마야가 미노루와 관련된 정보를 묵살할지도 모른다는 타츠야의 우려는
- 기우로 끝났다.
- 6월 17일 월요일.
- 타츠야와 미노루가 쵸후 병원에서 불.행.한. 충돌을 일으킨 다음날.
- 타츠야는 마법협회 관동지부로 불려갔다.
- 오늘의 용건은 디오네 계획과 관련된 설.득.이 아니다.
- 그는 임시 사족회의에 옵저버로서 출석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 아니, 증인이라고 표현하는 쪽이 실상에 가깝겠지.
- 마법협회 관동지부가 있는 요코하마 베이힐즈 타워의 회의실에
- 와 있는 건 카츠토와 타츠야 두 사람뿐. 카츠토는 타츠야를
- 요츠바 관계자로서 대하고 사무적으로 접근했다.
- 카츠토는 저번 달 마지막 일요일에 벌인 결투가 느껴지는 태도는
-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행동하는 건,
- 카츠토가 아직 그 사건을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 물론 서먹한 태도는 타츠야도 똑같았지만.
- 관동 지부 스크린에 비친 얼굴은 10개. 사족회의의 정규 멤버도 열 명.
- 한 명은 이 회의실에 있는 카츠토이며, 그는 스크린에 표시되는 영상에
- 포함되어 있지 않다.
- 타츠야도 그렇다.
- 아홉 명의 십사족 당주와 또 다른 한 명. 마지막 인물은 쿠도 레츠였다.
- 회의는 의례적인 인사를 최소한으로 끝내고 갑자기 본제로 들어갔다.
- 『─신용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재차 묻고 싶네.』
- 병상에서 막 복귀한 이치죠 고우키가 얼마 전까지 환자였던 게
- 느껴지지 않는 기백이 담긴 목소리로 발언했다.
- 질문 상대는 타츠야다.
- 『쿠도가의 미노루 공이 패러사이트가 됐다는 게 사실인가?』
- "본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한 제가 상대해본 감각에 의하면
- 그는 패러사이트가 되었습니다."
- 스크린에 비친 10명은 재차 놀라는 사람,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는 사람,
- 슬프게 눈을 내리깐 사람, 이렇게 세 종류로 반응이 갈렸다.
- 『……미노루 군의 표적이 요츠바가 휘하의 마법사,
- 사쿠라이 미나미라는 것도?』
- 이렇게 질문한 건, 놀란 사람에 속하는 미츠야 겐이었다.
- "그것도 본인이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 『그…… 미노루 공과 사쿠라이 양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었던 겁니까?』
- 싯포 타쿠미의 질문에 타츠야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 추측은 됐지만 두 사람에게서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듣지 못했다.
- 아마 미나미는 직접 물어봐도 타츠야와 같은 대답을 했겠지.
- 자신이 미노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미나미는 한창 고민 중일 게
- 분명하다.
- 『미노루 공의 동기는 일단 제쳐두죠.』
- 그 때 사에구사 코이치가 끼어들었다.
- 『미노루 공이 패러사이트로 변한 것도, 요츠바가의 마법사를
- 노린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만, 저는 미노루 공에게 씐 패러사이트가
- 어디서 온 건지 신경 쓰입니다.』
- 『확실히 그렇군요. 패러사이트가 다시 일본에 침입한 것이든,
- 국내에 발생원이 생긴 것이든 이를 방치하면 피해가 확대될 우려가 있습니다.』
- 이츠와 이사미가 코이치의 의견에 동의했다.
- 『……그건.』
- "저번에."
- 쿠도 레츠가 고뇌가 담긴 목소리로 대답하려고 했다.
- 그 대답을 빼앗는 것처럼 타츠야가 끼어들었다.
- "패러사이트가 침입했을 때 저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패러사이트 둘을
- 봉인했습니다. 그 시점에선 패러사이트를 최종적으로 부술 수단을
- 몰랐기 때문에 그랬습니다만, 그 봉인체는 누군가가 빼앗아 갔습니다.
- 아마도 그 두 개가 발생원이라고 생각됩니다."
- 『누가 빼앗은 건지 모르는 겁니까?』
- "모릅니다."
- 코이치의 질책하는 목소리에 타츠야는 겁먹지 않고 그저 한 마디로 응수했다.
- 『조사는 하지 않은 겁니까?』
- "도쿄는 요츠바의 영역이 아니므로."
- 타츠야의 뻔뻔한 대답에 코이치는 코웃음 쳤다.
- "당시 사에구사가의 마유미 양, 쥬몬지가, 치바가의 에리카 양과 공투해서
- 패러사이트에 대처했습니다. 빼앗긴 봉인체에 대해서도 정보를
- 공유했을 터입니다만."
- "확실히 들었습니다."
- 카츠토가 당사자로서 증언하자 코이치는 그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 마유미가 들었다면 사에구사의 책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하나는 제가 갖고 있습니다.』
- 여기서 마야가 생각도 못한 말을 던졌다.
- 『타츠야는 남은 패러사이트와 교전 중이었기에 제가 회수를 지시했습니다만,
- 하나만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 『……그걸 타츠야 공에게 알리지 않은 겁니까?』
- 후타츠기 마이가 기가 막힌다는, 나무라는 어조로 말한다.
- 『타츠야는 학업에 전념해줬으면 했으므로.』
- 마야는 그 반응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누가 들어도 거짓말이라는 걸
- 알 만한 변명을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 『타츠야에게서 이번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혹여나 싶어
- 확인했습니다만, 우리 가문이 확보한 패러사이트에 이상은 없었답니다.』
- 그리고 결백을 주장한다.
- 『그럼 다른 하나가 감.염.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까?』
- 『결론을 서두르는 건 위험하겠죠. 감.염.원.에 대해선 정보가 너무나도 없소.』
- 무츠즈카 아츠코가 경솔하게 앞질러 말하자, 야츠시로 라이조가
- 제지한다.
- 『사에구사 공이나 이츠와 공의 우려는 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 지금은 알고 있는 문제에 대한 대책을 우선해야만 하는 것 아닌지?』
- 『그렇네요. 그 말대로 라고 생각합니다.』
- 라이조의 지적에 아츠코가 긍정한다.
- 알고 있는 문제, 즉 미노루의 처우다.
- 『……노사껜 죄송합니다만, 패러사이트로 판명된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 『그렇겠지.』
- 쿠도 레츠가 감정을 억누르는 게 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아들인 쿠도 마코토는 이렇게 의연한 태도를 취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 미노루의 아버지이자 쿠도가의 당주인 마코토가 아니라 레츠가
- 회의에 참석한 건, 겉으론 마코토가 쿠도가 내부 대응으로 바쁘기 때문이다.
- 하지만 진실은 마코토는 대화가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
- "숙주를 잃은 패러사이트는 새로운 숙주를 찾아 떠나는 게 확인됐습니다."
- 그 상황에 타츠야가 주의를 환기했다.
- 이 사실은 참가자 모두 알고 있을 터이지만, 새삼 떠올렸다는 표정을
- 지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 『그럼 정보체를 공격할 수 있는 마법사의 동원이 필수라는 건가?』
- 고우키의 말에,
- 『미노루 공을 죽이지 않고 무력화하는 게 더 안전한 것 아닌지?』
- 타쿠미가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했다
- 『저도 그 의견에 찬성합니다.』
- 겐이 타쿠미의 의견을 지지했다.
- 『타츠야 공은 봉인 방법을 아는 거지요?』
- 화면 속에서 이사미가 물었다.
- 『그 노하우는 내가 제공하지.』
- 타츠야가 대답하기 전에 레츠가 그렇게 제안했다.
- 『노사께서 말입니까?』
- 『실례합니다만, 노사께선 어디서 패러사이트 봉인 방법을 알아낸 겁니까?』
- 이사미가 반사적으로 질문하는 옆에서 고우키가 레츠에게 물어봤다.
- 고우키의 시선엔 의혹이 깃들어 있었다. 스크린 너머임에도 느껴졌다.
-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알고 계시겠지요. 우리 가문이 패러사이트 봉인에
- 사용한 술식도 애초에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거니까요.』
- 그 상황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마야가 끼어든다.
- 고우키의 안광에서 확실하게 날카로움이 옅어졌다.
- 『미노루 공을 사로잡을 때의 대처법은 노사께서 알려준다고 쳐도
- 그 상황까지 이끌어가기 위한 대책 말입니다만…….』
- 마이가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분위기를 수정하려고 말을 꺼냈다.
- 『미노루 공의 표적은 사쿠라이 미나미 양. 이렇게 생각하면 되나요?』
- "그의 최종적인 목표는 우리 집의 미나미라고 생각합니다."
- 확인하는 의미가 강한 마이의 질문에 타츠야가 긍정했다.
- 『그럼 도쿄의 병원에 있는 미나미 양 근처에서 망을 펼치는 게
- 효과적이겠군요.』
- 코이치가 뻔뻔하게 미나미를 인질로 쓰는 작전을 제시했다.
- 『네, 그걸로 괜찮을 거라고 봅니다. 미나미 보호는 우리 쪽에서
- 준비하도록 하죠.』
- 마야는 이에 항의하는 대신에 점잔 빼는 미소로 매정한 대답을
- 돌려줬다. 듣기에 따라선 '호위를 위해 사에구사가의 힘을
- 빌릴 필요는 없다'라는 매우 신랄한 말이었다.
- 이에 코이치가 눈살을 찌푸렸다.
- "요츠바공. 우리 집안에서도 호위를 도와주고 싶습니다만."
- 카츠토가 공기를 읽은 건지 아닌 건지 알기 힘든 제안을 꺼냈다.
- 『병원 밖이어도 괜찮다면.』
- "그걸로 괜찮습니다."
-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 코이치를 배제하고 마야와 카츠토 사이에서 얘기가 마무리 지어졌다.
-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 『미노루 공의 최종적인 목적은 사쿠라이 미나미 양이라고
- 생각됩니다만, 쿠도가로 돌아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 아츠코의 문제 제기에 타쿠미가 대답했다.
- 미노루는 어제부터 행방불명이다. 쿠도가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 계속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타쿠미는 이를 지적했다.
- 『물론 집에 온다면 붙잡는다. 숨겨주지 않네.』
-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 레츠의 말에 마이가 달래는 어조로 말한다.
- 『미노루 공은 건강이 불안정했습니다만 애초에 무척 뛰어난
- 마법사였습니다. 패러사이트가 된 미노루 공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 예측이 가지 않습니다. 괜찮다면 제 쪽에서도 사람을 보낼까 합니다만.』
- 그리고 마이가 레츠에게 원군 파견을 제안했다.
