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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werslaveofkys

주니퍼 1

Dec 1st,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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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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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군가가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당신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죽을 만큼 피곤했지만, 그래도 깨어났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뻤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젯밤에는 지독한 악몽을 꾸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꿈인지는 자세히 기억 안 나지만 어쨌든 지독했었다.
  2.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거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당신은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6:20분 밖에 안 됐다. 게다가 어젯밤 읽었던 책이 워낙 흥미진진한 나머지 당신은 어젯밤의 절반 정도를 뜬눈으로 지센 까닭에, 갑자기 당신은 노크 따윈 무시하고 잠을 자고픈 충동에 휩싸였다.
  3. 당신을 짜증을 확 하고 내고는, 누가 문을 저리 시끄럽게 두드리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절레절레 잠기운을 다 뿌리치고, 일어나 앉아 손과 발을 쭉 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더욱 더 격해져서, 침대에서 급하게 튀어나왔다.
  4. "나가요!"
  5. 겨우 침대에서 나와 1층 계단으로 내려갔다. 당신이 살고 있는 아담한 집의 현관문으로 향하며 당신은 눈을 쓱쓱 비볐고, 목 뒤를 벅벅 긁었다.
  6. 문을 열자마자 페가수스 포니 하나가 보였다. 당신 어깨 정도의 크기에 연초록빛 털가죽에 옅은 오랜지색 갈기를 달고 있었고 그 갈기색과 똑같은 색의 눈동자를 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의 둔부 쪽에는 장미 덩굴이 자루부분에 감겨 있는 모종삽이 그려져 있었다.. 예전 같으면 기절초풍했을 일이였지만, 이제는 그냥저냥 익숙해졌다.
  7.  
  8. "일어났냐 원숭아!"
  9. 어떤 숫말이 당신을 발굽으로 가볍게 두들기며 말했다.
  10. "아 쫌 인마! 경기 곧 시작하는데 아직도 쳐자고 있냐?"
  11. 당신의 절친 스프링 오키드이다. 당신은 가볍게 웃으며 친구의 명치 께를 주먹으로 가볍게 때렸다.
  12. "그래, 그래, 일어났으니까 앵앵거리지좀 마라. 말파리놈아."
  13. 아직도 졸음이 풀풀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당신은 대답했다. 짧은 하품으로 마침표를 찍으면서..
  14. 오키드는 당신이 이퀘스트리아에 정체 모를 이유로 떨어진 이후부터 사귀어온 절친한 친구였다. 정신을 잃고 캔털롯 외각에서 반 죽어가고 있던 당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 만약 오키드가 쓰러져 있는 당신을 발견하고 곧장 병원으로 실어다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친구와 편안한 잡담을 나눌 기회도 잡지 못한 체 당신은 땅 아래 묻혔을 것이다.
  15. 더군다나 오키드는 당신이 밥벌이를 할 직장과 이퀘스트리아에서 살 곳을 알아봐주기까지 했다. 좁고 낡은 집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편안한 거처였고, 천애고아나 다름 없는 당신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고마웠다.
  16. 특히 셀레스티아 공주는 이러한 당신의 처리를 딱하게 여겨 당신에게 이퀘스트리아 시민권을 부여했다. 이러한 고마운 처사에 당신은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진심으로 모두에게 감사하였다.
  17.  
  18. 당신의 절친한 기제류 친구가 거리쪽으로 기수를 틀며 말했다.
  19. "빨랑 가자고, 실버랑 헤리어가 기다리다가 목 빠지겠다."
  20. "잠만. 옷 좀 갈아입고."
  21. 오키드가 짜증을 내는 소리는 일단 재쳐두고, 당신은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잠깐이지만 당신은 근육이 약간 아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잠을 잤는데도 평소보다 더 피곤한 감이 들어, 어제 밤에 잠 좀 일찍 잘 것을 그랬나? 하고 당신은 막연하게 생각했다.
  22. "아니 왜 애초에 입고 나가지도 않을 옷을 왜 입고 있는거래? 말이 돼냐? 수면용, 외출용, 이런 식으로 옷 구분하는거 포니 관점에선 진짜 뭔가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골치아프게 사느니 그냥 단벌만 입고 다니던가, 아! 차라리 우리처럼 평소에도 옷 안 걸치고 살지 그러냐? 진심 처음부터 난 네 그런 부분이 이해가 안 가더라."
