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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에는 마법소녀가 너무 많다

a guest
Dec 23rd,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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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 "어째서....?"
  3.  
  4. 물론 상관의 지시에 대해 반발 하는 것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상관에게 할 일이 아니긴 하다. 거기다가 반말을 섞어서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거냐 미친놈아'라는 뉘앙스를 주는 것은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게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청자가 나의 의도를 알아차리든 못 알아차리든, 심지어 청자마저도 이런 지시를 내리는 것에 대해서 미안해할지도 말이다.
  5.  
  6. "미안하다.... 하지만 선행 테스트에서 통계상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나서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밈적인 효과를 집단 히스테리로 확장 및 구현시킨 성과물이라고 지껄이던데 지금 이 꼴 보려고 재단 왔는지 나도 처음으로 후회하고 있다."
  7.  
  8. 그러니까, 어차피 서로 숨어봤자 소용없으니 우리 쪽은 최대한 공포감을 심어주는 복장을 입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심연을 입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또한 심연에게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선행 테스트라는 것을 진짜로 했다면 그 사람들은....
  9.  
  10. "아니 그 21K기지 애들은 이 옷을 입고서 업무를 할 수가 있었다고요?"
  11.  
  12. 심연을 형상화한 이 옷은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이 미니스커트는 딘순히 의자에 앉아서 서류를 보고 있는 행위를 하는 것마저도 피부로부터 외부의 환경을 보호해준다는 옷이라는 것의 목표를 전혀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이힐을 신고서 달리는 것은 그냥 말도 하기 싫다.
  13.  
  14. "나도 모르겠다. 너무 거지 같지 않니?"
  15.  
  16. 그렇게 입이 험한 분은 아니셨는데, 욕을 먼저하고 그 다음 생각을 하는 그런 단순한 사람은 나였단 말이다. 그런데 그 차분하신 분이 그러신다면 나까지 욕을 참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17.  
  18. "저도 욕해도 됩니까."
  19.  
  20. "어차피 이 옷 입고서 돌아다닐 때는 컨셉 때문에 욕 못하니까 그냥 지금 해라."
  21.  
  22. "어머 시발?"
  23.  
  24. 스스로의 욕에 조금 놀라 일단 입을 닫고 잠시 내가 한 욕이 무엇을 위한 욕인지 고민했다가 직관이 아닌 이성으로 상황을 상상해낸 나는 충격에 빠지는 바람에 다시 입을 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확인을 해야만 했다.
  25.  
  26. "그럼.... 주문까지 외우라는 말씀이십니까....?"
  27.  
  28. "그래."
  29.  
  30. "그런.... 시발...."
  31.  
  32. 어떻게든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그 심연을 심연으로 인정해버리는 순간, 나는 그 것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차라리 욕을 해서라도, 욕에 뒤집어 씌워서라도 그 것을 똑바로 바라봐야만 했다. 이 방법이 지금까지 내가 수많은 현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33.  
  34. "이 망할 거.... 그냥 불태우면 안됩니까? 그냥 가라로 대충 때우자고요.... 다른 걸로 바꿔치기할 건 많지 않습니까...."
  35.  
  36. "보급품이라고 이거 점검 한단다.... 결손 나면 우리 팀 다같이 박살나...."
  37.  
  38. "그래도 현장에서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39.  
  40. "그러니까 이걸 입으면 사고가 날 일이 없다는 것이지."
  41.  
  42. 아니 틀렸다. 더 이상은 못 도망치겠다. 이미 심연은 나를 붙잡아놓았고, 나는 그걸 받아들이냐 못 받아들이냐의 선택지만이 남아 있었다.
  43.  
  44. "그래도 너무 슬퍼하지 마라. 너 혼자만 이 거 입고 현장 뛰는 게 아니야."
  45.  
  46. "그게 훨씬 더 비극인 것 같습니다.... 재단의 요원들이 모두 마법소녀가 된다니...."
  47.  
  48. "누구나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
  49.  
  50. "저는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51.  
  52. "사실 나도 그래."
  53.  
  54. 이제 GOC 애들이 이걸 보면 우리를 뭐로 생각할까. 아니 이걸 입으면 GOC도 도망칠테니 확실히 그런 면으로는 효과가 확실할 것이다.
  55.  
  56. --------
  57.  
  58. "어째서요....?"
  59.  
  60. "그냥 못 입으면 안 입으면 되는 거잖아! 왜 굳이 입으려고 하는건데?"
  61.  
  62. "나왔다.... 오타쿠를 향한 일반인의 순수하고 잔혹한 질문....."
  63.  
  64. 살다보면 재단에서 그 옷이 너무나도 효과가 있는 바람에 입고 다니는 것이 당연하고 어색하지 않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살다보면 데리고 다니던 친한 후배가 알고보았더니 오타쿠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이 두가지가 합쳐지니 그 옷을 입지 못해 어색해하는 오타쿠 후배가 내 눈 앞에 존재하게 되었을까?
  65.  
  66. "나도 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네가 상황을 명확히 이해해야할 것 같아서 다시 말해줄께. 너는 지금 큰 부상을 입은 상태고, 회복되고 나서도 영구적인 손상이 남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너는 백업조에서 그 옷을 입을 일은 없을 거야.... 나도 말하고 나니까 착잡하네.... 하지만 뭐 어쩌겠냐...."
  67.  
  68. "꿈과 희망이 있잖아요!"
  69.  
  70. "이거 주문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하는 거다."
  71.  
  72. "언니도 그 주문 기억하고 계시잖아요! 사랑과 정의! 그게 곧 꿈과 희망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제 꿈은 바로 이거였다고요!"
  73.  
  74. "그게 무슨.... 하, 어디서부터 지적해야할지 모르겠네 진짜."
  75.  
  76. "아니 언니 상상해보세요,"
  77.  
  78. "싫어."
  79.  
  80. "하지만.... 언니도 솔직히 건물 옥상에서 딱 차려입고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느끼는 건 즐기셨잖아요...."
  81.  
  82. "안 그랬는데."
  83.  
  84. "그러면 저번에 배운 봉술 현장에서 진짜 써먹었다고 저한테 자랑한 건 뭐였던 거에요!"
  85.  
  86. "아니 그건 그 얘기가 아니잖아!"
  87.  
  88. "맞잖아요! 그 봉이 무슨 봉인데요!"
  89.  
  90. "그건 톤파야! 일종의 방망이 같은 거지!"
  91.  
  92. 이렇게까지 세게 나오자 후배 또한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심한 헛소리를 한 것 같아서 사과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 후배가 먼저 말을 꺼냈다.
  93.  
  94. "처음부터 그거 가라였어요...."
  95.  
  96. "뭐?"
  97.  
  98. "아니 언니 들어보세요. 저는 그냥 코스프레용으로도 쓰려고 좀 이것저것 만졌을 뿐인데 그게 그냥 자기 혼자 효과가 사라진 거라니까요?"
  99.  
  100. "그럼 그냥 코스프레한 재단 경비원인 거잖아...."
  101.  
  102. 그럼 저번 순찰해서 저 후배가 냈던 그 속도는 뭐였을까. 지난 현장에서 얘가 보여줬던 제압술은 그냥 열심히 훈련한 거겠고. 스쳐지나가는 장면이 너무 많았는데 그 것을 다 이해할 능력이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103.  
  104. "하지만 저 실적 올라간 거 아시잖아요. 네? 저는 이거 있어야 되요."
  105.  
  106. 이렇게까지 나오니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게 그렇게 소원이라면 나는 후배의 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재단에 마법소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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