- 『필요하다면 저도.』
- 이에 고우키가 편승했다.
- 『고맙소. 그럼 후타츠기 공, 조력을 부탁해도 괜찮겠소?
- 이치죠 공도 만약 원군이 필요해지면 힘을 빌려주면 고맙겠소.』
- 『잘 알겠습니다.』
- 『알겠소.』
- 레츠가 화면 속에서 고개를 숙이자 마이와 고우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요츠바가가 사쿠라이 미나미 양의 호위. 사에구사가가
- 미노루 공과 맞서 싸우고 포박. 우리 쥬몬지가는 사쿠라이 미나미 양의
- 병원 밖에서 경비. 쿠도가의 원군으로 후타츠기가, 원군 2진으로
- 이치죠가. 다른 가문은 각자 경계하는 것으로 괜찮겠습니까?"
- 카츠토의 말에 차례차례 찬동했다.
- 십사족의 방침은 그렇게 결정됐다.
- ◇ ◇ ◇
- 회의실 뒷정리는 마법협회 직원이 맡았다.
- 타츠야는 카츠토와 함께 퇴실하고 엘리베이터 홀로 향했다.
- 두 사람은 나란히 걷는 게 아니라 타츠야가 카츠토의 대각선으로
- 한 걸음 뒤에 위치하고 있었다.
- 바로 뒤에 있지 않은 건, 사각에 들어가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
- 카츠토가 싫어한 게 아니라 타츠야 쪽에서 배려한 결과였다.
-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없다. 둘 다 말없이 걷고 있다.
- 그걸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은
- 그들이 아니었다면 둘 중 하나는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 그 뒤로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서로 적의를 보이지 않은 만큼
- 둘 다 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지. 혹은 전투를 자주 하는 사람의
- 마음가짐일까.
- 하지만 두 사람의 침묵은 엘리베이터 홀 사각에 숨어 있었던
- 사람의 목소리로 깨졌다.
- "쥬몬지 군, 타츠야 군, 회의는 끝난 거야?"
- "사에구사……. 어째서 여기에?"
- 저번 달 충돌의 당사자 중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경박하게
- 말을 건 것은 마유미였다.
- "신경 쓰였으니까."
- 마유미의 어이없는 대답에 카츠토가 관자놀이를 누른다.
- 그 마음은 잘 안다고 타츠야는 생각했다.
- "회의는 끝났다."
- "의외로 빨리 끝났네.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됐어?"
- 카츠토는 아버지에게 물으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유미가
- 그걸로 물러날 여성이 아니라는 걸, 그도 오래 알고 지내면서 알게 됐다.
- "……여기서는 얘기할 수 없어."
- "그럼 휴게실로 가자."
- 마법협회 관동지부에는─교토 본부도 그렇지만─, 외부에
- 새어나가는 걸 꺼려하는 상담을 하기 위한 개인실이 몇 개 준비되어 있다.
- 마유미는 단골일 정도는 아니지만 이 개인실을 종종 이용했다.
- "타츠야 군도."
- 마유미가 한 번 말을 꺼내면 듣지 않는다는 건, 타츠야도 알고 있다.
- 오늘은 이 다음에 특별한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미유키의
- 하교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다.
- "……알겠습니다."
- 타츠야는 '기꺼이'는 아니었지만, 마유미의 제안에 응했다.
- "타츠야 군도 홍차로 괜찮을까나?"
- "선택은 맡기겠습니다."
- 휴게실을 빌리고 마유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차를 끓이는 것이었다.
- 음료수 취향은 타츠야에게만 물었다. 카츠토에겐 묻지 않았다.
- 여러 가지로 의심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 타츠야였지만,
- 귀찮아질 게 자명했기에 자중했다.
- 마유미가 세 사람 몫의 홍차를 테이블에 늘여놓고 앉았다.
- 포지션은 카츠토 맞은 편, 타츠야의 옆이다.
- "차가워지기 전에 마셔."
- 권유라는 이름의 강제를 받고 타츠야와 카츠토가 티컵에 입을 댔다.
- 마유미가 끓인 홍차는 고등학생 시절보다 맛있었다.
- 본인에게도 회심의 역작이었던 거겠지. 마유미는 기분 좋아진 표정으로
- 컵을 내려놨다.
- 모두 컵을 받침대에 올려놓자, 카츠토가 마유미를 바라봤다.
- "그래서 뭐가 듣고 싶지?"
- 카츠토의 질문에 마유미는 '전부'라고 대답했다.
- "회의 테마가 뭐였는지 사에구사는 알고 있는 건가?"
- "미노루 군이 패러사이트가 됐다."
- 카츠토의 이어지는 질문에도 마유미는 바로 대답했다.
- "그 대책, 맞지?"
- 하지만 사태를 이해한 것치고 마유미의 어조는 가벼웠다.
- 타츠야는 그게 신경 쓰였다.
- "정말로 의미를 이해한 건가? 미노루 공과 나름대로 친했을 텐데."
- 카츠토도 그 점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 "당연히 이해하고 있다고."
- 마유미는 그 질문에 기대에 어긋난 반응이라며 심통 내지도 않고
- 침착하게 대답했다.
- "나도 저번 패러사이트 소동에 관여했다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 덧붙인 마지막 말에 살짝 불만이 묻어나 있었다. 그 이외의 부분에서
- 마유미는 냉정함 그 자체였다.
- "……미노루가 패러사이트가 됐다는 걸 안다면, 결론도 쉽게
- 상상이 가는 것 아닙니까?"
- 당황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은 카츠토 대신에 타츠야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 "미노루 군을 붙잡아 봉인하거나 패러사이트를 떼어내어 처치하는 거잖아?
- 하지만 구체적으로 대체 어떻게 붙잡을 거야?"
- 타츠야와 카츠토가 눈짓을 주고받는다. 마유미에게 얘기해도 좋은지
- 확인하고, 누가 얘기할지 상담.
- 입을 연 건 카츠토였다.
- "……미노루 공이 사쿠라이 미나미 양을 납치하러 오는 걸 기다려,
- 매복해서 붙잡는다."
- "쥬몬지 군이?"
- "아니. 사에구사 공이 이 역할을 받아들였다."
- "어, 우리 집……?"
- 마유미의 냉정한 표정에 금이 생겼다. 하지만 곧 불쾌하게 일그러진 입술을
- 사교적인 미소로 덧칠했다.
- "사쿠라이 미나미 씨라는 거, 카스미 짱의 클래스메이트인
- 『사쿠라이 씨』 맞지?"
- "네. 미나미와 그쪽의 동생분은 클래스메이트입니다."
- 타츠야는 평소처럼 '카스미'라고 편하게 부르지 않고, '동생분'이라는
- 표현으로 대답했다.
- "고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를 미끼로 쓰는 거야? 타츠야 군은
- 그걸로 괜찮아?"
- 마유미가 비난 어린 시선으로 타츠야를 봤다.
- "우리의 생각과 상관없이 미노루는 또 미나미에게 올 겁니다."
- "사쿠라이 양이 입원한 병원은 요츠바가, 병원 밖은 우리
- 쥬몬지가가 경비한다. 사쿠라이 양의 안전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아."
- 카츠토가 타츠야의 말을 보충했다.
- "단단히 경계하면 아무리 미노루 군이라 해도 태평하게
- 오진 않을 것 같은데?"
- "그럴 경우 다른 책략을 생각하면 될 뿐이다."
- 마유미가 제시한 우려에 카츠토는 단호히 대답했다.
- "그래……."
- 마유미의 목소리는 무뚝뚝했지만, 왠지 불만인 것 같았다.
- "그래서 쥬몬지 군과 타츠야 군은 손을 잡고 이 사태의 해결에
- 임한다는 거네?"
- 마유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카츠토는 눈살을 찌푸렸다.
- 하지만 타츠야는 '참견쟁이다'라며 그녀의 선량함에 대해
-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 "이 건만이 아니라 쥬몬지가와 요츠바가는 십사족 일원으로서
- 협력 관계입니다. 일.시.적.인. 대립을 계속 질질 끌지는 않습니다."
- "그래……."
- 방금 전과 같은 대답. 하지만 아까와 달리 마유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 [7]
- 북아메리카 대륙 합중국 뉴맥시코주 로즈웰 외곽.
- 여기에 스타즈 본부 기지가 있다.
- 스타즈는 12개의 부대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부대가 독자적으로
- 명령을 받고 출동하는 일도 많다. 원래 총대장인 리나는
- 각 부대가 맡고 있는 임무를 전부 파악할 필요가 있지만,
- 사실 리나에게 내용을 말하지 않은 임무도 많다.
- 선대 시리우스는 스타즈를 완전히 파악했지만, 리나는 그 레벨에
- 이르지 못했다. 그것보다 아직 한참 멀었다. 그녀는 장식뿐인
- 총대장이라고 뒤에서 험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완전히
-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 "오늘은 모든 부대가 있었지만……."
- 방에서 샤워를 하고 파자마로 갈아입은 리나는 침대 위에서
- 혼잣말 했다.
- "저번 주엔 갑자기 제3부대와 제6부대가 어디론가 가버렸고.
- 모르는 건 나만이 아니었으니까 아직 다행이지만."
- 토요일 아침에 제3부대의 아르크투루스와 제6부대의 리겔의 모습이
- 보이지 않아, 리나는 서둘러 카노프스에게 행방을 물어봤다.
- 카노프스는 리나보다도 각 부대의 동향을 잘 파악하고 있어서
- 그가 총대장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 정도이지만, 그 카노프스도
- 아르크투루스와 리겔이 출동한 곳을 몰랐다.
- 그 일은 리나만 소외된 게 아니라며 리나를 위로해줬지만,
- 총대장의 지위를 등한시하는 사태는 변하지 않았다며
- 다시 침울해졌다.
- 평소에 머리 한 구석에 눌어붙어 있는 스트레스 원인이지만,
- 오늘 밤은 왠지 두개골 안쪽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정도로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됐다.
- ─대체 제3부대와 제6부대는 어디로, 뭘 하러 갔던 건가.
- ─어째서 내게 출동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은 건가.
- 신경 쓰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타이를 정도로 짜증이 일어났다.
- ─나는 결국 전략급마법을 쓸 수 있을 뿐인, 힘이 강할 뿐인
- 장식용 총대장인 건가.