  23. 오키드가 당신이 잠궈놓은 방문 사이로 툴툴댄다. 당신은 투덜거리는 소리를 반주삼아 청바지와 노란색 셔츠를 갈아입었다.
  24.  
  25. 당신을 여기로 데려온 게 뭐던간에 당신이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겨버리고 이 세상에 당신을 뚝 떨궈버린 바람에, 당신은 홀랑 벗은채로 며칠간 캔털롯 거리를 누벼야 했었다. 늘 벗고 사는 게 일상인 포니들이 왜 당신이 벗고 다니는 걸 이리 쪽팔려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던 건 자명한 사실이거니와, 어쨌든 당신은 돈이 마련되는대로 캔털롯 의류점에 가 당신이 입을 옷을 주문 제작하였다.
  26. 당신은 주문 제작한 옷의 제작 공정을 다 감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캐주얼하게 그냥 저냥 입고 다닐 옷이면 족한데도, '디자이너 재량'으로 옷이 기괴한 꼴로 만들어진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옷 제작을 담당한 디자이너 포니 파인 실크는 1년 365일 입고 다니는 소위 이세계의 문명 '평상복'의 컨셉 자체에는 대단히 흥미로워하면서도, 당신이 삐까번쩍한 패션 자체에는 관심 없다는 사실을 알자 내심 실망한 눈치였다. 어쨌거나 당신과 그 디자이너는 말이 통하는 구석이 있었고. 당신은 곧 그 가게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27. "문화 차이거든? 다문화 존중 좀 해주지 그냐."
  28. 청바지 주머니에 집 열쇠를 쑤셔박으며 당신은 대답했다.
  29.  
  30. 오키드와 함께 당신은 축구 경기장으로 향했다. 원래 당신은 스포츠에 열광하는 남자는 아니었으나, 이퀘스트리아의 홈 엔터테인먼트 기기는 그렇게 발전하지 않은 까닭에, 스포츠 경기 관람밖에는 시간 때울 거리가 딱히 없었다. 처음엔 그냥저냥 봤지만 점점 진심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31. "아참. 너 아침 안 먹고 나왔지? 옛다. 바나나 먹어라."
  32. 오키드가 안장 가방에서 바나나를 꺼내 당신에게 내밀었다. 정말 저 농담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이퀘스트리아 포니들 입장에선 인간은 지능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원숭이 비슷한 취급이었으니 통하는 농담이다. 당신은 코웃음을 쳤지만, 그래도 내미는 바나나는 받아들었다. 마침 배고파 요기를 하고싶기도 했고, 기분이 약간 상했지만 바나나가 음식이라는 건 어디 안 가기 때문이었다.
  33. "그러고보니까 내가 지구에 있을 때 서커스단에서 너 닮은 이상하게 생긴 말을 본 것 같은데 말이지.."
  34.  
  35. 서커스단 조랑말.jpg
  36. 농담에는 농담으로 맞받아쳐야 하는 법이다.
  37. 당신의 친구랑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걸은지 얼마나 됐을까.. 당신도 모르게 축구 경기장 앞에 도착해 있었다. 다른 친구 두 친구들이 매표소 앞에 서 있는 게 보여 당신은 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키가 큰 황갈색 털가죽의 페가수스 암말이 분홍색 갈기를 빵모양으로 묶고 서있었으며, 그 옆에선 다부진 체격의 어스포니 숫말이 마찬가지로 서 있었는데, 노란색 털가죽에 백색 갈기를 달고 있었다.
  38.  
  39. 페가수스는 당신을 보자 마자 반갑게 어께너머로 당신을 껴안았다. 중심을 잡기 위해 날개를 펄럭거리면서 말이다. 당신도 약간 웃어준 후 다시 페가수스를 안아주었다.
  40. 포니들은 가까운 친구들 사이엔(인간 입장에선 조금 낯뜨겁다 싶을 정도의)포옹 같은 애정 표현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또한 친구들 사이엔 자기의 은밀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도 전혀 꺼리지 않는다. 이것은 당신이 이퀘스트리아에 와서 깨달은 사실 중 하나이다. 당신이 이런 걸 약간 거북스러워 했다. 오키드는 그걸 알아챘고, 아무리 당신과 친하다고 해도 필요 이상으로 당신에게 다가가진 않았다. 당신은 오키드밖에 이런 점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점이 못내 꺼림칙했다.
  41. 당신은 오키드에게 언젠가 인간의 생활 습관에 대해서 말해준 적이 있었다. 대부분 혼자만의 공간에서 여유롭게 사는 걸 좋아하고, 밀착된 관계는 어지간하면 꺼린다는 걸 말이다.
  42. "그러니까.. 인간들은 파티같은데서도 서로 붙어서 안 놀고 다들 빳빳하게 영역 침범 안 하고 서 있기만 한다는 거지? 그럼 파티가 뭔 재미야?"
  43. 당신은 혼자만의 공간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싶었으나, 오키드는 제멋대로 이해해버렸다.
  44. (생략부분)
  45. 하지만 오키드도 그 포니간의 친목 다지기 문화에서 수컷 포니의 거대하게 솟아오른 남성을 보는 건 같은 남자 입장에서는 꽤 거슬리는 문제라는 점은 납득했고, 당신과 적당할 정도로 거리를 벌려주게 되었다.
  46. 포니들이 평소에 옷을 안 입는다고 해도 꼬리로 가릴 것은 가려주긴 하지만, 그래도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보이는 것은 또 보이는 거라, 몸을 가리는게 일상화된 인간 입장에선 그걸 못 본체 하는것도 고역에 가까웠다.
  47. 뭐 그래도 지나가다가 잠깐 보는 정도라면 그래도 괜찮다 이거다. 뭐 누가 뒷꽁무니에 공주머니를 매달아놓고 다니거니 하고 생각하면 되니까 말이다. 암말 쪽도 잠깐 보는 정도면 별로 얼굴 붉힐 일도 없고 괜찮았다. 게다가 자기들도 약간씩 보이든 말든 별 신경을 안 쓰는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파티 같은, 필연적으로 서로 가까운곳에 같이 모여서 놀아야 되는 자리에서는 예의 그 은밀한 부분들을 여과 없이 다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그런 자리는 아직도 인간의 관습을 씻어내지 못한 당신에게는 아주 어색한 자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몇 년을 살아도 그런 점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으리라.
  48. (생략부분)
  49. 당신은 실버 스크립트와 해리어의 발굽에 다시 반가움의 표시로 주먹을 맞댔다.
  50. "안녕, 늦어서 미안하다."
  51. "괜춘, 경기 시간 딱 맞춰서 온게 용하다."
  52. 실버가 앞발을 살살 흔든다. 염려 말라는 의미였다.
  53. "그나저나 이번 경기, 미노타우르스가 히드라즈 완전 개발살낼거같지 않냐?"
  54. 꽤 찐한 메인하탄 억양 사투리로 실버가 말한다. 희한하게 이퀘스트리아와 지구는 비슷비슷한 구석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도시 이름이라던가 도시 구성이라던가, 문화 같은 것들 말이다.
  55. 하지만 더 이상 이질감은 들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새로 대관식을 올린 트와일라잇... 이였던가.. 어쨌든 새로운 공주가(혈연으로 공주직이 세습되지 않는다는 건 조금 특이했다고 당신은 생각했다. 뭐 이퀘스트리아 문화권에선 또 모를 일이지만) 당신한테 걸어준 이케스트리아 어(語) 학습 주문 및 통역 주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간 지금 이퀘스트리아의 도시와 마을 이름들에 별 다른 이질감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간혹 지구의 영단어에 있는 표현이 이퀘스트리아어에는 없는 경우가 있고 그래서 지구식 문법을 아직도 약간 쓸 수는 있지만, 그래도 알던 단어들이 전부 이퀘스트리아식 단어로 덮어쓰기를 당했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이 지금 영어를 하는지 이퀘스트리아어를 하는지 확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56. 간혹 나오는 당신의 외계적 표현에 어떤 포니가 딴지를 걸면 기분이 꽤 묘한게 당신도 모를 기분이었다. 어쩌면 약간 고립된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말이 통했으므로 이 땅의 기제류들과 교감할 수 있었으니 그게 또 어디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여기 와서 말(馬)과 말(語)이 안 통했을때는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57. 당신은 이제 영어가 아주 약간 섞인 이퀘스트리아어를 구사한다. 당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고, 이제 익숙해진대로 익숙해진 터라 별 신경쓰지 않는다. 친구들은 당신의 억양이 살짝 독특하덴다. 뭐 그냥저냥 독특하다고 할 뿐이지, 알아먹을 건 다 알아먹는다.
  58. "그건 니생각이고 임마! 히드라즈는 이번 시즌에서 한 번도 진적이 없는 캐 상승세거든? 메인하튼 미노타우르스가 오히려 관광당할거다!"