- 힘. 목적을 달성할 힘, Power가 아니라 장해물을 쓰러뜨릴 뿐인 Force.
- 자신이 인정을 받은 건 결국 Force뿐……. 리나는 자조적으로
-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 "……그야 나는 아직 17살 꼬맹이이고. 엄청나게 뛰어난 두뇌도 없고.
- 애초에 그렇게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부대 지휘 교육 같은 거
- 제대로 받은 적도 없고. 키도 작고. 동안이고."
- 어느 샌가 리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푸념으로 더욱 침울해지는
- 마이너스 스파이럴에 빠져버렸다. 자기 연민은 좋지 않다고
- 이성이 경고를 했지만, 스스로 멈출 수 없었다.
- "하지만 출동 이유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잖아. 자리를 비울 거라면
- 미리 보고하라고. 예정 변경 여파는 『총대장』에게 오니까."
- 혼잣말이 멈춘다.
- "내가 총대장이라 불만이라면 언제든 그만 둬 주겠다고.
- 믿음직하지 못한 총대장이라 미안하네. 하지만 내가 스스로
- 지원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지."
- 리나는 이불을 말고 안으로 들어가, 음성 커맨드로 방의 조명을 껐다.
- 설령 듣는 사람이 없다 해도 불평을 토로하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 게다가 자학의 늪에서 발버둥치는 것도 지쳐버렸다.
- 그날 밤 리나는 그리운 꿈을 꿨다.
- 사실로만 본다면 그다지 좋은 꿈은 아니다.
- 잠입한 제1고교의 뒷산에서 패러사이트를 차례차례 죽인 기억.
- 패러사이트를 발견한다.
- 이동마법을 건 나이프로 목을 뒤통수에서 꿰뚫는다.
- 패러사이트가 습격해 온다.
- 플라스마화 공기의 포탄으로 꿰뚫는다.
- 패러사이트를 발견한다.
- 마법으로 쓰러뜨린다.
- 패러사이트가 습격해 온다.
- 마법으로 쓰러뜨린다.
- 어느 샌가 꿈은 반복됐다.
- 공격하는 패러사이트를 쓰러뜨린다. 마치 좀비 플래시 게임 같았다.
- 패러사이트를 몰살하며 리나는 목을 비틀었다.
- ─타츠야와 미유키는 언제 등장하지?
- 등장인물이자 관객이기도 한, 그 꿈의 독특한 다중 시점 속에서
- 관객쪽 의식이 의아함을 느꼈다.
- 그 때 자신은 타츠야와 함께 패러사이트와 싸웠다. 리나는 이를
- 잊지 않았다.
- 잊을 수 없다.
- 마지막에 도움을 받은 건 의도한 게 아니었지만, 대등한 시선에서
- 함께 싸우는 동료가 있다는 감각은 나쁘지 않았다.
- 사실 '동료'가 아니라 '적'이었을 터이지만.
- 타츠야는 대등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었던 것 같은 기분도
- 들지만.
- 그저,
- 타츠야와 미유키는 리나를 '꼬맹이'라며 깔보지 않았다.
- 타츠야와 미유키는 리나를 '13사도'라며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 같은 나이니까 '꼬맹이' 취급하지 않은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기뻤다.
- 타츠야는 헤비 메탈 버스트를 뛰어넘는 전략급마법의 사용자니까
- 특별 취급할 이유도 없었던 거겠지만, 그걸 안 지금도
- 대등하게 대해줘서 기뻤다는 마음은 옅어지지 않았다.
- 일본 체재 중에 자기 자신의 마음임에도 그런 감정을 품었다는 걸
- 인정하지 않았다.
- 하지만 '연상 부하'로만 가득한 환경으로 돌아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 솔직하게 인정하게 됐다. ─실제로 타츠야 앞에 서면 또 고집을 피우겠지만.
- 옆에 미유키가 없다.
- 옆에 타츠야가 없다.
- 그 사실에 살짝 쓸쓸함을 느끼면서, 그 쓸쓸함을 얼버무리는 것처럼
- 리나는 계속 패러사이트를 쓰러뜨렸다.
- ◇ ◇ ◇
- '─총대장의 정신에 침입할 수 없어.'
- '─총대장에겐 정신계 마법 적성이 없었던 게 아닌가?'
- '─총대장에게 루나 매직 적성은 없을 터다.'
- '─그럼 어째서 침입할 수 없지?'
- '─어째서 침입할 수 없지?'
- '─되받아치고 있어.'
- '─쓰러뜨릴 수 없어.'
- '─격퇴할 수 없어.'
- 밤의 어둠 속에 모기장에서 들려오는 날개소리 같은 술렁임이 가득 찬다.
- 육체적 귀로는 들리지 않는 소리다.
- 정신체끼리 교환하고 공유하는 소리─ 대화다.
- 패러사이트끼리 상담하는 소리. 자.문.자.답.의 목소리.
- '─총대장 동화는 어렵다.'
- '─총대장 동화는 불가능하다.'
- '─총대장은 위험하다.'
- '─그녀는 위험하다.'
- '─그녀는 우리의 적이 되겠지.'
- '─그녀는 배제해야만 한다.'
- '─그녀를 배제하자.'
- 술렁거림은 이윽고 하나의 목소리가 됐다.
- ◇ ◇ ◇
- 6월 18일 화요일. 시간은 아직 오전 5시도 되지 않았다.
- 아무리 군인이라 해도 미션 중이 아니라면 아직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 "꿈 때문일까……."
- 날이 밝기도 전에 잠에서 깬 리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어떤 꿈이었는지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좋은 꿈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 스트레스 발산에는 도움이 된 기분이 든다. 적어도 기분은
- 잠들기 전에 비하면 개운해졌다.
- 원래 리나는 잠에서 잘 깨는 타입이 아니다. 홈오토메이션으로 끓인
- 쓴 커피를 억지로 넣어 강제적으로 의식을 각성시키는 게 최근 습관이다.
- 하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6월.
- 한낮에 80도(섭씨 27도)를 넘는 것도 당연한 계절이지만,
- 해 뜨기 전인 이 시간대라면 고작 60도(섭씨 16도) 정도.
- 산책하기에 알맞다.
- 리나는 그 생각을 즉시 실행으로 옮겼다.
- 그렇지만 리나는 한창 나이 때의 소녀. 자신의 방에서 나가기 전에
- 해야만 하는 일이 많다. 미션 중인 게 아니니까 대충하고
- 둘러댈 변명거리도 없다.
- 몸단장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을 때, 하늘은 이미 하얗게 되고 있었다.
- 그럼에도 아직 기지 부지 내에 움직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전혀 없었다'가 아닌 건, 당직 병사나 경비원이 깨어 있기 때문이다.
- 종종 마주친 근무 중인 그들의 모습에 마.음.속.으.로. '수고하네'라고
- 말을 걸며, 리나는 훈련용 그라운드를 돌아서 기지 밖과 안을 구분하는
- 펜스 앞까지 갔다.
- 여긴 USNA의 구 본국.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 세력의 손길도
- 여기까진 닿지 않는다. 분쟁 지대처럼 펜스 앞에 서 있어도
- 저격을 당할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럴 터이다.
- 살의는 소리도 없이 찾아왔다. 보이지 않는 저격을 피한 건,
- 완전히 우연이었다.
- 아니, 피했다고도 할 수 없겠지.
- 고에너지 레이저는 리나의 환영을 뚫고 안쪽에서 펜스를 태웠다.
- 때 마침 리나가 산책할 겸 자주적 트레이닝으로 『퍼레이드』를
- 1야드(0.9미터) 떨어진 곳에 전개해두지 않았다면, 저격은
- 리나의 즉사라는 형태로 성공됐겠지.
- 하지만 리나가 쇼크를 받은 건, 하마터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 아니었다. 물론 저격을 인식했을 때에는 식은땀을 흘렸고,
- 목숨을 건졌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 하지만 그녀의 마음에 충격을 준 건, 그게 기지 안에서 온
- 공격이었다는 점이었다.
- "반란!?"
- 시간차로 다가오는 대인 미사일을 이동마법으로 튕겨내고,
- 열과 파편을 마법장벽으로 막으면서 저격 사선을 되짚어가
- 창고 옥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 "잭!? 역시!"
- 거기에 엎드려 쏘기 자세로 라이플 같은 걸 쥔 남성의 모습이 있었다.
- 창고까지 거리는 백 미터 이상이나 된다. 아직 어렴풋하게 어두워서
- 육안으로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 하지만 그 남자가 방출한 사이온 파동은 분명 리나가 알고 있는
- 스타즈 대원의 것이었다.
- 스타즈 제3부대 일등성급 대원 제이콥 레굴루스 중위.
- 애칭은 잭.
- 특기 마법은 라이플과 닮은 무장 디바이스로 쏘는
- 고에너지 적외선 레이저탄 『레이저 스나이핑』.
- 방금 전에 리나를 공격한 것은 그야 말로 『레이저 스나이핑』이었다.
- "잭! 어째서 날 노리는 겁니까!?"
- 대답은 없다.
- 높아지는 마법 기척에 리나는 전자파 반사 마법 『미러 실드』를
- 전개했다.
- 『레이저 스나이핑』의 광탄을 『미러 실드』로 반사한다.
- 『레이저 스나이핑』은 소리도 없고 사용한 총알도 남지 않는
- 저격에 적합한 마법이지만, 발사까지 1초 정도 시.간.을. 끌.
- 필요가 있다는 결점이 있다. 마법 발동에 필요한 시간이 아니라
- 빛의 증폭에 필요한 시간이다. 마법 발동 기척을 탐지하고 전개한 실드로
- 튕겨낼 수 있었던 건, 이 성질 덕분이다.
- 『미러 실드』는 실드 너머에서 오는 전자파를 전부 반사한다.
- 당연히 가시광선도. 실드를 펼치는 와중 적의 모습은 실드에 가려져
- 보이지 않는다.
- 『미러 실드』를 해제했을 때, 창고 옥상에 레굴루스의 모습은 없었다.
- 리나는 마법 탐지를 최고 레벨로 올리고 창고 쪽으로 달려갔다.
- 그녀의 탐지에 마법을 두른 비행물이 걸렸다. 스타즈의
- 전투 마법사가 공유하고 있는 마법 『댄싱 브레이즈』다.
- "알렉!?"
- 이 『댄싱 블레이즈』에 깃든 사이온 파동은 알렉─
- 알렉산더 아르크투루스 대위의 것이었다. 리나의 마법 감각은
- 그녀에게 그렇게 속삭였다.