  59. 당신과 오키드는 발굽과 손벽을 짝 소리가 나게 맞댔다. 둘다 같은 팀 빠질을 하고 있었으니까. 실버가 막 대꾸하려던 찰나에 해리어가 실버의 말을 막고 대뜸 입을 열었다.
  60. "저기, 아저씨들? 곧 경기 시작하거든?"
  61. 말을 마치며 해리어는 막 검표소쪽을 통과했다.
  62. 당신을 위시한 남정네 셋은 서로 투쟁심 만연한 표정을 지으며 해리어를 따라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오늘 관중석은 만원이었다. 인간을 처음 보는 포니들이 당신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익숙해진 일이다. 이퀘스트리아에 인간은 당신 혼자뿐이지 않는가, 보통 포니들은 당신을 매우 재밌는 것 본다는 양 샅샅히 훑어보던가, 아니면 털 없는 키 큰 유인원을 보고 지례 겁을 먹고 도망가거나 아니면 역겨워하기 일수였다. 더 이상 당신은 그런 시선들을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인식을 바꿔나가면 될 일이고, 그 인식이 빠르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란 걸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63.  
  64. 경기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캔털롯 히드라즈가 후반전까지 우세했으나, 메인하튼이 10분을 남겨두고 동점골을 넣어 연장전까지 경기가 이어졌다. 팽팽한 경기였지만, 당신과 오키드와 해리어를 포함한 히드라즈 팬에겐 매~우 실망스럽게도, 매인하튼 미노타우르스 팀이 패널티킥에서 캔털롯 히드라즈팀을 재치고 우승해버렸다.
  65. 하지만 경기 내내 뭔가 않 좋은 기분이 들었다. 뭐라 딱 찝어말할 순 없는 거북한 기분이 들었지만, 경기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였다. 경기는 그런 기분을 무시할 정도로 매우 흥미진진했고, 그저 기분탓이겠거니 하고 당신은 넘겨버렸다.
  66. 실버가 당신이 응원하는 팀이 졌다고 유쾌하게 놀려대는 걸 들으면서, 한 명(名)을 포함한 세 기(驥)의 일행은 평소 모이면 자주 가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페가수스 포니는 물고기를 먹을 수 있는 관계로(페가수스의 신체 구조가 맹금류와 약간 유사한 면이 있어 육류나 어류같은걸 부담없이 섭취 가능하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이 행성의 발굽달린 네발달린 동물들은 지성과 이성을 겸비한 경우가 있어서, 육류는 터부시되는 경우가 많다.) 레스토랑이나 카페같은 곳에 가면 흔하게 생선 요리같은걸 팔기도 한다. 단백질 부족으로 쓰러질 일은 없으니 당신에게는 다행인 일이다.
  67. 당신이 갈 레스토랑은 숭어 튀김을 기가막히게 내놓는 곳이였다. 물론 채식주의자 포니용 매뉴도 충실해서 목에 기름칠(?)하러 온 페가수스들 말고도, 유니콘이나 어스 포니들도 많이 들리는 곳이었다.
  68. "그나저나 유동닉(anonymous)아. 니 생일이 언제냐? 친구 사이에 이것도 지금껏 안 물어보고 좀 해괴하긴 한데... 그래도 내일이 네가 이퀘스트리아에 온 지 1주년이 돼는 날인데, 니 생일파티를 한번도 안 열어준게 맘에 쫌 걸리더라."
  69. 당신은 잠시 먼산을 보고 있다가 대답했다.
  70. "나도 몰라, 이퀘스트리아 달력은 지구 달력보단 좀 장수가 많잖냐. 이퀘스트리아는 지구의 1년 365일보다는 한 해가 더 기니까, 그리고 달마다 이름 붙여놓은것도 다 다르고, 그래서 지구에서의 내 생일 날짜를 말해준들 여기서 맟춰보긴 어려울 것 같은데?"
  71. 사실이 그랬다. 이퀘스츠리아는 1년이 각각 20개의 달로 나뉘어졌고, 그 달은 각각 20일로 나뉘어졌다. 세 기 이상의 준신급 포니들이 태양이나 달을 아우르는 천체를 전부 다스리는 관계로 윤달 따윈 생기지 않았다. 왜냐면 윤달은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공전하면서 생기는 오차 때문에 생기는것이니, 그런고로 여기에 지구의 양력을 대입해봤자 별 소용 없는 것이다.
  72. 1일 동안 지구보다 더 길었다. 지구의 1일 하고도 12시간이 대충 이퀘스트리아의 1일 수준이던가, 어쨌든 이퀘스트리아 포니들은 1일을 20시간으로 정해 놓았다. 이퀘스트리아의 한시간마다 지구의 두시간이 흘러간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완전히 정확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당신은 이퀘스트리아와 지구간의 시차(?)에 적응하려고 부단히 노력을 해야만 했었다.
  73. "그럼 내일을 네 생일로 정하는 건 어때, 그러니까.. 음.. 생일 비슷한 걸 기념할 만한 날은 네가 여기에 온 날 밖에는 없잖아."
  74. 해리어의 질문에 당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75. "듣고보니 그렇네... 음... 그럼 어쩔 생각인데?"
  76. 오키드가 대신 대답했다.
  77. "선물 사주고 근사한 파티 한판 여는 거지! 어떠냐?"
  78. 웃음이 나왔다.
  79. "괜찮네 그거. 아참, 선물은 괜히 사지 말어. 솔까 지금 뭐 특별히 가지고 싶다거나 한 건 없으니.. 아참! 세렌도 내일 휴일이니까, 세렌도 데리고 온다."
  80. "거 좋네! 니 집에서 14시에 만나자. 술은 내가 사 올 테니 꽐라될 준비나 해 놓으라고!"
  81. 오키드가 앞발을 힘차게 휘두르며 말했다.
  82. 내일 약속도 잡았겠다, 당신을 포함한 한 명과 세 기의 일행은 내일을 기약하며 일일히 해어졌다. 헤어지기 전 오키드가 당신에게 괜찮냐고 물어본다. 아무래도 당신의 안색이 약간 안 좋았던걸 알아챘나보다. 당신은 그저 피곤해서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어째서 그런지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83. 당신은 오후타임으로 스파의 안마사 일을 한다. 오늘 당신 앞으로 된 예약은 만원 사례다. 스파 안마사 직장을 소개해준 것은 오키드였다. 안마사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발굽보다는 손이 더 일하기도 편했고 손님들도 호평이었거니와, 안마 기술을 배우는 데에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84. 그리고 당신의 직장 동료 세렌은 당신이 아는 중 가장 친절한 암말이었다. 같이 스파 건너에 있는 작은 집에서 살게 된 관계로, 세렌과 당신은 오키드와 당신 사이의 우정 수준으로 급속히 친해졌다. 그러니까 당신은 세렌을 여자 형제 비슷한 정도로 여기기 시작했다.
  85. 스파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 직원 전용 방으로 갔다. 보라색 털가죽의 유니콘, 세렌이 막 점심을 마친 찰나였다. 당신을 보며 환하게 미소를 짓더니 애정을 듬뿍 담아 당신의 품에 얼굴을 묻고 부빈다.. 당연히 이건 완전 플라토닉한 거다. 그 정도로 세렌은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니까 말이다.
  86.  
  87. "오늘은 좀 일찍 왔네?"
  88. 포옹을 풀면서 세렌이 말한다.
  89. "아아, 더 이상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냥 밀린 예약이나 빨리 해결할까 해서 왔지."
  90. 이렇게 대답하곤 당신은 작업용 유니폼을 입는다. 파스텔 톤의 파란색과 녹색의 유니폼으로 스파의 인테리어 색깔과 깔맟춤한 옷이었다... 약간 여자들이나 입을 법한 색상과 디자인의 옷이였으나. 머나먼 타지까지 와서 쫄쫄 굶는 것보단 남자의 자존심을 꺾는 편이 더 낫다는 걸 당신은 아주 잘 알고 있다.
  91. "요것 봐라? 군기가 아주 바짝 들었는걸! 아참, 아침에 나갈 때 인사 못한 것 정말 미안하구, 나 중요한 손님이 있어서 일찍 나가봐야 하거든? 일 잘해~ 말 안해도 알아서 잘 할테지만~"
  92. 알았다고 짧게 대답을 한 후, 당신은 스캐쥴 표를 본다. '모닝 글로리'가 11시 예약을 취소했고(다시 말하지만 이퀘스트리아의 시관 관념은 지구랑은 다르다) 10시 20분에 레인드랍, 그러면 오늘 처음으로 예약된 손님은 10시 정각에 블루블러드 왕자... 아 썅.. 또 이놈이냐... 그 한눈에도 밥맛없어보이는 왕자는 스파에 방문할때마다 당신에게 되도 않는 유혹을 하고 난리다. 그럴때마다 안마를 하는 당신 입장에서는 여러 군대를 주물럭거리는 만큼 굉장히 기분이 어색하고 또한 불쾌한 쪽으로 낯뜨거웠다. 여기는 건전 업소다. 마사지를 해준다고 다 윤락 업소가 아니라고 이 화상아!