- 리나가 『영역간섭』을 펼친다. 자신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게 아니라,
- 날아오는 네 자루의 나이프에 겹쳐 자신의 사상 간섭력을 부딪친다.
- 용솟음치는 것처럼 나선궤도로 리나에게 다가오던 나이프는
- 컨트롤을 잃고 내팽개치는 것처럼 지면으로 떨어졌다.
- "제3대 대장인 알렉까지 반란에 가담했다는 거야!? 그게 아니면……."
- 그게 아니면 자신을 향한 개인적인 원한인가.
- 리나는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혼잣말이라지만 그 의문을
- 확실하게 입으로 내뱉는 건, 아직 17살인 소녀에게는 힘들었다.
- 자신이 질투를 받는 입장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리나는
- 스타즈의 동.료.와 잘 지낼 생각이었다. 제4대의 베가나 데네브는
- 자주 비아냥거리긴 했지만, 진심으로 미워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지금 그녀는 끙끙대며 고민할 틈이 없었다.
- 추격 『댄싱 블레이즈』가 다가온다.
- 이번엔 네 자루가 아니라 한 자루. 단 질량은 훨씬 크다.
- '토머호크!?'
- 이 공격은 영역간섭으로 무력화할 수 없다.
- 아르크투루스는 백인과 흑인과 원주민의 하이브리드이며,
- 혈통적으로는 원주민 쿼터이지만 마법 부분에서는 그 피를
- 강하게 이어받았다.
- 세계적으로 고식마법 중 무장에 '마음'을 쏟아 부어 마법적으로 강화해
- 다른 사람의 마법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술식이 자주 보인다.
- 아메리카 원주민의 마법에도 그 술식이 있었다.
- 그리고 아르크투루스는 그 기술을 사용해 강화한 한손용 도끼를
- 대 마법사 전투의 비장의 수단으로 쓰고 있다. 백병전 무기로서도
- 이용하지만, 오로지 이동계 마법을 투척 무기에 담아 사용하는 방식이
- 아르크투루스의 장기이다. 그의 토머호크 공격은 리나의 영역 간섭으로도
- 떨어뜨릴 수 없다.
- 그걸 아는 리나는 수평으로 날.아. 피했다. 지면에 아슬아슬하게
- 닿는 높이에서 한 번에 20미터 정도 미끄러지는 것처럼 이동했다.
- 착지하자마자 『미러 실드』를 다시 전개. 착탄의 느낌과 동시에
- 리나는 차폐물을 찾아 달렸다.
- 차폐물이나 사격용 타깃이 산재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멀리 잘 보이는
- 그라운드다. 여기선 그녀가 좋은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 리나는 특수 차량 격납고로 뛰어갔다.
- 특수 차량이라고 해도 중기나 전차는 아니다. 마법을 이용해
- 단거리라면 날아갈 수 있는 자동차라든지 해저를 달리는 왜건이라든지
- 라이딩 슈트와 일체화해 강화 외골격으로 변형하는 바이크라든지
- 일부 실용성을 도외시한 실험 병기가 격납되어 있는 창고이다.
- 리나는 오늘은 비행 기능이 달린 자동차의 장거리 주행 테스트를 한다고
- 들었다. 문이 열려 있는 건 경비원이 출입했기 때문이겠지.
- "시리우스 소령입니다!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여기서 피난해주세요!"
- 격납고에 굴러 들어갔을 때 이미 리나는 '안지 시리우스'의 환영을
- 두르고 있었다. '훈련용 전투복을 입고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리나는 격납고 내부의 상황을 확인하지 않고
- 외쳤다. 실비의 지.적.으로 사둔 '여자아이다운 옷'으로는
- 폼이 살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 리나에겐 정비원이 도망쳤는지, 애초에 격납고 안에 사람이
- 남아 있는지 확인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격납고 입구 오른쪽에서
- 한쪽 무릎을 꿇고 조심조심 밖의 상황을 살펴봤다.
- 그 무엇도 놓치지 않도록 신경을 갈고닦고, 외부의 저격을 받지 않도록
- 신중하게 적을 탐색했다.
- 리나는 침착하게 사건에 대응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 냉정과 먼 정신 상태였다.
- 방에서 나올 때 프라이빗용 정보단말과 사관용 정보단말을 바꿔서
- 잘못 들고 나온 건 너무나도 멍청한 짓이었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은
-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아직 근무 시간이 아니니까 이런 사태가
- 벌어지지 않았다면 문제가 없었을 터이다. 그런 탓에 기지 사령부와
- 연락을 취할 수 없는 건, 자업자득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었지만,
- 어쩔 수 없다.
- 하지만 머리 바로 위의 벽에 붙어 있는 전화기를 눈치 채지 못한 건,
- 조금 멍청한 짓이었다. 기지 사령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 그저 그 행위만으로 향후 전개는 완전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 리나의 주의는 격납고 밖을 향해 있다. 하지만 애초에 그녀는
- 아르크투루스가 어디에 있는지 한 번도 파악하지 못했다.
- 게다가 적은 레굴루스와 아르크투루스 두 사람만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 뒤에서 굴러오는 수류탄에 대응한 건, 우연에 가까웠다.
- 격납고 벽은 폭발을 견뎠다. 그 탓에 오히려 갖은 파편이
- 리나에게 쏟아졌다.
- 마법 실드 속에서 폭발과 그 여파를 견딘 리나는 돌아보고
- 깨끗해진 시야 속에서 범인을 찾아냈다.
- "레일라! 당신도!?"
- 스타즈 제4부대 일등성급 레일라 데네브 소위. 북유럽계의 장신이며
- 글래머러스한 여성이 리나를 증오스럽게 노려본다.
- "친근하게 레일라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이 배신자!"
- "배신!? 무슨 말입니까!"
- "시치미 떼지 마, 단념하라고!"
- 데네브가 오른손에 쥔 나이프를 치켜들었다. 그 직후 변.신. 전의 리나를
- 키로 10센티미터 넘게 상회하는─가슴과 엉덩이 사이즈도 똑같이 상회하는─
- 여성이 눈앞에 서 있었다.
- 내려오는 전투용 나이프.
- 반사적으로 이동마법을 발동한 리나가 격납고 입구의 반대쪽에 출현했다.
- 소음기로 억누른 총소리와 리나의 실드에 맞아 바닥에 떨어지는
- 짜부라진 총알.
- 데네브가 혀를 찬다. 나이프와 권총 콤비네이션은 그녀의 특기 마법이다.
- 리나가 이동 마법과 동시에 마법 실드를 펼친 건, 그걸 기억하고 있었기에
- 불과하다.
- "시치미 떼는 게 아닙니다! 제가 언제 배신했다는 겁니까!?"
- 실드를 펼친 상태로 리나가 외친다.
- "뻔뻔하네. 그럼 확실하게 말해주지. 너는 총대장의 지위를 갖고 있으면서
- 남자에게 홀려 제6부대를 일본에 팔아넘겼다!"
- "제6부대? 란디네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겁니까!?"
-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다는 거네."
- 그 목소리는 리나의 뒤에서 들렸다.
- 서둘러 뒤를 돌아보는 리나.
- 즉시 데네브가 뒤에서 쏜 총알은 다시 대물 실드로 튕겨냈다.
- 데네브가 총알에 첨가한 관통 마법─방해물을 뚫고 전진하는 이동 마법─보다도
- 리나의 실드 마법의 사상 간섭력이 훨씬 뛰어났기에 가능한 결과다.
- 하지만 새로운 등장인물의 공격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왔다.
- 리나의 몸이 실드째로 끌려올라간다.
- 리나에게 이동 마법이나 가속 마법을 건 게 아니다. 극소적
- 중력 반전 마법이다. 리나를 중심으로 반경 1미터의 원형 안의 중력이
- 역전 증폭된 것이다.
- 리나는 자유낙하의 10배의 가속도로 격납고 천장에 처박혔다.
- 천장은 부서지지 않았다. 기세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소리를 내며
- 흔들릴 뿐이었다. 리나가 반사적으로 자신의 관성을 중화했다.
- 그게 효과가 있었던 거다.
- 하지만 완벽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충격을 받고 리나가 낙하했다.
-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10배의 가속도가 작용했다.
- 하지만 리나가 아픔을 견디고 자기 자신에게 감속 마법을 걸었다.
- 그 이상 데미지를 받는 일 없이 그녀는 바닥으로 복귀했다.
- 그것만이 아니다. 낙하 도중에 공중에서 공기탄을 흩뿌렸다.
- 살상력은 부족했지만 적을 견제할 순 있었다.
- "샤르……."
- 착지한 리나가 무너질 것 같은 다리를 지탱하며 자신을
- 천장에 처박은 샤르─ 셜롯 베가 대위를 노려봤다.
- "호오……. 확실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시리우스네.
- 그 마법력만.은 이름에 걸맞다고 인정해줄게."
- 방금 전 공방으로 리나의 『퍼레이드』는 풀렸다. 선명한 금발벽안에
- 늠름함보다 귀여움을 두른 미소녀가 괴롭게 숨을 헐떡인다.
- 그걸 보고 베가의 입술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떠올랐다.
- "하지만 꽤 괴로워 보이네. 남자에게 홀려 부하를 판 배신자에게
- 어울리는 꼴이야."
- "그러니까! 배신 따위 모릅니다! 제6부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남자라니 대체 무슨 소립니까!?"
- "너, 아직도!"
- 결백을 주장하는 리나에게 데네브가 분노했다.
- "상관없잖아. 가르쳐주자고."
- 하지만 베가가 데네브를 제지했다.
- 그리고 리나를 조소하는 시선으로 봤다.
- "당신에게 걸린 용의는 일본 공작원과 내통해서 마이크로 블랙홀 실험을
- 재실시하도록 꾀하고, 경비로 파견된 제6부대 세 사람을 일본이 획책한
- 인체실험의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거야. 일본의 전략급마법사,
- 시바 타츠야에게 농락당해서 말이지!"
- "타츠야에게!?"
- 리나가 그 부분에 반응해버린 건, 뜻밖이라는 생각을 억누를 수
- 없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베가와 데네브가 볼 땐 그야말로 허니 트랩에 걸려
- 배신했다는 증거였다.
- "그래. 란디, 이안, 샘 세 사람은 밤에 정신을 잃고 폭주하다가
- 격리 보호됐다고. 그들은 당신 때문에 패러사이트가 들러붙었다고!"
- 란디─ 올랜도 리겔 대위.