  93. 뭘 모르는 암말들이 블루블러드 왕자를 얼굴만 보고 좋아하긴 한다. 당신은 이성애자다. 당신은 남에게 등짝을 보이는 건 별 취미 없는 사람이었다. 등짝을 보는 것도 별 취미 없기는 마찬가지였고!
  94. 당신은 고백을 정중히 거절했으나, 그놈의 왕자는 전혀 알아듣질 못했다. 아니면 그럴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가. 우리는 애초에 종족이 다르다고 설득해도 전혀 물러나질 않았다.
  95. 당신은 또한 이생물 성애자도 아니다. 당신이 만나왔던 대부분의 사람들도 보통 그랬다. 하지만 이퀘스트리아는 사정이 좀 달랐다. 지성이 있는 종들 중 서로 다른 종들끼리 짝을 짓는 문화는 별로 생소한 일이 아니었다. 가령 포니가 그리폰이랑 연애한다거나, 아니면 미노타우르스, 혹은 어린 드래곤과도 사귀는 걸 당신은 목도했다. 소수의 포니들과(그러니까 블루블러드 그 망할것까지 포함한)과, 그 외의 지성을 지닌 다른 종족들중 몇몇은 당신에게 그런 쪽으로의 관심을 요구한 적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당신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중 미노타우루스가 가장 흔했는데, 아무래도 인간이랑 체형이 닮았다 보니 거부감이 생기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당신도 암컷 미노타우루스의 몸매는 꽤 인정하는 편이다. 얼굴은 빼놓고서라도.. 그리고, 아무리 덩치가 작은 미노타우루스라도 당신보다 2배는 넘게 크고 그런 거인급의 여자랑 같은 침대에서 잤다간 뼈도 못 추릴 거라는 사실도 제외하고서라도.
  96. 지구에 있을 땐 당신은 수인물(Furry)성애자도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이퀘스트리아에 오면서 타락(?) 하는 바람에 거부감은 아주 쬐금 잦아든 상태다. 그도 그럴게 애초에 여기는 말 하고 생각하는 생물들이 죄다 털 달린 생물밖에 없지 않나..
  97. 당신은 한숨을 푹 쉬고는 오늘 예약을 다 숙지한 뒤 예약표를 덮었다. 첫번째 손놈 예약은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한데다가, 그 원인 모를 무기력증도 오늘 일하는 내내 따라다닐 기세다.
  98.  
  99. 휘유.. 하지만 일은 해야지 어쩌겠나..
  100.  
  101.  
  102.  
  103.  
  104. 당신은 소파 위에 몸을 던졌다. 몇시간 일한 뒤의 피곤이 아주 잠시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 걸쭉한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세렌이 주방에서 나와 당신이 아무렇게나 벗어 던져버린 웃옷을 정리하며 방 정리좀 잘 하라고 뭐라 중얼댄다. 너무 지쳐서 뭐라고 하는지 잘 들을수가 없다.
  105. 세렌이 밥 먹을 거냐고 물어본다. 당신은 점심 많이 먹어서 괜찮다고 말한다. 사실 약간 출출하긴 했지만, 여기서 일어나 뭘 먹고 싶을 정도로는 아니었다. 당신은 느릿느릿하게 소파 옆에 있는 탁자에 놓인 책을 하나 집었다. 어제 미처 못 본 부분부터 이어서 보려는 것이다.
  106.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피로도 점점 심하게 쌓였다. 왜 이리 피곤할까? 오늘 그리 무리한 적은 없는데, 시계를 보니 겨우 저녁 5시 15분이다. 몸이 알아서 축 늘어지므로, 당신은 이른 저녁부터 자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당신은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소파에 말뚝이 박힌 듯 그대로 누워버렸다. 머리가 띵하다. 사실 몸 전체가 안 띵한곳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인거지?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드는 날이었지만, 점점 더 걱정스러울 정도로 이상해지고 있다.
  107.  
  108. 세렌은 부르려고 했지만 입을 열 기력도 없었다. 공포에 질려 허둥대는것도 잠시, 당신은 깊고 어두운 무의식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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