- 이안─ 이안 벨라트릭스 소위.
- 샘─ 사무엘 알닐람 소위.
- 스타즈 제6부대, 통칭 오리온 팀의 이름을 애처롭게 부르고,
- 베가는 리나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 "패러사이트라고요……?"
- 쇼크를 받아 우뚝 서 있는 리나의 모습도 베가에겐 뻔뻔한 연기로만 보였다.
- "배신자에겐 죽음을! 당신이 시리우스로서 처단해야만 했던 대원들과
- 같은 결말을 선사하도록 하지!"
- 바로 리나가 자세를 다시 잡았다. 하지만 제6부대가 패러사이트에게
- 빙의됐다는 말을 듣고 생겨난 틈은 너무나도 컸다.
- 리나는 격납고 안쪽에서 나타난 베가 쪽을 보고 있다.
- 입구와 등지고 있다.
- 그리고 지금 격납고 밖에서 회전하는 토머호크가 리나의 등을 노렸다.
- 아르크투루스의 공격이 격납고로 침입하려고 했을 때.
- 50미터 이상으로 뻗은 분자 디바이더의 날이 마법으로 강화된
- 토머호크를 잘라버렸다!
- "총대장님! 무사하십니까!?"
- 1초 미만의 타임래그를 두고 격납고 입구에 나타난 커다란 몸집의 인영.
- "벤!"
- "카노프스 소령……."
- 리나와 베가가 각자의 표현으로 그 인물의 이름을 불렀다.
- "소령, 당신은 이 배신자의 편을 드는 겁니까?"
- "총대장님은 배신 따위 하지 않았다. 베가 대위, 그대는
- 패러사이트에게 속고 있어!"
- 베가의 규탄에 카노프스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되받아쳤다.
- "하아? 속고자시고 나는 보호된 란디네와 얘기한 적 없다고."
- "그게 아니다! 패러사이트는!"
- 카노프스는 그 말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 자신을 공격하는 고에너지 레이저와 자유로운 곡선을 그리며
- 날아오는 새로운 토머호크를 튕겨내기 위해.
- 격납고 안에 갑자기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오늘 쓸 예정이었을 터인
- 실험용 차량이 급발진해서 리나와 베가를 향해 돌진해온다.
- 좌우로 갈라져 리나와 베가가 뛰었다.
- 리나 옆에 급정지한 차의 오른쪽 앞문이 기세 좋게 열렸다.
- "총대장님, 타세요!"
- "하디!?"
- 조수석에서 부른 건 스타즈 제1부대 이등성급 대원 랄프
- 하디 미르파크 소위였다.
- 리나는 반사적으로 그 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 미르파크가 운전 콘솔째 왼쪽으로 피했다. 이 실험용 차량은
- USNA처럼 왼쪽 운전석인 나라만이 아니라 영국처럼
- 오른쪽 운전석인 나라에서도 쓸 수 있도록 운전 콘솔을
- 좌우로 움직일 수 있고, 앞좌석도 중간에 나누는 부분이 없고
- 쭉 연결되어 있다. 또한 페달도 없다.
- 리나가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미르파크가 차를 발진시켰다.
- "총대장님, 일단 기지 밖으로 탈출합니다!"
- "네?"
- 당연히 리나에겐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 "카노프스 대장의 지시입니다!"
- 하지만 그녀가 가장 신뢰하는 카노프스의 의견이라는 걸 알자
- 리나는 반론이 막혀버렸다.
- 또한 반론할 여유도 없었다.
- 이 차는 픽업트럭 형태이다.
- 그 짐칸에서 쿵 하고 무거운 소리가 들렸다.
- "멈춰!"
- 자신을 고속 이동시키는 마법이 특기인 데네브가 유사 순간이동으로
- 짐칸에 올라탄 거다.
- "안 멈춘다고."
- 하지만 곧 데네브는 차에서 떨어지게 됐다.
- 짐칸에 몰래 탑승한 젊은 남자가 그녀에게 달려들어 함께 굴러 떨어졌다.
- "랄프!?"
- 데네브를 길동무 삼아 차량 밖으로 굴러떨어진 건, 미르파크와 똑같이
- 스타즈 제1부대 이등성급 대원 랄프 알골 소위였다.
- "여긴 알골 소위에게 맡기죠! 흔들릴 테니까 조심해주세요!"
- 미르파크의 말에 리나가 서둘러 시트벨트를 착용했다.
- 픽업트럭이 날았다.
- 기지 펜스를 넘어 착지. 그대로 앨버커키를 향해 달렸다.
- "하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 기지가 보이지 않게 되자 한숨 돌린 거겠지. 리나는 운전 중인
- 미르파크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 "정확한 시간은 모릅니다만 다섯 시 전후로 제3부대 아르크투루스 대위와
- 레굴루스 중위가 주모자인 반란이 발생했습니다. 그 밖에 현시점에서
- 반란에 가담했다고 판단된 대원은 제4부대의 베가 대위, 스피카 중위,
- 데네브 소위, 제6부대의 리겔 대위, 벨라트릭스 소위, 알닐람 소위,
- 제11부대의 안타레스 소령, 사르가스 중위입니다."
- "잠깐 기다려주세요! 샤르가 제6부대의 란디 일행이 패러사이트에게
- 빙의됐다고 했습니다만, 거짓말이죠!?"
- "……유감스럽게도 사실이라고 추정됩니다. 제6부대의 세 사람만이 아닙니다.
- 제3부대의 두 사람과 제11부대의 두 사람도 패러사이트가 됐을 거라고
- 추측됩니다."
- "그럴 리가!?"
- "우리에게 이 정보를 준 건, 제11부대의 샤우라 소위입니다.
- 그녀가 안타레스 소령과 사르가스 중위의 이상을 깨닫고
- 카노프스 대장에게 지시를 부탁했습니다."
- 제11부대는 전부 정신간섭계 마법이 특기이지만, 샤우라 소위는
- 프시온 파동에 대한 감수성과 정신간섭계 마법에 대한 방어가
- 특히 뛰어났다. 그녀가 패러사이트에게 침식당하지 않고
- 가장 먼저 그 암약을 탐지한 건, 설득력이 있었다.
- "그, 총대장님은 방에 안 계셨던 모양이라."
- 미르파크가 변명처럼 덧붙인다. 리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기보다
- 눈치 채지 못했지만, 총대장인 리나가 아니라 제1부대 대장인
- 카노프스에게 상담하러 간 걸, 리나가 불쾌하게 생각한 게 아닐까 라고
- 착각한 거다.
- "저랑 알골 소위가 긴급 소집을 받아 대장의 방에 모인 직후,
- 안타레스 소령의 『히프노스 가든』이 발동. 우리는
- 샤우라 소위의 『루나 이클립스』으로 재난을 피했습니다만,
- 우리 이외의 숙소 일대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무력화됐습니다."
- 안타레스가 사용한 『히프노스 가든』은 영역 안의 인간을 재우는
- 계통 외 마법. 광범위에 흩어져 있는 불특정 다수가 대상인 만큼
- 강제력이 그렇게 높지 않다. 예를 들면 전투로 인해 흥분 상태인 병사를
- 재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 대신에 수면 중인 사람이 각성하지 못하도록
- 만들거나, 막 잠에서 깬 사람, 피로가 축적된 사람을 전부 다 재울 때는
- 높은 효과를 발휘한다.
- 반면에 샤우라 소위가 사용한 『루나 이클립스』는 아메리카에서
- 『루나 매직』이라고 불리는 전투용 정신계 마법에 의한 공격을
- 정신 레벨에서 표적을 놓치게 만들어 무력화시키는 실드 마법이다.
- 그녀가 패러사이트의 동화를 피한 것도 반사적으로 전개한
- 『루나 이클립스』 덕분이었다.
- "……앞으로 어떻게 할 겁니까?"
- 리나의 말이 불안감으로 떨리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 항상 스타즈의 백업을 받고 활동해왔다. 현재 상황에서
- 이를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장비도 돈도 없는 상태에서
- 항성급 마법사를 몇 명이나 상대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 리나의 목소리가 들린 건 아니겠지만, 마치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 미르파크의 가슴 포켓에서 메일 착신음이 울렸다. 미르파크는
- 차를 자동 운전으로 바꾸고 포켓에서 단말을 꺼냈다.
- 그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이는 건, 암호를 해제하기 위해서인가.
- 상당히 복잡한 암호로 짠 모양이었다.
- 간신히 다 해독한 메시지를 미르파크가 굳은 표정으로 읽었다.
- 그는 다 읽은 단말을 리나에게 내밀었다.
- "총대장님, 밸런스 대령님의 지시입니다."
- 리나가 단말을 받고, 미르파크는 다시 운전 레버를 쥐었다.
- "대장님은 총대장님을 향한 제3부대의 습격을 안 직후,
- 밸런스 대령님에게 향후 방침을 요구했습니다."
- 리나가 꿀꺽 숨을 들이삼키고 미르파크의 단말을 내려다봤다.
- 밸런스의 메일을 읽으면서 리나는 경악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일본으로!?"
- 밸런스의 지시는 일본으로 탈출해 요츠바가의 보호를 받으라는 거였다.
- "……어째서 굳이……."
- 어째서 굳이 연합국에서 벗어나 일본까지 도망쳐야만 하는 거냐는
- 리나의 의문을, 미르파크는 정확하게 이해했다.
- "아마도 밸런스 대령님은 총대장님을 표적으로 삼은 음모를
- 우려한 거겠지요. 전략급마법사인 총대장님을 암살하는
- 그런 어리석은 짓은 생각하지 않겠지만, 총대장님을 세뇌해서
-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하는 세력이 군 내부에서
- 암약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미르파크의 추측에 리나는 초대형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스』
- 내부에서 '목격'한 군.기.밀.을 떠올렸다.
- ─강제로 마법을 사용하고 발전기의 연료가 되어버린 마법사들.
- ─나를 그들처럼 군사 시스템의 부품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 확실히 현재 세계정세에서 『헤비 메탈 버스트』을 잃으면
- 국가의 자살 행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에 가까운 어리석은 행위다.
- 하지만 리나를 세뇌해서 사용하기 편리한 장기짝으로 바꾸는 건,
- 전력 부분에서만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는 아니다…….
- "하지만 그래선 탈주가 되어버리는 게……."
- "그 점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총대장님, 첨부 파일을 봐주세요."
- 그 말을 듣고 리나는 서둘러 단말을 조작했다. 첨부 파일도
- 본문과 함께 암호화되어 있었다. 리나가 연 파일은,
- "명령서!?"
- 재일(在日) 무관의 비밀 감사를 위해 일본으로 잠입하라는 내용의
- 명령서였다.
- "대령님은 자신의 권한이 먹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 편의를 봐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 밸런스 대령은 군인 부정행위를 단속하기 위한 감사 부문의
- 넘버 투다. 일본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근무하는 무관의
- 조사를 위해 리나를 일본으로 파견한다는 건, 지휘계통 부분에서
- 문제가 많이 있지만 아슬아슬하게 밸런스의 권한 안이라고 할 수 있겠지.
- "그 단말은 그대로 가져가세요. 제 개인 정보는 들어있지 않으니
- 걱정 마시길. 패스워드는 제1부대의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리나에겐 총대장으로서 각 부대의 정보 문서를 검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 하지만 그 권한은 스타즈 내부에서 거의 무시됐다. 리나도 이를
- 문제 삼지 않았다. 다만 카노프스와 제5부대의 카펠라 소령만은
- 패스워드를 변경할 때마다 성실하게 리나에게 보고했다.
- "그리고 잠입 임무용 여권과 신용카드, 화폐카드, 각종 장비를
- 뒷좌석 캐리어에 넣어뒀습니다. 도항을 고려해 무장 디바이스는
- 넣지 않았습니다. 또한 총대장님의 옷을 가져올 시간이 없었으므로
- 공항에서 구입해주세요. 항공권은 밸런스 대령님이 준비해주셨습니다."
- 미르파크의 말에 리나가 다시 한 번 단말을 본다. 확실히
- 거기엔 티켓 데이터가 전송되어 있었다.
- "이대로 앨버커키 공항으로 갑니다. 대장님이 제압하고 있으므로
- 추적은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만일에 대비해 대(對) 탐지 실드를
- 사용할 테니, 총대장님은 마법사용을 자제해주세요."
- "……알겠습니다."
- 미르파크의 대 탐지 실드 마법은 스타즈에서 가장 뛰어나다.
- 추적 미션에서 가장 뛰어난 제6부대 『오리온 팀』도 발견하기
- 힘들겠지. 리나는 얌전히 미르파크의 말에 따랐다.
- ◇ ◇ ◇
- 리나가 무사히 일본에 도착한 건, 일본 시간으로 6월 19일 오후였다.
- 그녀는 바로 밸런스가 가르쳐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
- 마야의 명령을 받아 쿠로바가에게 보호됐다.
- 그 쯤 스타즈 본부 기지에선 카노프스와 알골 그리고 샤우라가
- 약식 재판 결과 미드웨이 섬의 마법사용 군사형무소로 보내지는 게
- 결정됐다.
- 또한 미르파크는 기지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서해안 방면으로
- 도주했다.
- [8]
- USNA에서 스타즈 반란 소동이 일어났을 때, 신소련에선
- 베조브라조프 전용 대형 CAD 『오르간』의 수리가 급속도로
- 진행됐다.
- "진척은 어떻습니까?"
- "박사님!"
- 베조브라조프가 말을 건 작업 책임자가 놀란 표정으로 돌아본다.
- 그 남자가 놀란 건, 베조브라조프에겐 귀족 학자 같은 느낌이 있으며
- 기름 냄새 나는 수리 현장에 오는 일이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다.
- "수리는 오늘 중으로 끝납니다. 박사님께서 내일 테스트를 해주셨으면 합니다만."
- 또한 작업 책임자가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여 딱딱하게 말한 건,
- 베조브라조프가 정부 고관, 군의 장관급의 중요인물이며
- 이에 걸맞은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 "좋습니다. 몇 시 정도에 오면 될까요?"
- 베조브라조프가 일.반.인.에게 그 권력을 휘두르는 일은 없다.
- 딱히 직책이 없는 기술자에게 오만한 태도를 취한 적은 없다.
- 하지만 그건 그가 인격자라서 그렇다기보다 아.랫.사.람.들.에.게.
-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 "이른 아침부터 언제든 가능합니다!"
- "그렇습니까. 그럼…… 9시 반에."
- "알겠습니다!"
- 책임자만이 아니라 수리를 담당한 기술자 전원에게 배웅을 받고
- 베조브라조프는 정비 공장에서 나갔다.
- 그가 드물게도 공장에 방문한 건, 무엇보다도 시급히
- 『오르간』을 사용한 작전을 실행해야만 하기 때문이지만,
- 그가 타츠야로 인해 강한 굴욕감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 분명히 성공할 거라고 자신했던 『투만 봄바』에 의한 기습 공격.
- 하지만 『투만 봄바』 전용 생체 증폭기인 『이고르크』까지
-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바 타츠야 암살에 실패했다.
- 그것만이 아니라 사용한 두 『이고르크』도 사라지고
- 『오르간』도 사용 불가능하게 됐다. 『이고르크』를
- 사용하지 않았다면 베조브라조프 본인이 반격을 당했겠지.
- 베조브라조프는 지금까지 전략급마법사의 임무를 실패한 적이 없었다.
- 베링 해협을 사이에 두고 USNA와 맞붙은, 소규모이지만 격렬한 전투에서도
- 선대 스타즈 총대장 윌리엄 시리우스를 『투만 봄바』로 죽였다.
- 그런 자신이 임무에 실패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패배를 당했다.
- 베조브라조프는 그 굴욕을 복수하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 작전 재개를 원했던 거다.
- ◇ ◇ ◇
- 6월 20일 목요일.
- 도쿄에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국립마법대학 부속 제1고교가 있는
- 하치오지 주변도 부슬부슬 계속 내리는 비로 거리가 젖어 있다.
- 울적한 건 우기니까 어쩔 수 없다. 다른 학생들은 태평하게
- 그렇게 생각했지만, 타츠야는 아침부터 경계심 맥스로 지내고 있었다.
- 옆자리의 미즈키가 수상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타츠야는
- 적당히 말을 얼버무릴 뿐 긴장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 계절은 우기이지만 올해의 도쿄는 예년에 비해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 한 달의 절반은 비가 자주 왔지만, 후반에 들어서 아침부터 계속
- 비가 내리는 건 오랜만이었다.
- 단속적이지만 비가 내리고 있으니까 가뭄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 다만 우기치고는 비 오는 날이 적었다.
- 타츠야는 그게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있는 곳에
- 비가 내리지 않는 건 환영할 일이었다. 애초에 비를 좋아하는 성격도
- 아니었지만, 올해는 특히 환영할 수 없었다.
- 그런 기분으로 바뀐 건, 이즈에서 도쿄로 돌아온 뒤부터다.
- 하루 종일 약한 비가 계속 내리고 바람이 안 부는 날씨는
- 『투만 봄바』에게 최고의 기상 조건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거의 무풍.
- 베조브라조프가 공격을 한다면 오늘이라고 타츠야는 추측했다.
- 베조브라조프는 포기하지 않았다.
- 타츠야는 이를 확신했다. 11일 전에 타츠야가 없앤 건
- 베조브라조프가 아니었다. 하지만 관계가 없진 않다고
- 타츠야는 생각했다.
- 투만 봄바 사용자가 베조브라조프 한 사람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 신소련은 베조브라조프의 스페어를 생.산.했을지도 모른다.
- 공표된 전략급마법사 『13사도』만 봐도 『리바이어선』 사용자는
- USNA에 두 명, 『오존 서클』 사용자는 영국과 독일에 한 명씩,
- 『아그니 다운버스트』은 인도 페르시아 연방과 타이에 한 명씩.
- 전략급마법의 술식 공유는 드문 일이 아니다.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마법이니까
- 같은 나라의 마법사라면 더욱 적성만 맞는다면 적극적으로 습득하도록
- 조성하겠지.
- 하지만 그래도 투만 봄바의 발동에 베조브라조프가 관여했다고
- 타츠야는 짐작했다.
- 그 증거는 이즈 고원의 저격으로 분해한 두 명의 마법사의
- 육체 정보다.
- 그 두 사람의 성.분.은 완전히 똑같았다. 동일 유전자로
- 완전히 똑같이 만든 인체.
- 일란성 쌍둥이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타츠야는 '클론이겠지'라고
- 추측했다. 그 두 사람의 정보 구조에는─자연물의 대의어를 인공물,
- 인공적의 유의어를 부자연스러움으로 정의한다면─조정체 이상으로
- 부자연스러운 비틀림이 있었다.
- 그 때 자신에게 『투만 봄바』를 쏜 건 베조브라조프의 지시에
- 기초한 것이며, 그 두 사람의 여성 마법사는 베조브라조프의 도구에
- 불과하다. 그게 타츠야의 추리였다.
- 레이몬드 클러크는 타츠야가 『머티어리얼 버스트』의 술자라는 걸
- 알고 있다. 분명 이 정보도 신소련에게 전해졌겠지.
- 신소련은 타츠야의 전략급마법의 완벽한 무력화 = 전략급마법
- 『머티어리얼 버스트』의 술자인 타츠야를 처단하기로 결단했다.
- 이즈 별장을 공격한 건 그 결과다. 타츠야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 이 사실은 오늘 아침 미유키에게도 전달했다.
- 다시 1고 시스템에 접속한 픽시에게도 최대한 경계하라고 명령했다.
- 이런 식으로 기다리던 타츠야가 공격 징후를 탐지한 건,
- 마지막 오전 수업 종료 30분 전. 3학년 E반은 단말을 이용해
- 앉아서 수업 중이었다.
- ◇ ◇ ◇
- 베조브라조프는 정오가 지나 소규모 개량을 마친 대형 CAD
- 『오르곤』의 오퍼레이터 자리에 앉았다. 일본 시간으로
- 정오 전이었지만, 신소련 연해주의 시간은 일본 표준시보다
- 1시간 빠르다. 마침 점심식사를 할 때였지만 베조브라조프는
- 식탁을 보지도 않고 작전 실시에만 몰두했다.
- 저번의 반성을 디딤돌 삼아 『오르간』은 『이고르크』가
- 분자간 결합력 중화 마법─ 베조브라조프는 타츠야의 분해마법을
- 이런 식으로 이해했다─에 의한 기화에도 데미지를 받지 않도록
- 개량했다.
- 또한 『오르간』에 연결된 신 시베리아 철도의 열차는
- 블라디보스토크의 외곽이 아니라 그 북방인 우수리스크 외곽에
- 멈췄다. 저번 지리 데이터를 기초로 공격을 받지 않도록 조심한 거다.
- 데리고 온 『이고르크』도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다섯.
- 이 작전에 남은 『이고르크』를 전부 투입했다.
- 포메이션은 발동용 외부 연산 장치로 『이고르크』를 두 개,
- 파이어월용─ 여차할 때 대신 희생될 『이고르크』를 하나,
- 예비용 『이고르크』를 두 개 준비했다.
- ─타츠야의 공격에 겁먹고 대형 CAD 『오르간』을 탑재한
- 열차 차량에서 굴러떨어지는 것처럼 도망쳤다.
- 그 기억이 베조브라조프의 자존심을 긁었다. 이 굴욕은
- 반드시 풀어야만 했다.
- 방치해둘 수록 점점 머리가 돌아버린다.
- 그게 베조브라조프의 실감이었다.
- 그리고 그 꺼림칙한 치욕을 잊기 위한 유일한 길은 시바 타츠야를
- 없애는 거다.
- 그게 베조브라조프의 의식에 자리 잡은 망집이었다.
- 콘솔에 정보부에서 온 데이터가 표시된다. 시바 타츠야는
- 현재 제1고교에 있다.
- 핵융합로 프로젝트를 기획할 정도의 두뇌를 가진 사람이
- 고등학교에서 뭘 배우는 건지 베조브라조프는 전혀 모르겠다.
-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학습적인 의미는 별개로 치고, 제1고교 내부에 있는 건
- 성가셨다. 튼튼한 철골 콘크리트 건물은 충격파로 파괴하기 어렵다.
- 구세기의 콘크리트가 아니라 제3차 세계대전 중에 개발된
- 고강도의 건물이니 더욱 그렇다. 창유리를 깬다고 해도
- 치명상은 안 되겠지.
- 하지만 『투만 봄바』는 이동 중의 상대를 노리기엔 적합하지 않다.
- 저택 빌딩은 위성사진으로 추측하건데 학교 이상으로 튼튼하다.
- ─충격파로 창문을 파괴하고 안개를 침입시켜 내부에서 폭파한다.
- 베조브라조프는 미리 준비한 작전안 중, 이 플랜을 스토리지에서
- 불러냈다. 베조브라조프가 앉은 의자가 『오르간』으로 빨려들어간다.
- 그는 『이고르크』를 조종해 파괴와 살육의 곡을 연주하는
- 『디리죠르』로서 지휘봉을 휘두르는 대신에 콘솔 스위치를 조작했다.
- ◇ ◇ ◇
- '마스터. 마법 발동 징조를 탐지했습니다. 발동점은 1고의
- 2백 미터 위입니다.'
- 픽시가 능동 텔레파시로 경고한다.
- 타츠야는 그 시점에 이미 마법식을 복사해서 시간차로 발동되는
- 마법 기술 『체인 캐스트』의 발동을 확실히 포착했다.
- 일어나 품에서 대형 권총 형태의 CAD를 뽑았다.
- 지금은 아직 수업 중.
-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며 술렁거리는 클래스메이트는 보지도 않고,
- 타츠야는 천장을 향해 CAD 실버 혼 커스텀 『트라이던트』를
- 똑바로 들어올렸다.
- 그의 동작에 일말의 정체도 없었다.
- 조준이 정확히 고정된 순간, 그는 『트라이던트』의 방아쇠를 당겼다.
- ◇ ◇ ◇
- 대형 CAD 『오르간』 내부에 시끄러운 경보가 울린다.
- 콘솔에 표시된 경고 메시지는 발동용 『이고르크』가
- 마법식 전개 도중, 1초도 되지 않는 제로 콤마 몇 초 사이에
- 없어졌다는 것이다.
- 마법식은 마법사가 구축하는 것. 마법연산영역에서 다 짰다 해도
- 그걸 목표 좌표로 고정하지 못하면 마법은 발동하지 않는다.
- 마법식을 투사해 마법식을 고정하는 그 짧은 순간에 마법사 그 자체가
- 사라져버렸다면, 마법은 발동되지 못한 채 흩어진다.
- "『이고르크』를 예비품.으로 교환. 서둘러."
- 베조브라조프는 『오르간』 내부에 머무른 채 외부 작업원에게 명령했다.
- 이번에는 도망칠 수 없었다.
- 그는 육체 소실이라는 불길한 죽음의 그림자에 겁을 먹으면서,
- 교환 작업 완료를 기다렸다.
- ◇ ◇ ◇
- 『투만 봄바』의 발동을 저지하는 건 어렵다.
-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체인 캐스트』로 발동되는 『투만 봄바』를
- 『그램 디스퍼전』으로 무효화하는 건 어렵다.
- 이것이 두 번에 걸친 대결로 타츠야가 이끌어낸 결론이었다.
- 『체인 캐스트』에 의해 전개되는 마법식은 하나하나가
- 조금씩 다르다. 그 차이는 좌표가 떨어져 있을수록 커진다.
- 그룹으로 묶어서 분해하려고 해도 전부 다 한 번에 없앨 수 없다.
- 그렇다고 해서 『그램 디스퍼전』 연사로 대응하려고 해도
- 도중에 『투만 봄바』가 발동하여 강력한 폭발에 노출되겠지.
- 그렇다면 마법 발동을 근원부터 뿌리 뽑을 수밖에 없다.
- 그게 타츠야의 작전이었다.
- 저번 전투에서 『투만 봄바』 발동원을 역탐지하는 노하우를 익혔다.
- 『체인 캐스트』가 시작된 순간, 그 마법적 경로를 거슬러 올라가
- 술자를 삼연속 분해 마법 『트라이던트』로 분해한다.
- 『체인 캐스트』는 마법식을 광범위하게 복사 고정한 다음,
- 그 모든 마법식을 동시에 작용시키는 마법이다. 마법식
- 광역 부설이라는 단계를 거치는 만큼 단순히 한 개체를
- 분해하는 『트라이던트』 쪽이 더욱 빠르다. 대상이
- 두 개여도 그 정도는 오차 범위 안이다.
- 이건 도박이 아니었다. 명확한 승산에 근거한, 카운터 공격에 의한
- 방어였다.
- ◇ ◇ ◇
- "『이고르크』 교환 완료."
- 작업원의 보고에 대답하지도 않고 베조브라조프는 콘솔의 위성영상을
- 응시했다. 방금 전의 『투만 봄바』가 미발동으로 끝났기에,
- 좌표 상공의 대기 상태에 변화는 없다. 여전히 두꺼운 구름에
- 비가 내리며, 바람은 거의 불지 않는다. 재공격은 당장 가능하다.
- 저번 전투에서 두 『이고르크』를 없앤 다음 분자간 결합력을
- 중화하는 마법의 제2파는 오지 않았다.
- 그 현상을 시뮬레이션 한 결과 『오르간』의 연산 능력으로도
- 발동까지 5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복잡한 마법이었다고
- 추정된다.
- 휴대용 CAD만 갖고 있는 상태에서 연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 가령 가능하다고 해도 10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베조브라조프는
- 그렇게 계산했다.
- 그렇다면 『투만 봄바』의 제2사가 먼저 발동된다. 만일에 대비해
- 제3사가 가능하도록 『이고르크』를 하나씩 사용하도록 설정을 변경하고,
- 베조브라조프는 이번에야말로 시바 타츠야를 없애기 위해
- 자신의 마법연산영역에 『오르간』이 짠 마법식을 집어넣었다.
- ◇ ◇ ◇
- '『투만 봄바』의 발동 지점을 확인.'
- 타츠야는 자신이 카운터 공격으로 쏜 『트라이던트』의 '기억'을 바탕으로
- 1고 위로 투사된 『투만 봄바』의 경로를 의식 속에서 재현했다.
- '대상을 술자가 접속한 CAD로 변경.'
- 마법 발동 중, 마법사와 CAD 사이엔 밀접한 관계성이 형성된다.
- 정.보.적.으로 CAD는 마법사의 일부가 되며, 마법사는 CAD와 함께
- '마법'이라는 시스템의 부품이 된다. 그건 마법사에게 마법을 강.요.하.는.
- 대형 CAD라 해도 똑같다.
- 타츠야는 『오르간』을 조준했다.
- '전술 목표, 화물차량형 CAD의 완전 파괴.'
- 타츠야가 '보'고 있는 CAD 안에서 마법식 구축 프로세스가
- 시작되려고 했다.
- 하지만 아직 기동식 읽기 단계다. 상당히 복잡한 기동식인 모양이라,
- 1초 이상이 경과해도 읽기가 끝나지 않았다.
- 타츠야의 분해 마법도 원래는 그것과 동급, 혹은 그 이상 준비 시간이
- 필요하다. 하지만 타츠야의 마법연산영역은 『분해』와 『재성』에
- 특화되어 있다. 『분해』와 『재성』용 서브시스템이 미리
- 준비되어 있어서, 거기에 추가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만으로
- 극히 복잡한 마법을 발동할 수 있게 된다.
- 따라서 '물질을 원소 레벨로 분해한다', '정보체를 사이온 레벨로
- 분해한다'라는 복잡한 처리를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실행할 수 있다.
- '『그램 디스퍼전』', '미스트 디스퍼전' 발동.'
- 대형 CAD 주위에 발생한 사상 간섭력의 역장을 분해하고
- 『오르간』을 원소 레벨로 분해한다. 천 킬로미터를 넘는 거리를 두고도
- 순식간에 두 종류의 마법을 연속 발동할 수 있는 것도,
- 그가 이 마법, 『분해』를 사용하기 위한 시스템을
- 다른 마법 기능을 희생해서 정신 안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정보체 분해 마법과 물질 분해 마법이 연속적으로 발동했다.
- ◇ ◇ ◇
- 베조브라조프는 처음에 지진이 발생한 거라고 생각했다.
- 눈앞의 광경이 이중으로 번진다.
- 하지만 몸은 흔들림을 느끼지 못했다.
- 그 이상의 착각을 느낄 여유는 없었다.
- 낙하 감각.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 자신이 앉아 있었던 의자가 갑자기 자신의 체중을 지탱하는 기능을 잃었다.
- 의자만이 아니다. 콘솔도 바닥도 벽도 전부 다 형태를 잃었다.
- 바닥이 빠져나간다.
- 천장이 떨어진다.
- 벽이 무너진다.
- 모든 게 모래가 된다. 먼지가 된다.
- 지면에 강하게 부딪치고 베조브라조프가 신음소리를 냈다.
- 곧장 일어나지 못할 정도의 고통이다.
- 데미지는 몸만이 아니었다. 외부적 고통만이 아니었다.
- 머리가 안쪽에서 무척 아팠다.
-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 그게 CAD 접속이 강제적으로 끊어진 것으로 인한 쇼크라는 것도
- 깨닫지 못할 정도의 두통이다.
- 그래도 머리에 쓴 모래를 성가시다고 느꼈다.
- 고생해서 몸을 일으키고, 얼굴의 모래를 턴다. 지금의 베조브라조프에게
- 그 모래가 『오르간』의 잔해라는 걸 깨달을 사고 능력은 없었다.
- 눈앞에 우수리스크 광경이 펼쳐진다. 자신이 밖으로 내팽개쳐졌다는 걸,
- 그 광경을 보고 간신히 인식한다.
- 베조브라조프는 엄청난 두통 속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 세 『이고르크』의 심장이 CAD 접속이 강제 절단된 쇼크로
- 멈췄다.
- 그 소동도 베조브라조프에겐 들리지 않았다.
- [9]
- 제1고교를 향한 마법 공격은 미수였지만 확실히 관측됐다.
- 국립마법대학 부속 고등학교 중에서도 가장 설비가 갖춰진 게 1고다.
- 마법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충실하게 갖춰진 학교 주위를 관측하는 기기들은
- 국방군의 주요기지에 필적했다.
- 1고의 관측 기기 무리는 학교 위에 산수소 가스를 형성해 폭발시키는
- 마법이 발동될 뻔 했다는 것과 그 마법이 신소비에트 연방 연해주에서
- 온 것이라는 걸, 객관적인 데이터와 함께 제시했다.
- 그 데이터는 마법대학을 경유해 정부로 넘어갔다.
- 외무대신은 신소련에게 미수이지만 침략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 국제 사회에 신소련에 대한 제재를 호소했다.
- 토도 아오바의 뜻을 받은 산업대신의 코멘트는 더욱 파고든 것이었다.
- 어디까지나 데이터에 기초한 추측이라고 양해를 구하면서,
- 이번 미발동 공격은 신소련의 『13사도』 베조브라조프의 짓이라고
- 발표했다. 거기다 베조브라조프가 협력하고 있는 디오네 계획의
- 평화적 성격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생겼다고 단언했다.
- ◇ ◇ ◇
- "생각지도 못한 부산물이군……."
- 타츠야는 아침식사 자리에서 어제자 산업대신의 기자 회견 뉴스를 보면서
-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어라, 오라버니께선 거기까지 계산하셨던 게 아닙니까?"
- 건너편 자리에서 놀리는 느낌이 섞인 목소리가 날아온다.
- 타츠야는 미소를 짓고 있는 미유키에게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 "이것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투만 봄바』를 요격한 건
- 우연이라고. 오히려 낮에 공격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했다."
- "오라버니라 해도 계산 오류는 있군요."
- "당연하다."
- 계산 오류라고 하니, 미나미의 입원은 심각한 계산 오류였다.
- 타츠야는 이를 미유키가 깨닫지 못하도록 후회를 의식 속으로 밀어 넣고
- 계속 웃었다.
- 뉴스 화면이 바뀐다. 타츠야와 미유키는 멈춘 식사를 재개했다.
- "하지만 이걸로 여론 분위기는 제법 달라지지 않을까요."
- 다만 미유키의 관심사는 변하지 않았다.
- "일본 국내에서는 디오네 계획에 대한 역풍을 기대할 수 있겠지."
- 타츠야 스스로도 심술궂은 말을 했다는 자각이 있었지만,
- 숨길 생각은 없었다.
- 애초에 디오네 계획 자체가 음모의 산물이다. 여론 조작으로
- 자신을 우주로 추방하려고 하는 꿍꿍이를 여론 조작으로 격파하는 것에
- 죄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적어도 타츠야는 그럴 필요성은 못 느꼈다.
- "하지만 오라버니. 상황이 변해도 ESCAPES 계획은 이대로
- 진행하실 거지요?"
- "당연하다. 원래 ESCAPES 계획은 디오네 계획에 대항하기
-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이밍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니까.
- 진심을 말하자면 좀 더 준비 기간이 필요했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 멈출 순 없어."
- "네. 오라버니께서 나아가는 길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타츠야가 세계 정복을 획책해도 미유키는 같은 말을 했을 게 분명하지만,
- 지금은 의미 없는 가정이다. 타츠야가 목표로 삼은 건, 어디까지나
- 마법의 평화적 이용이니까.
- "그러고 보니 이모님께서 한 번 미야키시마에 시찰하러 가라고
- 권하시지 않았습니까?"
- "그래. 나도 신경 쓰인다. 이모님이 미야키시마에 예정한 연구 시설을
- ESCAPES 계획 추진을 위한 시설로 변경해줬다는 건,
- 지금도 일이 너무 잘 풀렸다고 생각하지만."
- "이모님은 분명 요츠바가의 이익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요."
- "그렇다면 좋겠지만…… 잘 먹었어."
- 타츠야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 "커피를 준비할게요."
- 자신의 접시에 아직 한 입 정도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미유키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
- 타츠야와 미유키가 아침식사 자리에서 미야키시마 얘기를 한 건,
- 단순한 얘기의 흐름에 의한 것이며, 딱히 예감이 있었던 건 아니다.
- 하지만 저녁식사 전에 온 손님이 꺼낸 얘기에, 타츠야는
- 아침에 한 잡담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 "하, 하이……."
- 겸연쩍은 표정으로 손을 들며 타츠야와 미유키에게 그렇게 인사한 건,
- "리나!?"
- 미유키가 말한 대로 리나, 안젤리나 쿠도 실즈였다.
- "타츠야 씨, 미유키 언니,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 "아니, 아직 저녁식사 전이라 상관은 없다만……."
- 타츠야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야코에게 대답하면서
- 그의 의식도 리나로 쏠려 있다.
- "어쨌든 현관에서 서서 얘기도 뭣하니 안으로 들어와."
- "그렇네요. 리나, 아야코 짱, 들어와요."
- 타츠야에 이어 미유키가 두 사람을 안으로 초대했다.
- "네. 실즈 씨도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어떤지?"
- "아, 네. 그…… 실례하겠습니다."
- 아야코가 익숙한 느낌으로, 리나는 주눅 든 표정으로 문을 붙잡은
- 미유키의 옆을 지나 타츠야의 등을 따라갔다.
- "……반란, 그리고 아메리카 탈출인가."
- "리나, 큰일이었구나."
- 사정은 아야코가 설명했다. 믿기 어려운 얘기였지만 그녀가
- 타츠야를 속일 이유는 없다. 타츠야와 미유키는 이를 사실이라고
- 받아들였다.
- "실즈 씨, 아니 시리우스 소령은 일단 우리 쿠로바가에서
-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만, 당주님은 소령이 숨어 있을 곳으로
- 미야키시마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 "미야키시마에 리나가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건가?"
- "그 점은 문제없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충분하다고 생각해도
- 시리우스 소령에겐 불충분할지도 모릅니다."
- "……나 그렇게 사치 부리는 사람은 아닌데."
- 리나가 작은 목소리로 항의했다.
- "그러니까 미리 소령께서 미야키시마를 살펴보도록 할 겁니다."
- 하지만 아야코는 리나의 말을 무시했다.
- "이모님이 그렇게 말하신 거야?"
- 미유키도 리나의 항의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 리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위축된다.
- 타츠야는 이를 보고 작게 쓴웃음을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네. 그리고 소령을 미야키시마로 안내하는 역할을 타츠야 씨에게
- 맡긴다고."
- "타츠야 님에게?"
- 미유키는 생각도 못한 얘기 흐름에 눈을 크게 떴다.
- "과연."
- 하지만 타츠야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리나의 도주가 위장이며 진짜 목적이 요츠바가 내부에서 일으키는
- 파괴공작일 경우, 리나를 확실하게 제압해야만 할 걸 생각하면,
- 안내 역할로 같은 전략급마법사인 내가 적임이라고 판단한 거겠지."
- 시선으로 물어보는 미유키에게 타츠야는 청산유수로 대답했다.
- "그런 짓 안 한다고!"
- 리나가 일어섰다.
- "알고 있어."
- 이번에 타츠야는 그걸 무시하지 않았다.
- "당주인 요츠바 마야도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아. 이건
- 요츠바가 내부에게 보여주는 포즈다."
- "아, 아아…… 그런 거."
- 리나도 조직 역학에서 고생을 했다. 타츠야의 설명으로
- 납득한 모양이다.
- "아야코, 오늘은 일정이 어떻게 되지?"
- "사실 하룻밤 자고 가고 싶습니다만, 당주님께서 타츠야 씨의 대답을
- 당장 가져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 "전화로는 불안한가……. 알겠어. 어.머.니.께 명령을 받아들이겠다고
- 전달해 줘."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오늘은 시간이 많이 늦었다. 미야키시마에 내일 가도록 하지.
- 미유키도 데려갈 테니까 미나미의 가드를 한 층 강화하도록
- 하나비시 씨에게 전달해 줘."
- 타츠야가 아야코에게 전언을 부탁한 상대는 효고가 아니라
- 그의 아버지인 하나비시 집사였다.
- "그 건도 잘 알겠습니다."
- 타츠야는 아야코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미유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미유키, 미안하지만 리나의 침실을 준비해주지 않겠어?"
- "알겠습니다."
- "자, 잠깐……."
- 리나 본인의 의사를 배제하고 점점 예정이 진행됐다.
- "그럼 타츠야 씨, 미유키 언니, 황망하기 그지없습니다만
- 오늘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 "그래. 다음에 천천히 얘기할 시간을 만들도록 하지."
- "부디 그래주세요. 후미야도 기뻐할 겁니다."
- 타츠야의 말에 아야코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 약혼자라는 입장에서 오는 여유인지 미유키도 미소를 유지했다.
- "아야코 짱, 리나를 데려와줘서 고마워."
- 아야코를 배웅하기 위해 그녀와 함께 거실에서 나간 미유키가
- 복도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계속 열려 있는 문 사이로 들려왔다.
- "천만에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 현관문이 닫힌다.
- 미유키가 돌아오자,
- "리나, 자세한 얘기를 들려주지 않겠어?"
- 타츠야가 리나에게 일방적인 요구를 들이밀었다.
- "내 쪽에서도 부탁할게. 정말로 패러사이트가 또 출현한 거야?"
- 절대로 흥미 때문이 아닌 두 사람의 진지한 표정에 리나는
-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이스케이프편 <하>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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